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 그들의 깊은 사유와 ‘웃픈’ 삶 29 : 프리드리히 니체, 망치를 든 철학자(4)

4.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니체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이하 『차라투스트라』)란 작품이 이 시기에 출간돼 나온다. 1883년 라팔로에 머무르면서 불과 며칠 만에 책의 1부를 저술한 니체는 마지막 4부를 1884년 멘토네와 니스에서 완성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약 기원전 600년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페르시아의 예언자이자 교조敎祖였던 사람의 이름이다. 이 사람은 세계란 선과 악이란 두 개의 신적 원리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설파했다. 그 두 원리란 선과 악이다.

그러나 이 인물과 니체 작품 속의 주인공은 거의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산중에서의 10년간의 고독 끝에 인간 세상에 내려와 사람들에게, 무엇보다도 “초인超人(Übermenschen)”과 “동일자의 영원한 반복(die ewige Wiederkunft des Gleichen)”이란 두 가지 진리를 전한다.

초인이 가능하게 되는 것은 신이 죽었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니체는 신은 실재한 적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그는 이를 입증해줄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겐 증명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신은 죽었다’란 명제로써 전달하고 있는 의미는 신은 인간의 “가정”, 상상물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 위력적인 가상이 죽었다는 점이다.

신이 아직 인간의 의식 속에 살아 있었을 때 인간의 정신은, 말하자면 낙타였다. 낙타는 위력적인 신이 그에게 부과한 짐을 졌다. 예를 들면, 경외의 짐, (신의 명령 앞에서) 순종의 짐 또는 (신의 형벌 앞에서) 불안의 짐을 말이다. 이 비유로써 말하면, 낙타(인간의 정신)는 힘겨운 짐을 지고 끊임없이 “너는 해야 한다”는 명령에 내몰리며 서둘러 (삶의) 사막을 달렸다.

그렇지만 사막에서 낙타, 곧 인간의 정신은 두 가지 변화를 체험한다. 낙타는 자기의 어깨로부터 신이 지운 짐을 벗어 던지고 “나는 의지한다”고 소리치는 사자로 변한다. 그리고 사자는 다시 어린아이의 모습(상징)으로 바뀐다.

니체가 보기에, 아이는 놀이 속에서 세계를 만드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자기에게서 삶에 대한 신성한 긍정을 느낀다. 즉 우리의 사상가는 새로운 인간을 더 이상 신, 도덕, 노동에 의해 노예화된 피조물로 파악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인간을, 마치 아이가 그렇듯이 놀이하면서 창조적으로 형성하는 가운데 세계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세계와 일체감을 느끼는 존재로 본다. 이 때문에 니체는 단순히 세계를 단지 유용함을 위해 우리 눈앞에 있는 어떤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에게 세계란 쉬지 않고 운동하며 인간이 창조자로서 형성해가는 삶을 산출하는 일종의 모태母胎로서 이해된다.

니체는 또한 『차라투스트라』에서(비단 이곳에서만이 아니다) 서구 사상 전체를 꿰뚫고 있는 한 위대한 이념과도 관계를 끊는다. ‘모든 인간은 신 앞에서뿐만 아니라 지상에서도 평등하다.’ 철학자는 평등과 정의의 설교자들 – 동정심을 가진 사람들, 성직자들, 미덕을 가진 사람들 – 을 “독거미들”, 복수의 망령들이라고 부른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아연케 할 만한 논증을 통해 이 같은 경멸을 뒷받침한다.

동정과 이웃사랑을 외치고, 그에 대한 보상이 저 세상에서 돌아올 것이라고 약속하는 신의 도덕 또한 신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 이 세상에서의 삶을 유일하게 중요하고 현실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분명 기독교의 덕목들을, 그것들을 소홀히 여길 때 가책을 느끼는 양심을 포함하여, 필연적으로 거부할 게 틀림없다. 왜냐하면 동정을 예로 들면, 동정이란 무엇보다도 이제는 한 사람 대신에 두 사람이 고통을 겪게 됨으로써, 세상의 고통을 늘리고 지속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정은 삶에 적대적이며 “허무주의적”인 것이다. 동정은 세계를 긍정하는 우리들 내부의 힘, 폭넓은 의미에서의 주인이 되려는 힘찬 의지를 허물어뜨리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허무주의자들”은 니체가 아니라 미덕을 가진 기독교인들이란 뜻이다.

그렇지만 “더 많은 삶”을 향해 뻗어 나가는 힘은 모든 인간들에게 똑같은 정도로 주어져 있지 않다. 실패한 자들과 나약한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무력한 자들(이와 더불어 이들의 대변자들인 “동정하는 자들”)은 평등을 부르짖고 또한 그를 통해서 삶의 강자들을 자신들의 저급한 삶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려고 한다. 따라서 평등과 정의란 이념은 비참한 자들의 위장된 권력의지에 다름 아니다. 이에 대항하여 싸우는 게 중요하다. 무력한 자들의 권력의지란 강한 힘의 본성을 가진 사람들이, 오직 그 높이에서만 삶의 “복된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삶의 “고지高地”로 올라서는 일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를 뒤로 물러서게 하는 일 없이 언제나 앞으로만 내몰고 있는 시간은 적어도 인간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고 할 권력에의 의지보다 더 완강하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의 제3부에서 현자賢者를 통해 동일자의 영원한 회귀에 관한 이론을 알릴 때, 그는 시간의 문제에 몰두하고 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은 영원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는가? 아니면 영원과 같은 것인가? 더 나아가서 과거는 이미 영원한 것인가, 곧 시작이 없는가? 그리고 미래는 종말을 갖지 않은 채 영원할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두 차원의 무한성이 있을 것이다. 과거에로의 무한성과 미래에로의 무한성 말이다.

여기까지의 니체의 생각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내 우리 철학자는 통상의 일직선적인 시간 경험과는 상치되는 고찰을 시도한다. 영원 이래 지속되는 과거에는, “무엇보다도 바로 걸을 수 있는 것은 적어도 한 번은 이 길을 걸었음에” 틀림없다. 곧 무한한 과거에는 어떤 새로운 것도, 어떤 새로운 사건도 일어날 수 없으며 그리고 그 때문에 (영원한) 미래에도 역시 “동일자의 영원한 회귀”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묻게 함으로써 시간의 사유를 구체화한다. “달빛 속에서 기어가는 느린 거미와 달빛 자체 그리고 성문 입구에서 함께 귓속말을 나누며, 영원한 것들에 관해 속삭이는 그대와 나, 우리 모두는 분명 여기에 이미 존재했었던 게 아닐까? … 우리는 영원히 되돌아오도록 돼 있지 않는가?” 그렇게 본다면 굽은 것, 둥근 원이 진리이며 “모든 직선적인 것은 기만적欺瞞的”이다.

영원회귀 사상은 겉으로 보기엔 “권력에의 의지”에 대한 이론과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영원의 법칙에 따라 비참한 삶이 불가피하게 되돌아온다면, 우리가 작고 하찮은 삶을 극복하고 초인으로 고양돼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는 다음의 방식으로 해소된다. 있었던 모든 것이 되돌아와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있게 될 모든 것이 이미 한 번 여기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비참함이 영구화돼야 하지는 않다. 하지만 인간이 초인으로 올라선다면, 이는 자신의 위대함으로의 되돌아감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보면 “삶 자체”는 반복될 것이란 사실이 여전히 역설적으로 남는다. 그에 비해 개별적인 삶이란 모든 경험에 비춰 볼 때 일회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 때문에 우리는 또한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초, 시간. 하루, 년의 연속으로 체험한다. 이것은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명백하다. 그들에게는 죽는 순간 비로소 영원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논리학의 도움으로는 삶의 일회성과 반복 사이의 모순은 해결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차라투스트라』에 전개된 사상은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반복이란 통상 최초의 원형을 전제하기 마련인데, 무한한 시간에는 반복이 시작되는 어떤 최초의 것도 없기 때문이다.

니체 또한 이 같은 역설을 해결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이 역설을 사상의 정점에까지 끌고 감으로써 우리가 시간의 심연에 경악의 눈길을 돌리도록 한다.

무엇보다도 초인은 전사戰士의 미덕들을 지니고 있다. “전쟁과 용기는 이웃사랑이 해낸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해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자들은 “전쟁을 위해, 여자들은 전사의 증가를 위해 길러져야 한다. 그 밖의 것들이란 어리석은 짓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의견들로 니체는 자주 비웃음을 사고는 한다. 그러나 니체 자신은 영웅적 인간상과는 정반대되는 유형의 인물이었다. 그는 『차라투스트라』에서 장난감이라고 깎아내린 여자들을 똑바로 쳐다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의 초인철학에서는 결국 단지 한 낙오자의 권력 환상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일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는 그의 작품을 판단함에 있어서 사소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출판업자 슈마이처가 총 4부로 된 『차라투스트라』의 1, 2, 3부를 한데 묶어 책으로 펴낸다. 하지만 이 책을 대단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은 그는 책 판매에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니체는 절망감에 빠진다.

그동안에도 계속해서 언쟁을 벌여온 어머니와 여동생은 그에게 교수직을 얻어 보라고 다그친다. 실제로 니체는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자리를 구하려고 시도도 하지만 해당 대학의 총장은 기독교와 신의 표상에 대한 그의 입장 때문에 가망이 없다고 설명한다.

또 설사 교수가 됐다 해도 과중한 교수 업무를 전혀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건강이 점점 더 악화돼 가고, 실스 마리아에서 머무는 일이 잦아진다. 그곳에서 그는 소박하게 꾸며진, 한 프랑스인의 집에서 지낸다. 그의 친구인 파울 도이센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방 한구석에는 대부분 내가 이전부터 잘 알고 있던 그의 책들이 놓여 있었으며 그 옆에는 커피 잔, 계란껍질, 원고, 화장품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는 투박한 책상이 있다. 장화가 꽂혀 있는 신발걸이, 펴있지 않은 이부자리 역시 난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모든 것들이 게으른 하인과 또 그러한 것들을 잘 견뎌내는 참을성 있는 주인을 가리켜주고 있다. 오후에 우리는 집을 나왔다. 골짜기를 따라 한 시간 가량을 걸어 내려와 가장 가까운 마을에 이를 때까지 니체는 우리를 동행해주었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그 후 곧 현실로 나타나게 될 슬픈 예감을 다시 한 번 들려줬다. 우리가 작별을 고했을 때 그의 눈엔 눈물이 고여 있었다. … ”

글 쓰는 일에 몰두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고통과 싸운다. 후기 작품들, 예를 들어 『선악의 피안(Jenseits von Gut und Böse)』, 『도덕의 계보(Zur Genealogie der Moral)』, 『우상들의 황혼(Götzendämmerung)』, 『반그리스도론(Antichrist)』, 유고로 출간된 『권력에의 의지(Wille zur Macht)』 등이 이때 나온 작품들이다. 이 책들은 논쟁적인 면에서 보자면, 니체의 작품들 중 가장 날카로운 것들이다. 그는 여기서 섬뜩하리만큼 격렬하게 종교, 특히 기독교와 소크라테스를 통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철학 형태에 대해서 비판을 시도하는 한편, 모든 도덕적 가치의 전도를 체계적으로 기도한다. 그러나 계승된 낡은 가치에 대한 니체의 파괴는 또한 동시에 유럽의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삶과 더 우월한 인간 그리고 이제 우주적으로 이해된 권력에의 의지에 대해 위대한 긍정을 표명하는 의지에 의해 떠받쳐져 있다. 많은 비평가들이 니체가 이 작품들에서는 『차라투스트라』에서 도달한 바 있던 사상적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해설자들, 예컨대 마르틴 하이데거 같은 이는 후기 작품들에서 결정적으로 새로운 것을 본다.

니체는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 해(1888), 다시 한 번 개가를 올린다. 코펜하겐 대학이 그의 철학을 교과과정 안에 포함시킨 것이다.

니체에게 정신의 파탄은 1888년에서 1889년으로 해가 바뀌는 무렵에 일어난다. 사상가는 토리노에서 방을 세 내어 살고 있었다. 집주인과 신문 배달부는 그가 피아노를 즉흥적으로 마구잡이로 두들기면서 두서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철학자는 자주 집 밖으로 빠져나와 거리를 이리저리 헤매고 다닌다. ‘디오니소스’니 ‘십자가에 달린 남자’니 하는 이름을 써넣은 명함들을 만들기도 한다. 1월 3일 그는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서 한 마부가 말을 난폭하게 다루는 것을 목격한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니체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그는 말에게 달려들어 말의 목을 부여안는다. 그후 그는 완전한 착란 상태에 빠져 버린다.

10년이 더 넘는 기간 동안 그는 정신착란 속에 산다. 그의 어머니가, 나중에는 여동생이 함께 그를 간호한다. 니체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지만, 그는 그에 관해 더 이상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한다. 1900년 8월 25일 그는 눈을 감는다. 그의 시신은 고향인 뢰켄에 있는 부친의 묘소 옆에 묻힌다. 오늘날 그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그렇지만 니체와의 대결은 아직 한 번도 시작되지 않았다고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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