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와 함께하는 문화여행 3 -‘신나다’

신나다 ()이 일어나는 순간, 흥이 문화가 되다

새해는 늘 새로운 기운의 시작으로 인식된다. 달력이 바뀌고, 마음이 새로워지며,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기대가 피어오를 때 많은 이는 특별한 이유 없이 “괜히 마음이 신난다.”라고 말한다. 이 표현은 가볍게 쓰이지만, 그 안에는 한국인이 세계와 자신을 이해해 온 방식이 깊이 스며 있다.

‘신나다’는 단지 기분이 좋다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한국어가 감정과 생동을 다루는 방식이며, 한국 문화가 삶의 에너지를 인식해 온 오래된 언어적 기록이다.

 

 

사전적으로 ‘신나다’는 “흥미나 열성이 생겨 기분이 매우 좋아지다”라는 뜻을 가진다. 그러나 실제 언어 사용에서 ‘신나다’는 감정의 크기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사람의 상태가 전환되었음을 알리는 표현이다.

‘기쁘다’가 마음속 감정을 이름 붙이는 말이라면, ‘신나다’는 그 감정이 몸과 삶의 층위까지 확장되었음을 드러내는 말이다. 신이 나면 말투가 달라지고, 몸이 먼저 반응하며, 행동의 리듬이 바뀐다. 이는 단순한 기분 변화가 아니라, 삶의 생기가 다시 살아났음을 알리는 징후이다.

이 점에서 ‘신나다’는 일시적인 감정을 묘사하는 형용사가 아니라, 인간의 생동과 활력이 회복된 상태를 포착한 상태 동사에 가깝다. 한국어는 이처럼 감정을 마음속에 가두지 않고, 몸과 삶의 변화까지 함께 담아낸다.

 

  1. 신나다()이 나다, 무엇이 드러나는가

‘신나다’라는 말은 구조부터가 한국어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 말은 형용사가 아니라, ‘신(神)+나다’라는 분명한 동사 구조를 지닌다. 즉 ‘신나다’는 막연히 기분이 좋아진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어떤 ‘신’이 ‘나다’, 다시 말해 드러난다는 사건을 표현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물어야 할 것은 분명하다. “무엇이 나는가. 무엇이 드러나는가.”

‘나다’는 한국어에서 매우 역동적인 동사이다. 불이 나고, 소리가 나고, 생각이 나며, 흥이 난다. 이때 ‘나다’는 보이지 않던 것이 밖으로 드러나고, 잠재되어 있던 것이 현상으로 나타나는 순간을 가리킨다. 따라서 ‘신나다’란 신이 새로 생겨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던 신이 삶의 자리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상태이다.

여기서 신은 분명히 ‘신(神)’이며, 이를 달리 부르면 ‘신명(神明)’이다. 신명은 신의 작용이나 움직임으로 오해되기도 하지만, 한자 구성에서 보듯 신명은 본래 신이 지닌 속성, 곧 신의 밝음과 광명을 뜻한다. ‘명(明)’은 움직임이 아니라 밝음이다. 신명이란 신의 존재 모습이자 신의 광명이 인식되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증산도 문화 속에서도 확인된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도 모두 신명의 조화로 되는 것이다.”

“지금도 네 양쪽 어깨에 신명이 없으면 기운 없어서 말도 못 혀.”

“눈에 동자가 있어야 보이듯이 살아 있어도 신명 없이는 못 댕기고,

신명이 안 가르치면 말도 나오지 않는 것이여.” (『도전』 2:61)

『도전』에서는 “사람이 죽고 사는 것도 모두 신명의 조화”이며, “어깨에 신명이 없으면 기운 없어서 말도 못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신명은 상징이나 비유가 아니다. 신명은 사람의 생명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실재적 존재의 속성이며, 동시에 그 밝음이 드러날 때 나타나는 삶의 조화로운 현상이다. 따라서 신명은 존재와 분리된 작용이 아니라, 존재가 지닌 밝음이 체험되는 양태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다시 ‘신나다’로 돌아오면, 그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신이 난다’는 것은 신명이 새로 생긴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신의 밝음, 곧 신명이 가려짐 없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때 몸이 가벼워지고, 말이 살아나며, 웃음과 노래와 춤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러한 변화는 신명이 움직여서가 아니라, 신의 밝음이 삶 속에서 분명해졌기 때문에 따라오는 현상이다.

그래서 전통 사회에서 무당의 접신 장면은 ‘신나다’의 가장 극적인 한 형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무당에게 신이 난다는 것은, 신의 밝음이 몸을 통해 드러나며 말과 춤으로 표현되는 상태를 뜻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러한 신남이 무당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굿판에서 사람들은 함께 어깨를 들썩이고, 장단에 맞춰 손을 치며, 어느 순간 모두가 신이 난 상태에 이른다. 신의 밝음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 전체에 퍼져 드러난다.

이 흐름 속에서 ‘신나다’는 개인 감정의 표현을 넘어선다. 그것은 신명, 곧 신의 밝음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며 삶 속에서 살아나는 순간을 포착한 언어이다. 신이 나면 흥이 일어나고, 흥이 고조되면 신바람이 생긴다. 그 신바람은 공동체의 놀이와 예술, 나아가 풍류 문화로 이어진다. 결국 ‘신나다’는 신[신명] → 흥 → 풍류로 이어지는 한국 문화의 깊은 정서 구조를 가장 일상적인 언어로 간직한 말이다.

 

  1. ()은 신의 밝음이 삶으로 번져 가는 방식

한국 문화에서 ‘흥’은 개인의 기분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흥은 언제나 신의 밝음이 인간의 삶 속으로 번져 들어오는 과정을 가리킨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신명은 신의 속성인 밝음이 드러난 상태이다. 흥은 그 밝음이 한 개인의 몸에 머무르지 않고, 말과 몸짓, 노래와 웃음을 통해 밖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흥은 혼자 있을 때보다 함께 있을 때 더 강해진다. 신의 밝음은 고립된 상태보다 관계 속에서 더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흥의 공동체성과 관계적 속성

흥은 혼자 있을 때보다 함께 있을 때 더 강해진다. 신의 밝음은 고립된 상태보다 관계 속에서 더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한국 전통 무용의 특징을 살펴보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 제천의식이나 마을굿과 같은 공동체 의례가 끝난 후 이어지는 축제에서, 흥은 처음 한 사람의 어깨짓으로 시작되어 점차 온몸의 움직임으로 번져나가고, 마침내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이의 춤으로 확산된다. 이는 흥이 개인의 신체적 표현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 전체의 생동으로 확장되는 양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로 볼 때, 흥은 단순히 개인의 내면에 머무는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안에서 솟아난 즐거움이 밖으로 표현되면서 공동체 전체와 결합하는 정서적 힘이라 할 수 있다. 즉, 흥은 신의 발현, 신명의 드러남으로 사회적 형식을 갖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흥은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되지만,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전통 제례와 축제 속의 흥

한국의 제천의식과 공동체 축제에서 흥은 역사의 가장 깊은 층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에 따르면, 고조선 시대 마흔일곱 분의 단군께서 보위에 오르실 때마다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렸다고 전한다. 이는 국가 차원의 가장 근본적인 의례였으며, 동시에 온 백성이 함께하는 거대한 축제의 장이기도 했다. 특히 2세 부루 단군 시기에는 매년 천제를 지낼 때마다 큰 축제를 열어 ‘어아가(於阿歌)’를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아가는 삼신상제님의 덕을 칭송하는 노래로, 백성들이 함께 부르며 하나가 되는 집단적 흥의 체험이기도 했다.또한, 34세 오루문 단군 때는 풍년이 들자 백성들이 ‘도리가(都里歌)’를 지어 부르며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이러한 고조선 시대의 천제와 노래 문화는 제의와 축제, 신성함과 흥취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한국 고유의 공동체 문화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확립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전통은 이후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백제의 무천(舞天), 마한의 천제(天祭)로 계승되었다. 이러한 의례들은 단순히 개인의 안녕을 비는 것을 넘어, 마을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고 협력함으로써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사회적 결속을 다지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의 민속과 전통 신앙 연구에 따르면, 마을 입구에 서낭당을 세워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거나, 집안의 다양한 가택신(성주신, 조왕신 등)을 모시는 풍습은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한국 민간신앙의 핵심 요소로 뿌리내렸다. 이러한 의례들은 개인과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흥의 장이었다.

특히 굿판에서 흥의 전염성과 공동체성은 극대화된다. 무속 연구자들은 굿이 단순히 무당 개인의 접신 의례가 아니라, 참여한 모든 이들이 함께 신명을 경험하고 흥을 나누는 총체적 문화 현상임을 강조한다. 무당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를 때, 구경꾼들은 단순한 관객이 아니다. 그들은 손뼉을 치고, 추임새를 넣으며, 장단에 맞춰 몸을 흔들면서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이 순간 신의 밝음은 무당에게서 시작되어 관중 전체로 번져나가며, 마침내 모두가 함께 신이 나는 경지에 이른다.

◉흥과 한국인의 정서 구조

이때 ‘신나다’는 신명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고, ‘흥이 난다’는 것은 그 밝음이 이미 관계 속으로 흘러들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말이다. 신은 밝아지고, 밝음은 번지며, 그 번짐의 이름이 흥이다.

김열규의 《한국인의 신명》(1984)에 따르면, 한국인에게 흥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삶의 고단함을 풀고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는 문화적 기제였다. 억압된 일상 속에서도 굿판, 마을잔치, 두레 놀이 등을 통해 흥을 나누며 삶의 균형을 회복했다. 이는 흥이 한국인의 정서적 생존 전략이자, 공동체를 유지하는 문화적 지혜였음을 보여준다.

정형호의 《한국인의 흥과 정서》(2003)는 흥이 한국 문화 전반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며, 흥이 단순히 축제나 놀이에 국한되지 않고 일상의 노동, 의례, 예술, 나아가 현대의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정서적 기반을 형성해 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연구들은 흥이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한국 문화의 집단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임을 입증한다.

결국, 흥은 신명의 밝음이 개인에서 공동체로, 내면에서 외부로, 정적인 상태에서 역동적인 행위로 확장되는 과정 그 자체이다. 그리고 이 확장의 과정에서 한국인은 단순히 즐거움을 느끼는 것을 넘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공동체의 일원임을 체험하게 된다.

 

  1. 신명 · 신바람 · 밝음이 움직일 때 생기는 단계들

한국어에는 ‘신’이 들어간 정서 표현이 유독 많다. 신명나다, 신바람 나다, 신나다는 모두 같은 계열에 속하지만, 이 말들은 서로 다른 단계를 가리킨다. 이는 한국어가 신의 밝음이 어떻게 드러나고 확산되는지를 세밀하게 구분해 왔음을 보여준다.

◉신명 — 신의 밝음, 인식의 시작

신명은 신의 밝음, 그 속성이 인식된 상태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도전』은 “천지간에 가득 찬 것이 신(神)”이며 “풀잎 하나라도 신이 떠나면 마르고 흙 바른 벽이라도 신이 떠나면 무너진다”라고 기록한다. 이는 신이 특정한 장소나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과 현상에 편재하면서도 그 밝음이 늘 드러나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신명은 이렇게 편재하는 신의 밝음이 특정한 순간, 특정한 상황에서 인간에게 인식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무속 연구에 따르면, 무당이 신병(神病)을 겪고 내림굿을 통해 무당이 되는 과정은 바로 이 신명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강신무(降神巫)는 신병을 통하여 획득한 영통력을 가지고 신과 만나는 종교적 제의인 굿을 주관하게 된다.

◉신바람 — 밝음의 기류, 움직임의 시작

신바람은 그 밝음이 기운처럼 움직이기 시작한 상태이다. ‘바람’이라는 말이 붙는 순간, 신의 밝음은 정지된 인식이 아니라 흐름과 기류를 띠게 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풍류(風流) 항목은 ‘풍(風)’을 단순한 멋이나 취향이 아니라, 기운의 흐름, 생명의 기류로 해석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설명한다.

신바람은 정지된 신명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신바람 나게 일한다”라고 말할 때, 단순히 기분이 좋다는 것을 넘어 어떤 에너지가 자신을 통해 흐르며 일의 능률이 오르는 상태를 표현한다. 이는 신의 밝음이 개인을 관통하는 바람처럼 느껴지는 체험이다.

전통 사회의 두레 노동에서 신바람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된 농사일을 할 때, 사람들은 장단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몸을 움직이며 신바람을 일으켰다. 이는 단순히 피로를 잊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신의 기운을 타고 일의 리듬을 맞추는 문화적 장치였다.

◉흥 — 기류가 만드는 생동의 장

그 흐름이 몸과 관계를 타고 확장될 때, 우리는 그것을 흥이라고 부른다. 흥은 신바람이 개인의 경계를 넘어 공동체 전체로 확산되어 생동의 장을 형성한 상태이다.

조동일의 《한국문학통사》(1992)는 한국 문학과 예술의 근저에 흐르는 흥의 정서를 강조하며, 한국인의 창작 활동이 개인의 고립된 영감보다는 공동체적 흥취에서 비롯됨을 지적한다. 판소리의 창자와 고수, 그리고 관중이 함께 만들어내는 흥은 작품을 완성하는 필수 요소였다.

따라서 신명은 밝음이고, 신바람은 밝음의 기류이며, 흥은 그 기류가 삶의 장에서 만들어내는 생동의 장이다. 이 모든 단계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신적 밝음이 다른 층위에서 드러나는 양상이다.

김열규의 《한국인의 신명》은 이러한 단계들이 한국인의 삶 속에서 어떻게 작동해 왔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무속 의례에서 신명 → 신바람 → 흥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매우 분명하게 관찰된다. 무당이 신을 맞이하는 순간(신명), 장단이 빨라지며 춤이 격렬해지는 순간(신바람), 그리고 마침내 모든 참여자가 함께 어깨를 들썩이며 하나가 되는 순간(흥)은 이 세 단계가 하나의 연속적인 흐름 속에 있음을 보여준다.

최래옥의 《한국 전통 연희의 미학》(1999)은 한국의 전통 놀이와 연희에서 이러한 단계적 흥취가 어떻게 미적 체험으로 승화되었는지를 분석한다. 탈춤, 판소리, 농악 등 한국의 전통 연희는 모두 이 신명 → 신바람 → 흥의 단계를 거치며 관객과 연희자가 하나되는 집단적 엑스터시를 지향했다.

 

  1. 풍류 신바람이 삶의 태도로 정착된 문화

 

흥이 일시적인 폭발이라면, 풍류는 지속이다. 풍류는 신의 밝음과 그 바람을 삶의 태도로 길들인 문화적 형식이다. 최근 풍류 연구에서는 ‘풍(風)’을 단순한 멋이나 취향이 아니라, 기운의 흐름, 생명의 기류로 해석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때 풍류는 곧 신바람이 삶 속에서 안정적으로 흐르는 상태를 뜻한다.

최치원은 신라 전통의 현묘한 도를 풍류라 했다. 풍류는 화랑이 도의로써 서로 연마하고 노래와 음악으로 서로 즐거워하며 산과 내를 찾아 노니는 것을 뜻했다. 이는 후대에 좋은 자연 속에서 시·서·금·주(琴酒)로 즐기는 것을 풍류라고 하는 것과도 통한다.

이러한 풍류의 전통은 조선시대 풍류방 문화로 계승되었다. 풍류방은 신분을 초월하여 양반, 중인, 악공들이 모여 음악을 연주하고 감상하는 공간이었다. 18세기 화폐의 유통과 상업의 발달로 풍류의 향유층이 중인층으로까지 확대되면서 풍류음악은 크게 발달하였다. 풍류 향유층이 확대됨에 따라 새로운 악곡이 생겨나고 기존의 곡을 변주하는 형태도 늘어났다.

◉풍류와 신명의 조화

음악과 시, 가무가 어우러지는 풍류의 장은 단순한 유희가 아니다. 그것은 신의 밝음이 과도하게 폭발하지도, 다시 억눌리지도 않도록 조화롭게 순환되도록 만든 문화적 장치이다. 풍류는 흥을 억제하지 않으면서도, 흥에 휩쓸리지 않는 지혜이다.

풍류는 ‘신나다’의 가장 성숙한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신이 나되, 흐트러지지 않는 상태. 밝음이 머물며 흐르는 삶의 방식이 바로 풍류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자연 속에서 거문고를 타고 시를 읊으며 술을 나누던 모습은, 신명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삶 전체를 아름답게 만드는 풍류의 이상을 보여준다.

따라서, 풍류 정신은 고대의 제천의식에서 시작하여 고려시대 팔관회·연등회를 거쳐 조선시대 마을굿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이 흥과 신명으로 하나의 장을 이루어온 긴 역사를 관통하는 문화적 DNA라 할 수 있다.

◉현대적 계승과 확장 — K-POP과 한류 속의 신명

20세기 후반부터 한국의 대중문화는 세계 무대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한류는, 2010년대 K-POP을 중심으로 전 지구적 현상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한류의 세계화는 단순한 문화 상품의 수출을 넘어, 한국인의 신명과 흥, 풍류 정신이 현대적 형식으로 부활하여 전 세계인과 공유되는 역사적 사건이다.

K-POP 연구자들은 K-POP의 성공 요인으로 완벽한 퍼포먼스,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 소셜 미디어 활용 등을 꼽는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보면, K-POP이 전 세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그 속에 담긴 ‘신명’의 에너지 때문이다. Hyundai Motors의 글로벌 웹진(2024)은 K-POP의 핵심을 설명하며 “사람들은 같은 음악에 공명하면서 ‘heung(흥)’을 공유한다”라고 기술한다. 이 글은 흥을 ‘한국 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생생하고 신나는 감정으로, 전염성 있는 기쁨과 형언할 수 없는 흥분의 급증’으로 정의하며, K-POP이 바로 이 흥의 정신을 전 세계 팬덤에게 전달하는 매개라고 설명한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분석(2021)에 따르면, K-POP 아이돌의 무대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완벽하게 짜여진 동작의 시퀀스와 동선을 따라 거대한 한편의 퍼포먼스를 구성”하는데, 이는 전통 굿판에서 무당의 춤이 관중 전체를 신명으로 이끌어가던 방식과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K-POP의 칼군무와 에너지 넘치는 퍼포먼스는 현대적 형식으로 재탄생한 신바람이며, 전 세계 팬들이 함께 응원봉을 흔들고 떼창을 하는 콘서트 현장은 전통 굿판의 집단적 엑스터시가 21세기적으로 재현된 것이다.

학술 연구 또한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한다. 조선대학교의 K-POP 한국어 교육 연구(2014)는 ‘한국인 특유의 신명과 흥을 바탕으로’ 하는 K-POP의 특성을 지적하며, 이것이 단순한 음악적 기교를 넘어 한국 문화의 정서적 기반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한다. 한류 연구자들은 K-POP이 ‘멋과 풍류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며, 이를 통해 전 세계인에게 한국 문화의 깊이를 전달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K-POP이 단순히 한국에서 한국인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은 NiziU나 WayV처럼 아예 한국 무대를 거치지 않고 현지에서만 활동하는 글로벌 그룹의 등장, 해외에서 먼저 데뷔하는 아이돌 그룹의 출현 등을 지적하며, K-POP이 이제 ‘공식이나 견본으로서’ 세계화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는 한국의 신명과 흥, 풍류가 더 이상 한반도에 국한된 문화 현상이 아니라, 전 지구적 차원에서 공유되고 재창조되는 보편적 문화 코드로 진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지구적 하나됨의 장으로서의 한류

한류의 확산은 단순한 문화 전파를 넘어, 한국인이 수천 년간 축적해 온 ‘함께 신나는’ 문화, ‘관계 속에서 밝음을 나누는’ 문화가 전 세계인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는 증거이다. K-POP 콘서트에서 국적과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응원하고 춤추는 모습은, 전통 굿판에서 마을 사람들이 함께 신명을 나누던 모습의 21세기 버전이다.

이제 한국의 신명, 흥, 풍류는 서울의 굿판이나 조선시대 풍류방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뉴욕의 K-POP 콘서트장에서, 파리의 한류 페스티벌에서, 남미의 댄스 커버 영상에서 살아 숨 쉰다. 신의 밝음은 국경을 넘어 번져나가고 있으며, 이제 전 세계는 함께 신나고, 함께 흥을 나누며, 새로운 풍류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한류는 단순히 한국 문화를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함께 밝아지고, 함께 신나는 방법을 나누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명 → 흥 → 풍류로 이어지는 한국 문화의 정서 구조가 21세기 전 지구적 차원에서 실현되는 모습이며, K-POP과 한류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1. 천지간에 가득 찬 것이 신이다신명 세계관의 근본

앞서 신명과 흥, 풍류를 통해 살펴본 세계관은 『도전』의 상제님 말씀에서 그 근본을 확인할 수 있다.

“천지간에 가득 찬 것이 신(神)이니

풀잎 하나라도 신이 떠나면 마르고

흙 바른 벽이라도 신이 떠나면 무너지고,

손톱 밑에 가시 하나 드는 것도 신이 들어서 되느니라.

신이 없는 곳이 없고,

신이 하지 않는 일이 없느니라.” (『도전』 4:62)

이 말씀에서 신은 특정한 장소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다. 신은 천지간에 가득 차 있으며, 사소한 생명 현상과 일상의 미세한 사건 속에서도 작용한다. 이는 신이 특별한 순간에만 나타나는 존재가 아니라, 항상 존재하되 늘 드러나지는 않는 존재임을 뜻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신나다’는 신이 갑자기 생겨나는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늘 가득 차 있던 신의 밝음이 인간의 삶 속에서 가려짐 없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신은 언제나 있었고, 다만 그 밝음이 막히거나 흐르지 못했을 뿐이다. 신이 날 때란, 그 막힘이 풀리는 순간이다.

따라서 ‘신나다’는 특별한 감정 상태가 아니라, 세계의 본래 질서가 인간의 삶 속에서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언어이다.

 

신나다는 다시 밝아지기 위한 말

삶에는 우리 자신을 다시 가다듬고 방향을 점검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새해는 그러한 시간 중 하나이지만, 삶의 밝음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은 특정한 시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일상의 여러 국면에서, 이유 없이 마음이 가벼워지고 다시 움직이고 싶어지는 순간을 맞는다. 이때 한국어는 우리에게 ‘신나다’라는 말을 건넨다.

‘신나다’는 더 즐기라는 명령이 아니다. 그것은 삶이 다시 밝아질 수 있음을 알리는 언어이다. 안녕하길 바라는 말이 관계의 평안을 지향했다면, 고맙다는 말은 그 관계의 존귀함을 확인하는 언어였다. 그리고 신나다는, 그 관계와 삶이 다시 살아 움직일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말이다.

신은 이미 가득 차 있다. 다만 그 밝음이 드러날 자리가 필요하다.

‘신나다’는 그 자리가 열렸음을 알려 주는 말이며, 삶이 다시 생동의 리듬을 회복했음을 선언하는 한국어의 표현이다. 이 말은 특정한 계절이나 시기를 넘어, 삶이 막힘을 벗고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모든 순간에 유효하다. 그래서 ‘신나다’는 한때의 감정이 아니라, 다시 밝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은 언어이다.

그리고 이제 그 밝음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로 번져나가고 있다. K-POP의 무대에서, 한류 드라마의 화면에서, 세계 각지의 한국 문화 애호가들의 삶 속에서, 한국인이 수천 년간 간직해 온 신명의 밝음이 다시 드러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문화가 전파되는 현상이 아니라, 인류가 함께 밝아지고 함께 신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신나다’는 이제 한국어만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전 세계인이 함께 경험하고 있는, 함께 밝아지고 함께 흥을 나누며 새로운 풍류의 장을 만들어가는 지구촌의 언어가 되어가고 있다.

 

참고문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증산도 도전편찬위원회, 《도전》, 상생출판사

행촌 이암, 《단군세기》, 상생출판사

김열규(1984), 《한국인의 신명》, 민음사

정형호(2003), 《한국인의 흥과 정서》, 한국민속학회

최래옥(1999), 《한국 전통 연희의 미학》, 집문당

조동일(1992), 《한국문학통사》, 지식산업사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2021), 「케이팝 현지화와 세계화」

Hyundai Motors(2024), “The Power of K-pop”, Hyundai Glob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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