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태고 명칭에 대한 연구

아시아 태고 명칭에 대한 연구: 에벤크 씨족 명칭을 중심으로 (Древнейшие этнонимы Азии и названия эвенкийских родов)

저자: 소련 민속학자, 언어학자 바실레비치 글라피라(Василевич Глафира Макарьевна),

학술지: 『소련민속학』(Советская этнография), 1946, №4

 

관련영상: 예벤크족 일상 (편집자 추가)

 

  1. 에벤크족 민속학적인 연구의 필요성

 

한국외대 러시아어과의 강덕수 교수는 에벤크족이 사용하는 퉁구스어가 우리말과 같은 근원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에벤크인들이 쓰는 숫자나 일가친척을 일컫는 말이 한국말과 매우 유사한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였다. 또 강덕수 교수는 “에벤크인들도 우리처럼 몽골 반점이 있고 생김새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깊은 유사성으로 인해 한민족과 에벤크족이 아주 먼 과거에서 같은 조상으로부터 갈라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최근에 번역된 유명한 소련의 고고학자인 오클라드니코브의 『퉁구스족의 이동과 기원의 역사』라는 논문에서 (https://blog.jsd.re.kr/?p=1959) 퉁구스인들은 민족을 형성하기 전, 즉 퉁구스인들의 조상은 바이칼 호 주변 지역에서 기원했고 기초적인 문화공동체를 이룬 후에는 그 곳으로부터 여러 방향으로 이동하였다고 한다. 여기에 제시된 지도를 보면 퉁구스인들의 이동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 중에서 한반도를 가리키는 화살표가 있다.

이것을 보면 《환단고기》에 제시된 “인류가 바이칼 호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내용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물론 근거가 아직까지 희박하지만 연구가 진전되면 《환단고기》의 기록을 전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이 그리 멀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 민족의 이동은 그 민족에 해당된 부족명, 씨족명 혹은 지명이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추적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퉁구스계 고유 명칭을 기반으로 한 연구를 통해 예벤크인들의 이동과 다른 민족 간의 상호 영향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2.연구의 초점

 

본 논문에서는 8개의 고대 명칭을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진다. 실제로 고대 명칭 수는 훨씬 많지만 분석된 것만으로도 다양한 시대의 에벤크족 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의 많은 민족이 복잡한 다민족과 다문화 공동체를 이루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퉁구스계의 토대가 에벤과 에젠 부족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을 가정하면 기원전 시대에서 기원후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오비 강에서 바이칼 호 지역까지의 본주인인 바야 부족의 수많은 구성원들이 여러 세대 동안 에벤족과 에젠족으로의 귀속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사하공화국에서는 ‘길렌’과 ‘불대’라는 명칭이 존재하는 것은 토박이가 에벤크족 문화에 흡수되었다는 흔적으로 추정된다. 고대 퉁구스인 에벤크족에 귀속된 동쪽 토박이는 ‘기마/기모’ 부족이다. 그 이후에 ‘둘/돌’이라는 몽골-튀르크 언어문화권의 부족들이 에벤크 공동체에 귀속된 곳은 자바이칼 지역으로 보인다. 또 앙가라 강 에벤크 공동체가 튀르크 언어권의 ‘구래’ 씨족의 구성원들이 귀속되었다.

 

  1. 에벤크 씨족 명칭

 

1) 접미사

(1) 기/그신/신

 

에벤크족에 해당된 명칭 중에 일부는 한 씨족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기/그신, 신’ 이라는 접미사가 등장된다. ‘기’는 남성의 귀속성을 나타내고 ‘그신’은 여성의 귀속성을 나타낸다. 이처럼 바야기(baya+ki)는 바야(baya) 씨족의 남성, 바야그신(baya+kshin)은 바야(baya) 씨족의 여성이다. 이 접미사는 유카기르족과 울치족 그리고 오로치족 씨족명에도 해당된다.

또, 레베디바에 따르면 퉁구스어의 ‘신’ 접미사는 몽골어에서 ‘진(qin)’ 형태로 정착되어 ‘가라진’과 같은 씨족 명에 포함되었다. 중국 문헌에서 언급된 肅慎(숙신/숙진)이라는 고대 퉁구스-만주 민족의 명칭을 이에 관한 예로 들을 수 있다고 한다.

 

(2) 긴/간, 가르(복수형)

최초에는 ‘긴(gin)’ 접미사는 여성의 귀속성을 나타내는 것이며 복수인 경우에 ‘기르(gir)’ 형태를 취했다. 예를 들면 ‘기마(kima)’라는 씨족의 여성은 ‘기마긴(kima+gin)’이라고 하고 여러 여성을 가리키는 경우에 ‘기마기르(kima+gir)’라고 한다. 오늘날 소수의 에벤크 공동체는 이와 같은 접미사를 활용하지만 대부분인 경우에 ‘여성들’이라는 의미가 상실되어 씨족명 자체로 정착되었다. 이러한 경우에는 귀속성을 나타내는 또 다른 접미사가 추가된다. 예를 들면 ‘부두기르(putu+gir)’는 ‘부두기르(putugir)’ 씨족의 남성이고, 부두김니(putu+gim+ni)’는 ‘부두기르(putugir)’ 씨족의 여성이다. 원시적 부두(putu) 씨족 명칭에다가 의미가 상실된 기르(gir) 접미사가 추가되어 새로운 씨족 명칭이 생겼다.

접미사 ‘간(복수 기르gir)’은 ‘긴’ 접미사의 동의어이다. ‘간’ 접미사는 흥미로운 것이라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현대 언어에서 이 접미사가 ‘한 지역의 거주자’라는 의미로 쓰이며, ‘숲의 주민’이라는 의미를 가진 ‘아기간‘, ‘연안의 주민’이라는 의미를 가진 ‘비라간’이 이에 관한 예이다. 몽골계와 튀르크계 언어문화권에서는 ‘간/건/군’ 형태인 접미사가 등장된다. 저자는 다양한 언어문화권과 많은 지역에서 찾을 수 있는 이 접미사가 너무도 오래전부터 존재한 것으로 보아 이를 현대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문제점을 제기했다.

몇 가지 언어의 분석 결과를 따르면 원래 ‘그신, 신’은 프리바이칼 지역 그리고 ‘긴’은 자바이칼 지역에 거주한 퉁구스 언어문화권에 속한 부족에 해당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레베디바에 따르면 에벤크어의 ‘긴(gin)’ 접미사가 치찰음화가 되어 ‘신(shin)’ 접미사와 이의 변이음 ‘씬(sin)’, 씨르(sir)’가 생겨난 것으로 보았다.

철기시대 이래로 자바이칼 지역은 비옥한 땅으로 퉁구스계, 몽골계, 튀르크계 유목민 간의 전쟁의 무대가 된 곳이다. 그래서 철기 시대부터 이 지역의 주민이 수시로 바뀌고 부족 간의 혼합이 일어났다. 민족통합은 언어뿐만 아니라 씨족 명칭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같은 의미를 지닌 ‘긴/간’ 두 접미사가 존재하는 것이 이를 증명해준다.

여성의 귀속성을 나타내는 ‘긴’ 접미사에 관하여 소련 동양학자인 니콜라이 마르의 연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가 수메르 술어인 geme-gem(‘여성’)을 분석하여 예니세이 한티족어와 케트족어에 있는 qem-qim 라는 술어와 깊은 관계를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긴/간’ 접미사가 상고 시대부터 존재했다는 것과 처음에 개별적인 어휘로 파생하다가 시간이 흘러 접미사로 변형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또, 예니세이 한티족 언어권 술어의 고대 형태에 대한 연구를 해온 러시아 제국의 인류학자 드미트리 아누친은 ‘kim[gim]’ 또는 ‘kem[gem]’은 ‘여성’과 ‘강’이라는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밝혔다.

 

2) 퉁구스계 문화권에 해당된 3가지 고대 명칭

 

다음은 ‘에덴/에잰(əden/əjen)’, ‘돌간/둘간(dolgan/dulgan)’ 그리고 ‘설런(solon)’이라는 부족명으로부터 나온 오늘날의 씨족명을 살펴봐야 한다. 현대 언어학적 자료를 기반으로 이는 각각 ‘아래의’, ‘중류’, 그리고 ‘上流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옛 에벤크 사회에서는 새롭게 파생된 씨족의 명칭은 분리된 새鳥 시체 부분의 이름을 따서 짓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세 형제는 새를 잡아 머리(‘들마’)를 먹었던 사람은 ‘길마기르’라는 이름, 옆구리(‘에제케이’)를 먹었던 사람은 ‘예졘’이라는 이름, 뱃살(‘둘간’)을 먹었던 사람은 ‘둘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어 새로운 씨족의 시초가 되었다. 이 전설로 씨족의 탄생을 설명하는 것이다.

 

(1) 에덴/에잰

 

‘에덴/에잰/에잔’이라는 에벤크의 씨족명은 사하 공화국과 극동 지역에 분포하였다. 돌간족과 라무트족 중에서 ‘에댠/에쟌(ədyan/əjyan)’으로 비롯한 명칭은 가장 흔한 것으로 확인된다. ‘에젠(əjen)’이라는 명칭은 예니세이 강 유역을 제외하고 퉁구스-만주계 부족들이 활동하는 전체 지역에서 찾을 수 있다. 나나이족 중에서 ‘오짤르(odzal)’, 울치족 중에서 ‘우쨜르(udzal)’, 오로치족 중에서 ‘오잘르(odjal)’ 그리고 만주족 중에서 한국인과 중국인 구성원들의 수가 많은 ‘우뱔라(ubyala)’ 씨족명이 확인되었다. 더군다나 ‘에잰’ 명칭은 예니세이 강 북방수림 지역에 없었다는 것과 12세기 기록에서 극동지역에 있었다는 언급이 있는 것을 바탕으로 이는 바이칼 호와 오호츠크 해 사이에서 파생했다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씨족명의 확산은 퉁구스 언어문화권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몽골계와 튀르크계 민족 중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흥미롭게 몽골 서사시에 나타난 ‘에젠(ədjen)’ 또는 ‘에쩬(ədzen)’ 명칭은 칭기스 칸을 가리키는 ‘에쩬-보그도(ədzen-bogdo)’라는 고유 명사에 내포된 것이다. 더군다나 티베트 접근 지역에 거주하는 몽골족의 자명은 ‘에제니 몽골’이다. 이 두 가지 사실에 비추어봤을 때 ‘에젠’은 몽골 언어문화권에서 고대 시대부터 존재했다는 것으로 확인된다. 또 고대 퉁구스인 ‘에젠’ 부족의 구성원들은 몽골 민족에 속한다는 근거로 삼을 수 있다.

튀르크 언어문화권에서 이 명칭은 17세기 예니세이 강 상류지역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중국 문헌상 기록은 ‘에지’라는 튀르크 부족이 예니세이 원류 지역에 거주했다는 것을 밝혀준다.

이에 따르면 ‘우쩬(udzen)’은 5~6세기에 해당되어 ‘읍루挹婁’라는 앞선 부족명을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 또 같은 출처에서 ‘우지’와 ‘말갈‘은 숙신肅愼국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제국의 중국학자인 비추린에 따르면 우지(우기) 또는 말갈이라는 총 7종족으로 이루어지는 민족은 아무르 강 유역에 거주했다는 것이다.

7세기부터 현재까지 퉁구스-만주계 사회에서 ‘에젠/우찐(ədjen/udzin)’이라는 명칭이 흔하게 나타나는 것과 자바이칼 지역과 외만주 지역에 거주한 튀르크족에 해당된 것 그리고 몽골 문화권에 고대 퉁구스인들이 귀속하는 가능성을 고려하여 ‘에젠/우찐’은 처음에 퉁구스 언어권에서 파생하고 일부 퉁구스 무리를 통해서 튀르크 문화권으로 흡수 되었다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언어학적으로도 증명된다. ‘에젠’은 고대 명칭이라는 것이 틀림없다. 이로 인하여 현대 언어학적 자료를 기반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또 우쉰스키에 따르면 ‘에젠’이라는 명칭은 중국 문헌 요사와 금사에서 언급된 야인여진野人女眞을 가리킨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에젠인들은 북방수림으로 이주한 여진족의 한 갈래인 ‘숲의’ 여진인들이다.

 

(2)돌간/둘간

 

다음은 ‘둘/돌(dul/dol), 둔/돈(dun/don)’이라는 어근을 가진 명칭에 관한 분석이다. ’돌/둘‘은 사하 지역, 캄차카반도, 아무르 강 유역 그리고 자바이칼 지역의 퉁구스 언어문화권에 해당된다. ’돌/둘’이라는 어근으로부터 파생된 씨족명을 지닌 야쿠트화된 예벤크인들은 (레나 강에서 이사해온 예벤크족의 한 갈래) 타이미르 반도와 몽골 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역사적 기록상으로는 ‘둘(dul)’이라는 어근을 가진 명칭은 2세기경부터 언급이 된다. 소련 동양학자인 니콜라이 아리스터브는 불가리아의 왕실명부를 분석하여 기원전 시대로부터 존재한 ‘둘루dulu’라는 씨족은 기원후 2세기에 흉노와 함께 서부 몽골에서 키르기스 스텝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았다. 이에 따르면 “아틸라 왕국이 붕괴한 후에 ‘둘루’ 씨족은 도나우 강 연안에서 왕국을 세운 흉노와 핀우그리아족이 합쳐진 불가리아족 중에서 한 갈래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둘/돌’이라는 어근을 내포한 씨족명에 대한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이 명칭은 2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역사기록 자료에서 등장되고 중앙아시아 스텝과 사막 지대에 거주한 사람들에 해당됨으로 이는 태고 시대에서 파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리스터브는 이의 기원을 알타이 지역으로 지정한다.

‘둘가(dulga)’와 ‘둘루(dulu)’ 부족의 후손은 주로 튀르크계와 몽골계 민족에 귀속되었다. 퉁구스 언어문화권에서 볼 수 있는 ‘둘루기르’, ‘둘라르’ 등 씨족의 분포는 레나 강과 바이칼 호를 중심으로 해서 동쪽 방향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인다. 그러나 ‘돌간’과 ‘둘간’이라는 명칭은 예벤크어와 이미 분리된 언어체계를 가진 사하 동토대에 거주하는 민족에 해당되기 때문에 이 명칭이 먼 과거에 남쪽에서 퉁구스계 사회로 투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한편, 그 명칭이 분포하는 사실을 (외만주, 사하와 그 주변 지역) 고려하여 이는 자바이칼 지역에서 퉁구스 문화언어와 함께 기원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돌간인들은 예벤크족이 되어 북방으로 이동해서 토박이를 그들에게 동화시키고 다른 고대 예벤크족과 통합한 후 새로운 예벤크 문화언어 공동체를 건립한 것은 많은 시대를 거친 과정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돌간’이라는 어휘를 ’중류의 주민’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3) 설런

에벤크인 씨족명 중에서 ‘설런(solon)‘이라는 명칭은 보통 “상류 주거자”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13세기의 중국 기록에 따르면 ’설런索伦’이라는 에벤크인 부족은 북만주 지역에 거주하다가 1639년에 청나라 정책으로 인해 눈 강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 청나라 국경 지킴이로 ’설런’ 부족과 ‘다구르’ 부족을 팔기군이라는 군사 조직으로 개편하여 북쪽 경계와 서쪽 경계에 거주하게 만들었다. 그 대부분은 중국화 되거나 몽골화 되었지만 일부 사람들은 고유한 언어문화를 지켜왔다. ‘설런’ 씨족에 속한 ‘부흐다-설런’이라는 한 갈래는 수렵생활을 유지하면서 언어문화를 보존하였다.

인구조사기록에 따르면 1897년에 ‘셜런건(shologon)’ 씨족은 빌류이 강 유역에서 거주했고 그 이후 일부가 알단 강과 암가 강 수원지와 사하 지역으로 이주했다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설런’ 씨족이 아무르 강 오른쪽 연안에 거주하고 ‘설런고르(sologor)’ 씨족 제야 강 부근에 거주하는 것을 보여주는 1880년대 기록이 있다. 1712년에 중국 여행가들은 ‘설런’ 씨족 사람들을 예니세이스키 시와 이르쿠츠크 시 사이에서 만났다고 했다.

흔하지 않지만 에벤족과 몽골족 그리고 튀르크족 중에서도 ‘설런’이라는 씨족명이 존재한다는 기록이 있다.

‘설런/셜런(solon/sholon)’이라는 명칭은 주로 에벤크족에게 해당되어 레나 강과 바이칼 호 동쪽 지역에 나타난 것으로 확인되며 주로 만주와 몽골 지역에 분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 인하여 “자바이칼 지역에서 ‘설런’ 씨족이 파생했다”는 중국 문헌 기록이 사실로 보인다. 이에 따르면 ‘설런’ 씨족은 거란 함느간 씨족의 후손으로 여겨진다. 제르비용(Gerbillon)에 따르면 ‘설런’ 사람들은 여진족의 후손이라고 한다. 1204년에 여진족이 몽골군에게 패배한 후에 ‘설런’의 조상이 자바이칼 지방으로 피난하였다고 한다. 제르비용은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라는 의미를 가진 ‘설러’ 어근을 기반으로 해서 ‘설런’ 명칭의 의미는 강의 상류를 가리키는 형용사라고 최초로 해석했다. 결론적으로는 이와 같은 기록은 ‘설런’이라는 명칭은 바이칼 호 동쪽 퉁구스어 환경에서 파생하였음을 증명해준다. 러시아인이나 튀르크 문화권 사람들이 사하 지역으로 진입하기 한참 전에 ‘설런’ 씨족의 한 무리가 에벤족이 거주한 북 사하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이로 인하여 통파 강 지역의 에벤족 중에서 ‘셜러건(shologon)’이라는 씨족이 파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후에 튀르크언어권 부족들은 레나 강 영역에서 이들을 몰아내며 17세기에 러시아 탐험가들이 나타났을 때 ‘설런’ 씨족의 소수 집단이 비팀 강 영역과 키렌스크 지역에서 남아 있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남쪽을 향하여 비팀 강과 올료크마 강을 따라 아무르 강까지 강제 이주하게 되었다. 만주와 몽골에 남은 그들의 동족은 오늘날까지 ‘설런’, ‘앙커르-설런(ongkor-solon)’ 그리고 ‘부크타-설런(buhta-solon)’ 씨족으로 거주한다. 부랴트 문화권과 미누시이스크 튀르크 문화권의 ‘설런’ 명칭이 들어온 시기는 에벤크족이 바이칼 호와 예니세이 강 사이 북방수림에서 거주한 시기로 추정된다. 이 지역과 경계하고 있는 미누시이스크 지역의 토박이는 미누시이스크 튀르크족이다. 이들의 ‘셜러쉰(sholoshin)’ 씨족은 에벤크 명칭으로부터 파생되었다는 것으로 추정된다.

 

3) 퉁구스계 이외 문화권으로부터 차용된 명칭

 

(1) 바야/바이

 

중앙아시아의 민족 중에서 ‘바야/바이(baya/bai)‘라는 어근을 가진 씨족이 흔하다. ‘바약쉰(bayakshin)’과 ‘바야기르(bayagir)’라는 명칭은 에벤크족 환경에서 존재하고 ‘바이쉰(baishin)’과 ‘바야기(bayaki)’라는 명칭은 베르호얀스크 지역과 오호츠크 해 연안에 거주한 에벤족과 아무르 강 하류 지방에 거주한 울치족과 웰타족에 해당된다. 베르호얀스크와 콜름스크 지역에서 야쿠트계 ‘바이드(baidy)’ 씨족이 살았고 키르기스 칸 아들 중에서 ‘바이-슈라(bai-shura)’와 ‘바이-치라(bai-chira)’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었다. 기단반도에 거주한 사모예드족 중에서 ‘바이’ 씨족이 있었고 도로한 강에 사는 셀쿠프인 중에서 ‘바이쉰(baishin)’ 또는 ‘바이힌(baihin)’ 씨족이 존재했음이 확인 되었다.

‘바이쉰(baishin)/바익쉰(baikshin)’이라는 에벤크족의 명칭은 프리바이칼 지역에서 서쪽, 동쪽 그리고 북동쪽에 분포하였고, 그 지역과 깊은 관계를 가진 민족에 해당된 점으로 보아 이 명칭이 태고 시대에 오비 강과 바이칼 호 사이에서 기원했다고 추정된다. 이 지역에서는 바이칼 호라는 지명을 비롯하여 ‘바이’ 어근을 가진 수많은 지명이 존재하는 것이 이를 또한 증명해준다.

1562년 러시아 지도에서 오비 강과 예니세이 강 사이 ‘바이다(baida)’라는 단어가 등장되며 이를 설명한 각주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즉, “오비 강 동쪽에서 바이다(Baida)와 콜막(Colmak)이라는 국가들이 존재했다. 그 나라 사람들은 태양을 받들고 기둥에 묶은 빨간 천 조각을 숭배했다. 이들은 텐트에서 살고 짐승의 고기와 뱀 그리고 지렁이를 섭취하였으며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 고대 러시아 서사시에서는 “유고르스크 땅을 지나 오비 강 상류에서 ‘바이드’라는 땅이 있다”라는 내용이 확인된다.

‘바이’라는 명칭은 최초로 기원전 694~250년 중국 기록에서 ‘바이디白狄’라고 하는 정령丁零의 공동체를 일컫는 것으로 등장한다. ‘바이디’는 ‘북방 오랑캐’라는 해석도 있지만 ‘하얀 오랑캐’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정령의 민족 정체에 대한 논란이 많았으나 중국 기록은 사람에 따라 몽골 부족이나 튀르크 부족으로 지정한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원전 1천년기 후반기에 서사시에서 언급된 ‘바이디’라는 지역에서 ‘바이’ 명칭이 이미 존재했다는 것이다. 복수형을 나타내는 ‘d (또는 t)’ 접미사는 바이칼 호 주변 구역과 깊은 역사적 관련이 있는 부족에 해당된다. 야쿠트 씨족 ‘바이드’, 몽골 씨족 ‘바이트’ 또 ‘바야우드’라는 것이 이에 관한 예이다. 또, ‘바야크쉰’ 명칭은 이 지역에 비롯하여 퉁구스계가 거주한 모든 지역으로 확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6~7세기에 ‘바에구(baiegu)’라는 행정구역은 툴 강 북쪽 연안에 존재했다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그 이후, 7~10세기에 같은 행정구역이 만주 경계에서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같은 시기에 셀렝가 강 수원지에서 사냥과 동물을 사육하는 ‘바이씨(baisi)’ 부족이 거주했고 돌궐 문자 비석에 (울란바토르 부근) 기록된 ‘바에르구(baerku)’는 위구르족 ‘바에구’ 부족과 동일한 것으로 보는 학자가 있다.

역사적으로는 아시아 대륙에서 부족 무리의 이동이 빈번하였다. ‘바이’ 무리가 바이칼 호 부근 지역으로부터 동쪽으로 이동하여 만주족 ‘바야라’, 나나이족 ‘바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부족에 귀속한 것으로 추정된다. ‘바에구/바에르구’ 부족과 ‘바이씨’ 부족이 같은 방식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으로 보인다. 소련 동양학자인 블라디미로쩌브는 이와 같은 무리 이동에 대해서 언급한 바가 있다. 즉 “칭기즈칸 시절에 ‘바야우드(bayaud)’ 씨족의 사람들은 흩어져 살았다. 일부 무리는 칭기즈칸과 함께 유목생활을 하고 또 다른 일부는 ‘차이치우트’ 부족과 공동생활을 했다”.

 

(2) 기마/구모

 

예니세이 강을 기준으로 해서 서쪽과 동쪽의 에벤크 문화권에서는 ‘기마/구모(kima/kumo)’ 어근으로부터 파생된 씨족명을 찾을 수 있다. 서쪽에 거주한 에벤크인들은 ‘기마 씨족의 구성원 수가 굉장히 많았다는 것에 대해서 막연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동쪽에서는 ‘기모’라는 명칭과 이로부터 파생된 ‘기모꼬/기모닌/기모노리’ 명칭이 민간전승에서 남아 있다. 민간전승에 따르면 이들은 에벤크인들에게 처를 제공하는 씨족이다. 동쪽으로 향하여 1~2년 정도 걸어서 여행을 한 에벤크인이 그 씨족이 사는 땅에 도착하여 차남을 상대로 경기에서 승리한 다음 아내를 구하는 것이다. ‘기모’ 씨족은 큰 동물의 뼈를 이용하여 방이 여러 칸으로 구성된 반 지하 집을 구축하고 출입문으로 굴뚝을 삼는다. 서로가 잘 통하는 사이라 기모인의 언어와 에벤크인의 언어가 유사한 것으로 알 수 있지만 외모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기모인들은 숱이 많은 곱슬머리를 하고 눈은 둥근 눈동자 라인이 회전하는 듯 보이고 몸체는 땅딸막하고 둔하다. 에벤크인은 처와 순록을 받고나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민간전승의 신화적 요소가 발달되었다는 것은 ‘기모’ 명칭이 태고 시대로부터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97년의 인구조사기록에 따르면 극동 퉁구스계 민족 중에서 오로치인으로 구성된 ‘기문카(kimunka)’ 씨족과 타즈인으로 구성된 ‘기몬코(kimonko)’ 씨족이 살고 있었다. 에벤크족 민간전승에서 사냥꾼들에게 처를 제공하는 부족은 오늘날의 극동 오로치족과 타즈족의 조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중국 문헌상으로는 ‘구모히(kumohi)’와 ‘기마키kimaki)’ 두 가지 명칭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구모히’는 거란족과 동족이지만 생활문화 측면에서는 실위족과 유사하다. 구모히인들은 양궁 실력이 뛰어나고 약탈 본성을 지니고 있다. 말, 소, 돼지, 조류를 사육하고 재배한 수수를 구덩이를 파서 보관하고 토기로 요리를 한다. 487년까지 국경 중국인 토박이와 교류하며 어울려 살다가 488년에 반란을 일으킨 후, 중국으로부터 멀리 떠났다고 한다. 6세기에 ‘구모히’ 씨족의 인원수가 과도하게 증가하여 이들은 5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어졌다.

10~11세기 페르시아 문헌상으로는 오늘날의 카자흐스탄 북쪽에 흐르는 이르티시 강 주변에서 유목한 ‘기마키(kimaki)’ 씨족이 등장된다. 기마키인들은 말, 소, 양을 사육하고 사냥한 족제비 모피와 담비 모피를 개인적으로 이용하지만 무역도 했다. 그들은 자유인과 노예로 구성되어있다. ‘기마키’ 씨족의 서쪽 갈래는 분리되면서 역사상으로 알려져 있는 킵차크 민족을 형성하였다.

이 씨족들은 퉁구스계 민족과 어떤 관계가 맺고 있을까? 먼저 아무르 강 유역의 부족 언어권에서 ‘기모/구모(kimo/kumo)’라는 어휘가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또 신화적인 특성을 갖은 민간전승에서 언급된 것은 이 명칭이 태고 시대에서 유래했음을 입명해준다. 따라서 이 부족들은 먼 옛날부터 퉁구스 부족과 통합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퉁구스 부족들이 바이칼 호 인접 지역에서 동쪽으로 이주한 것은 고고학적 자료를 비롯하여 여러 것으로 증명되었다. 그러나 모든 민간전승에서는 주인공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것은 실제 상황을 반영하는 내용일지도 모른다. ‘기모’ 씨족의 여성들이 서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10세기 이전에 ‘기마/게무(kima/kemu)’ 씨족이 탄생하는 이유가 되는 만큼 여성의 역할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모/구모’ 씨족에 대한 또 다른 이동설이 있다. 바이칼 호 주변에 거주한 퉁구스는 두 갈래로 나뉘어 한쪽은 앙가라 강쪽으로 이주하여 오늘날까지 살아왔고 다른 한쪽은 9~10세기에 튀르크어 부족으로 전환되어 ‘키마크(kimak)’라는 씨족을 형성했다.

‘기마/게마(kima/kema)’ 부족이 역사적으로 예니세이 강 상류 지역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은 예니세이 강의 또 다른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강의 상류 부분은 1723년 기록에서 ‘기마/게마’ 이름으로 오늘 날에는 ’김/겜(kim/kem)’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3) 구래/구르

 

앙가라 강 인접 지역에서 또 다른 ‘구래/구르(kurə/kury)’라는 명칭이 발견되었다. 음성학적인 구조상으로 봤을 때 이 씨족의 시초가 이방 언어문화권에서 에벤크인 환경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ㅐ(ə)’와 같은 개모음은 에벤크어에 없기 때문이다.

앙가라 강 우측 지류와 예니세이 강의 우측 지류 지역에 거주한 ‘구래카기르(kurəkagir)’ 씨족은 에벤크계 ‘런더기르’ 씨족과 지속적인 전쟁을 해왔다. 에벤크인의 기록에 따르면 마지막 전투는 18세기 초반에 벌어졌다고 한다. ‘구르’ 부족이 앙가라 강 좌측 지류 스텝 땅을 차지하기 한참 이전 시대에서도 충돌이 자주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예니세이 강 좌측 지류 에벤크족은 ‘개랜도(kərəndo)’ 씨족과의 전쟁에 관한 신화로 발전된 민간전승이 있다. 이 신화에 따르면 바이칼 호 주변에는 인육을 먹고 에벤크인을 습격하여 포로로 잡고 에벤크 여성을 자신의 처로 만들고 에벤크 남성은 잡아먹는 ‘개래(kərə)’ 씨족이 살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신화의 시기를 철기 시대로 보고 에벤크족과 ‘구래(kurə)’ 씨족의 밀접하고 지속적인 상호작용으로 인해 에벤크인이 ‘구래’ 씨족에 귀속되고 구래인이 에벤크족에 귀속되었다는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추정한다.

중국 문헌상으로는 7~12세기에 바이칼 호 북쪽 땅을 ‘구르간/구리(kurygan/kuri)’ 씨족이 차지했다. 그 나라에는 백합속 종류의 식물이 많았고 말은 힘이 세고 크기가 컸다고 한다. 그 말의 머리가 낙타 머리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구르간’ 씨족은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또 페르시아 사료에 따르면 ‘구리/푸리(kuri/furi)’ 씨족은 키르키즈 지역에서 걸어서 3개월 정도 떨어진 지역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 야만인들은 늪에서 살고 키르기스인에게 포로로 잡힌 경우에 음식을 거부하고 틈이 날 때마다 도망치는 경향이 있었다. 시체는 산에 있는 나무 가지에 걸어서 장사를 지내고 인육을 먹는 씨족으로 알려져 있다. 또 쇼트(Schott)에 따르면 키르기스 소유지내에서 이들과 전혀 다른 언어를 구사한 ‘구르간(kurygan)’ 씨족이 거주했다고 한다.

구르인 민족성에 대하여 야쿠트인의 조상, 몽골족 등의 의견이 천차만별이다. 오클라드니코브의 고고학적 탐구는 이 논란을 해결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주었다. 이에 따르면 레나 강 상류 철기 시대(5~10세기)에 미누시스키 지방과 알타이 지역 문화와 유사성을 드러내는 상급문화를 소유한 ‘구르’ 부족이 거주했다. 구르인들은 동물을 사육하고 농사를 지었으며 돌궐 문자를 이용함으로 튀르크 문화언어권 부족으로 지정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구리기르(kurigir)’는 불가리아인으로 구성된 부족이다. ‘구리기르’ 부족 출신인 정치가의 공적을 기려 오모르닥 칸의 명령으로 비석이 세워졌다.

그 밖에 또 민족성이 명백하지 않는 ‘후레글르그(hureklyg)’라는 명칭이 발견되어 ‘구르’ 씨족 사람들이 에벤크족과 불가리아족과 결합한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민족과 상호관계를 구축했음을 알 수 있다.

 

(4) 길렌/길레

 

‘길레/길렌(kile/kilen)’이라는 명칭은 앞서 ‘구래/구르’라는 명칭과 마찬가지로 에벤크 언어 음소체계에 해당되지 않아 이방 민족으로부터 차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에벤크계 ‘길레/길렌’ 씨족은 사하공화국과 극동 경계 지역에서 거주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17~18세기에 오호타 강 주변 땅을 차지하는 것으로 밝혀졌고 오늘날에도 그 곳에서 ‘길렌’ 씨족의 출신인 에벤크인을 만날 수 있다. 1850년대 길레인들은 하바로브스크 부근으로 이주한 것으로 확인 된다. 1897년 사하공화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야쿠트 도와 빌류이스크 도에 ‘길럇(kilyat)’ 씨족이 살았고 항카 호 주변에 ‘길렌(kilen)’ 씨족이 거주했다. 남사할린 ‘길리(kili)’ 씨족의 언어는 아얀-에벤크 언어와 동일하고 이로부터 새로운 씨족, 즉 ‘둔간’, ‘유가민카’, ‘우든카’ 등이 비롯되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명칭은 오래되지 않는 과거 아무르 강 하류 지방의 토박이를 일컫는 말이었다. 에벤크인들은 아무르 강과 우수리 강의 나나이족 사람들을 ‘길레(kile)’라고 부른다. 또, 오로치인, 오로키인, 울치인과 길랴크인들은 오늘날까지 에벤크 사람을 ‘길레(kile)’라고 부른다. ‘길린/칠린(kilin/chilin)’이라는 명칭으로 중국과 만주 사람들은 아무르 강 유역 퉁구스 사람이나 한국 사람을 일컬었다. 러시아 제국의 인류학자인 쉬로코고로브는 이 명칭이 기린(girin) 강 이름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것으로 보았다. 이에 따르면 16~17세계에 중국인이 최초로 퉁구스 사람을 만난 곳이 기린 강이었다. 그래서 강의 이름으로 퉁구스 사람을 부르게 되고 그 이후에 아무르 강 모든 토박이를 같은 명칭으로 일컫게 되었다.

한편 쉬덴베르그의 해석은 더 신뢰성이 있어 보인다. 이에 따르면 “‘길랴크(gilyak)’라는 명칭은 원래 ‘퉁구스‘라는 의미를 지닌 ‘길래(kile)’라는 어휘로부터 유래되었으며 길랴크인을 처음에 만났던 여행가들의 잘못된 발음으로 어휘의 변형이 되었다”고 한다. 아무르 강 하류 길랴크인들은 퉁구스족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나나이족, 오로촌족은 같은 민족으로 여긴다는 것으로 인해 이러한 변형이 쉽게 생길 수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길렌’ 명칭의 분포 지역과 이 명칭으로 이웃을 일컫는 것은 수많은 에벤크 부족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 사람들은 아무르 강으로 이주하여 나나이족뿐만 아니라 오로치족, 오로키족, 울치족 그리고 길랴크족(니브흐족)에 귀속했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 상호작용으로 인해 에벤크인으로 구성된 ‘길랜(kilən)’ 씨족 명칭으로부터 길랴크 민족 명칭이 파생되었다. 이처럼 씨족명이 민족명으로 변화하는 것은 역사상으로 드물지 않은 현상이다.

사하공화국에 ‘길랜(kilen)’ 명칭이 분포하는 것, 퉁구스 문화언어권 이외에서 유래한 것, 사하공화국에 에벤크인들이 토박이가 아니라는 것은 이 지역으로 이주한 최초의 에벤크족에게 원주민이 귀속되었다는 단서로 보인다.

 

(5) 불대/불래

 

‘불대/블레(buldə/bullə)’라는 씨족의 명칭은 사하공화국 에벤크족과 아무르 강 지역으로 이주해온 부족에 해당된다. 사하에서 아무르 강으로 이주하는 것은 튀르크 언어문화권 부족들이 레나 강 중류에 최초의 진입과 동시에 시작되었고 오늘날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1897년 인구조사를 고찰한 바트가노브에 따르면 ‘밸대(bəldə)’ 씨족은 빌류이 강에서 알단 강과 암가 강 수원지로 이주한 후에 1850년대 씨족의 구성원들은 셜러곤(shologon) 에벤크인들과 함께 아무르 강으로 이동했던 것으로 보았다. 100년이 지난 오늘 날에는 밸대인들은 제야 강에서 뉵자 강, 그리고 올료크마 강의 연안에 따라 거주하고 있다. 아무르 강 ‘불대(buldə)’ 씨족 구성원들은 오래 전에 나나이 부족과 합쳐지면서 새로운 ‘벨드(beldy)’ 씨족이 생겨났다. 남시베리아 지역에서 발견된 튀르크 명칭 ‘벨드르(bel’tyry)’와 음성학적으로 유사성이 드러나지만 두 씨족 사이 관계는 파악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EnglishFrenchGermanItalianJapaneseKoreanPortugueseRussianSpanishJavane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