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 이야기 제45회
타타르의 멍에
러시아인들은 1240년부터 1480년에 걸쳐 몽골의 지배를 받았다. 고려가 1231년부터 1360년경까지 130년간 지배받은 것보다 백년 이상 더 몽골의 지배를 받았다. 러시아인들은 이러한 몽골의 지배를 ‘타타르의 멍에’(타타르스코에 이고)라고 부른다. 타타르는 원래는 몽골 초원지대에 살던 투르크계의 부족이었다. 7세기의 고대 투르크 비문에는 ‘13성 타타르’(오투즈 타타르)가 나오며 한문자료에는 ‘구성달단(九姓韃靼)’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여러 부족들로 이루어진 족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4세기 초에 몽골족의 역사를 남긴 라시드 앗딘에 의하면 당시 널리 알려져 있는 부대와 군주를 가진 타타르 종족만 6개였다고 한다. (《부족지》, 151)
타타르족은 칭기즈칸의 증조부였던 알탄 칸의 시대부터 몽골족의 철천지 원수였다. 칭기즈칸도 이들과 전쟁을 했던 것은 물론이고 이들에 대한 적개심이 어찌나 강했던지 아이들과 아녀자 심지어는 임신한 여자들까지도 모두 죽이라는 칙령을 내릴 정도였다. 이러한 살벌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타타르족은 살아남았다. 그 이유는 몽골족이건 몽골족이 아니건 타타르족과 통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칭기즈칸조차도 두 명의 타타르족 여자를 부인으로 삼았다.(이술룬과 이수겐) 타타르인들이 결혼상대로 특별히 매력이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라시드 앗딘에 의하면 그들은 초원의 유목민들 중에서 가장 부유한 족속이었다고 한다.
칭기스칸은 타타르족과 싸울 때 우연히 길에 버려진 타타르 아이를 하나 데려와 첫째 부인인 부르테 우진에게 주어 기르게 하였다. 부르테 우진은 당시에 아이가 없어 아이를 갖고 싶어했는데 주어온 아이를 마치 친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웠다고 한다. 이 아이는 자라서 칭기즈칸 집안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쿠투크 노얀이라는 사람이다. 오고타이 대칸은 그를 형으로 부르며 대우하였다고 한다.
몽골사에 대한 방대한 저서를 남긴 헨리 하워드는 몽골 제국이 등장하기 한참 전부터 타타르족은 유럽인들에게 그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History of The Mongols, Part I, p.701) 그런데 러시아인들이 몽골족과 그 지배하에 있던 투르크족을 통칭하여 타타르족이라 부르게 된 것은 무슨 연유였을까? 정확한 사정은 알려져 있지 않다. 러시아인들은 바투 원정군 가운데서 타타르족의 부대를 먼저 접하고 몽골족을 모두 타타르라 부르게 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여하튼 러시아인들에게는 몽골어를 하건 투르크어를 하건 모두 타타르였다.
러시아를 지배하게 된 타타르인들은 러시아 땅을 정복한 후 곧바로 인구조사를 시행하였다. 키예프, 포돌리아, 페레야슬라블, 체르니고프 등 서부 러시아에서는 최초의 인구조사가 1245년에 있었고 1258-59년에는 동북부 지역의 블라디미르 공국과 노보고로드에서 인구조사가 실시되었다. 1260년 이후에는 갈리시아와 볼리냐에서, 1274-75년에는 동부 러시아 지역에서 인구조사가 이루어졌다. 러시아어로 수를 의미하는 ‘치슬로’ 즉 인구조사는 병사를 징집하고 세금을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필수행정 조처였다.
칸은 러시아 공들에게 ‘야를릭’이라는 임명장을 수여하였는데 러시아 공들의 충성심이 의심되면 언제라도 야를릭을 회수할 수 있었다. 자신들의 지위를 타타르인들에게 의존하게 된 공들은 자기 영지에서 몽골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어 타타르의 인구조사에 협조하였다. 앞에서도 언급한 알렉산더 네프스키는 당시 러시아의 대표 같은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그는 노보고로드 시민들이 인구조사를 거부하고 소요를 일으키자 그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몽골 관헌에 의한 인구조사가 차질 없이 이루어지도록 조처를 취하였다.
타타르 당국은 주민의 수를 집계하여 해당 지역의 징집 가능자들 수를 확정하였다. 십호, 백호, 천호, 만호 등의 조직이 그러한 징집 단위로서 십호는 열 명의 병사를 제공해야 하는 단위이고 천호는 천 명의 병사를 제공해야 하는 단위이다. 몽골 제국은 러시아 남성 인구의 10 퍼센트를 병사로 요구하였다. 여성을 포함하면 5퍼센트 정도 된다. 그러므로 만호(萬戶)의 인구는 대략 20만 정도라 할 수 있다.
베르나드스키에 의하면 이러한 조직 가운데서 가장 큰 징세단위인 만호(투멘)는 서부 러시아에 16개, 동부 러시아에 27개가 있었다고 한다. 블라디미르 대공국의 경우 무려 15개의 만호가 설치되어 있었을 만큼 큰 공국이었다. 물론 만호가 설치되지 않은 곳도 있었는데 교회영지는 말할 것도 없고 노보고로드와 프스코프 같은 특권도시 및 툴라와 같은 칭기즈칸 가의 직할영지 등이 그러하였다.
몽골의 지휘관들은 천호장과 만호장에 임명되었다. 베르나드스키에 의하면 이들 지휘관들 — 이들을 바스칵(basqaq)이라고 하였다 — 밑에는 세금 감독관인 다루가(혹은 다루가치)가 배속되었다고 한다. 다루가치는 인구조사를 시행하고 병사를 징집하며 또 역참(얌)을 설치하고 세금을 거둬 중앙으로 보냈다. 바스칵은 지방의 요지에 몽골 및 투르크족 병사들로 이루어진 부대를 유지하였다. 러시아 공들은 바스칵의 군대가 소요에 대처할 수 없을 때에는 자신들 휘하의 부대를 동원하여 바스칵을 지원해야 하였다.
바스칵과 다루가의 관계를 베르나드스키와는 다르게 보는 사람도 있다. 미국의 러시아사 전문가 찰스 핼퍼린은 만호마다 설치된 바스칵 제도가 14세기 중엽 흑사병과 내전, 티무르의 공격 등으로 인해 사라지고 러시아 공들이 직접 세금을 거두어 바치는 제도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핼퍼린은 다루가가 바스칵 밑에 있었던 관리가 아니라 바스칵 제도가 쇠퇴한 이후에 등장한 금장한국의 중앙 관리였다고 보는 것이다. 서울대학교의 몽골사 전문가 김호동 교수는 바스칵과 다루가가 동일한 직책이었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바스칵은 투르크어, 다루가치는 몽골어인데 모두 도장을 찍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같은 관직을 일컫는다는 것이다. (《몽골제국과 고려》 96쪽, n.29)
몽골이 주민들에게 부과한 세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십일세이다. 농산물과 가축에 모두 10 퍼센트를 부과하는 세금이었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세금들이 있었다. 토지에 부과되는 ‘쟁기세’(포플루즈노에), 역참을 유지하기 위한 ‘역참세’(얌), 군역 대신 부과하는 ‘군인세’(보이나) 등이 있었다. 또 왕족의 노예 신분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노예노동을 면제하는 대신 부과하는 ‘면역세’(포쉴리나)라는 세금도 있었다. 칸들은 이러한 명목의 세금 외에도 필요한 경우 추가로 징수하는 ‘자프로스’라는 세금을 거둘 수 있었다. 러시아 인들은 칸들과 그 사절들이 여행을 할 때 그들에게 음식과 마량 및 운송용 말과 마차를 제공해야 하였다.
도시의 주민들에게는 또 ‘탐가’라는 현물세도 부과하였는데 탐가는 납세필증에 찍는 도장을 지칭하는 말에서 온 것이다. 일한국에서는 탐가가 자산가들의 자산에 징수되는 재산세가 되었는데 세율은 0.4 퍼센트였다고 한다. 시간이 가면서 탐가는 거래되는 상품에만 부과되는 물품거래세나 관세의 성격을 띠어갔다.
도시의 수공업자들에게는 영업세도 부과되었다. 또 도시민들에 대한 인두세도 있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고 한다.
13세기 말과 14세기 초에 러시아에서는 몽골 지배 체제에서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였다. 바스칵들은 소환되고 러시아 공들이 세금과 공물을 부과하고 걷는 일을 떠맡게 된 것이다. 하급 세리들은 공들이 직접 임명하였다. 러시아를 대표하게 된 모스크바 대공은 사라이에 있는 최고 다루가와 협상하여 칸에게 바쳐야 할 상납금(이를 지출이라는 뜻의 ‘뷔하트’라 하였다)을 확정하였다. 그 액수를 상회하는 세금수입은 모스크바 대공의 금고로 들어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탐가와 얌 등은 칸에게 가지 않고 대공의 차지가 되었다. 금장한국 내에서 칸 자리를 놓고 벌어진 몽골 지배층 내의 권력투쟁으로 인해 1360-70년대에는 정치적으로 큰 혼란이 초래되었는데 이 기간에 대공의 상납액은 크게 낮아졌다. 모스크바 공국의 흥기는 결국 이러한 몽골 통치체제 내에서 모스크바 대공(명목상으로는 블라디미르 대공)이 차지하였던 징세대리인으로서의 수지맞는 역할에 기반을 두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참고문헌
라시드 앗딘, 《부족지》,
김호동, 《몽골제국과 고려》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07).
Henry Howarth, History of the Mongols from the 9th Century to the 19th century. Part I. The Mongols Proper and The Kalmuks.
C. Halperin, Russia and the Golden Horde (Indiana University Press,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