쳔년의 약속 2

제2장 출가

(1)

 

“이럇. 이랴 아―.”

왼손으로 갈기를 움켜쥔 채 오른손으로 채찍을 휘두르며 말을 모는 목소리가 청아하다. 달리는 동물은 말이라기보다는 당나귀에 가까울 정도로 작은 체구이다. 그러나 안장에 앉아있는 주인과 비교하면 그런대로 격이 맞았다. 온통 검은 털의 흑마이다. 작은 체구에도 흑마는 용맹스럽게 생겼다.

다각다각―.

흑마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짧은 다리로 아무리 달린다고 해도 속도는 나지 않았다. 그래도 말 주인은 신이 났다.

늦가을 바람이 상쾌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른 하늘이다.

해는 중천에서 한참 기울었다.

“표야. 천천히 달려라. 조심해야지.”

훌쩍 큰 백마를 타고 달리는 아버지는 열한 살 아직 어린아이인 아들 진표가 말을 모는 것이 퍽 대견스럽지만 또한 걱정스러운 듯 눈을 떼지 못한다. 백마는 흑마에 비해 속력을 내어 달리지 않았으나 거의 같은 속도를 유지하였다. 백마가 한 걸음을 뛴다면 흑마는 서너 걸음을 뛰어야 속도가 맞을 정도였다. 뚜벅뚜벅 관절 부분을 꺾어 가면서 절도 있게 걸어가는 백마는 보기만 해도 눈이 부시다.

“괜찮아요. 아버지.”

진표는 갈기 잡은 손을 놓고 안장에 반듯하게 앉아서 고삐 줄을 빙글빙글 돌렸다.

“허어. 인석아. 조심해야지. 딴짓하다가 또.”

아버지는 더 이상 말을 짓지 못한다. 진표가 처음 말을 탔을 때 낙마했을 때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진표도 이미 눈치를 챈 모양이다.

“아버지는. 그때는 어렸을 때잖아요.”

“그럼. 지금은 컸느냐?”

“그럼요. 내가, 열한 살이라구요. 근데, 아버지. 저기 저 산이 엄뫼지요?”

“엄뫼지. 큰뫼라고도 하고.”

“큰뫼라고요!” 진표는 눈을 송아지 눈처럼 부릅떴다. 새로운 사실을 알았을 때의 기쁨의 표현이다.

모악산은 엄뫼라고도 불리고 큰뫼라고도 불렸다. 전하는 얘기로는 한자어로 쓸 때 엄뫼는 모악으로 바뀌었고, 큰뫼를 ‘큼’을 음역하여 ‘금金’로 하고 ‘뫼’는 의역하여 ‘산’으로 하여 금산金山이라 바뀌었다고 하였다. 엄뫼와 모악은 어머니 산이란 뜻이다. 산의 정상에 어머니가 어리니 아이를 안고 있는 형상으로 보이는 바위가 있어서 어머니 산이라는 뜻이 생겼다고 하였다.

“전에 어머니랑 금산사에도 갔었는데, 좀 작고 초라했어요. 너무 작아요.” 진표는 어린 시절 금산사에 갔던 일이 떠올랐다.

“인석아. 부처님 도량이 크고 작고가 문제인 게냐.”

“그래도요. 금산사가 그대로 이름난 절인데, 아쉬워요.”

“허어. 그럼 이 다음에 네가 커서 불사 시주를 많이 하려무나. 큰 절로 불사를 해달라고 해.”

“그럴까요. 참, 금산사 스님께서도 잘 계시겠지요?”

“누구, 숭제崇濟 스님 말이냐?”

“예. 전에 어머니가 불공드리러 갔을 때 가서 뵜어요. 그때 뵈니까, 꼭 아버지 같으시던 걸요.”

“뭐야. 스님이 나 같았다고? 흠. 좋은 일이지. 그럼 좋고말고. 숭제스님이, 공부를 아주 많이 하신 분이니라. 자주 가서 뵙도록 해.”

“아버진. 나 혼자 절에를 어떻게 가요. 난 열한 살이라고요.”

“왜, 아니냐. 열한 살이면 다 컸다고 하지 않았느냐.”

“참. 그땐 그때고요. 그러지 말고 오늘 금산사에 가면 되겠네요.”

“안된다.”

“왜요? 아버지.”

“우린 지금 사냥 중이잖느냐. 부처님은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고 하셨느니.”

“알았어요. 아버지.”

진표는 이미 아버지의 얘기를 뒤로 하고 쏜살같이 말을 몰았다. 뒤에서 말고삐를 당기며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번졌다. 아직 어리지만, 속내는 꽉 찼다는 든든함이 가슴에 차 올랐다.

“내마奈麻(乃末, 奈末, 柰麻) 나으리. 좀 천천히 가야써것는 디요. 소인들은 도저히 못따라가겄구만이라 잉.”

뒤따르는 세 명의 사내들이 헉헉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중늙은이 한 명과 젊은 사내 그리고 진표 또래의 아이였다. 각자 등에 화살통 하나씩을 메고 있는 그들의 손에는 활과 화살이 들려 있는 몰이꾼들이었다.

내마는 신라의 11등급 관직명이다. 진내마는 진표의 아버지를 이름 대신 벼슬로 지칭하는 것이었다. 진내마 부자의 뒤를 따르는 몰이꾼들은 노비였다.

“알았느니.” 인근에서 인품이 좋기로 소문난 진내마였다. “표야. 게 섰거라. 다른 사람도 생각해야지.”

“아버지. 저기, 사슴이에요. 저놈을 잡아야 돼요.”

진표는 대답 대신 사슴을 쫓았다. 제법 큰 사슴이다. 진내마도 욕심이 동했는가 보았다. 부자는 약속이나 한 듯 사슴을 쫓았다. 그러나 사슴은 이내 울창한 숲속으로 사라졌다.

“표야. 그만 됐다. 쉬어 가.”

아버지가 아쉬움을 감추고 말했다.

“예, 아버지. 그러잖아도, 쉬었다 갈 참이에요.”

진표가 말에서 훌쩍 뛰어내린 곳은 숲으로 둘러싸인 개울가였다. 잠시 후 몰이꾼들이 헐떡거리며 도착했다.

 

(2)

 

개굴. 개굴―.

진표가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은 것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식을 즈음이었다. 처음에는 한 마리가 진표의 반응이라도 떠보겠다는 듯 개굴, 하고 울었고 뒤이어 저쪽에서 응답하는 듯 개굴, 하고 울었다. 잇따라 여기저기서 개구리가 개굴개굴, 울어댔다. 재미있다는 듯 물속을 바라만 보고 있던 진표는 입가에 씩 웃음을 지었다.

“잡을 거야.”

그는 혼잣말처럼 말하고 물속으로 슬금슬금 들어갔다. 금방 개구리 한 마리를 잡았다. 그는 자랑스럽다는 듯 히죽거리며 일행을 보았다.

“팔용 아저씨. 이거 구워 먹으면 맛있겠어요.”

그는 중늙은이 노비 팔용을 보고 말했다.

“….”

키가 작고 입술이 개구리처럼 두툼한 팔용은 진내마의 표정을 흘끔 살펴보았다. 며칠 전 노비들끼리 들에 나가서 일하다가 개구리를 잡아 구워 먹었을 때, 진표가 나타나 같이 먹었던 일이 있었다.

“판돌아, 뭐해? 개구리를 잡아야지.”

팔용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진표는 노비 중에 가장 나이 어린 판돌에게 고함을 질렀다. 기다렸다는 듯 판돌이 물속으로 들어왔고, 뒤이어 중간 노비인 춘삼이도 합세하였다. 개구리는 지천이었다. 셋이서 잡았으므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개구리는 금방 마릿수가 늘어났다.

“팔용 아저씨. 이거 가져가요. 집에 가서 구워 먹게.”

“알았구먼요, 도련님.”

팔용은 진내마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므로 뒤탈에 대한 우려를 던져버리고 곧장 개울가로 가서 가늘고 긴 버드나무 가지를 툭툭 꺾어왔다. 그는 이로 물어뜯어 버드나무 껍질을 벗겨 꿰미를 만들었다. 개구리는 다섯 꿰미나 되었다. 줄잡아서 5, 60마리는 될 터였다. 개구리 꿔 미를 받아서 든 진표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흔들어 보였다. 제법 묵직하다.

“저기, 사슴이구만이라 잉.”

춘삼이가 소리쳤다.

“맞네. 내마 나리. 사슴이구만요.”

팔용이 진내마를 보고 굽신거렸다.

“잡아라.”

진내마가 외쳤다. 일행은 후다닥 물속에서 뛰어나와 사슴을 쫓았다. 뒤에서 일행을 바라보던 진표는,

“이건 어쩌라고!”

혼잣말로 말하고, 개구리 꿰미를 물속에 담갔다. 구운 개구리 뒷다리의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사냥이 끝나면 가져가야지.”

그는 혼잣말로 말하면서 개구리 꿰미를 물속에 담그고 끝을 돌로 눌러 둔 뒤에 일어섰다. 그리고 말 위에 올라 사슴을 쫓았다. 그러나 숲속에서 말을 타고 사슴을 쫓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슴은 마치 진내마 일행을 놀려 주기라도 하는 듯 거리가 좀 멀어졌다 싶으면 멈췄다가, 사냥꾼들이 가까이 다가오면 훌쩍훌쩍 숲속으로 줄행랑을 쳤다.

해는 이미 서산에 기울고 이내 어스름이 밀려왔다. 진내마 일행은 그날 사냥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슴을 쫓으면서 왔던 길이 아니라 산 북쪽으로 해서 집으로 돌아왔으므로 진표는 개울 물속에 담가둔 개구리 꿰미를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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