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신고三一神誥」가 인도하는 진아眞我(15)】
삼망三妄이 출입하는 감식촉感息觸 삼도三途 (1)
‘성性ㆍ명命ㆍ정精’ 삼진三眞은 원래 삼신의 순수한 본성과 같다. 삼신의 ‘성’은 원초적으로 크게 비어 있어서[大虛] 무엇이든지 수용하고, 그 ‘명’은 투명하고 맑아서[淸明] 광명처럼 밝으며, 그 가운데 있는 ‘정’은 굳세고 튼튼해서[剛健]해서 영원하다. 그런데 ‘성’을 떠나 ‘명’이 없고, ‘명’을 떠나 ‘성’이 없고, 그 가운데 ‘정’이 있기 때문에, 삼진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일체一體의 경계에 있다. 그럼에도 땅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개별적인 인간이 삼신으로부터 창조될 때 ‘삼진’을 받아 태어나게 된다. 즉 ‘조화신’이 내려와 ‘성’이 되고, ‘교화신’이 내려와 ‘명’이 되고, ‘치화신’이 내려와 ‘정’이 되기 때문이다.
삼신으로부터 받은 ‘삼진’은 인간의 어디에 머물게 되는가? 인간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축軸은 ‘마음[心]’, ‘기운[氣]’, ‘몸[身]’으로 분석된다. ‘삼진’은 각기 거기에 안착하게 되는데, ‘성’은 ‘마음의 방[心房]’에, ‘명’은 ‘생기의 방[氣房]’에, ‘정’은 ‘몸의 방[身房]’에 자리를 잡기 때문에 ‘심ㆍ기ㆍ신’은 ‘삼방三房’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마음, 생기, 몸은 삼방이다. 방이란 변화를 이루는 근원이다. 생기는 마음과 분리되지 않고, 마음은 생기와 분리되지 않는데, 그 가운데에 몸이 존재한다(心氣身爲三房 房爲化成之根源 氣不離心 心不離氣 身在其中)”(『환단고기』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태아이든 어른이든 생명활동이 일어나고 있는 인간은 누구나 ‘삼방’으로 분석된다. ‘삼방’에 들어와 거주하게 되는 신의 세 가지 진실한 것[三眞]은 ‘성’과 ‘명’과 ‘정’인데, 이때 ‘삼진’이 ‘심ㆍ기ㆍ신’과 융합되면서 필연적으로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 ‘삼방’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삼진’은 얼룩이 생기거나 오염이 되거나 변화가 일어나 원래의 순수함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순수한 ‘삼진’이 오염되고 변화되어 안착된 ‘심心ㆍ기氣ㆍ신身’은 세 가지 망령된 것이라는 의미에서 ‘삼망三妄’이라 부른다.
‘삼방’은 어떻게 오염되고 변화되어 ‘삼망’으로 불리게 되는가? 인간으로 들어와 기틀을 잡은 삼신의 ‘성’은 원래 순수한 선善이지만 인간의 마음[心]과 부딪혀서 선善과 악惡의 구별이 생겨나게 되고, 삼신의 ‘명’은 원래 순수하게 맑은 생명의 기운이지만 인간의 생명기운[氣]과 부딪혀서 청淸 탁濁의 차별이 생겨나게 되고, 삼신의 ‘정’은 원래 굳세고 튼튼한 정기이지만 인간의 신체[身]와 부딪혀서 후厚와 박薄의 차이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삼방’을 ‘삼망’으로 부르게 된 결정적인 까닭이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활동을 구성하는 ‘삼방’에는 ‘삼진’과 ‘삼망’이 서로 대하여 섞이면서 발생하는 외면적인 여러 가지 현상現象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것을 「삼일신고」에서 “진망대작眞妄對作”이라고 했던 것이다.
‘삼진’과 ‘삼망’이 대작하여 생겨나는 현상들은 자기동일성을 가진 일정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허망한 것들이다. 거짓되고 망령된 것들이 출입하는 ‘세 가지의 통로[삼도三途]’가 있는데, 그 문門을 세 가지의 문, 즉 ‘삼문三門’이라고 한다. ‘삼문’은 인간의 생명체가 자발적으로 활동하면서 ‘생각하고[感], 숨쉬고[息], 접촉하는[觸]’ 것으로 외부와 서로 소통하는 문을 가리킨다. 이에 대해서 「삼신오제본기」에는 “감, 식, 촉은 세 문이다. 문은 행하는 길이 정해져 변하지 않는 법이다. 감은 식과 분리될 수 없고, 식은 감과 분리될 수 없는데, 그 가운데에 촉이 존재한다(感息觸爲三門 門爲行途之常法 感不離息 息不離感 觸在其中)”(『환단고기』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고 기록되어 있다.
‘감感ㆍ식息ㆍ촉觸’ ‘삼문’은 무엇인가? ‘감’은 생명체에 외부의 자극이 들어올 때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마주치고 뒤섞이어 출입하는 길[途]이다. 이는 곧 사리를 분별하고 판단하는 의식으로 마음의 문門이다. ‘식息’은 생명체가 숨을 쉴 때 ‘맑은 기운과 탁한 기운’이 마주치며 뒤섞이어 출입하는 길[途]이다. 이는 곧 ‘맑은 기’와 ‘탁한 기’가 나가고 들어오는 생기生氣의 문이다. ‘촉觸’은 ‘감’과 ‘식’ 사이에서 있으면서 ‘돈후’와 ‘천박’이 마주치고 뒤섞이어 출입하는 길[途]이다. 이는 곧 정력精力이 나가고 들어오는 몸의 문이다. 따라서 ‘삼문’을 통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으로 말미암아 ‘마음’, ‘생기’, ‘몸’은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마음의 문인 ‘감’은 생명체가 어떤 자극刺戟을 받아 뇌腦를 통해 일어나는 마음의 의식작용意識作用이라 할 수 있다. 자극에 의한 의식작용은 내적인 감각[內感], 즉 기억이나 반성을 통해서 나오는 상념과 만나 일어나는 의식과 외적인 감각[外感], 즉 신체에서 작동하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五官]을 통해서 들어오는 색깔, 소리, 냄새, 맛, 촉감과 만나 생겨나는 의식으로 구분된다. 이는 순수한 ‘성性’과 ‘선악善惡’이 뒤섞인 마음[心]에서 나온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내감과 외감의 의식은 어떻게 표출되는가? 이것들이 출입하는 길은 6가지가 있다. ‘희구애노탐염喜懼哀怒貪厭’이 그것이다.
생기의 문인 ‘식’은 생명체가 숨을 쉴 때 폐를 통해 기운이 출입하는 호흡작용呼吸作用이라 볼 수 있다. 호흡작용은 숨을 쉴 때 맑은 기운을 받아들이고 탁한 기운을 내보내는 작용을 가리킨다. 생명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명체의 기운이 정체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생명체의 기운이 막혀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하면, 탁한 기운이 적체되어 병에 걸리거나 요절夭折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는 순수한 ‘명命’과 ‘청탁淸濁’이 뒤섞인 생기[氣]에서 일어난다. 생기에서 일어나는 ‘맑은 기’와 ‘탁한 기’의 순환은 어떻게 표출되는가? 그것이 출입하는 길은 6가지가 있다. ‘분란한열진습芬爛寒熱震濕’이 그것이다.
몸의 문인 ‘촉’은 ‘의식’과 ‘호흡’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데, 생명체가 외부와의 접촉을 통해서 활력이 출입하는 접촉작용接觸作用이라 볼 수 있다. 접촉작용은 외부에서 몸을 통해 들어오는 자극으로 말미암아 생명체의 ‘정기’가 소모되거나 흩어지거나 훼손됨을 함축한다. 생명체의 ‘정기’가 흩어져 완전히 소진된다면 더 이상 생명활동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순수한 ‘정精’과 ‘후박厚薄’이 뒤섞인 몸[身]에서 일어난다. 몸의 생명활동을 위한 ‘정력’의 비축은 몸의 아래 정수精髓인 단전丹田에 있다. 외부와의 접촉으로 말미암아 생명체의 ‘정력’은 어떻게 표출되는가? 그것이 출입하는 길은 6가지가 있다. ‘성색취미음저聲色臭味淫抵’가 그것이다.
요약해 보자. ‘심ㆍ기ㆍ신’에는 세 가지 진실된 것[三眞], 즉 ‘선善ㆍ청淸ㆍ후厚’와 세 가지 망령된 것[三妄], 즉 ‘악惡ㆍ탁濁ㆍ박薄’이 서로 마주치며 뒤섞인다. 이것들이 출입하는 길은 ‘감ㆍ식ㆍ촉’ ‘삼도三途’ 혹은 ‘삼문三門’이다. 즉 마음의 방[心房]에는 선과 악이 뒤섞이고, 기운의 방[氣房]에는 청과 탁이 뒤섞이고, 신체의 방[身房]에는 후와 박이 뒤섞이는데, 여기에서 ‘감ㆍ식ㆍ촉’은 관념적인 대상이든 실제적인 대상이든 주체가 객체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표징表徵들이 출입하는 문이다. 마음의 방에 출입하는 것은 ‘감’으로, 6가지 생각의 의식작용이 있고, 생기의 방에 출입하는 것은 ‘식’으로, 6가지 기운의 호흡작용이 있고, 몸의 방에 출입하는 것은 ‘촉’으로, 6가지 정력의 접촉작용이 있다. ‘감ㆍ식ㆍ촉’ 작용으로 표출되는 ‘삼도三途’는 각기 6가지씩 총 18가지이다.
‘감ㆍ식ㆍ촉’의 ‘삼도’에 대해 「삼일신고」에는 “말하기를 감식촉이다. 이것이 굴러서 18가지 경계를 이룬다. 감은 기쁨과 두려움, 슬픔과 노여움, 탐욕과 싫어함이고, 식은 (초목의 생생한 기운인) 향내와 (썩어 문들어진) 숯내, (차가운) 한기와 (뜨거운) 열기, 마른 기운과 젖은 기운이고, 촉은 소리와 색깔, 냄새와 맛, 음란함과 부딪힘이다. 대중들은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 맑은 기운과 탁한 기운, 후한 정기와 박한 정기가 서로 뒤섞인 경계의 길을 제멋대로 따르다가, 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진다(曰感息觸 轉成十八境 感喜懼哀怒貪厭 息芬爛寒熱震濕 觸聲色臭味淫抵 衆善惡淸濁厚薄相雜 從境途任走 墮生長消病歿苦)”(『桓檀古記』 『太白逸史』 「蘇塗經典本訓」)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