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장생不老長生을 추구한 사람들
인문사회부 김선주
1. 중국의 방사方士
기원전 3세기 무렵에 중국에서는 신선설神仙說이 생겨났다. 여기에 중국 종교의 원초적 형태인 무술·자연숭배 등이 혼합되어,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방술方術이 생겨났다. 방술을 행사하는 사람을 방사方士라고 하는데 방사가 제왕과 밀접하게 된 것은 진시황秦始皇 때부터였고, 한무제漢武帝 때에는 제왕 측근에서 거의 떠나지 않을 정도였으므로 방술은 상층사회에 굳게 뿌리내리게 되었다. 한편 신선설이나 방술은 호소할 곳 없는 일반 백성들의 마음까지 사로잡기에 이르러 종교적인 힘을 발휘하는 방향으로 변천하였다. 한대漢代에 이르러 전설상의 임금인 황제黃帝와 『도덕경』의 저자로 전해지는 노자老子가 초인적인 존재로 여겨지고 신선으로 꼽혀 황로신앙黃老信仰이 대두하였다. 방사들의 조작적인 선전과 참위설讖緯說의 유행이 황로신앙을 가열시켰다. 이러한 황로신앙을 가미시킨 신선방술의 내용이 조정, 확대되고 신흥종교였던 불교의 영향을 받아 도교로 개괄되는 한 종교로서의 형태를 갖추어나가게 되었다.
『한서』 「예문지」에는 방기方伎를 의경醫經·경방經方·방중房中·신선神僊의 넷으로 구분하였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의경은 기초의학 또는 병리학이라 하겠고, 경방은 치료 또는 제약에 관한 것이라 하겠으며, 방중은 성욕내지 우생학에 관한 것이라 하겠다. 뒤에는 복서卜筮·점험占驗 등도 더해졌다. 방술을 행하여 그 술법을 터득한 사람을 방사라고 한다. 그리고 신선神仙이라 함은 그 본래의 목적이 생사를 초월한 진인眞人을 이름이다.
방사는 방술을 통해 선인 혹은 진인이 되고자 하였다. ‘선僊’자는 ‘선仙’의 고대 글자로, 한대 이전에는 ‘선僊’을 사용하였고, ‘선仙’은 사용하지 않았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설명하는 선僊은 ‘장생선거長生僊去’이다. 선僊은 동사로, 무巫의 춤동작에 기원하고, 종교의식과 관련이 있다.
‘선仙’자는 후대의 전적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데, 한대에 최초로 출현하였다.전통적으로 선이란 대개 ‘불사不死를 획득한 자’로 규정되어 왔다.
『사기』 「진시황본기」에 진인眞人에 대한 설명이 보인다. “노생盧生이 시황에게 진언하였다.… 악귀를 피하면 진인眞人이 나타날 것입니다. 군주의 거처를 신하들이 알면 入神의 경지에 들어가는데 방해가 됩니다. 진인眞人이란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으며, 구름을 타고 공중을 날며, 천지와 더불어 장구한 (삶을 누리는 존재입니다.)”
불로불사를 얻는 방법을 개괄하면 다음 세 가지가 된다. ① 우주의 궁극적 실재이고 천지만물의 근원인 영원한 ‘도道’와 신비적으로 합일함으로써 생사의 차원을 초월하려고 하는 종교 신비주의적 명상의 방법, ② 인간의 육체를 구성하고 인간을 죽지 않으면 안 되게 하는 불순하고 조잡하고 둔중한 ‘기氣’를 순수하고 정치精緻하고 경묘한 ‘기(氣:원기·우주 근원의 기운)’로 바꾸어 불로불사를 얻으려고 하는 방법, 즉 벽곡(穀:곡식을 먹지 않는 것)·조식(調息:우주에 편재하는 원기를 들이마셔 체내에 축적하는 일종의 호흡법)·도인(導引:탁한 기운을 몸 밖으로 배출하고 원기를 축적하는 것) 등, ③ 인간의 신체를 불로불사하게 한다고 하는 약물류(仙藥 또는 丹藥)의 복용, 즉 약초 등 식물성의 것으로부터 광물성의 것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약이 있으며, 그 효능도 다양하다.
2. 신선사상神仙思想에서 도교道敎로
이러한 신선사상은 종교로서의 도교에 이어진다. 도교는 황제黃帝와 노자老子를 교조로 삼은 중국의 토착종교로, 노자와 장자莊子를 중심으로 한 도가道家사상과 구별된다. 종교로서의 도교가 초보적이나마 교리 체계와 교단을 갖춘 것은 후한의 신흥 종교라고 할 수 있는 태평도太平道와 오두미도五斗米道가 처음이다.
장도릉張道陵 등이 도교를 일으킨 초기에는 그 신도들이 대부분 어리석었던 탓으로 종교라기보다도 일종의 교비敎匪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도교가 일반 민중뿐만 아니라 상류 지식층 사이에도 널리 전파되자 체계적인 교리와 합리적인 학설·교양의 뒷받침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필요에 따라 도교가 하나의 종교로서 이론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3-4세기 무렵 위백양伯陽과 갈홍葛洪이 학술적인 기초를 제공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구겸지寇謙之가 전래 종교인 불교의 자극을 받아 그 의례의 측면을 대폭 채택하고 도교를 천사도天師道로 개칭함으로써 종교적인 교리와 조직이 비로소 정비되었다.
위진남북조 시대 도교의 전개에서 가장 중요한 두 인물은 동진의 갈홍과 북위의 구겸지였다. 갈홍은 태평도와 오두미도에서는 그다지 찾아볼 수 없는 신선사상을 도교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신선은 불로불사의 신령스런 존재로서, 도교도들은 보통 사람도 적절하게 수련을 쌓으면 신선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특히 복용하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는 신비의 약 금단金丹을 만드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구겸지는 종교적인 의례 절차, 여러 신들의 계열, 복장이나 부적, 교단 조직 등을 체계화, 제도화했다. 갈홍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노자를 신격화하여 도교의 교조로 삼고, 구겸지 자신이 그 정통을 이었음을 자부했다. 구겸지는 당시 권력자 최호의 추천을 통해 424년에 북위의 황제 태무제를 만나 도교의 교리를 설명하고 책을 바쳤다. 이에 태무제는 구겸지가 북위에 도장을 설치할 것을 허락했고, 구겸지의 활동을 적극 후원했다. 태무제 이후 북위 황제들은 즉위할 때 도단에서 법록을 받았고, 결국 도교는 북위의 사실상의 국가 공식 종교가 되었다.
3. 증산도의 선仙과 신선사상
증산도의 ‘선’은 하늘의식과 천제天帝 즉 상제 신앙의 큰 틀, 다시 말해 한국 신교의 자기적 역사와 그 근원을 같이 한다. 신교문화란 인류문명의 뿌리로서의 ‘삼신상제님’을 우주의 주재자요 통치자로 삼은 동방문명의 가르침을 말한다. 신교문화의 ‘삼신상제님’은 비인격적인 우주만물의 신성과 인격적인 최고신을 총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증산이 원시반본의 대의 속에 혈통줄을 바로 잡으라 할 때에도, 선仙은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왕검王儉은 혹 신인이라고도 하고 혹 선인이라고도 하는데 그 수가 아주 길어 산에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대개 상고 시대에는 신과 선의 분별이 없었다.
최치원崔致遠은 난랑비서鸞郞碑序 본문에 “우리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으니 이를 풍류風流라 이른다. 그 교敎의 기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다. 실로 이는 삼교三敎를 포함하여 중생을 교화한다. 그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사구(魯司寇:孔子)의 주지이며, 또 그 무위無爲의 일에 처하고 말없는 교를 행하는 것은 주주사(周柱史:老子)의 종지이며, 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착한 일만을 행함은 축건태자(竺乾太子:釋迦)의 교화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그 교의 기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최치원이 ‘난랑비서’를 썼을 당시에는 「선사仙史」라는 문헌이 현존했고 거기에 화랑도의 정신이라고 할 ‘풍류, 현묘지도’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선仙이란 근본적으로 신도神道의 원리를 이해한 인류 시원문명의 자기적 세계를 굳게 지켜온 한국의 철학사상이다. 이것이 중국으로 들어가서는 ‘신선神仙 방술方術’이라는 도교적 세계로 편입되게 되었다. 이로부터 선은 신선·양생술에 집중되었다.
증산이 지칭한 ‘선’은 과거로부터 전래되어 온 단순한 신선·양생술의 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증산은 “이제 佛之形體하고 仙之造化하고 儒之凡節의 삼도(三道)를 통일하느니라. 내가 유불선 기운을 쏙 뽑아서 선(仙)에 붙여 놓았느니라.”(『도전』 4:16:7-8)고 뿌리문화 즉 선교仙敎와 신도神道의 원형회복을 선언하였다. 증산도의 ‘선’은 한 민족의 전 역사에 걸친 신교적 전통과 상제신앙으로부터 발현한 세계에 대한 인식과 진리를 안으면서, 새로이 인간의 진실과 우주의 본질에 대한 해명을 지닌 것이다. 증산도 ‘선’의 특징적인 면은 ‘선’이 사실상 신과 인간, 즉 신神·인人이라는 이중적 세계를 교섭하는 상화相化 즉, 조화의 원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조화와 종합 그리고 새로운 후천 선문명을 위한 통일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