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안보전략 변화

방패와 창 모두 갖춘 보통국가 일본의 등장…

우리의 준비는?

(본 칼럼은 필자가 2022년 12월 28일자 한겨례신문 기고한 칼럼을 가필 보완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22년 12월 16일 내각회의에서 ‘적 기지 반격능력’ 보유와 국방예산 GDP 2% 증액과 자위대 재편을 포함한 3대 안보문서를 개정했다. 이는 77년 만에 소위 전쟁 가능한 창과 방패를 모두 갖춘 보통국가로의 사실상 선포다. 이에 미 백악관은 곧바로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일본 정부의 담대한 역사적 조치”라고 화답했다.

일본의 방위정책 손질은 중국의 급격한 군비 확장과 북한의 미사일 위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안보 불안감의 임계점이 이미 넘어섰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이번 일본의 3대 안보문서 개정은 여러 측면에서 그 함의를 담고 있다.

첫째, 전수방위원칙의 포기로 전력 불보유, 교전권 부인, 전쟁포기 등이 명시된 평화헌법 9조의 유명무실화다.

전수방위(專守防衛)는 1947년 5월 3일에 제정된 평화헌법 제9조에 기초하여 상대방으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 비로소 방위력을 행사하고, 그 방위력 행사 형태도 자위를 위한 필요한 최소한도로 제한하며, 보유하는 방위력도 방위를 위한 필요 최소한으로 한정하는 등 헌법정신에 맞도록 수동적인 방위전략을 말한다. 또한 이 방위전략은 평화헌법 제9조를 준수하면서 자위권을 확보하는 절충안의 산물이기도 하다.

‘전수방위’라는 용어가 처음 제기된 것은 자위대 창설 이듬해인 1955년 7월 3일 스기하라 아라타(杉原荒太) 당시 방위청장이 일본 국내에서 자위대가 “육-해-공군 등의 전쟁수행 능력(戰力) 보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평화헌법 조항과 위배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자, 스기하라 방위청장이 이에 대해 “외국을 공격, 침략하지 않고, 오직 방위에만 전념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무력만을 가질 것”이라는 국회 해명 연설에서 비롯되었다. 국회에서 최초 언급 후 1960년대에 사토 에시사쿠(佐藤榮作)정부가 전수방위를 일본 방위전략의 기본 방침으로 채택하자, 1970년 방위청이 최초 발간한 방위백서에 전수방위 용어가 처음으로 명시되었다. 1972년에는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수상도 전수방위를 “방위상 필요시에도 상대 기지를 공격하지 않고, 오직 일본 국토 및 그 주변에 있어서 방위만을 하는 것으로, 이것은 일본 방위의 기본적인 방침임”을 재천명 했다. 2015년 9월 안보법제로 규정한 집단적 자위권과 함께 전수방위의 역사는 일본이 향방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유엔 헌장 제51조는 개별자위권과 집단자위권을 주권국가의 고유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개별자위권은 외국의 직접적인 공격을 받았을 때 무력을 사용할 권리이고, 집단자위권은 ‘밀접한 관계에 있는 국가가 공격받는 경우 자국이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해 무력을 사용할 권리를 말한다.

평화헌법 9조에 근거해 일본은 개별 자위권은 가지고 있되, 집단자위권은 없다는 해석이 34년간 이어졌다. 그러나 1981년 5월 스즈키 젠코(鈴木善幸) 내각이 주권국인 일본도 집단자위권을 ’보유하되, 행사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하지만, 개헌을 통해 집단자위권의 법적 근거를 만들려다가 반발에 부딪힌 고(故) 아베 신조 총리가 2014년 7월 내각회의 결정문을 통해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에 무력 공격이 발생해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고, 국민에게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 최소한도의 실력행사는 헌법상 허용 된다”라고 선언했다. 대일본제국의 부활을 꿈꿔온 그가 자의적 헌법 해석을 통해 집단자위권 ’행사‘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이듬해인 2015년 4월 27일에는 미일 군사동맹의 지리적 범위를 ’일본 주변‘에서 ’전 세계‘로 확대하는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이 개정되고, 그해 9월에는 집단자위권 행사를 규정한 안보법제를 도입하면서 사실상 평화헌법 9조를 무력화됐다.

이번 안보관련 문서 개정에서 ‘반격 능력 확보‘는 실제론 적 기지에 대한 선제공격 능력까지 보유 하겠다“라는 점에서, 자위권의 행사는 ’수동적‘이고 그 범위도 ’최소화‘하도록 정한 전수방위 원칙은 용도 폐기되었음을 의미했다.

둘째, 일본 발 안보딜레마가 동북아 역내 군비경쟁의 티핑포인트(급변점)가 될 수 있다.

일본은 향후 5년(2022년~2027년) 간 국방비로 GDP 2%인 43조엔(410조원)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당장 내년 2023년 국방예산을 올해(5조4천5억엔) 대비 26%나 증가된 6조 8천억엔(65조 7천억원)을 책정했다. 이는 일본의 국방비 지출이 미·중에 이어 세계 3위다.

일본의 구체적인 무기체계 도입 계획은 무기 반격 능력 핵심인 ‘12식 지대함 유도탄’을 현재 사거리 200km를 1000km까지 연장하여 지상은 물론이고 전투기 함정 잠수함에서도 쏠 수 있도록 개량화하고 지상 발사형은 2026년부터 오키나와 인근에 배치할 예정이다.

또한 도서(島嶼) 방위용인 고속 활공탄은 사거리 2000km 이상으로 2030년 이후 실전 장비화할 예정으로 혼슈에 배치될 계획으로 현재로서는 후지산 인근 육상자위대 주둔지 배치를 검토하고 있다. 음속의 5배 이상 속도로 날아가는 극초음속 미사일은 사거리 3000km를 목표로 개발하여 홋카이도에 배치할 계획이다. 스탠드오프(원거리 타격)가 가능한 토마호크순항미사일 500기 도입한다. 이 미사일들은 모두 중국 본토와 영유권을 주장하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등을 사거리 안에 두고 있다.

이처럼 일본 정부의 일련의 방위력 강화 움직임에 대해 동북아 주변국인 중국과 북한은 민감하게 반응하여 더욱 군사력 증강에 나설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딜레마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셋째, 한반도 유사시 거리낌 없는 일본 자위대 전력 투사다.

우리 대한민국의 영토는 38선 이북지역을 포함하여 헌법 제4조에 의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라고 명문화되어 있다. 즉 북한지역은 아직 우리 대한민국의 미수복 지역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우리 헌법 4조와는 전혀 다른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유엔은 1948년 유엔총회 결의 제195조 제3항에 의거, “유엔 임시 한국위원단의 감시 및 협의 가능했던 38선 이남 지역에 대해 유효한 통치와 관할권을 갖는 합법정부가 수립되었다.”라고 선언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음과 동시에 북한 지역은 유엔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는 북한 지역을 우리 대한민국으로 인정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한 사례를 한국전쟁 시에 미국의 입장에서 확인 할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9월 26일 미 국무장관 애치슨은 미 국방장관 서리에게 보낸 전문에서 “38선 이북에 대한 대한민국의 주권은 일반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과 그 군대는 유엔군의 일원으로 38선 이북 지역에서 군사작전과 군사점령에 참여할 수 있으나, 대한민국 주권의 북한지역에 대한 확장 같은 정치적 문제는 한반도의 통일을 완성하기 위한 유엔의 조처를 기다려야 한다.”

이런 미국의 주장에 따라 1950년 10월 7일 유엔총회는 38도선 이북 지역에 대한 남한정부의 관할권을 인정하지 않고 전 한반도에서 유엔의 감시 아래 선거를 실시해 통일 한국정부를 수립하기로 결의 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북한 점령정책 기조는 38선 이북에 대한 대한민국의 주권을 부인하고 ‘유엔의 이름으로 북한을 점령하고 통치한다’는 것이다.

또한 1950년 10월 한국전쟁 시 유엔군과 한국군에 의해 평양이 수복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으로 평양 방문을 추진하려다, 유엔군에 의해 좌절되고 개인자격으로 방문했음을 1950년 11월 3일 국회속기록에서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때부터 한국정부가 한반도에 있어 유일한 합법정부(제3조)라는 대목의 해석을 놓고 한국정부와 입장 차이를 보였으며,

2015년 10월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자위대가 북한지역에 진입할 경우 사전 동의가 필요하다는 당시 한민구 국방장관의 요구에 대해 일본의 나카타니 방위대신은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이처럼 미국과 일본은 북한 지역을 대한민국 영토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으며, 특히 1991년 9월 17일 남북한 동시 유엔가입은 남북한이 두 개의 독립된 국가임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계기였다. 그리하여 “38도선 이북지역은 국내법으로 우리의 영토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국만의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한 것이다. 북한은 주권을 가진 독립된 국가로 유엔 회원국이다. 미·일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북한 땅을 한국 영토로 결코 인정한 적이 없다. 특히 일본은 ‘한국의 시정권(입법-사법-행정 등 삼권의 행사 권한)을 38선 이남으로만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 정부가 유사시 북한 땅을 선제공격할 때 “한국의 허가와 동의가 필요 없다”고 강조한 이유가 바로 이러한 행태에서 기초하고 있음을 우리는 바로 직시해야한다.

넷째, 미국의 동아시아 냉전적 패권전략에 기초한 샌프란시스코체제 강화다.

대일평화조약과 미일안보조약, 미일행정협정으로 구성된 샌프란시스코체제는 2차 대전 뒤 미소 간 대립과 중국대륙 공산화, 한국전쟁 발발 등의 형세와 이에 대응한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전략이 반영된, 소위 미국에 의한, 미국만을 위해 냉전구도로 일방적으로 조성된 동아시아 안보체제다. 이로 인해 미국은 일본을 군사동맹 파트너로 삼아 동아시아 최전선 기지국가로 만들어 미국의 패권전략 이익에 철저히 봉사케 했다. 일본은 이번 개정으로 향후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역외균형전략의 핵심국가로 더욱 그 위치가 공고해질 것이다.

이상의 함의는 한반도, 나아가 동아시아 안보구도 전반에 큰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한국정부는 일본의 방위정책 변화를 미일동맹과 연계해 입체적이고 심도 있는 분석과 대응전략 수립에 나서야 한다. 일본과 과거사 문제에 집착해 현실을 오판하고 해를 가리는 먹구름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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