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 그들의 깊은 사유와 ‘웃픈’ 삶 8 라이프니츠 (4)
4. 우리는 가장 나은 세상에 살고 있다
성탄절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1676년 라이프니츠는 마침내 하노버에 도착한다. 몇 차례의 여행을 제외한다면 라이프니츠는 여생이 끝날 때까지 이곳에서만 40년 동안 머물게 된다. 라이프니츠에겐 그 이름이 “고물가의 도시”를 뜻하는 하노버는 그때까지 주민 수가 1만 명을 넘은 적이 없으며, 1636년 이후부터야 영주의 직접 지배아래 들어간 도시이다.
궁정자문관이란 지위를 가진 라이프니츠는 도시의 성 안에서, 보다 정확히 말하면 도서관 안에서 생활한다. 그는 유럽 각지의 학자들과의 폭넓은 편지 교환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이를 통해서 학문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에 관한 정보들을 수집한다.
1679년 말 라이프니츠의 이력에 장애물이 끼어든다. 그를 하노버로 데려 왔던 요한 프리드리히가 갑작스레 사망하고, 후임자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공작은 학문적인 문제들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새 영주는 도서구입을 위한 예산을 대폭 삭감한다. 연간 1천5백 탈러이던 도서구입비가 고작 90탈러로 줄어든다.
라이프니츠는 처음에는 영주가 자기를 오해한 것이라고 믿는다. 영주가 조언을 구하는 일도 없잖아 있지만, 이때에도 그를 철학자로 여겨서가 아니라 단지 그의 실용적인 재능을 이용하자는 목적에서였다.
무엇보다도 이 철학자는 이제 하루 종일 일해야만 하였다. 그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법률에 관한 소견서들과 정치적 탄원서들의 초안을 작성한다. 또한 하르츠 산지의 광산 작업 근대화를 시도하고, 풍력으로 움직이는 펌프를 고안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영주는 망설이지도 않고 그에게 또 새로운 과제를 부여하였다. 영주는 자기 가문의 이름을 높일 생각으로 철학자에게 벨펜 가문의 광범한 연대기를 기술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과제의 무게로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는 즉시 새로운 과제에 착수하지만, 그 일은 10년도 더 넘게 걸려야 하는 작업이다. 라이프니츠는 끝내 그 작업을 끝마치지 못했다. 1716년 그가 세상을 떠날 때 그때까지 그가 써내려온 연대기는 겨우 서기 1000년에 그쳤다. 그러나 연대기 기술보다 더 라이프니츠를 고달프게 만든 것은 하노버의 독특한 지역풍토였다. 이 도시엔 그를 빼놓으면, 명망있는 학자라고는 한 사람도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었다. 라이프니츠는 대화를 나눌 만한 대등한 수준의 상대자를 만나지 못한 것이다.
하노버에 사는 동안 라이프니츠가 신뢰하며 사귄 사람이라고는 오직 두 사람에 불과하다. 공작부인 소피와 나중에 프로이센의 왕후가 되는, 그녀의 딸 소피 샤를로테이다. 두 모녀 중 특히 어머니 소피는 그녀가 가진 지적 매력으로 당시 유럽사회에서 명성이 높았던 여자이다. 벨펜 가문과 교분이 있던 한 사람은 그녀에 관해 이렇게 적고 있다. “그녀의 지성은 딸만큼 철학에 향해 있지는 않다. 그러나 형이상학적인 문제들을 도외시한다면, 그녀에게 있어서 철학이란 다른 어떤 철학자에게서보다 라이프니츠에게서 가장 우아하고 명료한 형태로 구체화될 수 있었다.”
어머니 소피가 하노버 저택의 정원에 대한 계획들을 들려주면, 딸은 베를린의 리첸부르크 정원에 관한 설계를 얘기한다. 두 모녀의 즐거운 구상들을 들으며 라이프니츠는 이들에게 자기 철학의 근본특징, 예를 들면 단자론單子論(Monadenlehre)을 설명한다. 그는 특히 데카르트의 실체 개념을 반박한다.
라이프니츠는 희랍어 ‘Monade’를 “단순한”, 그래서 결코 부분들로 나눠지지 않는 완전하게 단일한 어떤 것으로 이해한다. 이 단순성엔 물질이 포함돼 있지 않다. 가장 미소한 물체인 원자조차도 공간적인 연장을 가지고 있고, 그리고 그 때문에 그가 보기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나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원자 역시 실제로 나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같은 근거만으로도 이미 라이프니츠는 물질이 단순한 실체들로 이뤄져 있다는 데카르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주에서 운동의 총량은 언제나 동일하게 유지된다는 프랑스인[데카르트]의 명제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합당한 주장을 편다. 데카르트의 명제는 증명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운동이란 상대적인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운동이란 관찰자의 위치에 의존하는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주장은 훗날 아인슈타인이 입증해주듯 물리학적으로도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원자, 곧 모든 물질 가운데 가장 미소한 물체가 실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실체가 실재한다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확고한 입장을 견지한다. 그가 이 같은 확신을 갖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논증 때문이었다. 자연과 우주 안에서 관찰하는 것들은 한결같이 복합적인 것들이다. 따라서 단순한 것(복합적이지 않은 것)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라이프니츠에게 있어서 단순성(혹은 단일성)이란 어떤 물질적 속성도 지녀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것은 나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이제 실체들 혹은 사물의 가장 기초적인 요소들이란 당연히 어떤 비물질적인 세계에서 구해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라이프니츠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단자들, 곧 단순한 실체들은 힘 또는 가장 미소한 힘의 중심체여야 한다.
라이프니츠는 이 같은 ‘대전제’를 통해 데카르트의 “운동법칙”을 최종적으로 완성했다고 믿었다. 힘 없이는 운동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운동이란 소멸될 수 있고 물체는 정지될 수 있다. 라이프니츠의 가정에 따르면, 이 경우 사라진 것은 운동이지 힘이 아니다. 힘은 현실적인 힘으로서는 아니지만, 가능적인 힘으로서 여전히 물체 안에 남아 있다. 따라서 이제 이런 식으로 바꿔 말해져야 한다. 언제나 동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운동의 총량이 아니라 힘의 총량이라고. 이는 대체로 올바른 입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물리학에서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증명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에너지는 소멸되는 게 아니다.
사물의 담지자들 혹은 사물의 기초적인 요소들은 무수한 힘의 중심점들로 이뤄져 있다는 점을 확정한 다음, 라이프니츠는 이번엔 신학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그는 실체에 영혼을 장식裝飾하여 주장하기를, 모든 단자들은 각기 뒤바뀔 수 없는 고유한 개별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단자들은 “창이 없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단자들이란 어떤 다른 실체에 의해서도 결코 영향 받지 않는다는 법칙을 실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이런 관점을 취하게 된 것은 데카르트와 유사하게, 신이 사물이나 인간에게 일어날 일을 영원부터 미리 정해 놓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를 철학적으로 옮겨 말하면 대략 다음과 같은 주장이 된다. “꽃이 핀다”는 명제에서 술어 ‘핀다’는 단순히 주어(꽃) 안에 포함돼 있는 것만이 아니다. 나아가 ‘꽃’이란 개념으로부터는 꽃에게서 일어날 모든 것이 이끌어져 나올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꽃’이란 개념은 신이 꽃에 대해 생각해놓은 운명 전체에 대한 표식과도 같은 것이다. 이에 비하면 인간이 꽃의 운명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은 단지 하나의 작은 부분, 이를테면 꽃의 속성들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전지적 존재인 신은 자세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인간의 숙명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라는 개념에는 나에게서 일어날 모든 것, 예컨대 언제 내가 죽으며, 천국에 갈 것인지 아니면 지옥에 갈 것인지 또 내가 다음 수요일에 누구와 악수를 하게 될 것인지 이미 포함돼 있다. 신은 모든 것들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또한 그것들을 영원부터 이미 결정해놓았다. 곧 나의 운명, 또한 모든 인간과 짐승 그리고 모든 사물들의 운명은 예정돼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이나 혹은 또 다른 어느 누구도 이를 바꿀 수 없다.
이 같은 설명들을 배경으로 할 때, 단자들은 “창이 없다”란 라이프니츠의 주장은 수긍할 만한 주장인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들-인간, 사물 나아가 신까지도-은 단자들, 즉 가장 미소한 힘의 중심점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단자들은 서로 침범함이 없이, 이제는 전능한 자인 신 자신조차도 바꿀 수 없는(그렇지 않을 경우 전능한 자는 자체 모순일 것이다) 어떤 신적 계획을 실현하고 있다.
이 섭리는 또한 단자들이 서로 뒤엉키지 않고 조화로운 전체를 이루도록 마련해 놓았다. 다시 말해 신은, 마치 시계 비유에서처럼, 모든 사물들과 사건들이 무한한 정확성을 가지고서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태초부터 미리 정해놓은 것이다. 때문에 우주는 사전에 확정된 “예정된 조화”(라이프니츠)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다음과 같은 의문이 남는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신은 세계를 창조했는가? 우리의 철학자는 신의 선성善性을 환기시키는 것으로써 이에 답한다.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는 세계를 창조해야만 하는데, 라이프니츠가 보기에 그 이유는 세계가 실재하지 않는 것보다 실재하는 것이 신의 선함에 더 잘 부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논증은 다시금 하나의 난처한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라이프니츠 자신이 제기하듯, 어떻게 해서 현재 존재하고 있는 것, 곧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발견하는 것만이 실재하는가? 이를 테면 여기 실재하는 인간은 실재하지 않을 수 있고, 그 대신 실재하지 않는 인간이 여기 눈앞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충분히 생각해 봄직한 일이다.
달리 말해 가능성에서 보자면 똑같이 실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한 인간은 실재하는 데 비해 다른 한 인간은 실재하지 않는가?
라이프니츠는 이에 대해 이렇게 대답한다. 가능한 모든 것은 실재하고자 욕구한다. 이때 가능성들 사이에 일종의 서로를 배제하는 투쟁이 일어나고, 결국에 이들 가운데 다른 가능성들과 가장 잘 어울릴 수 있는 것들만이 실재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다시 말해 A란 가능성은 단지 자신에게만 혹은 단지 B란 가능성에게만 어울리는데 반해서 X란 가능성은 D, E, F, G, H 등의 가능성에 어울린다면, X란 가능성은 A란 가능성을 상대로 자신을 관철시키고 “현실성” 즉 실재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이 결과 실재하는 사물들은 다른 대부분의 사물들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 다른 것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사물들이 실재할 경우, 우주의 전 체계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고 붕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 논증은 라이프니츠가 어떤 이유로 우리가 가능한 모든 세계 가운데 가장 나은 세계에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지 설명해주기도 하다.
철학자는 이 같은 사상을 궁전의 정원에 앉아 단지 영주 부인과 그 딸에게만 들려준 것은 아니다. 그는 또한 폭넓은 여행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에게도 이를 소개한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공작은 벨펜 가문의 가계家系에 관한 새로운 자료를 조사토록 하는 한편, 난관에 봉착한 두 기독교 종파간의 대화를 새롭게 활성화시키도록 할 목적으로 라이프니츠를 여러 차례 여행을 보냈다.
라이프니츠의 여행은 빈과 로마에까지 이어진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벨펜 가문의 뿌리를 찾아내 에른스트 왕가와 한 핏줄임을 밝히며, 종파간의 대화에 개입하여서는 논의를 중재하고 추기경들을 방문한다. 그가 만난 추기경들 중 일부는 이때 그에게서 중재자보다는 개종자란 인상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어쨌든 라이프니츠는 추기경들이 탄복하며 그에게 ‘왜 루터교도냐?’고 반문할 만큼 가톨릭 교리에 대해 개방적이었다. 추기경들은 그에게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고 바티칸 도서관의 운영을 맡아줄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라이프니츠는 그 같은 제의에 응할 결심을 하지 못한다. 그에겐 그 사이에 이미 자기의 전력을 기울여야 할 새로운 계획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유럽 각지에 일련의 학술원들을 창설하고 싶어 한다. 그는 이를 위해 빈의 황제와 베를린의 왕에게 청원하지만, 단지 베를린에서만 왕후가 된, 영주의 딸 소피 샤를로테의 도움으로 그 계획은 실현을 본다. 베를린에 학술원이 세워지고 라이프니츠는 초대 회장이 되었다.
왕후의 호의에 대한 답례로 사상가는 자기의 유일한 저서인 『변신론辯神論』(신의 정당화)을, 1700년 하노버 영주 궁정에서 그에게 왜 신은 이 세상에 이토록 많은 고통과 비참함들을 허용했는가 하고 물었던 그녀에게 헌정하였다.
라이프니츠는 그 당시 그녀에게 인간의 불화란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형언할 수 없는 조화에 비하면 아예 없다시피 한 것이라고 답한 바 있다. 물론 앞의 물음을 해소할 충분한 답변은 못된다. 그러나 9년 후 그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철저하게 숙고하였다. 한편 책 속에 실린 그의 대답엔 훗날 헤겔과 마르크스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사유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따르면, 부정적否定的인 것은 세상을 존립시키는 불가결한 요소이다. 오직 무한자, 곧 전체(신)만이 어떤 속성도 결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모든 개별자들은 완전성이란 오직 전체에게만 귀속되기에 필연적으로 불완전한 것으로 남는다.
따라서 신은 인간을 창조함으로써 또한 불가피하게 불완전성을 창조할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신은 악을 감수해야만 한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그의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해, 다시 한 번 하노버의 시골 생활을 청산하려는 시도를 한다. 빈의 황실로부터 황제 자문관이 돼 달라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 제안에 응하지 못한다. 관절염으로 고통을 겪다 1716년에 죽음을 맞았다.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인류가 낳은 마지막 다재다능한 천재였다. 그가 품고 있는 의미를 평가하기란 오늘날에도 여전히 불가능하다. 그의 중요성은 그의 저작들이 한권, 한권 출간돼 나올 때마다 더욱 불어나고 있다. 따라서 금세기 중반의 사람들에 의해서나 그의 천재성에 대한 합당한 평가가 내려질 수 있을 것이다. 2050년이 돼서야 비로소 그의 전집의 마지막 권이 출간돼 나올 예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