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신一神의 두 본성, 조화성造化性과 주재성主宰性
「삼일신고」 2장은 “일신은 더 이상 상위가 없는 으뜸의 자리에 있으면서 광대한 덕과 위대한 지혜와 엄청난 힘이 있어 천하의 모든 것들을 생겨나게 하고 무수한 세계를 주관하신다. 수없이 많은 것을 짓되 티끌만한 것도 빠뜨림이 없이 하니,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감히 이름 지어 헤아릴 수 없다. 소리 기운으로 바라고 기도하면 (일신을) 더할 나위 없이 몸소 보게 되고, 저마다 본성에서 그 씨를 구하면 (일신)이 이미 머릿속에 내려와 계신다[神在無上一位 有大德大慧大力 生天主無數世界 造兟兟物 纖塵無漏 昭昭靈靈 不敢名量 聲氣願禱 絶親見 自性求子 降在爾腦]”고 기술한다.
동서양의 고대 종교문화사를 대략 훑어보면, 지구촌에 현생인류가 처음 출현한 후, 어느 시점(대략 기원전 1만 년 전쯤)에 이르자 인류의 의식은 급격한 진화를 맞이하면서 최고의 신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최고의 신에 대한 관점은 다양하고 그 숭배양식 또한 각양각색이다. 이는 각 지역마다 민족성이 다르고, 문명화되는 생활환경이 다르고, 민족마다 삶의 습속習俗이 다르고, 문화적인 틀이 다르고, 심지어 신을 마주하는 집단의식이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이다.
동북아 한민족은 태고적부터 최고의 신을 ‘근원의 하느님’이라 불렀다. 근원의 하느님은 온갖 창조와 변화를 짓는, 가장 성스럽고 위대한 최고의 신이다. 근원의 하느님은 학술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일신(一神, One spirit)이다. 일신은 두 측면, 즉 자체로 고정된 어떤 특성이나 형체가 없지만 우주 전체에 만연해 있는 조화성造化性과 언제 어디에나 모든 것들을 주관하여 다스리는 주재성主宰性으로 구분된다. 이는 음陰이 없는 양陽이 없고 양이 없는 음이 없는 이치와 마찬가지이다.
「삼일신고」 2장은 일신이 ‘광대한 덕[大德]’과 ‘커다란 지혜[大慧]’와 ‘엄청난 힘[大力]’이 있어 하늘과 땅과 인물을 낳고[生天], 존재하는 모든 세계를 주관[主無數世界]한다고 했다. 부연하면, 근원의 하느님은 ‘대덕’을 펼쳐서 무수히 많은 세계와 서로 다른 개별적인 것들을 모조리 짓고[造兟兟物], ‘대혜’를 발휘하여 티끌만한 것도 빠짐없이 오묘하게 존재하게 하고[纖塵無漏], ‘대력’으로써 무수한 세계를 총체적으로 주관하여 다스린다는 것이다. 그런 일신의 하느님은 태양과 같이 환하고 아름다고 빼어나기가 신묘하지만[昭昭靈靈], 감히 무엇이라고 이름을 붙여 헤아릴 수 없는 존재이다.
일신의 정체正體는 무엇인가? 그것은 조화성을 본성으로 하는 조물자造物者와 주재성을 본성으로 하는 주재자主宰者이다. 신교문화의 전통에서 말할 때, 조물자로서의 일신은 우주만물 창조의 근원자리인 원신(元神, Primordial God)으로 말하고, 주재자로서의 일신은 조화에 바탕을 두고 창조된 것들을 주재하여 다스리는, 으뜸이 되는 최고의 주신(主神, Sovereign Ruller of Universe)으로 기술한다. 조화의 근원자리가 되는 원신은 무형의 조물자로 실재(實在, Reality)하고, 창조된 모든 것들을 주관하여 다스리는 주신은 우주만물의 최고 주재자로 실재한다. 조물자와 주재자를 함축하는 일신에 대해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는 “천상계에 문득 삼신이 계셨으니 이 분은 곧 한 분 상제님이시다. 주체는 곧 일신이나 각각의 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작용으로만 삼신이시다[自上界 却有三神 卽一上帝 主體則爲一神 非各有神也 作用則三神也]”라고 피력한다.
이제 조물자로서의 원신과 우주만물의 최고 주재자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어떻게 존립存立하는가를 살펴보자.
먼저 원신은 무엇으로 규명되는가를 보자. 원신은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으로 존재하는, 우주를 관통해 있는 가장 보편적인 무형의 조물자를 가리킨다. 「삼일신고」 2장은, “조신신물造兟兟物 섬진무루纖塵無漏”가 말해주듯이, 하늘이든, 땅이든, 사람이든, 무수하게 생존하고 있는 여타의 동식물들이든, 심지어 풀잎하나 모래알하나 먼지하나이든, 우주안의 모든 것들에는 조화신성이 깃들어 존재하게 됨을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우주 자체는 감각의 눈으로 보면 물리적인 존재이지만, 영적인 눈으로 보면 모두가 조화신성의 모습으로 비친다.
그런데 조물자로서의 원신은 실제로 작동하는 현상으로 보면 삼신三神이라 부른다. 이때의 ‘삼三’이란 신이 독립적인 세 개체로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 창조성(계기)의 추동력이 셋이라는 의미다. 그것은 앞서 “일체삼용一體三用”의 논리를 분석하면서 밝힌 바 있다. 즉 삼신은 창조의 바탕으로 보면 하나[일신]의 원신지만 그 변화의 현상으로 보면 각기 세 역할을 하는 삼신이란 뜻이다. 그래서 삼신즉일신三神卽一神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 고려 때의 행촌 이암李巖(1297~1364)은 『환단고기桓檀古記』 「단군세기檀君世紀」(서序)에서 “삼신일체三神一體”라고 하였다. 여기에서도 ‘일체一體’는 창조의 근원으로 일신이요, ‘삼신三神’은 현상계에서 세 신성으로 작용하여 현실적인 우주만물을 뽑아내는 신을 가리킨다.
세 가지의 추동력으로 작용하는 삼신의 구체적인 사역事役은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 우주만물은 전적으로 생겨나 존재하게 되고[生], 생겨난 모든 것들은 육성되고[長], 육성되는 것들은 성숙[成]을 목적으로 향하는 과정적 존재이다. 생장성生長成의 창조변화과정으로 이끄는 추동자가 바로 삼신이다. 삼신은 신교문화에서 조화造化의 신, 교화敎化의 신, 치화治化의 신으로 불린다. 조화의 신은 거시적인 것이든 미시적인 것이든 온갖 종류의 우주만물을 생겨나게 하는데 작용하고, 교화의 신은 생겨난 만물이 물리적으로 육성되고 정신적으로 가르쳐 깨달을 수 있도록 작용하며, 치화의 신은 만물이 조화롭고 질서 있게 성장하여 목적에 이를 수 있도록 다스림의 손길로 작용한다. 따라서 조물자는 삼신이고, 현상계의 우주만물은 전적으로 삼신의 손길이 매 순간 작동하여 창조의 목적을 향해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조화삼신인 원신이 자기 존재를 스스로 현실에 온전하게 드러내어 우주의 중심축을 이룬 모습은 바로 하늘, 땅, 인간이다. 인류 최초의 경전 「천부경」은 이를 하나의 하늘[天一], 하나의 땅[地一], 하나의 인간[人一]으로 말한다. 즉 조화신의 현현顯現은 하늘로 만유의 생명을 낳고[天生], 교화신의 현신現身은 땅으로 부지런히 기르고[地育], 치화신의 형모形貌는 인간으로 만유를 풍요롭고 질서 있게 다스려 최상의 목적에 이르도록 한다는 뜻을 함의한다. 그래서 하늘, 땅, 인간은 신교문화의 전통에서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신이라 일컬을 수 있다. 이는 하늘도 하나의 신이고, 땅도 하나의 신이며, 인간도 하나의 신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현상계의 삼계우주는 곧 일신의 화현化顯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는 서양의 기독교문화권에서 ‘세 위격(성부聖父, 성령聖靈, 성자聖子)이 한 분 하나님’이라는 삼위일체(Trinity)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다.
그럼 최고의 주재자는 무엇을 말하는가? 주신은 조화삼신인 원신과 짝이 되어 신들을 주관하는 주재신이다. 주재신은 품격品格과 직품職品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는 인간사회와 마찬가지로 신의 사회에도 조직이 있고, 신들 간의 위계질서가 있음을 전제한다. 그런데 주재신들 중에는 지존무상至尊無上한 위격에 계신 최고의 주신이 실재한다. 최고의 주신은 신교문화권에서 삼신하느님, 즉 위격에 있어서 더 이상의 상위가 없는 하늘 임금님[天帝]이라 호칭한다. 하늘 임금님은 서양 문화권에서 유일신(The God)에 대응하는 말이고, 동양 문화권에서 한 분 상제上帝님을 가리킨다.
한 분 상제, 즉 하늘 임금님은 누구인가? 중국 은殷나라 갑골문자에는 가뭄이나 홍수가 일어날 때 하늘에 계신 상제님에게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며 점을 친 기록들이 많이 나타난다. 유교 경전 ????서경書經????에는 요堯 임금, 순舜 임금, 하나라를 세운 우왕禹王, 은나라를 세운 탕왕湯王 등 중국의 역대 제왕들이 제위에 오르면서 상제님을 향해 천제天祭를 지냈다고 기술돼 있다. 또한 유가의 시편이라 할 ????시경(詩經)????에도 상제님을 찬양한 많은 노래들이 실려 있다. 그런데 근원으로 파고들면 상제님의 뿌리는 중국의 은나라보다 훨씬 이전인 ‘배달????단군조선’ 시대로까지 소급된다. 그래서 고려 말 행촌杏村 이암(李巖, 1297~1364)이 지은 ????단군세기檀君世紀????에는 역대 단군들이 강화도 마니산에서 하늘임금님이신 상제님에게 천제天祭를 올렸다고 기록이 있다. 하늘임금님은 동양문화권에서 유교의 ‘상제’, 도교의 ‘옥황상제’로 불렸고, 서양 기독교 문화권에서 ‘전에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시게 되는 주 하나님’으로 말했고, 천지신명을 섬기고 유ㆍ불ㆍ선의 정신의 원형을 포용하고 있는 동북아 한민족의 신교神敎문화권에서는 삼신 상제님으로 호칭해왔던 것이다.
하늘 임금님, 즉 삼신 상제님은 어떤 존재인가? 삼신 상제님은 다른 종교문화권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무無로부터 우주만물을 자의적으로 빚어내거나 천지의 질서까지 만들어내는 그런 전지전능한 창조주가 아니다. ‘상제’란 이름은, 자의字意와 관련된 문헌들에 적시摘示된 바와 같이, 신들과 우주를 주관하여 다스리는 통치성이 강조돼 있다. 그래서 삼신 상제님은 모든 신들 가운데 ‘으뜸’가는 최고의 주재자 하느님, 즉 지존무상至尊無上한 위격에 계시면서 천天, 지地, 인人 삼계의 대권으로 신명들과 우주만물을 주관하여 다스리는 최고의 통치자라고 호칭하는 것이다. “내가 천지를 주재하여 다스리되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이치를 쓰나니”(『도전』4:58:4)라고 하였듯이, 삼신 상제님은, 조화신성인 삼신과 음양 짝이 되어 창조의 순환이법에 따라 조화권능을 쓰심으로써 우주만물을 신명들에게 명命하여 다스리는 참 하느님이시다.
그러므로 일신을 조화성을 본성으로 하는 조물자와 주재성을 본성으로 하는 주재자로 본다면, 「삼일신고」 2장의 “성기원도聲氣願禱 절친견絶親見 자성구자自性求子 강재이뇌降在爾腦”는 일반적인 번역의 틀을 벗어나 새롭게 해석될 필요가 있다. 일반적인 해석은 “소리 기운으로 바라고 기도하면[聲氣願禱] (일신을) 친견할 수 없으리니[絶親見], 저마다의 본성에서 그 씨를 구하면[自性求子] (일신)이 머릿속에 내려와 있다[降在爾腦]”고 한다. 필자는 이 구절에서 일신과 합일[神人合一]하여 진아眞我가 되는 길이 두 방식임을 간파했다. 하나는 조화성을 본성으로 하는 조물자와 합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재성을 본성으로 하는 주재자와 합일하는 것이다. 전자는 내향적인 길로 조물자로서의 삼신과 합일하는 방식이고, 후자는 외향적인 길로 주재자 상제님과 합일하는 방식이다.
“성기원도 절친견”은 외향적인 길로 일신과 합일하여 진아를 찾는 방식이다. 이는 소리와 기운으로 경전이나 주문을 외우고 읽으면서 원을 세우고 간절히 기도하면 주재자 상제님을 친견하게 된다는 뜻이다. 마치 동학東學의 창도자 수운 최제우崔濟愚가 혈심을 다하여 기도한 끝에 상제님을 친견할 수 있었듯이, 소리와 기운을 다하여 원을 세우고 기도하면 주재자로서의 상제님(일신)이 자신 앞에 계시다는 것을 감각의 눈[肉眼]이 아니라 마음의 눈[心眼]으로 보게 된다. 이 방식은 장독대에 정화수井華水 떠놓고 하느님께 소원을 비는 모습이나 종교단체에서 하느님께 통성기도를 하는 모습에서도 그 실태를 찾아볼 수 있다.
“자성구자 강재이뇌”는 내향적인 길로 일신과 합일하여 진아를 찾는 방식이다. 이는 인간으로 타고난 원래의 본성에서 일신의 씨앗(조물자 삼신)을 구하라. 그러면 일신이 이미 너의 뇌에 내려와 계신다는 뜻이다. 「삼일신고」 5장에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것들은 삼신의 품성인 삼진[性命精]을 받아서 나왔다[人物 同受三眞]고 한 것으로 보아, 인간과 만물은 현실적으로 신과 동떨어진 관계가 아니고 신이 내재함으로써만 존재하게 된다. 내재된 삼진에서 본래의 자아를 찾으면 누구나 조물자 하느님을 접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누구나 삼신이 들어 태어나 생존하는 것이므로 내면으로 들어가 조물자 삼신과 하나 되면 진아가 된다. 이는 본래부터 갖고 있는 맑고 깨끗한 본성[本覺]을 찾으려고 혈심으로 수행하는 사람들, 특히 불가에서 오랜 수행 끝에 본각에 든 스님들에게서 그 실태를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