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과학사상사 연구 1

조선후기 과학사상사 연구 1

주자학적 우주론의 변동 (구만옥, 혜안, 2004)

글: 양재학

오랜 만에 아주 묵직한 학술서가 출간되었다. 소장학자인 저자는 천문학에서 역사학으로 전공을 바꾸는 용기를 보이면서 근래에 보기 드문 역작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조선후기 과학사상사에 대한 탐구를 전통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과학사상사는 그 자체로 탐구되어서는 절름발이 형태에 머물기 쉽다. 그 시대의 정치와 사회와 국가의 이념이었던 성리학적 세계관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이라고 불리는 성리학은 주희(朱熹, 1130-1200)에 의해 체계적으로 수립되었다. 주자학의 성립은 동아시아의 세계사적 사건으로 평가될 정도로 동양인의 가치관과 인생관의 확립에 영향을 끼쳤다. 성리학적 세계를 극복하는 것이 근대화의 조건이라고까지 지적되는 실정에서 저자는 조선후기 실학사상가들의 정신세계를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오늘날 근대적인 자연관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우리들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 우리 선조들은 자기 스스로를 우주적 존재로 규정하고, 자연과의 지속적인 교감 속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 간다고 믿었다. 거기에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에 대한 깊은 사색이 들어있다. 현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수많은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타개책을 조선후기 자연관의 변동과정에서 그 단초를 찾고 있다.

자연관이란 인간이 자연을 파악하는 총체적 관점을 뜻한다. 자연계의 생성과정, 구조와 본질, 변화와 발전의 메커니즘, 객관적 법칙성의 존재 여부, 그것과 인간과 사회와의 연관성 등이 자연관이라는 범주 안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 주제들이다. 이러한 문제를 저자는 우주론을 중심으로 다룬다. 우주론이 전통적으로 과학과 형이상학이 결합된 형태로 논의되어 왔고, 세계관의 문제와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조선 초기부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전까지 조선사회를 지배하였던 주자학적 자연학 체계를 부정하고 근대적인 성격의 자연학으로 전이하는 일련의 과정에 주목하면서 전통적인‘유기체적 자연관’의 역사적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다. 조선후기 우주론의 변화의 원인으로서 서학(西學)의 수용이라는 외래적 요인이 강조되어 왔다. 하지만 그것은 일방적인 서학의 수용의 역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조선후기에서 서학의 수용은 조선 지식인들의 주체적 노력의 연장선상에 이루어졌다고 단언한다.

이 책에서는 주자학적 우주론이 변동하는 메커니즘을 도리(道理)와 물리(物理)의 분리, 리(理)의 성격변화, 자연학(自然學)의 가치론적 자립화 등을 중심으로 논의하였다. 주자학적 우주론의 변형과 극복과 해체의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전통적 사유의 틀 속에서 변용의 메카니즘을 찾아내는 것은 아주 뜻 깊은 일이다. 그것은 역사적으로는 전근대에서 근대로, 사상적으로는 성리학에서 실학으로 넘어가는 전환기를 주체적으로 주도했느냐 아니면 수동적인 입장에서 극복했느냐 하는 민족 정체성의 문제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자연관의 변화를 통시기적으로 볼 때, 조선전기는 주자학적 자연관의 성립과정으로, 조선후기는 주자학적 자연관의 재정립, 변형, 해체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15세기는 이전 시기의 전통적 자연관이 주자학적 자연관을 중심으로 통합되어 가는 과정으로, 16세기는 주자학적 자연관의 확립시기로, 17-18세기는 양란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과 병행한 주자학적 사유체계의 동요에 조응하여 한편에서는 주자학적 자연관이 재정립 또는 강화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주자학적 자연관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이 모색되는 시기로 구별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주의 깊게 살필 점이 있다. 하나는 하늘(天)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며, 다른 하나는 마테오리치(利馬竇: 1552-1610)에 대한 인식이다. 저자는 특유의 꼼꼼한 스타일에 맞춰 당시 실학자들이 바라본 마테오리치의 업적을 하나씩 들춰냈다.

먼저 천관(天觀)의 변동을 약간 알아보자. 이익(李瀷, 1681-1763)은 자연적인 하늘을‘천(天)’으로, 그 하늘의 운행원리를‘상제(上帝)’로 표현하였다. 천(天)과 제(帝)는 각각 사물과 인격으로 비유되었다. 천이란 자연물로서의 천지를 뜻하고, 제란 그 천지의 운행을 주재하는 인격적인 존재와 같다는 말이다. 때문에 천은 배나 수레에, 제는 배를 띄우고 수레를 끄는 행위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것은 성리학에 의해 잃어버렸던 유교 본래의 천관 혹은 상제관(上帝觀)을 회복하려는 실학자들이 시도했던 노력의 일환이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고대 유교문화에서 섬겨온‘하늘의 주재자이신 상제문화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산은 젊어서 한때 천주교에 심취하여 전도까지 한 일이 있었으나, 조상을 우상이라 여기고 신주를 불태우는 행태에 분노하여 신앙을 버렸다. 그 후 그는 유교의 본질이 상제신앙에 있음을 깨닫고 주요 경전 속에 드러난 상제신앙을 정리하여 방대한 주석을 내놓았다.

다산은 성리학자들이 하늘을 감정도 형체도 없는‘도, 태극, 리’등 극히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을 비판하고, 그러한 태도는 날마다 인류의 곁에 계시며 굽어보시는 상제에 대해 삼가고 두려워하는 감정을 사라지게 한다고 지적하였던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마두(利馬竇)는 역사상 서양문물을 동양에 소개한 종교인 또는 학자로 알려져 있다. 과연 푸른 눈을 가진 이마두는 조선후기의 실학자들에게 어떻게 비쳐졌을까? 조선에 전래된 최초의 세계지도는 이마두에 의해 제작된「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였다. 그것은 1603년(선조 36년)에 도입되어 조선의 과학사상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이마두는 처음에는 괴상망칙하고 불합리한 이론을 말한 사람이라고 부정당하다가, 점차 그의 학설은 매우 합리적이었다는 과정을 이 책의 저자는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특히 이만부(李萬敷, 1664-1732)의 서학에 대한 평가는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는 이마두의 일찍부터 책을 열람하였고, 이마두를‘신인(神人)’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것은 단지 종교인으로만 알려졌던 이마두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평가를 과학과 사상의 입장에서 소개한 점은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양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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