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교의 삼신관에 관한 일고
Ⅰ. 영원한 생명의 근본 삼신
신교에서 일자〔한〕, 즉 모든 것의 시원이면서 그것들의 공통된 근본을 이루는 존재는 삼신이다. 삼신은 ‘모든 것을 지은 것〔一切惟三神所造〕’; ‘사람과 만물이 함께 생겨 나는 바’(『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소도경전본훈」); “영원한 생명의 근본”; “한 근원의 조상”〔一源之祖〕(『태백일사』「삼신오제본기」) 일자로서 삼신은 허공이나 천으로도 불린다. 이 일자는 다음의 특징을 갖는다.
1) 유무이혼, 허조동체
2) 모든 것을 하나로 모으는 통일성을 가리킨다. 일자는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은 그 하나다. 개별자들은 그 통일성으로서 일자 안에서, 일자를 통해 비로소 참되게, 다시 말해 그것인 바 그것으로서 존재하며 일치를 이룬다. 먼지와 질그릇; 바다와 양동이의 예.
모든 것〔萬物〕 혹은 다多는 크게 범주적으로는, 삼재三才라 불리는 천, 지, 인(物)로 나뉜다. 일자는 이 셋으로 화한다. 셋 안에는 그것의 본성으로서 일자인 삼신이 내재한다. 그래서 셋은 그 자체가 또한 삼신이다. 일은 삼으로 작용하고 삼은 일로서 체를 삼는 것이다(三一其體 一三其用). 이는 제작이나 산출, 창조 등 인과적 사건과는 무관하다. 일은 삼으로 나뉘고 삼은 일 안에서 일을 통해 그것으로 존재하면서 일과 삼은 호체호용하며 함께 속한다. 그것은 하나의 고리다.
3) 그 통일성의 중심, 사이〔中〕다. 만물을 싸안는 동시에 그것을 관통하는, 다시 말해 초월적이며 내재적인 그것은 또한 만물의 차이를 메우면서 그것들을 하나로 모으는 중심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일자, 곧 삼신이 일과 다, 전체와 부분을 관통하는 생명이며 과정, 사건으로 이해돼야 한다는 점을 함의한다.
4) 일자는 이와 같이 스스로 중심이 되어 모든 것을 감싸 안음으로써, 사방으로 펼쳐지는 둥근 원圓을 이루게 된다. 원이란 시종始終도 선후先後도 없다. 우주의 고리에서는 단선적인 인과가 없으며 체용으로 나뉘지 않는다. 화엄의 논리로 말하면 이사무애理事無礙다. 모든 것은 원만한 원을 이루는 일자에 감싸여 각기 그것의 고유함으로 존재한다.
5) 일자는 기로서 존재한다. 기는 이미 따로 말하지 않아도 이미 일기一氣다. 기만이 자신을 쪼갬이 없이 천지와 인간, 그 밖의 모든 것에 속하며 그것들을 존재하게 할 수 있다. 기가 곧 모든 것들 사이의 차이를 메우고 그것들을 하나로, 한 생명으로 묶는 통일성의 ‘중심’이며 ‘사이’고, 도상으로 말하면 둥근 원일 수 있다. 그리고 이 기만이 무에서 유가 나온다고 주장하는 일 없이, 모든 것을 낳는 소자출이 될 수 있다.
신교 사상에서 일자는 신성神性이며 기로 이해되는 것이다. “한 기운〔一氣〕이 하늘이며 공空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스스로 일신이 있어 능히 셋이 되니, 삼신은 곧 천일天一ㆍ지일地一ㆍ태일太一의 신이다. 한 기운이 스스로 일으키고 움직여 조화造化ㆍ교화敎化ㆍ치화治化의 세 변화 원리를 지닌 신이 되는 것이다.”(『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다음의 구절은 보다 선명한 삼일三一의 논리로써, 기와 신의 동일성을 설명한다. “하나를 집으면 셋을 포함하는 까닭은 한 기운은 삼신으로 벌어지기 때문이고, 셋을 모으면 하나로 돌아가는 까닭은 또한 신이 셋으로 작용하나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 뒤이어 이렇게 말한다. “무릇 생명의 본체란 하나의 기운이다. 이 일기는 안으로 삼신이 있으며, 지혜의 근원 또한 삼신에 있는데, 삼신은 밖으로 일기에 싸여 있다.”(『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
6) 기며 신인 일자의 본질 혹은 모습은 빛이다.
7) 일자, 삼신은 동시에 인격적 최고신을 의미한다. 일자, 삼신은 양의성을 갖는 것이다.
Ⅱ. 삼신과 하나이신 상제
어쩌면 일자에 대한 마지막 규정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이른바 선도문헌류에서 신이며 기인 일자를 가리키는 삼신은 양의적으로 쓰인다. 삼신은 한 뿌리의 기운으로서 천지조화의 바탕자리를 이루는 신성일 뿐만 아니라 또한 세상일을 다스리며, 인간의 기도에 감응하고, 제사를 받는 인격신으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삼신은 “하늘나라에 살며”(『태백일사』「삼신오제본기」), “대권능의 조화로 만물을”(『삼성기』) 만들고, 오제나 오령 등 “신의 힘을 행사하여 세상일”을(같은 책) 다스리며 비를 내려 주고 황충을 멸해달라는 기원을 받으며(『단군세기』), 기쁨과 싫어함의 감정을 지닌 “한 상제〔一上帝〕”(『태백일사』「신시본기」)으로도 나타나는 것이다. 이 같은 의미의 삼신에 대해서는 곳에 따라 상제 이외에 “제帝”, “천신天神”, “일신一神”, “대조신大祖神” “삼신상제三神上帝” 등이 쓰이기도 한다. 한국 고대 사유에서 신을 또한 인격적, 주재적 실재로도 이해했음을 다음의 기술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너희는 오직 순수한 정성으로 일심을 가져야 하느님을 볼 수 있으며”, 또한 “너희 부모를 잘 받들어야 능히 하느님을 공경할 수 있다.”(『단군세기』)
무형의 신성으로서 삼신과 주재적 인격신인 상제는 『삼일신고』에서는 각기 천 혹은 허공과 일신으로 나타난다. 1장에서 다루는 천 혹은 허공은 “겉도 비고 속도 비어 어디나 있지 않은 데가 없으며 무엇 하나 싸지 않는” 것으로서 신령한 우주 한 기운인 삼신에 해당한다. 2장에서 다루는 일신은 “위없는 자리에 머물며 큰 덕과 큰 지혜와 큰 힘으로 하늘을 짓고 무수한 세계를 주재하는, … 밝고 신령스러워 이름 지어 헤아릴 수 없는” 인격적 실재다. 1장과 2장의 주제인 허공과 일신에 대해 각기 “하늘의 본질〔天之質量〕”과 “하늘의 주재〔天之主宰〕”(『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라고 밝히는 규정은 ‘가장 포괄적인, 일반적인’ 허공과 ‘가장 높은, 으뜸의’ 일신이 동일하면서도 구별됨을 말하고 있다. 일신에 대한 설명 가운데 “밝고 신령스러워 이름 지어 헤아릴 수 없음”은 인간의 인식과 언어로는 옳게 옮길 수 없는, 신의 신성성에 대한 경외를 말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참전계경』에서는 인격신의 의미에서 신을 천신이라고 부르며, 무형의 하늘 중에 하늘〔天之天〕이라 한다.
한편 최남선 역시 고대 사유공간에서 신의 이중성, 상대적 양면성을 얘기한다. 그에 따르면 신의 이름에 신, 신이 있는데 신은 컴컴하고 영검하며 경외로운 신, 신은 친애하고 밝고 구제해 주는 신이다. 이 신들은 둘이 아니라 한 신의 양면적 기능이라는 것이다. 류승국은 이와 더불어 환웅〔天〕과 웅녀〔地〕, 환웅〔一神〕과 풍백, 우사, 운사〔多〕의 예를 들며, 한국의 신관에서 상대적 이원성과 융화적 일원성을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같이 한국 고대문화에서 일자〔삼신〕는 무형의 비인격적 우주 신성과 동시에 인격신인 주재자 상제를 가리키고 있다. 일자는 우주 만물의 본성으로 내재한, 가장 일반적인 신성인 동시에 더 이상 위가 없는 자리에서 우주 만물을 통어하는 최상의 신을 가리키는 것이다. 『태백일사』에 상제에 대한 또 다른 호칭으로 등장하는 “삼신일체상제三神一體上帝”, “삼신즉일상제三神卽一上帝”에 그 같은 신관이 잘 나타나 있다. 후자의 ‘삼신즉일상제’에서 ‘즉卽’은 상이한 것의 동시성, 동일성 혹은 둘 사이의 불일불이의 사태를 표현한다. 다시 말해 고대 신교문화는 비인격적 실재와 인격적 실재를 하나로 조화시키는 비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신관에서는 초월과 내재, 유일신론과 범신론이 조화된다. 여기서 신은 단순히 섬김과 기복, 숭배의 대상도 아니며 인간과 존재론적으로 합일하는 비인격적 실재도 아니다. 혹은 둘 다이다. 따라서 적어도 분명한 것은 하느님(제, 상제, 천신, 일신) 없이도 한울(님)(삼신, 기/신) 없이도 한국 고대 사유와 종교는 온전히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다.
Ⅲ. 삼신과 상제의 사이
그렇다면 삼신과 제, 무형의 조물자 하느님과 유형의 조화주 하느님 사이의 일체, 조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다시 다음의 구절에 주목한다. “이 기氣는 실로 지극한 존재로, 그 지극함이란 곧 무(유·무를 포함한)를 말한다. 무릇 하늘의 근원은 천·지·인 삼극三極을 꿰뚫어 허하면서 공하니 안과 밖을 아울러서 그러한 것이다. 천궁天宮은 광명이 모이고 온갖 조화가 나오는 곳이다. 하늘에 계신 상제님一神께서는 능히 이러한 허虛를 몸으로 하여 만유를 주재하신다. 따라서 이 우주의 통일된 기氣가 곧 하늘이며, 또한 우주 생명의 공空인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스스로 일신이 있어 능히 삼신이” 되는 것이다.(『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 강조 필자)
상제는 허하고 공한, 그러나 신령한 공능을 지닌 삼신을 몸으로 삼아 우주를 주재한다는 뜻이다. 어디나 있지 않은 데가 없으며 무엇 하나 싸지 않는, 수운의 말로 바꾸면 ‘간섭하지 않음이 없고 명하지 않음이 없는〔無事不涉無事不命〕’ 신령한 공능을 지닌, 우주 보편적 신성을 씀으로써 상제는 함이 없이 우주 만물을 다스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이 무위이화하는 주재의 사태를 두고 “타고 노심”이라고 표현한다. “천지의 조화신이 시베리아의 하늘에 머물며 홀로 변화하는 주신主神이 되셨다. 그 광명은 우주를 비추고, 대권능의 조화로써 만물을 낳으시며, 오래도록 사시며 항상 즐거움을 누리셨다. 지극한 조화기운을 타고 노시며, 진실로 오묘하게 스스로 그러함을 따르고 형상 없이 나타나셨으며, 무위로 만물을 짓고 무언으로 행하셨다.”(『삼성기』) 여기서도 주재자 상제가 지극한 조화기운을 써서 우주를 만들고 역사를 짓는다는 것이 나타나 있다.
우주 주재자 상제는 모든 것의 바탕을 이루며 또한 그것들을 포괄하는 우주 한 기운을 씀으로써 그것의 공능을 때에 맞춰 역사와 인간 삶에서 펼쳐 내도록 하는 것이다. 마르지 않는 생명의 문인 삼신의 창조성, 무형 가운데 유형의 사물을 낳고, 공空에서 색色을 짓는 조화는 상제의 주제를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다. 그 상제의 손길이 없다면 천지조화의, 위력적인 힘은 방향과 지성 없이, 하나의 맹목적 가능성으로 남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흑암’의 상태로 영원히 머물 것이다. 그래서 “참으로 공이 있는 것은” 주제자 상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공은 가고 색은 옴에 주재하는 이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니 삼신께서 크신 이 되오나 제가 참으로 공이 있는 것이다.”(『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 인용문은 『삼일신고』에서 1장 허공에 이은 2장 일신에 대한 설명이다. “대자연 속에 충만한 삼신의 창조이법과 조화권능이 오직 우주의 주권자이신 아버지 상제님을 통해 온전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주의 보편적 신성은 상제에 속한다.
반면 우주 조화성신인 삼신은 모든 것의 근본, 유래로서, 말하자면 천지만물의 부모로서 그 권능은 비할 데 없이 크고 폭넓은 것이다. 어떤 것도 그 모태의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삼신은 상제마저도 감싸 안으며 신령스럽게 한다. 도는 “ 누구의 아들인지 모르나 제마저도 앞서는 것 같도다.”(『노자』 제4장) 도道는 만물이 존립하고 변화하게 하는 원리며 원동력이지만 그 자신은 유형의 어떤 것도 아니다. 삼신은 제마저도 앞서는, 모든 것의 시작이로되 그 자신은 “누구의 아들인지” 모르는, 다시 말해 자기 바깥의 또 다른 근거를 두지 않는 무시無始의 도에 견줄 수 있는 것이다.
상제는 최고의 신으로서 상제 역시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본인 조화기운〔원신〕에 속한다고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교의 우주론은 두 가지 궁극자를 허용하는 이원론이 될 것이다. 상제는 원신에서 화한 홀로〔스스로〕 변화한 주신主神이며 도나 일一이 화한 인격적 존재다. 우주 본체를 이루는 원신, 즉 삼신 가운데 “천지의 시간의 변화정신에 의해 스스로 화생한 인격신들 가운데에서, 천지를 주재하는” 주권을 가진 최고신이 상제다. 우주의 비인격적 신성인 원신은 제마저도 신령스럽게 하는 것이다. 이는 상제 역시 저 우주의 가장 일반적인 것〔삼신〕의 규정에서 예외일 수 없음을 말해준다. 뿐만 아니라 상제가 천지와 인간 삶을 다스리는 주재 권능은 원신, 즉 어디에도 있지 않음이 없고 하지 못함이 없는 조화의 천지 기운에서 기인한다. 거듭 상기하거니와 상제는 “능히 이러한 허虛〔지기, 삼신〕를 몸으로 하여”(『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혹은 “지극한 조화기운을 타고 노”심으로써(『삼성기』) 무위로 만물을 짓고 무언으로 행하시는 것이다. 신령한 공능의 기를 주재함으로써〔統以氣主張者〕, 만물을 다스리는 자신의 본분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비인격적 실재인 삼신과 인격적 실재인 상제 사이의 일체성 혹은 그 조화의 비법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밝혀진다. 삼신은 일기로서 만유 생명의 바탕을 이룬다. 상제 역시 조물자 하느님, 형상이 없는 하느님이 스스로, 홀로 화化한 것이다. 따라서 으뜸의 신인 상제 역시 다른 모든 것들과 더불어 저 폭넓은 우주 신성 안에 속한다. 그러나 동시에 상제는 그것을 써서 우주 만유를 다스린다. 그런 점에서는 비인격적 삼신은 상제의 권능에 종속한다. 다시 말해 삼신은 상제를 위해 존재의 밑자리가 되고 조화권능의 원천이 됨으로서 그를 규정짓지만, 상제는 삼신의 무궁한 조화력이 자연과 인간 역사에 구현되도록 주재한다. 삼신과 상제 사이의 일체성이란 곧 그와 같이 서로에게 속하면서, 한 몸을 이루는 방식의 그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우리가 밝힌 신교의 일자인 삼신의 여러 사태들이 우리말 ‘한’이 지닌 여러 의미들에 얼마나 부합되는지 다루고자 한다. 이는 이제까지의 주장을 정리하는 동시에 그것이 얼마만큼 타당한지 확증하는 시도가 될 것이다.
Ⅳ. ‘한’의 의미와 삼신의 사태
최남선은 『불함문화론』에서 ‘한’은 ‘’〔白〕의 음이 변한 것이며 ‘’은 하늘과 태양, 신을 하나로 보는 사상에서 온 것이라고 말한다. “동북아 일대의 산천 이름, 사람 이름에서 발견되는 (白)자(백두산, 태백산, 백운대)는 본래 ‘하늘’과 ‘태양’ 그리고 ‘신’을 하나로 보는 사상에서 온 것으로 이 후대에 와서는 (桓, 韓) 또는 (大, 夷)으로 음이 바뀌었던 것이다.” 이기영 또한 ‘’으로부터 출발하여 모든 것이 전체로 큰 하나라는 ‘한’ 개념으로 전음轉音되었다고 본다. 이 우리 정신문화의 등뼈라고 말하는 함석헌은 한이 밝음, 태양을 의미하는 것에 동의하면서, 한을 인격화하여 대표하는 것이 한님 곧 하느님, 환인이며 하늘에서 표시하면 해라고 한다. 그는 그로부터 밝 혹은 박 사상이 나온 것으로 본다. 하늘의 원래 의미를 한밝(대大광명, 대大국토)으로 제시하는 양주동은 한밝–한–하늘의 순으로 전음됐다고 설명한다.
이상의 주장들은 각론과 주장의 근거에서 상이하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우리말 ‘한’에 ‘하늘=태양=밝음=신’의 근본 의미가 간직돼 있음을 밝히는 것으로 정리된다. 한의 의미에 관한 또 다른 견해들을 보자.
안호상은 한의 개념이 내포한, 무려 22개의 의미를 제시한다; 크다(大); 동이다(東); 밝다(明鮮); 하나다(단일 唯一); 통일하다(統一); 꾼 뭇(大衆); 오램(久) 참음; 일체다(一切) 전체다; 처음이다(始初); 한나라 한겨레(韓民族); 희다(白); 바르다(正); 높다(高); 같다(同一); 많다(多); 하늘(天); 길다(長); 으뜸이다(元); 위다(上); 임금(王); 온전하다(全); 포용하다(包容). 그는 또 다른 곳에서 한의 의미를 하날–해(日), 하늘–허공, 한울–한누리(大世界) 한얼–하나의 얼(神) 네 가지 개념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또한 한의 의미를 ‘유일하다’, ‘크다’, ‘넓다’, ‘높다’, ‘밝다’로 정리하기도 하며(이을호 외, 1990: 94), 한을 서수(하나)이며 전수(모든 것)고 무한수(통일성)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한편 김상일에 따르면 ‘한’은 ‘일(一)’, ‘다(多)’, ‘중(中)’, ‘동(同)’, 혹(或)’의 의미를 갖는다. 한의 ‘논리목록어’라고도 불리는 이 다섯 가지 의미 가운데, 생소하게 들릴 수 있는 ‘혹’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을 보탤 필요가 있다. ‘혹’은 불확정성, 애매성을 의미하는데, 일과 다를 중과 동으로 관계시킬 때 나타나는 결과라고 한다. 일과 다를 그 ‘가운데’ 혹은 ‘같게’로 조화시킬 때 비결정성, 불확실성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또 ‘혹’은 ‘무’(emptiness)로도 이해된다. ‘하나’가 많음이 되고 ‘많음’이 ‘하나’가 되는 자리는 무라는 것이다. 이다. 즉 ‘혹’은 하나와 여럿의 통일성으로서 있는 한〔일자〕이란 고정된 실재가 아니라 불확정한 과정적, 사건적 사태임을 표현한다. 또한 한은 유나 무로 단정될 수 없는, 둘이 뒤섞인 것, 말하자면 ‘있는 듯 있지 않은 있는 것 같은’ 것이란 점에서도 ‘혹’이다.
이제 이상 여러 관점에서 제기된, 한의 의미들이 일자에 관한 우리의 규정 속에 얼마큼 발견될 수 있을지 보기로 하자.
–일자는 하나며 모든 것인 통일성이다. 그것은 유무이혼으로서 더 이상 근거를 물을 수 없는 시원이다. 허하고 공한 일자는 어디나 있지 않은 데가 감싸지 않는 것이 없다. 일자의 이 같은 사태에는 다음과 같은 한의 의미가 상응한다: 크다(大), 하나다(단일 唯一), 유일하다, 서수(하나), 일, 일체다(一切) 전체다, 혹或, 온전하다(全), 넓다, 전수(모든 것), 다多, 통일하다(統一), 처음이다, 으뜸이다, 포용하다(包容), 무한수(통일성), 하늘(천), 하늘–허공, 한울–한누리(大世界).
–일자는 스스로 통일성의 사이며 중심을 이룬다. 일자는 스스로 중심이 돼 모든 것을 하나로 불러 모으는 것이며 그렇게 모여 있음 전체로서 둥근 원을 이룬다. 모든 것은 일자로부터 그리로 차별과 차등 없이 하나로 속하며, 그런 의미로 모든 것은 같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한의 의미가 해당한다: 통일하다(統一), 온전하다(全), 포용하다(包容), 무한수(통일성), 같다(同一). 중中, 동同.
–일자는 기며 신으로서 그 본질은 빛이다. 허하고 공한 기/신으로서 일자는 사건적, 과정적 생명으로 자신을 쪼갬이 없이 다수의 존재자들을 관통하는 동시에 싸안는다. 모든 것은 일자의 광휘 안에, 그것을 통해 비로소 존재한다. 이 같은 일자 규정에는 다음과 같은 한의 의미가 발견된다: 동이다(東) ; 밝다(明鮮), , 밝다, 희다(白) ; 태양, 하늘(天), 하날–해(日), 혹或.
–일자는 인격적 실재와 이위일체, 이즉일로 있는 사태다. 일자는 우주의 근본을 이루는 비인격적 실재를 가리키는 동시에 인격적 최고신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한의 의미가 상응한다: 하늘(天); 으뜸이다; 위다(上); 한얼–하나의 얼(神), 유일하다,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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