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의 고향을 찾아서 7. 최호崔顥의 「황학루黃鶴樓」
【제목풀이】
이 시의 제목은 「황학루黃鶴樓」 이다. 황학루는 호북성湖北省 무한시武漢市 장강長江가의 황학산黃鶴山(사산蛇山이라 부르기도 한다)에 있는 누각이다. 강서성 남창의 등왕각滕王閣, 호남성 악양의 악양루岳陽樓와 함께 ‘강남 3대 누각’으로 이름난 곳이다. 원래는 233년 삼국 시대에 오나라 왕 손권이 촉나라 유비와의 전쟁을 대비해서 세운 망루였다.
최호崔顥(704-754)는 변주汴州, 즉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개봉시開封市 사람이다. 개원開元 11년(723)에 진사에 급제하여 태복시승太僕寺丞과 사훈원외랑司勛員外郞을 역임하였다. 『당재자전唐才子傳』에 따르면, 최호가 무창을 유람하다가 황학루에 올라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옛 사람 이미 황학 타고 가버렸으니,
이 땅엔 헛되이 황학루만 남았구나.
한번 간 황학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흰 구름만 천년 세월 부질없이 떠다니네.
강에 비 개니 한양의 나무 또렷하고,
앵무섬에 향기로운 봄풀 우거졌네.
해 지는데 고향은 어디메뇨?
강가에 핀 물안개 사람을 시름겹게 하네.
석인이승황학거昔人已乘黃鶴去
차지공여황학루此地空餘黃鶴樓
황학일거불부반黃鶴一去不復返
백운천재공유유白雲千載空悠悠
청천역력한양수晴川歷歷漢陽樹
방초처처앵무주芳草萋萋鸚鵡洲
일모향관하처시日暮鄕關何處是
연파강상사인수煙波江上使人愁
이 시는 황학루의 유래를 밝히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선인仙人이 황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신선이 황학을 타고 떠나간 빈자리에 황학루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천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한 번 떠나간 황학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그저 흰 구름만 유유히 떠간다. 신선을 다시 만날 수 없으니, 시인의 마음은 허탈하기 그지없다.
시인은 누각에서 앵무섬의 방초와 한양성의 나무를 바라보았다. 가까이 있는 앵무섬의 방초는 우거져 있고, 멀리 있는 한양성의 나무는 또렷하게 보인다. 해질 무렵, 석양이 비추니 황학루의 풍경이 장관을 이룬다. 노을빛이 시인을 향수에 빠지게 만든다. 모든 것이 제 집을 찾아 돌아가는 때, 시인도 불현 듯 고향이 그리워진다. 어느덧 날도 저물었건만, 나그네는 돌아갈 집이 없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강가를 바라보고 있자니, 고향을 떠나 객지를 떠도는 나그네의 시름이 더욱더 깊어진다.
원나라의 신문방辛文房이 지은 『당재자전唐才子傳』에는 이 시에 얽힌 비화를 소개하고 있다. 시인 이백이 황학루에 올라가서 시를 지으려고 하다가 최호가 쓴 시를 보고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으나, 최호가 쓴 시가 머리 위에 있구나.”(眼前有景道不得, 崔顥題詩在上頭.)라고 말하곤 시를 짓지 못하고 황학루를 떠났다고 한다.
당신 집은 어디에 있나요?
저는 횡당에 살아요.
배를 멈추고 잠시 물어볼게요,
혹시 같은 고향인지요.
군가하처재君家何處住?
첩주재횡당妾住在橫塘.
정선잠차문停船暫借問,
혹공시동향或恐是同鄕.
집은 구강에 있고요,
구강가를 오가지요.
똑같이 장간 사람이지만,
어려서부터 알지 못했네요.
가림구강수家臨九江水,
래거구강측來去九江側.
동시장간인同是長干人,
자소불상식自小不相識.
하저엔 풍랑이 드세어,
연꽃 따는 배가 점차 적어져요.
어찌 서로 돕지 않을 수 있나요?
홀로 조수를 거슬러 돌아가는데.
하저다풍랑下渚多風浪,
연주점각희蓮舟漸覺稀.
나능불상대那能不相待,
독자역조귀獨自逆潮歸.
삼강은 조수가 급하고,
오호는 풍랑이 솟구치죠.
예로부터 꽃의 성질은 가벼우니,
연꽃 따는 배가 무거운 걸 두려워 마세요.
삼강조수급三江潮水急,
오호풍랑용五湖風浪湧.
유래화성경由來花性輕,
막외연주중莫畏蓮舟重.
이 시는 「장간곡사수長干曲四首」이다. 이 연작시는 한대의 악부시樂府詩를 본받아 지은 시로 남녀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1, 3수는 연꽃을 따는 처녀의 말이고, 2, 4수는 청년의 말이다. 처녀는 풍랑이 심한 곳에 연꽃을 따러 가기 위해서 함께 배를 타고 나갈 동반자를 구하고 있다. 배에 타고 있던 처녀가 잠시 배를 멈추고 말을 건넨다. 혹여 같은 고향 사람이 아닌가를 핑계로 말이다. 청년은 현재 구강에 살고 있고, 구강가를 수시로 오간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리고는 자신도 본래 고향이 장간리라고 말한다. 다만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말한다.
처녀는 하저에는 풍랑이 드세어 연꽃 따는 배가 점차 적어진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속셈을 드러낸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조수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함께 동반할 사람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년은 여자를 꽃에 비유하여 자신의 생각을 완곡하게 표현한다. 예로부터 여자의 심성은 가벼워서 변덕이 심하지만, 자신의 심성은 연꽃 따는 배처럼 무거워서 언제나 확고하다는 것이다.
높고 험한 태화산 함양을 굽어보고,
하늘 밖 세 봉우리 깎아서 만들 수 없다오.
무제의 사당 앞 구름 흩어지려 하고,
선인장 봉우리 비가 막 개네.
강과 산은 북쪽으로 험한 진관에 접해있고,
역말길 서쪽으로 한치와 이어졌네.
묻노니 길 오가며 명리 좇는 길손이여,
이곳에서 장생술을 배우는 것만 못하리.
초요태화부함경岧嶢太華俯咸京,
천외삼봉초불성天外三峰削不成.
무제사전운욕산武帝祠前雲欲散,
선인장상우초청仙人掌上雨初晴.
하산북침진관험河山北枕秦關險,
역로서연한치평驛路西連漢畤平.
차문로방명리객借問路傍名利客,
무여차처학장생無如此處學長生.
이 시의 제목은 「행경화음行經華陰」이다. 화산 북쪽을 지나며 지은 시다. 우뚝 솟은 태화산은 함양을 내려 보고 있다. 함양은 당나라 수도 장안을 뜻한다. 당나라에서 야망을 지닌 젊은이들이 과거시험을 치르고 급제하여 출세하기를 바라던 꿈의 도시였다. 태화산이 함양을 굽어보고 있다는 것은 시인이 세속의 부귀영화를 덧없이 본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시인은 세상 사람들에게 부질없는 명리를 탐하기보다는 도교의 신선술을 배워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영원한 삶을 추구하기를 권유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권유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