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천문학과 북두칠성 신앙의 형성배경
동양인에게 천문학은 매우 중요한 학술이었다. 천문학은 자연의 신비로움과 합법칙성에 대한 종교적 외경심과 호기심이 낳았던 산물이었으며, 우주의 이법과 인간사회의 윤리적 결속의 인식이었고, 그것은 송대철학에 이르러 유기체적 철학으로 발전하는 기반이 되었다.
천문학은 크게 우주 구조론構造論과 우주 생성론生成論으로 이루어진다. 구조론 없는 생성론은 신비 투성이의 신화에 불과하며, 생성론 없는 구조론은 냉엄한 과학에 지나지 않는다. 동양의 천문학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겨냥하는 특징을 갖는다.
동양의 천문학에 내재된 다양한 의미 중에서 별에 대한 신앙[星宿信仰]은 동양인의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테마이다. 세계적인 과학사가科學史家조셉 니덤Joseph Needham(1900-1995)은 “그리스와 유럽의 천문학은 태양이 지나가는 황도12궁에 관계되었으며, 동양의 천문학은 북극성과 하늘의 적도 근처에 있는 별들의 관측에 의존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서양의 천문학은 낮에 천체를 관측하는 태양 중심의 측정이 발달한 반면에, 동양의 천문학은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관측하는 천문학이 발달하였다. 동양의 역법이 고대로부터 정확한 태양력太陽曆의 캘린더가 실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달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하는 태음력太陰曆이 일상생활의 시간표로 주로 사용되었다.
밤하늘을 여행하는 무수한 별들은 어부들에게는 소중한 신호등이었으며, 농부에게는 농사 스케줄 작성의 유용한 잣대였다. 해와 달의 규칙적인 운행은 하늘과 인간이 의사소통하는 통로(안테나)였다. 하늘은 일월성수를 통하여 자신의 의지를 표출하고, 인간은 밤하늘을 수놓은 무늬를 들여다보고 삶의 준거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대철학漢代哲學의 근간이었던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이다. 그것은 자연학과 인간학의 통합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현대의 천문학은 거대한 허블 망원경으로 우주의 탄생(빅뱅과 연관된)의 수수께끼를 수학공식으로 풀어헤치는 자연과학이다. 그것은 이성적 언어와 측정과 분석만이 동원되는 천문학Astronomy이다. 하지만 동양의 천문학은 출발부터 수많은 행성들의 걸음걸이가 남긴 발자취, 즉 하늘의 무늬와 글월에 관한 학문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일종의 천지의 언어체계였다. 별들이 움직이면서 벌이는 잔치는 인간의 수명과 운명을 관장한다는 이른바 점성학占星學(Astrology)의 성격이 강했다.
점성학을 비롯한 동양 천문학의 중심에는 항상 북두칠성이 자리잡고 있다. 동양인들은 북두칠성을 하늘의 모든 별들과 천도天道 운행의 중추가 되는 별자리라고 간주했다. 사마천司馬遷(BCE145-BCE86)이 지은『사기史記』「천관서天官書」에는 북두칠성의 위상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북두칠성은 이른바 선旋과 기璣, 옥형玉衡으로 칠정七政을 고르게 하는 별자리다. … 두斗는 천제天帝의 수레로서 중앙에서 움직이며 사방을 통제한다. 음양을 나누고, 사계절을 세우고, 오행의 운행을 고르게 하고 계절변화의 도수度數를 주관하며, 모든 기원紀元을 정하는 것이 모두 북두칠성에 달려 있다.”
북두칠성은 일곱 개의 별로 구성된다. 천추天樞, 천선天璇, 천기天璣, 천권天權, 옥형玉衡, 개양開陽, 요광撓光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부두칠성이 ‘천제의 수레’라는 주장은 북극성을 선회하는 천문현상을 보여 준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달력을 제정하는 기준과 종교적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북두칠성이 하늘의 중앙을 움직이면서 사방을 제어한다는 관념은 문화의 각 방향, 특히 정치에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예컨대 공상적 복고주의 개혁가이자 야심가로 신新 왕조를 세운 왕망王莽(BCE45-AD23)은 북두칠성의 모형을 본뜬 ‘위두威斗’를 주조해서 왕실 안팎 어디에서도 항상 곁에 두었던 점성술의 신봉자였다. 왕망은 천문을 담당하는 관리에게 자기 옆에서 수시로 북두칠성이 천구의 북극을 중심으로 선회하는 상황을 보고하게 하고, 자신은 그 보고에 따라 앉은 방향을 조정하여 북두칠성의 자루[斗柄]이 가리키는 방향과 일치시키려는 했다는 사실은 북두칠성을 정치의 관건으로 삼았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북두칠성의 자루가 가리키는 곳에 북극성이 있다. 북극성은 생명의 모체로서 시간과 공간의 중심축인 까닭에『주역』에서 말하는 팔괘도의 근간은 북방에 자리한 괘로부터 만물 생성이 시작된다고 표현하고 있다. 인간이 동서남북을 인식하는 근거도 북방에 있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북방을 먼저 선별할 수 있기 때문에 사방의 구별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인간세상에서 천자天子가 정치의 중심축이듯이 천상에서는 북극성北極星이 정점을 이룬다. 하늘의 구조가 그대로 투영된 것이 바로 지상의 질서이며, 인간세상은 천문의 원리가 운용되는 곳이라는 이념이 성립된다. 천문현상을 지배하는 대표적 운행방식이 ‘28수宿’이다. “28수는 북두칠성과 결합되어 방위나 시간을 나타내는 지표로 기능한다. 그것은 하늘의 적도 또는 황도 주위에 포진된 28개 별자리이다.”
하늘과 땅의 지리적 대응관계, 하늘과 인간의 대응관계에 기초한 ‘별에 대한 신앙’은 곧잘 국가의 안녕과 풍요와 전쟁과 부강을 비롯하여 개인의 길흉화복과 운명을 관장하는 것으로 확대되기에 이른다. 특히 하늘의 최고 주재자에 대한 제천의례가 국가책임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행사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개인의 무병장수와 추길피흉趨吉避凶을 기원하는 별자리 신앙 역시 다양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사기史記』「천관서天官書」에 나타난 북두칠성에 대한 논의는 후대 칠성신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북두칠성을 천제의 수레[帝車]로 규정한 점에 있다. 후한後漢의 화상석에는 북두수레를 탄 천제가 신하들을 거느리고 있는 형상이 그려져 있다. 이는 북두칠성을 우주운행의 핵심축으로 인정하는 별자리신앙의 근간이 되었던 것이다.
특히 도교의 전통에서 별자리 각각에 지상의 사회조직과 유사한 관직과 위계질서를 부여함으로써 하늘의 모든 성수들을 구체적인 인격신으로 이해하기에 이른다. 북극성의 자미대제紫薇大帝를 정점으로 그외 모든 별자리들을 그 권능과 직책이 분명한 성관星官들로 자리매김한다. 이런 성관사상星官思想은 당송대唐宋代에 활발하게 전개되기에 이른다.
도교가 흥성한 이후에는 칠성七星 각각이 인간의 수명과 운명을 관장한다는 이론으로 전개된다. “중국에서 6-7세기 경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밀교密敎의 영향으로 당대唐代에는 북두칠성을 비롯한 28수宿 등 여러 가지 성관신앙星官信仰이 절정에 이른다. 불교의 북두칠성 관념의 특징은 두괴斗魁에서 두병斗柄 방향으로 일곱별의 명칭을 탐랑성貪狼星, 거문성巨門星, 녹존성祿存星, 문곡성文曲星, 염정성廉貞星, 무곡성武曲星, 파군성破軍星이라 부르고, 그 각각의 별이 인간의 요수장단壽夭長短과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주관한다는 데 있다.
한대漢代의 점성술이 주로 천지인 3재, 음양오행설 등 우주의 규범원리를 주관하는 것으로 이해된 것에 비해서, 불교의 칠성신앙은 개인의 기복적 동기를 중심으로 삼는다. 탐랑은 탐심貪心을, 녹존은 복록福祿을, 염정은 청렴과 곧음을, 문곡과 무곡은 문무文武의 두 범주를, 파군은 적진을 부수듯이 양재禳災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에 반해서 도교의 칠성신앙은 한대漢代의 천문 우주론적 맥락이 강하기 때문에 칠성의 명칭도 규범론적 성격이 강하다.”
이처럼 칠성신앙에는 동양인 고유의 칠성신앙과 불교와 도교적 성향이라는 삼자의 특징을 결합한 형태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칠성신앙에는 전통의 천문학 이론을 포함하면서도 과거의 학술적 담론을 넘어서는 종교의 성격으로 전환된 두 얼굴로 승화된 성격이 있다.
<상생문화연구소 동양철학부 양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