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역사기행 2 할슈타트
2014년 가을, 필자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환단고기 북콘서트’ 후 오스트리아와 발칸 여러 나라를 종도사님과 함께 답사할 기회가 있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비엔나와 남쪽 티롤 지방의 인스브루크 그리고 할슈타트(Hallstatt)를 답사하였다.
할슈타트는 같은 이름의 호수에 면한 작은 마을이다. 잘츠부르크에서 7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호수도 있고 주변에 알프스 산지가 있어 관광명소이다. 우리 답사팀이 갔을 때는 초가을이라 관광객이 별로 없어 한적하였다.
그곳에서 한국 청년 몇 명을 보았는데 그 가운데 한 여학생은 한 달째 유럽을 돌아다니는 중이라 하였다. 또 한 사람은 우리 답사팀의 가이드이자 리더인 오동석 팀장이 쓴 동유럽 관광안내 책자를 손에 들고 다니고 있었다. 그만큼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할슈타트 호수
▲호수에 면한 할슈타트 마을
할슈타트는 도시가 아니고 작은 마을이다. 인구도 천 명이 안 되며 마을도 호수와 산 사이의 좁은 땅에 들어서 있다. 걸어서 두어 시간이면 모두 둘러볼 수 있는 이 작은 마을은 사실 관광지로서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아주 주목할 만한 곳이다.
19세기 중엽 이곳에서 기원전 1천년기의 철기시대 무덤이 대거 발견되었다. 1846년부터 1863년까지 근 20년간 1,000기 이상의 옛 무덤들이 발굴되어 많은 부장품이 출토되었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광산국장이던 게오르그 람사우어는 이 공동묘지에 묻힌 사람들을 켈트인이라 불렀다.
시기적으로는 BCE 800-450년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후 유럽의 학자들은 오스트리아를 비롯하여 알프스 산맥 이북 지역에 철기 문화권이 광범하게 형성되어 있다고 보았고 그 문화를 ‘할슈타트 문화’라 불렀다.
1857년에는 스위스 뇌샤텔 호수 부근의 라텐(La Tène)에서도 철기가 다량으로 발굴되었는데 할슈타트의 것과 다르다고 해서 이 문화를 할슈타트와는 별개의 ‘라텐 문화’라 한다. 그래서 유럽사 교과서에는 켈트문화로 할슈타트문화와 라텐문화가 소개되고 있다.
라텐문화는 할슈타트문화를 계승하여 BCE 450년경부터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정복시기까지의 켈트문화로 간주된다. 할슈타트 박물관의 설명으로는 할슈타트 지역의 주민들은 주로 발칸 반도에서 진출한 일리리아인이었다고 하는데 아마 라텐문화의 주역과 할슈타트문화의 주역을 구분하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할슈타트 문화의 지배자들은 켈트인이 아닌 다른 족속이었다고 보고 켈트인들이 봉기하여 이들을 내쫓고 라텐문화의 주역이 되었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는데 박물관도 이런 주장을 지지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할슈타트 문화권
알프스 산지에 위치한 할슈타트에 많은 무덤들이 있었다는 것은 이 지역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살았음을 시사해준다. 그것은 할슈타트에 있는 소금광산 때문이었다. 지금으로부터 7천년 이전부터 사용되던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랜 소금광산이라 한다.
광산 안에서 사슴뿔로 만든 곡괭이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추정된 연대이다. 할슈타트 소금광산은 현재의 유라시아 대륙이 형성되기 이전에 존재하던 테티스 해의 바닷물이 지각운동의 결과 산맥의 암반 가운데 갇혀 응축되어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광산은 마을에서 수백 미터 산위에 있는데 푸니쿨라(선로케이블카)를 타고 가야 한다. 바닷물로 광산이 형성되었다는 것은 이 지역에서 고생대 해양생물인 암모나이트가 많이 발견된다는 것으로 입증된다.
▲사슴뿔로 만든 곡괭이
고대에 소금은 비싼 물건이었다. 영어에서 봉급을 뜻하는 ‘샐러리salary’라는 말이 소금을 뜻하는 라틴어 ‘살sal’에서 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 산간 지역은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어 소금을 얻기가 힘들었다.
소금이 귀할 수밖에 없었는데 소금을 ‘백색 황금’으로 불렀다고 한다. 신석기 시대부터 이 지역에서 생산된 소금은 호수와 강을 타고 다른 곳으로 팔려갔을 것이다. 할슈타트 지역은 암염 수출로 부유해졌다. 이 지역 묘지에서 발굴된 부장품 가운데 북유럽에서 나는 보석의 일종인 호박과 상아가 그것을 입증해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박물관의 설명에 의하면 할슈타트인들은 남유럽의 그리스인들 및 이탈리아의 에트루리아인들과 밀접한 교역관계를 유지하였다고 한다. 할슈타트의 엘리트들은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고급 상품들을 들여와 소비하였을 것이다. 소금은 이런 상품들을 구매할 수 있게 하는 할슈타트의 수출 상품이었다.
할슈타트 뿐 아니라 부근에는 소금광산이 많았다. 할슈타트 인근 지역의 이름이 ‘잘크캄머구트Salzkammergut’인데 이는 합스부르크의 소금영지를 뜻한다. 이 지역의 소금광산들은 합스부르크 왕가에게 상당한 수입을 안겨주었던 소중한 재산이었다. 모차르트가 태어난 도시 잘츠부르크도 소금 도시라는 뜻이다.
할슈타트의 묘지와 광산에서 발견된 많은 유물들은 마을에 있는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작지만 둘러 볼만한 박물관이다. 무덤에서 발굴된 부장품 뿐 아니라 소금광산에서 발견된 도구들이나 광부들의 의류 조각과 신발 등 유물들도 전시되어 있다.
광산 안에서는 미라 형태의 시신도 발견되었는데 기원전 1천년기에 일어난 사고로 죽은 광부의 시신이었다. 시신은 2천년 이상 시간이 흐른 후인 1734년에 발견되었다. 머리칼과 피부가 남아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그가 입은 옷도 썩지 않은 상태다. 소금이 방부재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광산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광부의 신발
▲할슈타트 박물관. 여러 채의 작은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광산에서 사용되던 가죽 배낭
▲부장품으로 발견된 투겁도끼
▲부장품으로 발견된 청동 용기.
▲부장품으로 발견된 동물 장식 청동 그릇
박물관 설명에 의하면 할슈타트 광산은 BCE 4세기에 산사태로 크게 무너졌다. 이 사고로 터널과 갱도에 바위와 자갈, 나무뿌리 등이 밀려들어 갱도를 막았다. 할슈타트 광산에 대한 고대, 중세의 문헌기록이 거의 없는 것은 이 사고 이후 광산 활동이 거의 중단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할슈타트 마을에서 볼 때 호수 건너편에는 오버트라운(Obertraun)이라는 마을이 있다. 걸어서 3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으로 그곳은 할슈타트보다는 좀 지대가 넓어서 최근에는 리조트도 들어서 있다. 작은 기차역도 있고 또 인근에는 다흐슈타인(Dachstein)이라는 높은 산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 시설도 있다.
필자는 2019년 여름에 다시 할슈타트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할슈타트 마을에 있는 집에서 민박을 하였다. 좁은 집이었지만 예쁜 마을을 걸어서 여기저지 다녀볼 수 있어 그 다음날 묵은 오버트라운의 리조트보다는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