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미사일 지침’ 폐기와 한국 2
상생문화연구소 정원식 박사
4. 한미 미사일 지침’ 폐기에 합의 한 미국의 속셈은?
지난 5월 21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미국 존 바이든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에서 ‘한미 미사일 지침’ 폐기에 전격 합의했다.
국가 간엔 ‘공짜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번 ‘미사일 지침’ 폐기에 전격 합의한 미국은 동아시아 역내 대중국 패권 경쟁 구도에 한국을 끌어들여 우회적으로 대중국 견제에 참여시키려는 의도를 보여주었다. 이는 미국 자신의 이익에 전적으로 기초한 것이다. 여기에 미사일 주권을 확보하려는 한국과 이해관계가 맞아 이번 미사일 가이드라인이 42년 만에 폐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이번 미국의 합의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했던 중국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미중 간의 구도를 보면,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창(槍)이라면, 이에 중국의 창을 방어하여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수호하려는 미국의 행태를 방패(防牌)라 할 수 있다.
1) 중국의 해양강국을 향한 창(槍)–미국의 패권에 도전
중국은 전통적으로 대륙 중심 국가였다. 해양은 중국을 외부로터 보호해주는 자연적 방어벽이자 동시에 남방으로 팽창을 가로막는 해상장벽이기도 했다. 그러나 19세기 중엽인 1840년 아편전쟁을 계기로 해양으로부터 위협이 증대되자, 근대적인 해군의 육성이 강조되었다. 그 결과 북양해군이 육성되었으나, 청일전쟁에서 전멸되는 치욕을 당해야 했다. 20세기 들어와서는 국내 혼란과 내전으로 근대적인 해군을 양성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고 나서도 사회주의 혁명의 곡절로 해군의 육성은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했다.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키는 결정적 계기는 바로 1978년 12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 표방이었다. 이는 중국이 대외적으로 문호를 개방하여 경제적-외교적 대외접촉이 확대되고 해양자원의 개발이라는 새로운 전략적 수요가 발생하면서 해양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중국은 2010년대 초반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국가 핵심이익으로 격상시켜 동중국해 센카쿠 열도 주변을 방공식별구역으로 선포하였으며, 남중국해를 중국 내해화(內海化)하려는 차원에서 여러 산호초를 인공섬으로 둔갑시켜 군사 기지화는 물론, 방공식별구역으로 선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의 적극적인 해양이익 수호 노력은 강력한 해군력 건설을 토대로 한 해양전략으로 구체화 되었다.
중국의 해양전략은 근해방어와 원해방어로 근해에서 적극적으로 해양을 통제하고 원해에서는 더 확장된 해양권익을 보호하며 근해분쟁 시 제3국의 개입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두 가지 목표를 설정했다. 첫 번째는 대만과 분쟁 발생에 대비하는 것은 물론,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도서분쟁 발생 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지연 또는 거부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국의 해상교통로를 보호하고 해외에 진출한 기업과 자국민의 이익을 보호하는데 필요한 대양해군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1985년 류화칭 전 해군사령관의 기존 연안방어 중심에서 근해방어를 중심으로 하는 제1·2도련선(島鏈線) 전략에서 비롯되었다. 일본 오키나와~타이완~필리핀~보르네오~말라카해협을 연하는 제1도련선은 해상안보 통제권을 확립하는 것이다. 또한 일본 오가사와라섬~괌~사이판~파푸아뉴기니 근해를 연결하는 제2도련선은 해상군사안보 거부권을 행사하여 궁극적으로 전세계 해상으로 군사작전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에는 알류산열도~하와이~뉴질랜드까지 확장하는 제3도련선을 추가하였다.
2000년대 들어와서, 중국 군부는 제1·2도련선 내 미국의 해군과 공군 전력의 접근을 차단 및 방어하기 위해 보다 구체화한 3단계 해양방어권(Maritime Defense Layer)을 운용하고 있다.
다음 <그림-2>에서 보듯이, 제1해양방어권은 연안으로부터 540(1000km)~1000(1,852km)해리, 즉 제2도련선을 연하는 해역으로 말레시아와 필리핀, 일본, 대만이 포함되는 해역이며 사거리 1,500km인 대함탄도미사일 ‘둥펑(東風/DF)-21D와 사거리 4,000km인 중거리 탄도미사일 둥펑-26D, 핵잠수함이 주된 방어수단이다.
여기서 둥펑-21D와 둥펑-26D는 해상의 이동 목표를 타격할 수 있는 항공모함 킬러다. 제2해양방어권은 연안으로부터 270(500km)~540(1000km)해리, 즉 제1도련선을 연하는 해역으로 베트남과 일본의 오키나와를 잇는 해역이며 잠수함, 수상함, 항공전력이 주요 수단이다. 제3해양방어권은 연안으로 270(500km)해리 떨어진 해역으로 우리나라에게 민감할 수밖에 없는 한국과 대만을 잇는 해역으로 수상함과 잠수함, 항공기, 해안방어 순항미사일 등이 주요 방어 수단이다.
<그림-2> 중국의 해양방어권 개념도
중국의 이러한 해양전략은 미국의 군사력이 중국이 설정한 구역 내로 접근하는 걸 막는 ‘바다의 만리장성’을 구축하는 것으로 미국은 이를 반접근-지역거부(A2/AD:Anti-Access/AD:AreaDenial)전략이라 부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중국은 미국 군사력을 남중국해를 포함한 서태평양으로의 접근 및 거부를 위해 반접근-지역거부(A2/AD)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 강화하고 있다. 여기서 반접근(A2:Anti-Access)전략은 중국이 본토로부터 원거리에 있는 오키나와 등 미국의 전진기지나 항공모함 강습단 공격능력을 확보하여 미군 전력이 인도양을 포함하는 서태평양 해역으로 접근하는 것을 지연시키거나 원하는 장소에서 작전하는 것을 방해하여 원거리에서 기동하도록 강요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지역거부(AD:AreaDenial)전략은 대만해협이나 동-남중국해 등에서 분쟁 시 중국이 미국 동맹-우방국의 ‘행동의 자유’(Freedom of Action) 또는 ’자유로운 군사행동‘(Freedom of Military Action)을 차단함으로써 일정한 지역에 개입을 못하도록 거부하는 전략이다.
현재 중국은 반접근-지역거부(A2/AD)전략을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을 탄도미사일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중국은 ICBM은 사거리 1만 3천 킬로미터의 둥펑-5, 7천킬로미터 둥펑-31, 1만 1천 킬로미터인 둥펑-31A, 1만 5천 킬로미터 둥펑-41 등 4종류가 개발되어 실전 배치됐다. 또한 준중거리 미사일 중심으로 사거리 1,700 킬로미터인 둥펑-21은 1,600 킬로미터 내로 진입하는 적의 항공모함을 공격할 수 있는 대함탄도미사일이다. 이 미사일을 바탕으로 둥펑-21A(1,750km), 둥펑-21C(1,500km), 둥펑-21D(1,500km)가 개발되어 실전 배치되었다.
한편, 핵잠수함 13척을 포함한 68척을 확보하여 운용 중에 있으며, 2030년까지 80척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중국형 이지스함 40척을 5년 내로 확보하고 각종 순양함과 구축함도 지속적으로 건조하고 있다.
2) 해양강국을 향한 중국의 창을 막는 방패(防牌)—미국
미국은 중국이 설정한 남중국해와 서태평양 해역 내에서 반접근-지역거부(A2/AD)전략을 동아시아 역내질서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보고 이를 무력화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개발하고 있다.
2012년도에 미군은 ‘합동작전접근개념(JOAC: Joint Operational Access Concept)을 만들었다. 이 작전은 미 공군과 해군이 합동으로 중국의 눈을 공격하는 교란과 미사일 등 중국의 주먹을 제거하는 파괴, 그리고 해·공군력을 몰아내는 격퇴 등 3단계 군사작전을 펼치는 공해전(Air-Sea-Battle)을 핵심으로 한다. 그러나 이 개념은 중국 영토에 대한 직접 공격을 가정해 확전의 위험성이 있어 이를 보완한 작전 개념이 2015년 ‘국제공역에서 접근과 기동을 위한 합동 개념(JAM-GC:Joint Concept for Access and Maneuver in the Global Commons)이다.
JAM-GC는 적의 공격이 임박한 경우 사이버전과 전자전으로 제압하고 적인 선제공격을 하면 일제사격으로 반격하는 것으로 적 전력이 약해진 뒤 육해공군, 해병대가 합동으로 적 방어선을 돌파한다는 개념이다. 이 작전 수행을 위해 레이저건과 스텔스 무기 등 최첨단 전력 개발에 힘쓰고 있다.
여기에 지상군의 전략적 기여도를 높이기 위해 다영역전투(Multi-Domain-Battle)에 기초한 다영역작전(Multi-Domain-Operations) 개념을 발전시켰다.
또한 공군은 다영역작전과 유사한 전영역작전 지휘통제(Joint All-Domain Command and Control) 개념을 발전시키고 있으며, 해군도 유령함대를 2025년까지 구축하여 분산해양작전(DMO: Distributed Maritime Operation) 수행 능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유령함대는 대잠전, 대수상전, 전자전, 기뢰전, 통신중계의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며, 유도 미사일호위함, 무인수상함, 무인수중함, 무인항공기 등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해병대는 상륙전과 지상전 역할을 하던 기존 역할에서 벗어나 중국 주변의 작은 섬들과 미사일 전력 및 기동전력을 활용하여 중국의 함정을 공격한다는 ’원정 전진기지 작전(EABO: Expeditionary Advanced Base Operation)’ 개념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이 모든 작전은 통합다영역작전(JADO: Jiont All Domain Operations) 개념으로 통합하여 실전 역량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미군은 이러한 작전 개념을 수행하기 위해 500척 규모의 함정을 확보하고 기존 11척 대형 항공모함을 포함한 경항모 6척을 추가로 확보할 계획이다. 또한 상륙함 60척과 핵잠수함 12척을 추가로 보강한다는 구상을 세워놓았다.
한편 미국은 2019년 8월 구소련과 체결한 INF(중거리핵전력조약)서 탈퇴를 선언했다. 미국은 그동안 INF에서 탈퇴 전에는 500~5,500km 범위 내의 지대지 미사일을 보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중국은 이 조약에 구속받지 않고 대량으로 다양한 사거리 탄도미사일을 개발하여 동아시아 역내에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수 있는 비대칭전력을 확보 할 수 있었다.
이에 미국은 INF에서 탈퇴하여 다양한 단·중거리 지대지 미사일 개발을 통해 대중국 탄도미사일을 견제한다는 구상이었다. 이러한 선상에서 미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둘러싼 주변 우방국에게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타진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이에 뚜렷한 자구책이 없는 가운데 바이든 새 행정부가 들어서자, 중국 수도 북경과 가장 가까이 있는 한국을 우회견제전략 차원에서 가장 매력적인 국가로 낙점을 하게 되었다.
3) 미사일 지침 폐기에 합의한 미국의 속셈
이러한 배경에서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42년 동안 묶여 있던 한국의 미사일 지침 가이드라인을 해제하여 주었는데 이는 소위 ‘미사일 비대칭 역외균형전략’이라는 차원에서 신의 한 수였다. 미국은 한국의 뛰어난 탄도미사일 기술 능력을 통해 중국의 심장부를 겨누는 간접적인 견제 효과를 거두게 되었다. 이는 장기적으로 미국에게 상당한 대중국 견제 부담을 완화시켜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을 자연스레 대중국 미사일 견제체체에 자동 편입시키고 쿼드의 반중국 프레임에 동참을 유도하여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과시하는 상징적이고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어째든 미국은 이번 합의로 여러 토끼를 잡는 지능적인 외교 수완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5. ‘한미 미사일 지침’ 폐기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한미 미사일 지침’ 폐기는 한국에겐 양날의 칼’이라는 딜레마로 다가 올 수 있다. 예컨대, 한쪽 칼날은 진정한 독립 국가로서 위상 확립과 동아시아 역내 ‘고슴도치형 군사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는 물론, 우리의 경제 산업 지도가 우주로까지 확장되어 새로운 유형의 국가성장 발전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가 될 수 있는 큰 매력적인 칼날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합의가 미중관계에서 그 동안 회색지대에 머물러 있던 한국이 최전방 전선에 자원함으로서 미국의 대중국 견제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수단으로 전락하여 중국을 포위 견제하겠다는 의도로 읽힐 수 있다. 이로 인해 중국과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하고 북한에게는 핵과 미사일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는 명분을 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들 국가들에게 안보 딜레마를 초래하여 군비경쟁을 촉발함으로써 안보비용을 가중시켜 동북아 정세에 위협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다모스클레스의 칼날이 될 수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정부는 국방력 강화에 결코 움츠려선 안 된다. 군사외교 측면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변 국가와 세련된 행태로 군사 대화채널을 가동하여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 또한 기술적인 차원에서 준중거리 미사일과 우주로켓을 개발하는 ‘투 트랙’ 전략을 통해 기술 축적과 주변국에 신뢰를 쌓는 ‘로키(Low Key) 전략’ 구사를 통해 양날의 칼이라는 딜레마를 해소하면서 안정적인 미사일 주권을 확립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