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신고三一神誥」가 인도하는 진아眞我(19)】
“총명하고 밝은 사람은 느낌을 멈추고, 호흡을 고르게 하고, 접촉을 금하고, 오직 한 뜻으로 행하고 삼망을 고쳐서 삼진에 이르면, 삼신의 조화의 기틀이 크게 발휘하느니, (삼신의) 성에 통하고 공업을 완수하는 것이 이것이다[哲 止感 調息 禁觸 一意化行 改妄卽眞 發大神機 性通功完 是]”(「삼일신고」)
조식調息
인간은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숨을 쉬어야 산다. 숨구멍이 막히거나 숨이 끊어지면 죽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소위 생명이라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호흡을 통해 ‘생명의 기[生氣]’가 운용運用되어야 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자신의 생명체가 온전하게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호흡을 통해 ‘생명의 기’를 보호하고 제어制御하고 운용運用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에서 생명체의 ‘기’를 운용하고 윤환輪換하는 곳은 어디인가? 그곳은 ‘심心 ㆍ 기氣 ㆍ 신身’ 삼방三房에서 ‘기의 방[氣房]’이다. ‘기방’은 삼신하느님이 부여한 생명[命]을 간직하고, 생명활동의 바탕이 되는 ‘맑은 기[淸氣]’가 주체가 되어 호흡을 통해‘진기眞氣’를 보호하고, ‘진기’가 원활하게 순환할 수 있도록 운용하며, 생명활동 중에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등 ‘탁한 기[濁氣]’를 생명체[身]에서 배출하도록 작용하는 곳이다.
그런데 ‘기방’에는 향내[芬], 악취[爛], 차가움[寒], 뜨거움[熱], 마름[震], 축축함[濕]의 ‘기’가 출입하면서 만연蔓延해 있다. 이것들은 전적으로 삼신하느님에게서 받은 ‘진기眞氣’가 아니고, 오히려 생명력을 훼손하고 앗아가는 ‘망령된 기[妄氣]’, 달리 표현하면 ‘탁한 기’들이다. 인간의 생명체가 건강하고 장수하기 위해서는 오직 ‘삼문三門’을 통해 드나드는 이러한 ‘망기’들을 몸에서 중화하여 없애거나 축출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방’에 만연된 ‘탁한 기’가 주체主體가 되어 ‘분 ㆍ 란 ㆍ 한 ㆍ 열 ㆍ 진 ㆍ 습’의 ‘망기’들을 ‘진기’로 받아들이게 되고, 본연의 ‘진기’조차 모두 탁하게 오염됨으로써 삼신하느님이 부여한 진실한 생명[眞命]이 오염되고 소진되어 결국 생명체는 더 이상 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기방’에 현존하는 ‘망기’들을 중화하거나 제거하는 길은 바로 ‘진기’에서 발현하는 ‘맑은 기[淸氣]’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 ‘주체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사실 ‘맑은 기’는 삼신하느님의 본성인 ‘진명’에 바탕을 둔 ‘생명의 기[生氣]’이다.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항상 ‘맑은 기’가 주체가 되어야만 삼신하느님의 ‘진기’를 온전하게 보존하고 발현하여 운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차적인 단계로 먼저 ‘맑은 기’가 생명의 주체가 되어 내적으로는 ‘육경六境’에서 일어나는 망기, 즉 ‘분 ㆍ 란 ㆍ 한 ㆍ 열 ㆍ 진 ㆍ 습’의 ‘탁한 기’를 일소一掃하여 ‘진기’가 순환할 수 있도록 하고, 외적으로는 ‘진기’를 운용하여 주변을 ‘맑은 기’가 뻗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오직 ‘조식調息’을 통해서 가능하다.
‘조식’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글자 그대로 ‘호흡[息]을 고르게 조절한다.’는 뜻이다. 이는 들숨과 날숨을 조절하여 본래적인 참 생명[眞命]의 ‘진기’를 보호하고, 몸에서 원활하게 순환하여 운용되도록 제어함을 함축한다. 이와 같은 생명의 기와 호흡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승언은 “호흡을 고르는 목적은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것이다. 생명 에너지는 호흡을 통해 우리 몸을 드나들기 때문에, 우리는 호흡을 조절함으로써 기운의 흐름과 강약을 조절할 수 있다. 우리가 기운을 의도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생각과 감정에 동요되지 않는 차원을 넘어 생각과 감정을 뜻대로 다룰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식은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숨이 저절로 쉬어지는 것이다. 지감을 통해 감각을 멈추고 정신을 집중해서 마음이 가라앉으면, 조식을 통해 몸을 이완하고 몸에 기운을 불어 넣는다.”(『단학』, 한문화 멀티미디어, 93~94쪽)고 언급한다.
그렇다면 ‘조식’의 일차적인 목적은 몸에 ‘진기’를 불어넣어 본연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의 방[氣房]’은 ‘마음의 방[心房]’과 ‘몸의 방[身房]’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조식’은 호흡을 고르게 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心]나 신체적으로[身] ‘망기’를 ‘진기’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것은 ‘향내[芬]와 악취[爛]’가 나는 ‘기’를 순화純化하여 ‘선한 기’로 전환하는 것이고, ‘차가움[寒]과 뜨거움[熱]’의 ‘기’를 중화中化하여 ‘맑은 기’로 전환하고, ‘마름[震]과 축축함[濕]’의 ‘기’를 조절調節하여 ‘돈후한 기’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생명체는 ‘진기’를 보호하고 축적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조식’의 진정한 목적은 단순히 자신의 ‘진기’를 보호하고 축적하여 개별적인 생명체를 운용하는 것을 넘어서 우주사회의 생명활동에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삼일신고」의 궁극 목적은 삼신하느님이 부여한 본연의 ‘성性’이 광명에 통한다는 뜻의 “성통광명性通光明”, 하늘의 법에 위배되지 않고, 땅의 육성에 게으르지 않고, 인간의 본성적인 행위에 어긋나지 않음을 뜻하는 “재세이화在世理化”, 널리 이롭게 하는 인간이 됨을 뜻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을 실현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식’의 목적은 다음과 같이 제시해볼 수 있을 것이다 :
첫째, ‘조식’을 통해 안으로는 ‘기방’에서 마음과 몸을 교란하는 현란한 향기[芬]를 순화하여 ‘선한 기’가 운용될 수 있도록 전환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나친 향기는 탁하여 자신의 ‘진기’를 교란하고 소모하기 때문이다. 밖으로는 자신의 ‘진기’를 운용하여 ‘선한 기’가 타인에게 침투하게 함으로써 모두 맑은 기운이 감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조식’을 통해 안으로는 정신적인 좌절과 신체적인 허약함을 유발하는 죽음의 기[爛]를 정화하여 좋지 못한 ‘기’를 제거함으로써 순수 생명의 ‘선한 기’가 지속적으로 순환될 수 있도록 하고, 밖으로는 타인을 위해 ‘진기’를 운용하여 대자연과 창조적인 문명이 선함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셋째, ‘조식’을 통해 안으로는 마음의 냉철함과 몸의 한기[寒]를 녹여서 응결되어 있는 ‘기’를 중화함으로써 온유溫柔한 ‘기’가 막힘없이 순환하여 온전한 생명활동이 왕성해질 수 있도록 하고, 밖으로는 타인을 위해 ‘진기’를 운용하여 지나치게 냉혹한 사회분위기를 조절하고, 자연과 문명의 이기利器를 개발하여 온전한 인간 삶의 활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한다.
넷째, ‘조식’을 통해 안으로는 마음의 흥분과 몸의 열기[熱]를 가라앉혀 광분하는 뜨거운 ‘기’를 중화함으로써 청초淸楚한 ‘기’가 질서 있게 순환하여 순수한 생명력이 지나치게 소모되지 않도록 하고, 밖으로는 타인을 위해 ‘진기’를 운용하여 광분하는 사회분위기를 조절하고, 자연과 문명의 이기를 절제하여 온전한 삶에 적합한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
다섯째, ‘조식’을 통해 안으로는 지나치게 메마른 마음과 비실비실한 몸의 기[震]를 조절함으로써 후덕厚德한 ‘기’가 원활하게 순환하여 생명활동이 왕성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밖으로는 타인을 위해 ‘진기’를 베풀어 딱딱하고 메마른 사회를 보다 부드럽고 풍요로운 삶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
여섯째, ‘조식’을 통해 안으로는 허황虛荒된 마음과 비대한 몸의 습한 기[濕]를 조절함으로써 돈후한 ‘기’가 원활하게 순환하여 생명활동이 편안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밖으로는 타인을 위해 ‘진기’가 운용되어 허장성세虛張聲勢의 문명사회가 되지 않도록 조절한다.
그러므로 「삼일신고」에 언급된 ‘감感 ㆍ 식息 ㆍ 촉觸’ 삼문에서 ‘조식’은 일차적으로 ‘6경[六境]’을 순화, 중화, 조절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분芬 ㆍ 란爛 ㆍ 한寒 ㆍ 열熱 ㆍ 진震 ㆍ 습濕’의 ‘6경’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헛된 것[妄氣]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이 무병장수하기 위해서는 삼신하느님의 생명[命]에 의거한 ‘맑은 기[淸氣]’가 주체가 되어 ‘조식’의 수련법을 통해 ‘진기’가 원활하게 운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삼신으로부터 받은 온전한 ‘삼진三眞’을 회복하지 못하고, 안으로나 밖으로나 ‘맑은 기’가 흐리게 되어 ‘탁한 기’가 쌓임으로써 본연의 생명활동이 고갈되고 해체되어 늙고 병들어[老病] 천수를 누리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 온전한 ‘삼진’의 생명을 회복하기 위한 ‘조식’의 구체적인 수련법은 무엇인가? ‘조식’의 수련법은 중국, 인도, 한국 등지에서 나름대로의 진화를 거듭해왔을 것이다. 한민족 고유의 호흡법은 조선 중기에 북창北窓 정염(鄭磏, 1506~1549)의 수련법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호흡법은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는 「용호비결龍虎秘決」에 담겨있다. 여기에서 그는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기질의 청탁淸濁을 호흡법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용호비결龍虎秘決」에서 북창 정염이 제시한 수련과정은 폐기閉氣, 태식胎息, 주천화후周天火候의 세 단계로 압축할 수 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삼일신고」에서 말하는 ‘조식’의 수련법을 유비적으로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조식’의 첫 번째 단계는 ‘폐기’로 볼 수 있겠다. ‘폐기’를 수련하고자 하는 자는 다리를 포개어 단아하게 앉아서 마음의 동요를 없애고 안정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한마디로 ‘지감止感’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세는 고개를 반듯하게 세우고, 실눈을 뜬 채 시선視線이 아래를 향하여 콧등을 대하고, 콧등은 바로 배꼽 언저리를 대하도록 한다. 이때 들이쉬는 숨은 연속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고, 내쉬는 숨은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아주 미미하게 쉰다. 이러기를 천천히 반복하는데, 그 목적은 항상 신神과 기氣가 배꼽 아래의 단전丹田에 머물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 이유는 ‘삼진’의 ‘성性’과 ‘명命’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정精’이고, ‘정’이 신체에 온전하게 보존되면 그 속에 ‘신神’이 깃들게 되고(神卽氣), ‘신’이 신체에 깃들어 작용하게 되면 곧 몸의 ‘기’가 올바르게 운행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조식’의 다음 단계는 ‘태식’이다. ‘태식’은 ‘진기’가 가라앉은 가운데 ‘태’가 맺고, ‘태’가 있는 가운데에서 ‘진기’가 쉰다는 뜻이다. 만일 건강하고 장수하기 위해서는 ‘신’과 ‘기’가 몸에 같이 머물러 있어야 한다(내유삼신內有三神 외유기화外有氣化). 왜냐하면 몸 안에 ‘기’가 들면 살게 되고, ‘신’이 몸을 떠나면 죽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식’을 통해 ‘진기’를 아래로 밀어서 단전에 이르도록 한다. 그렇게 하면 ‘진기’는 원래대로 부드러워지고 원만해지면서 안정이 되어 본래의 자리에 머물게 되고, 마침내 호흡이 없이도 ‘진기’로 숨을 쉬게 된다. 이것이 바로 모태母胎에서 숨 쉬는 것으로 ‘진명’을 회복하는 태식이다. 이는 생명이 모태 속에 있을 때처럼 호흡하지 않아도, 탯줄과 임맥任脈이 통하고, 임맥과 폐가 통하고, 폐가 코와 통하는 이치와 같다는 것이다. (만일 탯줄이 한 번 끊어지면 호흡은 입과 코로 통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몸에 지녔던 영양분은 잃어버리고, 당연히 진기도 녹아 없어진다. 그럼으로써 질병이 생겨나고 요절하게 되는 것이다. 복귀하는 법을 얻어서 정진을 그치지 않는다면 무병장수한다.)
‘조식’의 마지막 단계는 ‘주천화후’이다. ‘주천화후’는 온 몸에 열기가 순환하는 것을 뜻한다. 수련의 초기에 ‘폐기’를 시작한 후 오래지 않아 ‘신’과 ‘기’와 함께 심신心身이 정정靜定해지면, 화후火候가 일어나기 쉽다. 왜냐하면 단전에서 ‘진기’가 한동안 흩어지지 아니하면 반드시 따뜻한 기운[溫氣]이 발산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온기가 점차 뚜렷해지면서 뱃속이 크게 열려 잠깐 사이에 열기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 온 몸에 두루 돌게 되고, 자연스럽게 혈기가 점차 충실해지면서 열기가 상단전上丹田에까지 올라가 불꽃을 피우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주천화후이다. 이것이 “신장 속의 진수가 상승하는 외부의 징후이다腎中眞水上昇之外候也”(『영보국정정지법靈寶局定精之法』). 이 상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삼일신고」에서 말하는 “자성구자自性求子 강재이뇌降在爾腦”의 참 뜻을 파악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