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 그들의 깊은 사유와 ‘웃픈’ 삶 9 칸트 (1)
철학적, 과학적 사유를 혁명革命한 칸트
1. 칸트의 세 가지 근본 질문
1900년 무렵 한 독일어 독본讀本에는 다음과 같은 시구가 실리기 시작했다. “임마누엘 칸트는 모든 어린애들에게까지 알려져 있는 정언명법을 발견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어른들조차 그것을 모르고 있다. 나아가 여론조사에 나타난 결과를 보면, 대부분의 독일 사람들은 철학자의 고향인 쾨니히스베르크란 이름에서 칸트보다는 고기 경단을 떠올리고 있다. 또한 칼 마르크스의 이론과 대결한 대학생들조차도 칸트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과거 대학들에서 학생운동이 번져가던 1967년, 칸트가 마르크스 못지않게 시민사회의 해방에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논의 밖에 있었다.
칸트는 유럽 계몽주의, 즉 17세기, 무엇보다도 18세기를 지배했으며 서유럽의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동유럽의 사회주의 등 거의 모든 근대 정치사상의 근원 정신 사조를 주도한 사상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칸트는 계몽주의의 이념을 “인간 자신이 초래한 몽매함으로부터의 벗어남”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자신이 초래한 몽매함’이란 말로 칸트가 뜻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줄 모르는 “나약한 무능력”이다. 그 때문에 그는 “자신의 이성에 복무하는 용기를 가져라”라고 호소한다. 이 호소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하다.
칸트의 계몽주의 사상은 1780년 무렵 급속도로 퍼져갔다. 당시 독일 한 나라에서만 철학 전문 잡지가 200 종을 넘었다. 칸트의 사상은 1789년 자유, 평등, 박애의 이름으로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던 프랑스에까지 스며들어갔다.
프랑스 혁명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정치 강령을 작성하는데 당연히 이 독일 철학자의 도움을 얻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 바람은 수포로 돌아간다. 칸트는 철학자로 남아있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철학자로 남는 일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권력이 아니라 오직 진리에만 복무한다.’
쾨니히스베르크의 철학자는 당시나 지금이나 학자들 사이에서는 “최초로 방대한 체계를 구축한 철학자”(귄터 파치히 교수, 괴팅겐 대학)로 평가된다. 나아가 칼 야스퍼스는 그를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3명의 위대한 서구 사상가로 꼽았다.
옛 헬무트 슈미트와 같은 정치가나 평화 연구가인 칼 프리드리히 폰 바이재커와 같은 물리학자들은 자신들이 칸트로부터 영향 받았다고 여긴다. 알베르트 아이슈타인은 칸트를 자연과학자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유일한 철학자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영국과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한 철학자 칼 포퍼는 이렇게 적고 있다. “서구에는 칸트적인 지적 풍토가 지배하고 있다. 이것이 없었다면 아이슈타인과 닐 보어의 이론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철학을 진지하게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칸트를 비켜 갈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죽은 지 18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세계의 다수의 학자들이 그의 사상을 해석하고 전파하거나 혹은 그것과 대결하는데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피히테, 셸링, 헤겔 그리고 쇼펜하우어 같은 그의 위대한 후계자들이 근본적으로 그에게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고 또 이들 철학자들이 다시 마르크스, 니체, 키에르케고르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칸트 이후의 철학은 크게 보아 바로 칸트와의 대결이라 할 수 있다.
칸트는 인간의 세 가지 근본 물음을 추구했다. 이 물음들은 이렇게 표현될 수 있다. 1.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2.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3.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첫 번째의 질문, 즉 앎에 관한 물음에 대답하면서 칸트는 우리의 사고에 비판적 기준을 부여했고, 또한 그럼으로써 사고를 혁명적으로 전환시킨 사상가임을 입증했다. 이러한 칸트의 업적이 갖는 의미를 곧장 파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는 이렇게 물었다. 나는 어떻게 사유의 결과에 이르게 되는가? 모든 사유가 다 인식인가? 더 나아가, 나는 어떻게 해서 나의 인식이 올바르다고, 다시 말해 실제와 부합하다고 받아들이는가? 이렇게 묻는 이유는 내가 지각한 실제의 나무는 내 인식의 나무와는 명백히 다른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칸트는 인식의 문제를 10년을 두고 숙고했고, 마침내 모두 884쪽의 획기적인 저술 안에서 해답을 제시했다. 그 후 철학과 사유에 있어서 전환점으로 평가받는 이 저서의 이름은 『순수이성비판』이다.
이 책은 세계 문헌들 가운데 가장 난해한 책에 속한다. 전문가들에게조차도 “이성비판”을 읽는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그리고 예비지식 없이 세기적 작품을 이해해 보겠다는 결심은 맨발로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려는 시도와도 같다. 물론 칸트는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프롤레고메나(序說)?란 이름으로 출간된 발췌본 안에 요약해 놓았다. 그렇지만 이마저도 쉽게 읽힐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성비판”은 칸트의 다른 철학적 저술들이 그렇듯이, 신과 세계를 다루는 게 아니다. 오히려 신과 세계에 대한 우리의 사유가 실제적으로 보편타당한 인식인지, 또 보편타당하다면 얼마만큼 그런 것인지 하는 물음을 다루고 있다. 또 인간의 감성과 오성 그리고 이성을 주제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결코 심리학적인 저술이 아니라 오히려 인식론적인 저술이다. 칸트가 발견했던 것이 무엇인지는 대중적이지만 대개는 단지 관용구로 사용되는 “물 자체(物 自體)”라는 개념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난다.
우리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또는 만져봄으로써 세계를, 또는 세계안의 대상들을 경험한다. 감성적 가능성(직관)의 범위 안에서 세계는 우리에게 “나타난다.” 그렇지만 여기에 다시 다른 어떤 것이 덧붙여지는데, 모든 “나타남(Erscheinung)”에 질서를 부여하는 오성이다. 칸트는 말하기를, “감성 없이는 우리에게 어떤 대상도 주어지지 않으며 오성 없이는 어떤 대상도 사유되지 않는다.”라고 한다.
이 말은 곧 이런 뜻이다. 세계에 대한 인식에는 우연의 요소가 들어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과는 다른 수정체, 감성의 다른 정도, 다른 청각장치 또는 다른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한번 가정해보자. 이때 세계는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날까?
그렇지만 우리에게 생생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세계가 단지 가상(허상)일 따름이라고 칸트가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든 나타남의 근거가 되며 감성과 오성의 활동을, 말하자면 자극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칸트에 따르면, 여기서 ‘어떤 무엇’은 “물 자체”이다.
그러나 인간의 감성은 이 “물 자체”에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물 자체”는 유한한 감성 기관이 작용할 수 있는 경계 바깥에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가 감성과 오성이라고 하는, 벗을 수 없는 안경 없이는 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인간은 단지 감성과 오성의 안경을 통해서 나타나는 세계만을 알 뿐이다.
“물 자체”와 “나타남(현상)”의 분리는 모든 인식에 대해 다음과 같은 중대한 결론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나타남, 다시 말해 경험 가능성의 경계를 넘어 사유(사색)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인식은 오직 경험 가능의 테두리 안에서만 가능하다. 경험 가능을 원칙적으로 넘어서 있는 신, 세계–존재 자체, 인간–존재 자체는 인식 가능성을 넘어서 있다. 이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은 엄격한 의미로 보면 무지한 자이며 또 그렇게 남는다. 이에 따르면 사유와 인식은 동일한 게 아니며, 사유된 것과 인식된 것은 “물 자체”와 동일하지 않다.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란 시인은 자신이 나타남의 세계를 헤매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그에게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을 주었으며, 이 때문에 결국 자살을 하고 말았다. 1801년 시인은 사랑하는 애인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나는 얼마 전 소위 칸트 철학이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었소. 그리고 이제 그 철학의 사상 한 가지를 당신에게 소개해야 하겠소. 그 사상이 내게 그랬듯이 당신에게도 똑같이 심각하고도 고통스런 동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내가 겁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모든 사람들이 푸른색의 안경을 쓰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사람들은 분명 안경을 통해 바라본 대상들이 푸르다고 판단할 겁니다. 그들은 결코 자신들의 눈이 사물들을 있는 대로 보여주는지, 아니면 사물들이 아닌 눈에 속하는 다른 어떤 무엇을 사물들에 덧씌운 것은 아닌지 분간하지 못할 겁니다. 이것은 오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라고 부르는 것이 정말로 진리인지, 아니면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인지 가려낼 수 없습니다. … ”
자연과학자들은 이렇게까지 극적으로는 반응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물 자체”는 하나의 걸림돌이다. 그들 또한 칸트의 명제로부터 자신들이 언제나 나타남들만을 탐구할 뿐, 존재 자체는 탐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인식 결과들이 아무리 독창적이라 하더라도 그것들이 다루는 것은, 말하자면 언제나 단지 외피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당연히 “물 자체”를 반박하려는 시도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칸트가 그의 근본 명제를 관철해 가는데 있어서 어떤 논리적 결함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래서 칸트의 명제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모든 논증들은 특별히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후대의 철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상이한 세 가지 방식으로 반응을 보였다. “물 자체”를 아예 무시하거나(칼 마르크스) 아니면 다른 이름으로 바꿔 인식(프리드리히 헤겔)이나 표상(아르투르 쇼펜하우어)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지금까지의 개략적인 설명만으로도 아마도 다음과 같은 사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터이다. 사유 법칙은 존재 법칙과 동일해야만 한다는 옛 전제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어떻게든 여전히 사유법칙이 나타남들(현상들)의 법칙과 일치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사유 법칙은 알려지지 않는 “물 자체”의 법칙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칸트는 이를 통해 자연과학자들보다 신학자들에게서 더 큰 분노를 샀다. 그는 신학을 향해 일격을 가했으며, 그때 입은 신학의 상처는 오늘날까지 조금도 치유되지 못한 상태이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의 짤막한, 그러나 인상적인 절節에서 전설적인 ‘신 존재 증명’을 무너뜨렸던 것이다. 특히 소위 존재론적 증명에 대한 반박이 눈길을 끈다.
칸트는 여기서 “술어–논리학”을 문제 삼는다. 술어–논리학은 한 주체(문법적으로 말하면 문장의 주어) 안에는 그것에 대해 진술될 수 있는 모든 게 이미 포함돼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백마’라는 단어에는 ‘희다’란 말이 이미 들어 있다. ‘백마는 흰 말이다.’란 문장은 ‘백마’란 이름에 대한 언제나 타당한 설명이다. 반면 ‘백마는 검다.’란 주장은 어떤 경우에도 옳지 않다. 왜냐하면 ‘희다’는 언제나 백마에 속하는 징표인데 반해 ‘검다’는 백마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마는 검다.’란 문장은 모순된 것이다.
이는 ‘신’이란 개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우리가 ‘신은 전능하다.’고 말할 때, 이는 ‘신’이란 단어에 포함돼 있는 술어, ‘전능하다’를 끄집어내고 있을 뿐이다. ‘신은 지선至善하다.’ 또는 ‘신은 전지全知하다.’ 등의 진술들 역시 같은 경우이다. 언제나 술어들은 이미 주어 안에 속해 있는 것이다. 물론 신이 최고의 존재자로 정의되는 한에 있어서 그렇다. 이에 비해 ‘신은 무력하다.’ 또는 ‘신은 죽는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옳지 않다. ‘무력하다’, ‘죽는다’는 술어는 주어(신) 안에 들어 있지 않기에 주어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존재론적 증명은 바로 이와 같은 논리적 기초에서 출발한다. 이 증명은 먼저 신을 절대적으로 완전한 존재자로 생각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리고 신이 절대적으로 완전한 존재자라는 것은 다음의 사실을 의미한다. ‘신’이란 개념에는 있을 수 있는 모든 긍정적 술어들이 가장 최고의 정도로 들어 있다. ‘신은 전능하다.’, ‘신은 지선하다.’ 등.
라이프니츠는 “신” 또는 “완전한 존재자”란 개념에는 또한 ‘실존한다’는 술어가 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곧 실존하는 게 실존하지 않는 것보다 더 완전하다는 원칙의 전제로부터 출발했던 것이다.
자연 이에 대해서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 햄릿에게는 “존재하는 것”이 과연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인지 그렇게 분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햄릿보다 훨씬 이전에 그리스의 시인 소포클레스는 이미 이렇게 물었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가치가 아닌가?”
하지만 라이프니츠의 확신을 수용한다면, ‘완전한 존재자’란 개념으로부터 또한 신은 실존한다는 사실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을 경우 신은 하나의 결핍을 갖게 될 것이며 이는 신이 더 이상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의미할 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의 실존은 필연적이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로써 논증은 반박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칸트는 논증의 외견상 완벽함에 압도되지 않았다. 그는 이 신 존재 증명을 분석하고 라이프니츠가 지닌 지성의 정교한 기술로도 없애지 못한 한 결점을 찾아냈다. 그것은 ‘실존’ 개념의 그릇된 사용이다.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은 ‘실존한다’가 마치 ‘전능하다’란 술어처럼, 신으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한다. 달리 표현하면, 이 증명은 ‘실존’과 ‘전능’은 유사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칸트가 반박하는 것은 이 점이다. 그는 논리학의 법칙들로 볼 때 ‘실존’은 결코 하나의 술어가 아니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