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소도 문화 1

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

 『태백일사』는 일십당一十堂 이맥(李陌, 1455~1528)이 1520년 66세의 나이에 찬술纂述한 역사경전이다. 그가 『태백일사』를 찬술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왕조의 10대 임금인 연산군 14년(1503)에 정사의 기록을 맡아 관리하는 춘추관의 편수관編修官을 겸임하면서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였다. 그는 또 1504년 충북 괴산으로 유배되었는데 그 때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비장祕藏의 역사서를 탐독하게 되었으며 이후 11대 임금인 중종 14년(1519년)에 찬수관撰修官이 되면서 왕실 서고의 귀중한 사료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이맥이 찬술한 『태백일사』는 그 후손인 해학海鶴 이기(李沂, 1848~1909)에게 가보로 전해졌다. 이기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태백일사』를 운초雲樵 계연수(桂延壽, 1864~1920)에게 전해주었는데, 계연수는 『태백일사』를 받아 보자마자 무한한 찬사를 보내면서 ‘손발이 절로 춤추며 흥겨워 외치고 싶어 미칠 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태백일사』에 온전하게 실려 있는 두 경전, 즉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는 ‘낭가郞家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유가儒家의 『대학大學』 ㆍ 『중용中庸』에 비견되는 중차대한 사료史料였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계연수는 한민족의 역사경전인 『환단고기』를 편술하게 되는 분수령을 맞이하게 된다.

왜 『태백일사』인가? 그것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크게 빛나지만[太白] 숨어있는 뛰어난 역사[逸史]’란 뜻이다. 여기에는 오늘날의 역사 교과서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우리 민족의 빛나는 역사사상의 유산이 잘 기록되어 있다. 『태백일사』가 편술될 당시의 조선왕조는 모화사상慕華思想에 찌든 유학儒學의 사풍이 지배적이었지만, 이맥은 동북아 9천년 한민족의 국통國統과 보배로운 환단桓檀의 숭고한 사상을 『태백일사』라는 이름으로 찬술했던 것이다. 이에 운초 계연수는 이맥의 『태백일사』를 중심으로 환단의 옛 기록을 함의하는 『환단고기』를 편찬했고, 이로부터 『태백일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어 한민족의 역사종통이 그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태백일사』는 총 8권으로 편집되어 있다. 제1권은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이고, 제2권은 「환국본기桓國本紀」, 제3권은 「신시본기神市本紀」, 제4권은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 제5권은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 제6권은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 제7권은 「대진국본기大震國本紀」, 제8권은 「고려국본기高麗國本紀」이다. 앞서 『대학』과 『중용』에 버금가는 경전이라고 말한 까닭은 대표적으로 우주만유에 대한 진리의 본원경本源經인 「천부경」과 온전한 생명으로 거듭나기 위해 대광명의 심법을 여는 수행경전인 「삼일신고」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제5권의 「소도경전본훈」은 한민족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이라 불린다. 여기에는 배달국 시대 초기에 선인仙人 발귀리發貴理가 제천행사에 참석하고, 의식儀式이 끝난 후 삼신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는 「원방각경圓方角經」이 소개되어 있고, 다음으로 환국桓國 시대부터 구전되어오다가 배달국 시대에 문자화된 경전, 즉 우주만물의 근원과 창조변화의 법칙을 1에서 10까지의 상수로 드러낸 「천부경」이 실려 있다. 그리고 「삼황내문경三皇內文經」, 「삼일신고」, 「신지비사神誌祕詞」, 「참전계경參佺戒經」 등이 실려 있다.

‘왜’ 「소도경전본훈」인가? 그것은 글자 그대로 말하면 ‘소도蘇塗에서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경전’이기 때문이다. ‘소도’는 바로 수려한 명산에 자리 잡은 거룩하고 성스러운 신성神聖한 곳이다. 상고시대에 한민족은 ‘소도’에서 하느님을 경배하고 직계자손임을 알리는 의식, 즉 ‘삼신일체 하느님’에 대한 제천祭天을 직접 행사하였고, 여기에 설치된 경당扃堂에서는 삼신일체三神一體 원리를 바탕으로 하는 기본적인 소의경전이 강론되었다. 그래서 ‘소도’는 삼신을 수호하는 종교의식의 중심센터이면서 심신수련의 장場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단군시대 이후에 ‘소도’는 국가를 경영하는 많은 젊은 인재들을 양성養成하여 배출하는 중요한 거점으로 기능한다.

 

소도蘇塗 문화의 의미

 그럼 ‘소도蘇塗’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소도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소생하다, 쉬다’를 의미하는 ‘소蘇’와 ‘진흙, 덧칠, 길’이라는 뜻의 ‘도塗’이다. 그래서 소도는 ‘참 진리를 깨우쳐서 오욕으로 덧칠해진 몸과 마음이 새롭게 소생될 수 있도록 하는[修行] 신성한 장소’를 함축한다. 왜냐하면 소도는 ‘삼신일체 하느님’에 대한 경배의식과 그 종교적인 진리를 깨우치는 곳이기도 하지만,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삼신일체의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본연의 생명을 회복하도록 단련하는 청정淸淨한 곳이기 때문이다.

소도는 어떻게 출범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배달국의 환웅천황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에 의거하면, “옛적에 환웅천황께서 천하가 광대하여 한 사람이 능이 다스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 왕명, 형벌, 질병, 선악을 주관하고, 인간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했다. 책력을 지어 365일 5시간 8분 46초를 1년으로 삼았다. 이것이 삼신일체상제님이 남겨주신 법이다. 그러므로 환웅천황은 삼신의 도로 가르침을 세우고, 이에 품고 있는 뜻[念標文]을 지었다. 염표문에 이르길, 일신께서 참마음을 내려주셔서 성性은 빛남에 통해 밝고,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려 깨우치고, 삼신의 도를 널리 펼쳐 인간을 유익하게 한다. 이때부터 소도가 세워져 도처에서 볼 수 있고, 산상과 웅상은 산 정상에 모두 있게 되었다[昔者 桓雄天王 思天下之大 非一人 所能理化. 將風伯ㆍ雨師ㆍ雲師 而主穀ㆍ主命ㆍ主刑ㆍ主病ㆍ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作曆 以三百六十五日五時四十八分四十六秒 爲一年也 此乃三神一體上尊之遺法也. 故 以三神立敎 乃作布念之標. 其文曰 一神降衷 性通光明 在世理化 弘益人間. 自是 蘇塗之立 到處可見. 山像雄常 山頂皆有]”.

소도는 국가 최고 통치자인 천황의 명령에 의해 아주 신성한 곳[聖地]에 지정되었을 것이다. 국가에 대사가 있을 때 천황은 소도라는 특정한 장소에 왕림하여 삼신일체상제님께 제사를 지내는 일[祭天行事]를 주로 하였고, 거기에서 신교의 진리, 즉 삼신일체상제님의 가르침을 전하면서 「천부경」과 「삼일신고」 등 소의경전을 강론하였을 것이다. 한마디로 소도는 신교문화의 중심지로 삼신일체 상제님을 모시는 국가적인 신앙의 중심지이자 곧 심신수련의 신성한 장소였다.

역사상 명실상부한 최초의 소도는 ‘박달나무로 우거진 터[檀木之墟]’에 지정되었다. 이곳에서 초대 단군왕검檀君王儉은 삼신일체상제님께 천제를 올렸던 것이다. 이후 단군조선의 11세 도해단군道奚檀君은 전국의 12명산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을 골라 ‘국선소도國仙蘇塗’를 설치하고 주변에 단목을 많이 심었다. 13세 흘달단군屹達檀君도 나라 곳곳에 소도를 많이 설치했고, 24세 연나단군延那檀君은 소도를 더욱 증설增設하기도 했다.

소도는 천단天壇을 쌓고 삼신일체상제님께 제사지내는[祭天儀式]의 중심센터이지만, 그 외에도 소의경전이 강론됨으로써 젊은 인재를 양성하는 국가적인 교육기관의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단군시대에 ‘국자랑國子郞’ 혹은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는 이름의 젊은 남녀는 소도에서 독서와 활쏘기 등으로 심신을 단련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도는 교육기관으로서 문무文武를 겸비하는 인재 양성소이기도 하였다. 즉 소도에서의 독서는 문치文治를 위한 인재육성에 기여하게 되고, 활쏘기 등의 무도武道는 국방력 강화를 위한 상무인尙武人의 육성에 기여하였다.

소도는 이웃 나라간의 우호를 증진하는 선린善隣과 개화開化의 원동력을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삼신오제본기』에 의거하면, “소도에서 올리는 제천행사는 바로 구려를 교화하는 근원이 된다. 이로부터 책화 제도로 이웃나라와 선린하고, 있고 없는 물자를 서로 교환하여 문명을 이루어 다스려지니 개화되어 모두가 평등했다. 이에 온 나라에서 이 소도제천을 숭상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蘇塗祭天 乃句麗敎化之源也. 自是 責禍善隣 有無相資 文明成治 開化平等 四海之內 莫不崇飾祀典者也]”고 한다.

단군시대 중기에 접어들면서 소도는 각 고을에 있는 명산名山마다 설치됨으로써 그 문화가 민간에까지 확대되기에 이른다. 소도에 설치된 신단神壇 앞에는 큰 나무기둥이 세워져 있다. 그 나무기둥은, 사실 배달국을 개창한 초대환웅천황이 소도에 납시어 신성한 나무를 신단수神檀樹로 삼아 그 앞에서 천제를 올렸기 때문에, 원래 삼신을 모시는 기둥이었다. 여기에 배달국의 환웅천황을 상징하는 ‘웅상雄像’의 의미가 덧붙여진다. 이는 천자국天子國의 성역聖域으로서 그 위상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기 위한 일환이었을 것이다.

신단 앞에 세워진 나무기둥은 소도임을 알리는 삼신문화의 옛 풍습으로 오늘날 ‘솟대[立木]’문화로 남아 있다. 솟대는 조간鳥竿이라고도 불리는데, ‘솟대’ 끝에 새가 조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새는 곧 삼신일체상제님의 사자使者로 신교문화의 상징물인 삼족오三足烏를 지칭한다. 달리 말하면 솟대는 삼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서로 연결하는 통로이고, 솟대 끝에 앉아 있는 신조는 삼신일체상제님에게 인간의 기원을 전하는 전령사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솟대 혹은 조간은 곧 신조神鳥가 앉는 신간神竿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소도에 설치된 단목檀木, 신목神木, 나무기둥에서 기원하는 솟대는 동북아 한민족의 고유한 소도 문화로 정착되었고, 이 문화가 세계로 퍼져나간다. 따라서 오늘날 중국의 대륙과 일본, 몽고와 파키스탄, 인도와 티베트 등지에서 볼 수 있는 솟대 문화는 바로 한민족의 소도문화가 여러 가지 다양한 신앙형태로 변전되어 남아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EnglishFrenchGermanItalianJapaneseKoreanPortugueseRussianSpanishJavane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