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박홍규 역교보문고, 1991)

 

김현일

 

1.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1978년에 처음 영어로 간행된 이래 많은 관심과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그것은 이 책이 1980년 불어를 필두로 해서 서구의 여러 언어들 뿐 아니라 일본어터키어중국어러시아어로 번역되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물론 사이드의 모국어인 아랍어로도 번역되었다사이드가 태어난 1935년 팔레스타인은 영국 식민지였다아직은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이었다사업을 하던 아버지 덕택에 사이드는 서구식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1951년 16세의 나이로 미국으로 건너가 사립 고등학교를 다니고 프린스턴 대학과 하버드 대학원을 다녔다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으로 학위를 받은 후 컬럼비아 대학의 비교문학 교수를 역임하였다이러한 이력으로 볼 때 사이드는 두 세계에 모두 속한 사람이었다그의 지적 관심은 아랍 세계와 서구와의 관계였다《오리엔탈리즘》은 서구가 아랍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 사이드는 이 방식이 서구의 제국주의적인 우월감이 반영된 왜곡된 방식이라고 본다 을 다룬 책이다.

 

 

2.

사이드가 말하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란 오리엔트 세계에 대한 서양의 학문을 말한다오리엔트 세계는 주지하다시피 서양이 일찍이 고대로부터 접촉해온 지중해 동부 지역 즉 우리가 흔히 중동(Middle East)이라고 말하는 지역이다서구인들이 볼 때 오리엔트 세계는 아시아 중에서도 가까운 아시아이기 때문에 근동(Near East)이라고 불리기도 한다이 지역은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이 탄생발전한 곳이다그리고 오늘날 서구문명과 격렬한 충돌을 빚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영문학자로서 사이드는 서양 작가들의 동양관 (물론 여기서 말하는 동양이란 이슬람권 즉 중동 지역을 말한다)에 대해 연구를 하였다《오리엔탈리즘》에서 다뤄지는 서양인들의 저서는 대체로 두 가지로 대별된다하나는 전문적인 동양학자 즉 오리엔탈리스트의 저작들이다프랑스의 동양학자 사시와 르낭마시뇽 영국의 레인버튼기브 그리고 미국의 버나드 루이스 같은 학자들의 연구이다다른 하나는 샤토브리앙라마르틴플로베르디스레일리 등 작가들의 문학작품들이다비교문학 전문가로의 사이드의 역량은 후자의 문학작품들의 분석 — 텍스트 분석 — 에서 훌륭하게 발휘되고 있다사이드가 말하는 오늘날의 오리엔탈리즘은 동양 세계에 대한 학문 — 고유한 아카데믹한 전통과 용어문제의식이데올로기를 가진 학문 을 주로 의미하지만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의 형성에는 문학작품들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그가 이 책에서 많은 문학작품들 (주로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의 작품들)을 상세하게 다루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낭만주의 시대 유럽에서 동양열풍이 불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낭만주의 작가들은 동양에다 자신들의 환상을 투영하여 자신들 나름대로의 동양관 — 동양에 대한 이미지들 — 을 만들어 내었다하지만 사이드가 보여주듯이 이 시기의 문학작품들 역시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의식야만적이고 타락한 세계로서의 동양상그리고 그러한 동양을 깨우쳐주고 지배해야 한다는 턱없는 사명감 등에 젖어 있었다이것은 바로 19세기 후반의 제국주의 시대에 우리가 흔히 보게 되는 제국주의적 동양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하지만 사이드는 객관성을 내세우는 전문적인 동양학자들 — 본래적인 의미의 오리엔탈리스트들 — 역시 이러한 의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한다도대체 왜 서양인들은 동양에 대한 이러한 우월의식과 멸시감적대감에 빠지게 되었던가그것은 유럽과 동양 사이의 특수한 역사적 관계의 산물이었다. 그러므로 이 두 세계간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이해 없이는 오리엔탈리즘을 이해할 수 없다.

 

3.

동양 즉 오리엔트에 대해서 서양인들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나름대로의 이미지와 관념을 형성해왔다가장 뚜렷한 관념은 그리스인들의 것일 터이다그것은 그리스인들이 동양의 대제국 페르시아와 오랫동안 대립하였기 때문이다서양 역사학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헤로도토스의 《역사》(Historia)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중심주제로 다루고 있다그리스인들은 시민공동체인 폴리스와 오리엔트의 전제정을 비교하며 자신들은 자유로운 존재이지만 오리엔트인들은 노예와 같은 존재라는 편견을 갖게 되었다하지만 고대 서양인들의 동양인들에 대한 태도는 그렇게 적대적이지 않았다알렉산더 대왕의 경우 오리엔트 세계와 그리스 세계를 하나로 통일하려고 하였으며 두 세계의 문화적 융화를 꿈꾸었다오늘날의 중동 일대에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던 로마 제국의 경우 그 보편성으로 인해 동양에 대한 차별은 존재하지 않았다유럽인들의 적대적이고 부정적인 동양관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이슬람의 발흥 이후이다. 7세기에 태동한 이슬람은 마호메트 사후 정치세력으로서 질풍 같은 속도로 동서로 팽창을 거듭하였다북아프리카이집트시리아 등 동로마제국의 영역은 말할 것도 없고 8세기부터 9세기에 걸쳐서는 스페인시칠리아프랑스 일부 등 서유럽 지역이 회교도들의 수중으로 넘어갔다이 시기부터 이슬람은 유럽인들에게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14세기 중엽 이후에는 오스만 투르크가 그 자리를 이어 받았다회교의 첨병인 오스만 투르크에 대한 강박관념은 세르반테스의 걸출한 작품 《돈 키호테》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서양인들의 오리엔탈리즘에는 이슬람에 대한 기독교도의 공포와 적대감이 깔려 있었다.

18세기에 들어서 유럽의 국가들은 오스만 제국에 대해 공세적 위치에 서게 되었다오스트리아 제국과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을 밀어붙였으며 19세기에 와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오스만을 위협하였다나폴레옹은 1798년 영국에 대한 견제를 위해 당시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이집트를 침공하였다이후 서구 열강들은 오스만 제국에 대한 공세를 계속하였다오스만 제국은 일차대전에서 오스트리아독일 제국의 편에 서는 바람에 전후 영국프랑스에 의해 붕괴를 모면할 수 없었다전후에 영국은 이집트와 이라크팔레스타인걸프 만 지역을 차지하였고 프랑스는 시리아와 레바논을 차지하였다. (위임통치령사이드가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이집트의 경우에는 프랑스의 지배와 영국의 지배를 모두 경험하였다. 18세기 이후 유럽은 동양에 대해 정치·군사적으로 우위에 서게 되었으며 심지어 경제적으로도 앞서게 되었다이러한 우위가 동양 더 나아가 비유럽 세계에 대한 우월감을 갖게 만들었던 것이다.

 

4.

동양에 대한 인식의 체계 즉 하나의 학문으로서의 오리엔탈리즘은 언제부터 발전하였을까유감스럽게도 사이드는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의 역사를 우리가 쉽게 파악할 수 있게 정리해서 서술하지는 않는다그가 이곳저곳에서 한 말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우선 르네상스 시대에 이미 동양에 대한 부정적 표상들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단테의 《신곡》은 그 대표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하지만 사이드는 본격적인 오리엔탈리즘은 유럽이 이슬람의 위협에 시달리던 17세기에 등장한 것으로 보는 것 같다이 시기에 기독교 유럽은 상상과 학술적 지식을 결합하여 오리엔탈리즘을 만들어내었다는 것이다그러나 더 결정적이었던 것은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공이었다나폴레옹은 이집트 학회(lnstitut d’Egypte)를 창설하고 원정에 학자들을 대거 대동하였다이들의 노력으로 나오게 된 것이 1809년부터 1828년에 걸쳐 무려 23권으로 출판되었던 《이집트誌》(Description de l’Égypte)였다당시의 저명한 수학자 푸리에가 쓴 서문에서 오리엔탈리즘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고 사이드는 주장한다동양을 야만상태에서 구출하고 근대적인 문명을 가르치겠다는 서양의 오만함이 잘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그리고 무엇보다 동양의 스트레오타이프를 확정하려는 의지를 드러내었다. 19세기 샤토브리앙라마르틴플로베르레인버튼 등이 남긴 작품들은 모두 나폴레옹 원정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다또 르낭의 언어학적 연구 (1848)와 레셉스의 수에즈 운하 건설 (1869), 영국의 이집트 점령 (1882) 같은 지정학적 프로젝트도 나폴레옹 원정의 먼 연장선상에 있다고 사이드는 주장한다.

그러나 사이드는 하나의 전통과 어휘를 가진 학문체계로서의 근대적 오리엔탈리즘은 19세기에 확립된 것으로 본다근대 오리엔탈리즘의 확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 프랑스인 실베스트르 드 사시 (de Sacy, 1758-1838)와 에르네스트 르낭 (Ernest Renan, 1823-1892), 영국인 에드워드 윌리엄 레인 (Lane, 1801-1870) 세 사람이다이들에 의해 오리엔탈리즘이 과학적합리적 기초를 획득하게 되었으며 오리엔탈리스트들이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어휘와 관념이 창조되었다또 이들에 의해 동양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전문학자들 즉 오리엔탈리스트들의 공동체가 생겨났다고 한다사시는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로서 프랑스 외무부의 전속 오리엔탈리스트로 활약하였던 사람이다학자로서 그는 동양어 학자들을 양성하였을 뿐 아니라 프랑스 정부를 위한 외교문서의 번역과 외교문제에 대한 자문을 하였다그에 의해 체계적인 텍스트와 교육학문적 전통이 수립되었다그리고 무엇보다 동양에 관한 학문과 공공정책이 연결되었다사시의 뒤를 이어 오리엔탈리즘에 지적인 영속성과 더 넓은 시야를 부여한 것이 르낭이다르낭은 언어학자이자 문헌학자로서 명성을 떨친 인물이다그는 셈어에 대한 훌륭한 비교언어학적 연구를 남겼지만 셈족에 대한 심한 편견을 드러내었다《아라비안 나이트》의 번역자이자 주석가로 유명한 레인은 개인적 취향을 배제하고 동양을 관찰보고하려고 한 것으로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19세기 후반에 오리엔탈리즘의 제도적 장치들이 확대성장해갔다. (대학연구기금출판 등그리고 동시에 오리엔탈리즘은 하나의 학문으로서 점점 더 획일화된 모습을 띠어갔다이 시기에 서양 열강들의 동양 특히 레반트 지역에 대한 관심 또한 고조되었다많은 여행안내서들이 동양에 대한 일반대중의 관심을 드높였다이 시기에 오리엔탈리즘은 제국을 위한 학문체계로서의 성격을 두드러지게 띠어 갔다.

19세기 후반의 제국주의의 전개 과정(식민화 과정)에서 유럽의 동양에 대한 인식은 문헌지향적이고 관조적인 것으로부터 행정적경제적군사적인 것으로 변모했다고 한다이제 동양은 이질적인 공간으로부터 식민지 공간으로 변화하였다오리엔탈리스트들에게도 더 이상 단순한 이해 이상을 요구하게 되었다바로 정부의 대리인 (agent)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이런 역할을 한 오리엔탈리스트로서는 토마스 로렌스(1888-1935)가 대표적인 인물이다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로도 만들어졌던 이 인물은 역사학자이자 고고학자였으나 일차대전이 발발하자 육군정보장교로 아라비아에 파견되어 터키에 대한 아랍인들의 반란을 선동지도하였다.

 

5.

이차대전 이후에는 미국이 영국과 프랑스를 대신하여 세계 정치의 중심무대에 등장하였다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으로 인해 아랍 회교권은 미국인들의 중요한 관심거리가 되었다. 1973년의 제4차 중동전쟁 이후 아랍에 대한 미국 대중들의 인상은 대단히 적대적으로 변했다아랍은 유태인의 적이라는 이미지에 더해 석유공급자로서의 이미지가 더해졌다아랍인은 광대한 석유자원을 가질 자격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또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호색한불한당노예상인 등으로 나타난다뉴스에서는 아랍은 언제나 개성을 가지지 않은 군중으로 나타난다분노에 찬 비이성적인 군중의 모습은 지하드를 생각나게 만들고 회교도가 세계를 정복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오리엔탈리즘은 미국에서 근본적으로 문헌학적인 학문이 아니라 사회과학의 한 분야로 되었다이제 오리엔탈리스트는 더 이상 동양의 난해한 언어를 습득하려고 하지 않는다미국에서는 오리엔탈리즘의 뿌리 깊은 전통이 없었기 때문에 동양에 대한 지식이 문헌학적인 연구로부터 시작되어 정밀화복잡화되는 과정이 일어나지 않았다동양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사회과학적이었기 때문에 문학에 대한 관심은 크게 약화되었다지역의 주민들은 몇 가지 태도와 경향통계수치로 환원되었다. “인간성이 박탈된 것이다.”

저자는 미국의 동양에 대한 관심 역시 제국주의적인 의도에서 출발한 것으로 본다일차대전에 미국이 참전하게 된 데에는 시오니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미국의 정책적 이해가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고 사이드는 주장한다하지만 이차대전기에 와서야 중동에서의 미국의 이해가 크게 높아진다북아프리카와 더불어 이 지역은 전쟁의 무대였을 뿐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가 개척한 석유와 전략적인적 자원의 개발을 이어받으면서 미국은 전후 이 지역에서의 제국으로서의 역할을 준비하였다.

미국의 이러한 역할의 한 면이 문화관계정책이다특히 중동에서의 공산주의와 이슬람이라는 미국의 경쟁세력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에 의해 중동 연구를 위한 기관이 생겨나게 되었다. 1946년에 설립된 중동연구소가 그 대표적인 기구이다사이드는 현대 미국의 오리엔탈리스트들에 대한 심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대표적인 인물이 중동 지역을 연구하는 역사가인 버나드 루이스(Bernard Lewis)이다우리나라에도 여러 저서가 번역소개되어 있는 루이스는 객관적인 학자를 가장하여 아랍과 이슬람을 헐뜯는 데에 열중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1994년 판에 붙인 후기에서 루이스에 대한 적대감은 일층 높아진다이는 루이스가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부정적인 비판을 했기 때문이다루이스뿐 아니라 미국에서 정책자문을 하는 중동 전문가들은 모두가 오리엔탈리즘에 물들어 있다고 사이드는 주장한다.

하지만 편견에 물든 빈약한 지적 도구를 가진 오리엔탈리즘이 여전히 번성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그것은 오리엔탈리즘이 신제국주의에 성공적으로 적응하였기 때문이다아랍 세계의 경우 정치문화지적으로 미국의 위성지역이다아랍의 대학들은 여전히 식민지 시대의 패턴을 따라 운영되고 있으며 질이 형편없다제대로 된 연구소도 없고 훌륭한 도서관도 찾아볼 수 없다그러므로 뛰어난 학생들은 미국으로 가서 공부를 한다아랍의 문화는 미국과 유럽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특히 엘리트 문화가 그렇다아랍 세계에서는 아랍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기관이나 저널도 없다오히려 미국에 있는 것이다그러므로 아랍의 학생은 미국에 가서 미국 오리엔탈리스트의 지도를 받는다그리고 배운 것을 귀국하여 반복하게 된다그는 미국의 오리엔탈리스트에게 기껏해야 원주민 정보제공자 역할을 한다또 아랍 세계는 미국의 소비문화에 물들어 있다문제는 미국은 아랍 세계의 한 두 제품만을 소비하는 대신 아랍은 다양한 미국의 상품 — 물질적인 것 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상품까지도 — 에 의존한다이로 인해 심각한 결과가 생겨난다미국의 매스미디어가 제공하는 동양에 대한 문화적 이미지가 동양에서도 표준적인 이미지로 자리잡게 된다는 것이다서양의 시장경제와 그 소비형태는 시장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연관된 지식계급을 창출한다그리하여 공학경영경제학에 중점이 두어진다아랍의 지식계급은 미국으로부터 받아들인 근대화진보문화에 대한 관념들을 정당화하는 역할 즉 근대화 역할을 한다오리엔탈리즘이 만들어낸 가르침과 이미지를 지식분자들이 묵수함에 따라 경제정치사회적 교류에서 오리엔탈리즘이 미치는 영향이 강화된다즉 근대 동양은 자신의 오리엔탈화에 가담하는 것이다.

 

6.

사이드는 1994년에 쓴 「후기」(Afterword)에서 오리엔탈리즘과 연관된 근원적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즉 우리는 다른 문화를 어떻게 표현(표상)할 것인가?, 다른 문화란 무엇인가상이한 문화라는 개념은 유용한 것인가아니면 자화자찬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타자에 대한 적대감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것은 아닐까문화종교인종적 차이는 사회경제적 범주 혹은 정치역사적 범주들보다 더 중요할까어떻게 하나의 관념이 당연한 진리로 여겨지게 되는가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비판적 의식은 어느 정도로 중요할까?

그는 자신의 《오리엔탈리즘》에서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답을 독자들이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정체성에 대해서 이론적인 논의를 펼친다집단적 경험의 저장소인 아이덴티티 (정체성)는 대립물 즉 타자의 구축을 통해 형성이 된다어떠한 시대나 사회이건 타자를 창조해내며 또 계속해서 재창조해낸다한 사회가 갖고 있는 자신에 대한 아이덴티티는 하나의 해석적 과정이다여기에는 타자의 정체성 규정이 포함된다이러한 과정은 심리적 과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치 이슈들을 내포하는 긴급한 사회적 경쟁이다아이덴티티 형성과정은 단순한 학술적인 일이 아니라 권력의 배분과도 연관되어 있다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민족의 아이덴티티집단의 아이덴티티를 고정적인 것으로 본다사이드는 자신이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다시 한번 분명하게 후기에서 밝히고 있다즉 다양한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역동적이고 복잡한 인간현실을 오리엔탈리즘은 무비판적으로 본질주의적인”(uncritically essentialist) 관점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이러한 접근법은 동양의 현실이 고정적이라는 전제 그리고 서양의 현실 역시 고정적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사이드는 이러한 관점은 동양을 저 먼 높은 곳으로부터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한다이러한 관점은 역사적 변화를 감춘다고 사이드는 비난한다또 오리엔탈리스트들의 이해관계도 숨기도 있기 때문에 사악한 것이다여기서 다시 한번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스트들의 이해관계가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공으로 시작된 근대 제국주의 단계의 일반적 상황과 분리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즉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하나의 학문이 순수한 인식체계가 아니라 서양 제국주의의 동양 지배를 위한 인식체계라는 것이다.

사이드는 자신의 책이 바로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의 족쇄로부터 지식인들을 해방시키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그리고 새로운 시각에서 역사적 경험을 해석하려는 시도들을 들며 자신의 책이 제국주의적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투쟁의 일환으로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고 자부하고 있다사이드는 1993년에 《오리엔탈리즘》에서의 논의를 좀 더 확장하여 제국주의와 문화의 관계를 다룬 《문화와 제국주의》(Culture and Imperialism) 를 출간하였다.

 

7.

증산도 사상의 주요 테마의 하나가 문명론이다증산상제는 동양이 서양에 짓밟혀 서양의 수중으로 넘어가려던 시기에 이 땅에서 활동하였다그의 천지공사 가운데 세운공사는 동서양간의 관계를 바로 잡고 선천문명들의 진액을 뽑아 새로운 통일문명을 만드는 것을 주요한 내용으로 하고 있다증산상제가 말하는 후천문명은 기독교의 새 하늘과 새 땅처럼 어느 날 천상으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선천 여러 문명의 문화의 진액을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다이것이 증산도 사상의 후천문명이 기독교의 종말론과의 주요한 차이를 보이는 점이다물론 후천문명의 건설은 인간들의 몫이다그 건설은 인간들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그런데 각 족속의 문화에서 진액을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각 민족의 종교가 아닐까 싶다종교는 많은 사람들의 가치가 오랜 세월을 거쳐 응축되어 온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오늘날의 현실을 보면 종교는 상이한 문명간의 대화와 교류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가기도 한다특히 서구 세력과 회교도 세력 사이의 다양한 갈등과 충돌은 현재 매우 심각한 양상을 띠고 전개되고 있다새무얼 헌팅턴의 문명 충돌이 바로 이런 갈등일 것이다사이드의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것도 서양 기독교 세계에서 아랍권의 종교인 이슬람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과 왜곡된 이미지들이다인류의 평화와 공존그리고 상생적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다른 문화와 종교에 대한 열린 태도일 것이다증산상제는 무신년에 류찬명에게 동도를 헐뜯는 자는 동으로 갈 길이 없고 서도를 헐뜯는 자는 서로 갈 길이 없느니라.” (《도전》 2:114:2)라고 하셨다동서양은 서로를 배울 필요가 있다그렇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의 도(즉 상대방의 종교에 대한 존중심을 가져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다른 문명의 장점을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이러한 증산상제의 가르침을 염두에 둔다면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사이드의 책은 동서양간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그 의의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8.

마지막으로 사이드의 주장이 갖고 있는 약점을 몇 가지 지적해 보자.

1) 사이드는 동양과 서양을 구분하여 그 차이를 강조하는 태도를 비난한다동양과 서양이 인위적인 구분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현실과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학자들이 중동 지역의 문화에 대하여 서양이나 아시아의 다른 지역과 비교하는 것 자체는 중동 지역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며 또 필요한 것이다하지만 중동의 지리적 특성 (사막과 유목 생활)이 이 지역의 문화와 정치경제를 영원히 결정짓는다고 보는 것은 비역사적일 것이다모든 오리엔탈리스트들이 이러한 비역사적 지리적 결정론에 빠져 있다고는 할 수 없다방법론적으로 볼 때 일반화와 단순화유형화는 필요한 것이다.

2) 중동의 문화와 정치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대해 사이드는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다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국외자들은 중동 지역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할 능력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이는 매우 폐쇄적인 자세이다국외자가 내부자보다 더 예리하고 정확하게 현실을 파악하는 경우가 많다실제로 유럽 오리엔탈리스트들의 연구 가운데에는 중동 지역에 대한 깊은 연구들이 많다는 지적을 학자들은 하고 있다오리엔탈리스트들이 제국주의의 앞잡이인 것처럼 말하는데 이것도 지나친 주장이다예를 들어 영국과 프랑스에서 아랍어 교수직이 설치된 것은 제국주의 시대가 시작되기 훨씬 전이 16세기였다.

3) 중동 지역과 동아시아 사이의 차이점 두 지역 모두 서양 제국주의와 서양 문명에 대한 반발을 한 경험이 있다하지만 현재 동아시아 지역과 서구와의 갈등은 거의 없는 편이다이는 동아시아의 근대화의 성공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동아시아는 근대적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서구식 교육과 생활방식을 광범하게 받아들였다이러한 서양 문화와 문물에 대한 반발은 동아시아에서는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동아시아와 서구가 가치관에서 비슷해졌기 때문일 것이다반면 중동 지역은 근대화에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그 이유는 무엇일까서양 제국주의가 더 가까이 있고 더 오래 전부터 간섭해 왔기 때문일까아니다우리는 그 해답을 중동 지역의 내부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포괄적 의미의 문화가 해답을 제공할 것이다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종교라고 한다면 이슬람이 근대화를 저해한 요소로 작용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종교는 가치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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