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시베리아 원주민은 고대 한국인의 후손(1)

러시아 시베리아 원주민은 고대 한국인의 후손(1)

러시아의 투바 공화국, 부랴티아 공화국, 사하 공화국에 사는 시베리아 원주민은 고대 한국인의 후손 (1)

전원철 연구위원

 

대조영의 손자 도리행의 후손지파 우량하이의 이름을 딴 탄누 우량하이-투바인들

 

오늘날 러시아의 동방에는 동시베리아를 이루는 지방이 있다. 극동으로는 캐나다와 북미에 마주한 추코트카와 캄차트카가 있다. 그로부터 좀 더 서로 가면 사하공화국, 그 아래 하바로프스크와 (유태인 자치주인) 다우리야, 부랴티아가 나온다.  더 서쪽으로 가면 예전에 ‘탄누 우량하이’로 불린 투바 공화국, 그리고 학카시아와 알타이 공화국이 이어진다. 그 아래 몽골국과 카자흐스탄이 이웃하고 있다. 다시 극동에서 동남으로 내려오면, 하바롭스크 주와 사할린 주, 그리고 연해주가 우리 북한 땅과 이어진다.

이 지역들은 얼핏 보면 오래된 러시아 영토로 잘못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 공식적으로 러시아 영토가 된 것은 지금부터 150여년 정도에 불과하다. 이중 오늘날 투바공화국으로 불리는 탄누 우량하이와 카자흐스탄, 몽골, 부랴티아는 청나라 시대에는 청나라의 부속령이었다. 1628년 이래 러시아인들이 점차 동으로 넘어와 1870년대 이 땅들이 러시아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 때까지 사하, 하바로프스크, 사할린, 캄차트카, 추코트카 등지는 태고로부터 고조선, 고구려, 발해, 금나라, 고려, 근세조선 등 한민족 왕조들이나, 그 지파가 세운 왕국들 즉 원제국, 청나라의 부속령들이었다. 이 지역들의 주민들은 때로는 가끔씩 한민족 왕조들과 교류하기도 하면서도 지리적 위치상 상당기간 거의 독립적으로 살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민족은 안타깝게도 이러한 사실을 지난 350~150년 사이에 모두 망각해버렸다. 이 사실을 이 지방들에 사는 원주민의 뿌리를 통해서 알아본다.

 

1. 알타이와 학카스 공화국

우선 몽골리아 북방의 알타이와 학카스 지방이 있다. 이 중 학카스 지방은 원래 고구려인들이 자주 이주한 곳이다. 특히 고구려가 망한 뒤로는 그 유민들의 새로운 고향이 되었다. 이 때문에 지금도 이 지방의 원주민들은 스스로를 ‘코라이(고려)’, ‘콩고라이(고구려)’ 인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지방에는 10세기 페르시아 지리역사가 가르디지에 따르면 ‘푸리-쿠리’라고 부르는 종족이 살고 있었다. 이는 ‘부려-고려’라고 할 수 있다. 가르디지에 따르면 그들의 언어는 흉노-투르크계인 예니세이 키르기즈인들과는 전혀 달랐다고 한다. 더 서쪽의 알타이에는 ‘돌궐’의 일부인 투르크계와 고대 한국인들이 함께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 발해 고왕 대조영의 증손자 님금의 씨족 이름에서 나온 투바 공화국의 다른 이름 ‘탄누 우량하이’

학카스공화국의 동쪽, 몽골국 위쪽에 자리잡은 투바는 20세기에 한 때 탄누 우량하이(唐努烏梁海)라고 불렸고, 지금도 현지인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부른다.  투바는 원래 당나라 시대인 600년대의 역사를 적은 <신당서 회골전> 에서 그렇게 불렀듯이 한 때 ‘도파都播/都波’라고 불렸다.  이 나라는 키르기즈의 동편에 있는 나라로, 달리 “목마돌궐木馬突厥 삼부락三部落”으로도 불렸는데, 도파都播, 미례彌列, 가아지哥餓支가 그 부락들이고, 그 추장酋長은 모두 이르킨頡斤이 되었다.” 고 한다.

그런데, 이 투르크인들의 땅이 왜 달리 ‘우량하이’로 불리는가?  이 지명은 사실은 놀랍게도 한국에서 기원한 지명이다. ‘우량하이’는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오량합吾良哈’으로 나온다. 1227년에 쓰이기 시작한 <몽골비사>에서는 ‘우량카이’라고 나온다. 1310년에 라시드 웃딘이 쓴 <역사모음>도 ‘우량카이’라고 적고 이 종족은 니쿠즈(님금, 링쿰)의 후손 지파 중의 하나라고 하였다. 니쿠즈는 ‘다르라킨 몽골’의 시조인데, 이 지파 이름은 얼핏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말 ‘도리행(다르라킨) 말갈(몽골)’이 몽골어화한 이름이다. 이 종족과 그 지파인 ‘우량카이’ 종족의 기원 이야기는 발해 중기인 8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조영의 아우인 대야발에게는 원기와 일하 두 아들이 있었다. 이 중 ‘일 칸’이라고도 알려진 ‘대일하’에게는 라시드 웃딘의 <역사모음>에 ‘키야트(걸=대)-키얀’으로 기록된 아들 ‘대간大澗’이 있었다.

그가 살던 시대에 발해는 당나라 등주에 원정하였다. 당나라가 발해의 한 지방이었던 흑수말갈黑水靺鞨을 떼어가려고 획책한 때문이었다. 이를 계기로 당나라와 발해 사이에 2년간의 대전쟁이 벌어졌다. 이 전쟁 중 한 전투에서 발해군사들은 전멸당하고 오직 두 사람만이 살아 남았다. 그 중 하나가 ‘간(키얀)’이었고 또 한 사람은 ‘니쿠즈’였다. ‘니쿠즈’는 대조영의 손자인 도리행의 아들이다. 그는 ‘대간’ 자신에게는 7촌조카이고, 발해명 ‘님금’이다.

두 사람은 마침 갓 혼인한 그들의 아내들과 시종 몇만 데리고 그 유명한 ‘아르가나 쿤(압록군, 발해 서경)’으로 피난해 들어갔다. 그 뒤 세월이 흘러 식구들이 불어났다. 대간의 손자인 알탄 칸(대-금행) 시절에 니쿠즈의 후손은 ‘다를라킨 몽골(도리행 말갈)’이라고 불렸고, 그 한 지파가 오량카이 종족(씨)이 되었다.

이 ‘오량카이’ 종족이 <몽골비사>와 <역사모음>에 최초로 기록된 ‘우량하이’ 즉 오량합(兀良哈)이다. ‘오량합’은 우리 사서에서는 고려 우왕과 창왕 시대, 그리고 이성계 시대에 고려백성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투바, 곧 ‘도파都播’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원래 투르크 즉 돌궐(突厥)인들이 살던 이 땅이 왜 ‘우량하이’로 불리게 된 것일까? 역사의 어느 때인가 한 무리의 발해인들이 만주를 떠나, 몽골리아를 거치는 머나먼 길을 걸어 오늘날의 투바로 이주해와서 투르크인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들이 ‘우량하이’라고 불리는 종족, 곧 문중이었다. 바로 이들 때문에 오늘날 투바는 고유한 이름 ‘도파都播’ 외에도 ‘탄누 우량하이’로 불린 것이다. 그들이 이곳으로 이주한 것은 918년경 궁예의 정권이 무너질 때였다.

주목할 점은 이 우량하이인들은 바로 아까 말한 발해 고왕 대조영의 맏손자 도리행의 후손이 이룬 가문과 그 속민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이 곳으로 온 시점은 아마도 발해가 망하는 926년경이다. 이 때 발해 유민의 상당수는 남으로는 고려로 도망하고 북으로는 오늘날 몽골리아로 피난을 갔다. 그 고고학적 증거가 있다. 몽골리아에서 오늘날 ‘솔롱고스 헤름(Solonggos Kherem)’, 곧 ‘발해성’들이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우량하이 종족 중 고향으로 돌아오거나 처음부터 고향에 남은 사람들은 나중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오량합’으로 불린 것이다.

 

3. 부랴티아의 코리 부랴트 족의 탄생이야기

이제 부랴티아의 부랴트 3종족의 탄생 이야기를 해보자. 키얀과 니쿠즈 시대를 지나 2세대가 지났다. 키얀의 손자로 태어난 ‘알탄 칸’이 있었다. 몽골어인 이 이름은 발해식으로는 ‘황금 칸’이라는 말이다. 그는 <고려세계>에 태조 왕건의 외증조부로 기록된 금행金幸이고, 왕건의 할머니 용녀龍女의 아버지이다.

그 금행의 3세손으로 부랴트-몽골어로 ‘바르가 타이상 노욘’으로 불리는 인물이 있었다.  말갈 말로는 ‘발해(바르가)-대상(타이상)-랑(노욘)’이라는 이름이다. 그는 부랴트 민화에서 ‘커커 보카(푸른 황소)’라고 알려진 인물인데, 이 이름의 원래의 발해명은 ‘걸가보고’, 곧 ‘걸씨보고’이다. 이 이름이 ‘커커보카’로 바뀐 것이다.

‘걸가보고’는 자신의 증조부인 금행에게 외증손으로 태어난 고려 태조 왕건과 함께 궁예를 따라 고구려-마진(후고구려)을 세우는 것을 도운 인물이다.   그러나 왕건이 궁예의 학정을 보다 못해 궁정혁명을 일으키고 고려를 세웠다. 그러자, ‘발해대상랑 걸가보고’는 왕건을 피해 오늘날의 바이칼 옆의 바르구진 투쿰으로 갔다. 그는 궁예 측에 섰다가 궁예가 지는 바람에 도망을 간 것이다. 바이칼로 간 ‘발해대상랑 걸가보고’, 곧 ‘바르가 타이상 노욘 커커 보카’에게 한 아들 ‘코리 메르겐’이 태어났다. 그리고는 자신의 가문과 속민들인 코리-투마드 종족의 부장이 되었다.

부랴트 학자 다시바로프(B. Dashbalov)가 전하는 부랴트인들의 전설에 따르면 이 코리 메르겐에게도 나중에 11명의 아들들과 그들의 누나인 외동딸인 알란 고와가 태어났다. 나머지 아들들은 각각 호아사이, 보동고드 등 11개의 코리-부랴트 종족의 시조가 되었다.  외동누나 ‘알란 고와’는 훗날 칭기스 칸의 10대 조모가 되었다. <몽골비사>에 따르면, 그녀에게 첫 남편한테서 두 아들이 태어났다. 그러나 남편은 3년만에 세상을 버린다. 그 뒤 그녀는 둘째 남편한테서 세 아들을 낳아, 모두 다섯 아들을 둔다. 이 가운데 막내 아들로 난 이는 ‘보잔자르’였다. 말갈 말로는 ‘보장설’, 곧 ‘보장왕’과 같은 이름이다.  그는 “세계정복자” 칭기스 칸의 9대 선조가 되었다.

그 보잔자르는 어느 날 우량카이 아당칸 백성의 한 여인을 잡아와 후처로 삼았다. 잡혀 올 때 그녀는 이미 아이를 밴 상태였고, 잡혀온 이 여인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자르치우드’ 씨의 선조가 된다. ‘주르체다이’, ‘주르첸’, 곧 ‘여진’ 씨라는 뜻이다. 그는 훗날 칭기스 칸의 안다(맹세한 형제)가 되는 자무카의 5세조이다. 이 ‘자르치우드’, 곧 ‘여진씨’라고 불린 ‘우량카이’ 가문이 방금 본 투바로 간 그 발해 대조영의 손자 도리행의 후손 지파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