블랙 아테나

마틴 버낼, “블랙 아테나 1권” (오홍식 역, 소나무, 2006)

1.

서양문명의 원류는 고대 그리스문명이다. 세계적인 대제국을 건설했던 로마인들도 그리스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사실 로마인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학문은 거의 없다. 모두 그리스로부터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를 무력으로 정복했지만 정신적으로는 그리스에 의해 정복되었다. 이는 로마인들도 흔쾌히 인정하는 사실이다. 지금은 그리스의 경제상황이 엉망이라 그리스인들은 좀 못난 민족으로 여겨지고 있다. 세상에 자랑할 만한 제조업이라는 것이 없고 관광객들이 뿌리는 돈으로 살아간다는 조롱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는 그렇지 않았다. 한때는 지중해 세계의 상당 부분을 지배했으며 사상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세상을 선도한 민족이었다. 알렉산더 대왕도 이런 그리스 세계가 낳은 사람이다. 그가 오늘날의 중동의 태반 즉 터키, 이라크, 시리아, 이란, 이집트 등을 모두 지배하에 넣은 대제국을 세우고 많은 선진적 도시들을 세운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알렉산더 이전에도 아테네 같은 나라는 막강한 해상국가로서 에게해 일대를 주름잡은 적이 있다. 아테네는 흔히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지만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기에는 일종의 제국주의 강국이었다. 다른 나라들을 억지로 동맹으로 끌어들여 식민지처럼 착취했던 것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도 이러한 아테네의 제국주의적 행태에 대한 여러 폴리스들의 반발에 기인한 것이다. 아테네가 세상에 자랑하던 민주주의도 제국주의를 통해 수탈한 동맹국들의 돈으로 지탱되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아테네의 부와 힘이 많은 외국인들을 불러들인 것은 당연한 일. 재능 있는 사람들이 아테네로 몰려들었다. 소피스트라 불리던 선생들도 돈과 명성을 추구하여 아테네로 온 사람들이었다.

2.

그런데 아테네로 대표되는 고대 그리스문명은 어디서 왔을까? 근대 서양학자들은 그리스인들이 인도유럽어를 말하는 아리안족에 속한 족속이며 그리스문명은 이들에 의해 자체적으로 발전하였음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아리안족의 자체 발전설은 문헌기록들과 배치된다. 고대 그리스인들 스스로 그리스는 문명을 이집트나 페니키아로부터 배워왔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헤로도토스이다. 서양역사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전쟁을 주제로 한 그의 역사책에서 이집트와 바빌로니아를 상세하게 기술하였는데 그 책 2권에서 그리스의 모든 신들의 이름이 이집트에서 왔다고 하였다. 그에 따르면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의식과 축제도 이집트인들로부터 배워온 것이었다. 그러므로 헤로도토스에게 이집트는 그리스 문명의 원천이자 교사였다.

철학자 플라톤도 헤로도토스처럼 이집트가 그리스의 교사였다고 믿었다. “파에드로스”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이집트의 테우트 신이 기하학과 산술, 천문학 등만이 아니라 문자까지도 발명하였다고 한다. 테우트 신은 이집트인들이 지혜의 신이라 일컫는 토트 신을 말하는 것이다. 헤로도토스와 플라톤 모두 그리스문명의 원천이었던 이집트를 찾아갔던 것은 물론이다. 그리스 지식인들이 이집트로 여행을 가서 이집트의 사상과 학문을 배우는 것은 당시에는 일반화된 일이었다. 이집트 신전의 사제들은 그렇게 찾아오는 외국인들에게 옛 역사를 가르쳐주었다.

플라톤의 책 “크리티아스”에는 그리스의 7대 현인 가운데 한 사람이자 아테네의 위대한 정치가였던 솔론이 이집트로 가서 사제들과 대화를 나눈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집트 사제들은 솔론이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옛 역사를 이야기해주었다. 이집트에는 파피루스에 기록되어 신전에 보존되어 있는 오랜 기록들이 있었는데 이집트 사제들은 이 기록들을 근거로 솔론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이다. 사라진 섬 아틀란티스 이야기도 플라톤이 이집트인들에게서 들은 것이다. 이집트인들이 그리스인들보다 훨씬 오래 전에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런 만큼 오랜 기록도 많았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고대의 증언들 뿐 아니라 그리스의 오랜 전설도 그리스문명의 기원이 외부에 있었음을 암시해준다. 대표적인 것이 아르고스의 건국 설화와 테베의 건국 설화이다. 아르고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던 폴리스로서 이 도시국가의 전설에 의하면 아르고스는 이집트에서 도망 온 이집트 왕자 다나오스가 세웠다고 한다. 또 유명한 오이디푸스 이야기가 전해지는 테베 왕가는 페니키아에서 온 카드모스로부터 시작된다.

3.

이러한 고대의 기록들에도 불구하고 근대 서양에서는 그리스문명은 해외로부터의 전파가 아니라 자체적으로 발전하였다는 설이 자리잡게 된다. 오리엔트 세계에 대한 일종의 우월감이 작용한 것이다. 미국 코넬 대학의 마틴 버낼 교수의 “블랙 아테나 1권”은 이러한 고대 그리스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날조된 고대 그리스, 1785-1985”라는 부제가 저자의 문제의식과 입장을 잘 보여준다.

버낼은 그리스문명의 기원이 이집트와 페니키아 등 외부에 있다는 고대의 모델은 프리메이슨들에 의해서도 이의 없이 받아들여졌음을 지적한다. 프리메이슨들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은 이집트로부터 나왔다고 믿었을 뿐 아니라 신에 관한 비전秘傳도 이집트로부터 왔다고 믿었다. 프리메이슨의 이러한 믿음은 미국의 지폐에도 반영되어 있다. (피라미드 위의 눈)

버낼에 따르면 이러한 고대 모델에 대한 반발은 낭만주의로부터 본격화된다. 낭만주의는 이집트보다는 그리스를 부각시켰다. 여기에는 이교적인 이집트보다는 기독교를 유럽적인 정신의 핵으로 간주하는 친기독교적인 입장과 더불어 아리안족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인종이라는 인종주의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본다.

역사에서 낭만주의 운동은 오리엔트적인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싸우는 그리스인들을 지원하는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직접 그리스 독립전쟁에 참전하였다가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고대의 모델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버낼의 책은 고대 모델을 설명하고 그와 연관된 사실들을 제시하는 앞부분은 흥미롭지만 학자들의 세계와 학문을 대상으로 한 책의 후반부는 매우 지리한 문학비평서와 같다는 느낌을 준다. 필자는 버낼의 책과 비슷한 주제를 다룬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 “오리엔탈리즘”보다 이 책이 더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이어 나온 2권은 “고고학 및 문헌 증거”라는 부제가 붙어 있듯이 본격적인 역사서에 가깝기 때문에 재미라는 면에서는 1권보다 나을 듯하다. 적어도 역사를 전공한 필자가 보기에는 그렇다. (2권에 대한 소개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1권의 결론이라 할 수 있는 단락을 통해 독자들은 저자의 생각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것이다.

“내가 이 책 전체에 걸쳐 말하려 했던 요점은 이러하다. 고대 모델이 아리안 모델에 의해 파괴되고 대체된 것은 고대 모델 내부의 어떤 결점이나 또는 아리안 모델이 무엇인가 보다 훌륭하고 보다 그럴 듯하게 설명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리안 모델은 그리스의 역사를, 그리고 그리스와 이집트 및 레반트의 관계를 19세기 세계관, 특히 체계적인 인종주의에 부합시켰다. 그 후 이러한 세계관의 핵심을 이룬 인종 개념과 유럽인의 범주적 우월성 개념은 도덕적으로, 또 자체적으로 불거진 문제 때문에 불신당했다. 말하자면 아리안 모델은 죄악과 과오 속에서 잉태되었던 것이다.”(613쪽)

[김현일] 

필자약력: 서울대학교 인문대 서양사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서양 근대기업사에 대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부터 지금까지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서양의 제왕문화》, 《동학의 창도자 최수운》, 《유럽과 만난 동양유목민》 등의 저서가 있으며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 《프랑스문명사》, 《금과 화폐의 역사》 등의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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