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에서 본 근대문명과 신
일반적으로 근대문명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 부정으로부터 정반대의 긍정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로 엇갈릴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여러 가지 평가들을 나열하는 대신, 이 글에서는 증산도 『도전』의 관점에서 근대문명에 대한 담론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여기서 “오늘의 서양문명”(도전 4:13:7), “현대의 문명”(『도전』 2:30:7)이라 표현된 개념은 그 서술 시점으로 볼 때, 넓은 의미에서 근대문명과 현대문명을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개념은 “문명신”과 “천국문명”이라는 증산사상 고유의 프리즘을 통해서 바라본 것이다.
이 관점은 지금까지의 문명론이 전혀 보지 못했거나 무시했던 새로운 요인을 끌어들임으로써 새로운 담론을 전개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있다. 물론 이와 유사한 생각을 한 선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현대 독일의 고전적인 기술철학자 데싸우어(F. Dessauer, 1881~1963)는 서양의 과학기술이 천국의 이데아적 원형을 모방한 것이라 했고, 멀리 그리스의 이상주의 철학자 플라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세계가 이데아(idea)라는 완벽한 세계를 모방한 것이라 주장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사상들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 바로 『도전』에 나타난 근현대의 문명관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든 이 관점은 지상의 현상을 천상 혹은 다른 세계와의 연관성에서 고찰한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근대의 출발점은 신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인간의 이성이다. 이성(理性, ratio)은 곧 합리성(合理性, rationality)으로 통한다. 합리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은 수학이다. 수학은 근대에 이르러 해석학, 대수학, 기하학 등으로 발전했는데, 달람베르, 라그랑주, 가우스, 뉴턴, 오일러, 데카르트 등이 대표자다. 이 일군의 천재 수학자들은 비약적인 수학의 발전을 견인함으로써, 근대의 과학과 기술, 나아가서 학문 일반과 예술 등 모든 문화와 문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발판을 마련했다.
합리성에 다가서는 다른 하나의 길은 인간의 경험에 의지하는 일이다. 경험을 가장 확실하고 정확하게 확보하는 수단은 실험과 관찰이다. 실험과 관찰을 바탕으로 급속한 발전을 한 것이 곧 근대의 자연과학이다. 근대과학의 발전은 가히 과학의 혁명이라 할 만한, 과학 발전의 역사에서 일대 사건이다. 그러기에 이 사건을 단순히 이성적, 합리적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면이 있다. 근대의 과학발전은 누군가 그 전(全) 과정을 미리 기획하고 조정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급속하고도 체계적인 전개이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아무리 해도 인간일 수는 없어 보인다. 그 과정이 너무나 급작스럽고 광범위하며, 체계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인데, 『도전』은 이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지상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동양의 문명신들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간 이마두 신명의 숨은 활약은 문명신들로 하여금 천상으로 올라가서 그 발달된 문명을 체험하고 돌아와 인간들의 ‘알음귀’(『도전』 2:30:6)를 열어준다. ‘알음귀’란 인간의 감각적 차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고도의 영감과도 통하는 신적인 예지력이다.(『도전』 2:30)
이렇게 하여 지상에 성립한 자연과학의 급속한 발전은 결과적으로 기술의 발전을 자극했다. 예컨대 영국의 공업 생산량의 급속한 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연료인 석탄을 확보하기 위한 탄갱의 구축, 석탄의 수송, 석탄을 이용하는 데 따르는 제반 기술 등을 급속히 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기술 개발과 공업 분야의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함으로서 산업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근대의 과학기술의 발전에 의한 산업혁명은 인류의 삶에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했다. 근대의 서양문명은 가히 천국의 문명을 지상에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사실이다. 기계의 등장은 인간의 삶을 매우 편리하게 했다. 기계는 인간의 노동을 대신했을 뿐만 아니라 빠르고 정확했다. 고질적인 자연재해는 물론 인간에 대한 자연의 지배를 벗어나도록 한 것도 바로 기계와 기술의 역할로 인한 것이었다. 이론적으로만 본다면, 기계는 인간의 모든 일을 떠맡을 뿐만 아니라 에너지손실을 전혀 가져오지 않는 영구기관조차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기에 증산 상제님은 “선천은 기계선경”(『도전』7:8)이라 했다.
그러나 근대문명은 분명 동시에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다. 기계의 등장이 가져온 대량생산과 능률의 극대화는 도리어 실업자를 생겨나게 하고, 또한 육체노동의 신성함을 없앰으로써 정신을 황폐화하게 된다. 대량생산은 또한 근대자본과 자본가를 등장하게 하여 노동자는 무의미한 노동으로 일의 적극적 의미를 빼앗았다. 또한 근대 자본은 국경을 넘어 해외에 진출하고 국가는 이를 뒷받침하는 가운데 식민지쟁탈전이 벌어지게 된다. 식민지의 주민들에 대한 강탈과 착취, 나아가서 노에를 양산하고도 모자라 지구 곳곳에 천인공노할 참상이 연출된다. 이렇게 몸서리치도록 무서운 면모를 가진 근대 서양문명의 참상을 직시한 증산상제님은 이를 이렇게 질타한다.
그러나 이 문명은 다만 물질과 사리(事理)에만 정통하였을 뿐이요, 도리어 인류의 교만과 잔포(殘暴)를 길러 내어 천지를 흔들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로 모든 죄악을 꺼림 없이 범행하니 …(『도전』2:30)
근대문명의 탄생을 실질적으로 뒷바침한 자연과학은 자연을 순수하게 인식하는 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것은 적극적으로 자연에 작위적 작용을 가하여 그것을 변화시키고 인간을 위해 이용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열중했다. 말하자면 자연과학이 자연의 법칙에 대한 체계적 인식에 종사하는 것은 자연을 인간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기 위한 무의식적 혹은 숨은 관심에 봉사하는 측면이 있었다. 물론 자연과학자들은 이것을 부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연과학이 결과적으로 자연을 이용하고 지배하는 데 일조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하여 근대인은 과학기술을 이용해 자연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시하는 교만한 마음이 생겨나게 되었다. 자연의 지배와 정복은 이러한 과정을 거친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요 오만이다. 인간은 단지 과학기술의 작은 성과에 우쭐해지고 교만해졌을 뿐이다. 일찍이 영국 경험주의 철학의 선구자 베이컨(F. Bacon, 1561~1626)이 말했듯이, 진정으로 자연을 지배한다는 것은 자연을 잘 이해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다. 자연의 고유한 법칙과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당장은 자연을 지배하는 듯이 보이지만, 결국은 도리어 자연에게 지배당하게 된다. 예컨대 강을 막아 물을 가두고 이를 농수용으로 사용하려 하는 경우, 우선은 이득인 것처럼 보이지만 길게 보면 녹조가 형성되어 수질을 오염시키고 그곳에 있던 생물을 몰살시킬 수 있으며, 나아가서 안개를 발생하게 하여 농작물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의 자연과학은 자연에 위해를 가해 놓고는 자연을 정복했다고 자만했다. 자연을 잘 보존하여 함께 살아야 할 동반자가 아니라 정복과 이용의 대상으로만 치부했던 것이다.
자연에 대한 이용과 지배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폭력성을 조장한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폭력성은 자연으로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제외한 타인이나 타국가로 향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근대의 과학과 기술로 무장한 근대국가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아메리카를 무력으로 침략하여 경제적, 문화적 수탈을 자행했다. 이것이 바로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로 모든 죄악을 꺼림 없이 범행”한다는 지적이다. 자연과 타인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은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회의적 자문이 절로 나오게 한다.
근대에 들어서 관심의 중심은 신에서 인간 자신으로 이동했다. 이를 통해서 결과적으로 드러난 인간의 모습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인간은 결코 본래의 이성적인 의미에서의 존엄한 존재가 아니라 한편으로는 이기적 욕망의 덩어리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과학에 의해 파악된 기계론적 인간이었다.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데카르트는 비록 영혼과 이성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자동기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간관을 피력했다. 더구나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인 라 메트리(La Metrie)는 인간의 영혼조차도 물질적 작용으로 설명하려 했다. 인간이 자동기계의 모습으로 그려짐으로써 전통적 의미의 영혼과 정신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 영혼과 정신이 없는 인간은 신과의 동질성을 상실하기 때문에 신과의 교섭 또한 불가능하게 된다. 근대인은 전통적인 천지인(天地人)의 질서 자체를 교란하여 세계 자체가 혼란스럽게 되었다는 증산상제님의 정확한 지적은 이런 문맥에서 쉽사리 이해가 된다.
신도의 권위가 떨어지고 삼계가 혼란하여 천도와 인사가 도수를 어기는지라.(『도전』2:30)
전통적 의미의 신의 역할은 근대세계에서는 불필요해지는 것이다. 신이 없는 세계는 무질서가 횡행하게 되고 인간은 홀로 자유로운 존재로 자처하게 된다. 인간이 신의 권위를 대신하면서, 신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게 되어 삼계가 혼란해진 바로 이 때, 신들이 사는 천상의 세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증산도 도전』에 따르면, 지상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가 근대 과학기술문명을 건설하는 데 숨은 힘이 된 리치 신명 역시도 근대문명이 가져온 비참한 현실을 여실히 목도했다. 인류를 참으로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천국의 문명을 본떠 근대의 서양 문명을 건설했으나, 인간은 도리어 더욱 사악해지고 세계는 헤어나기 힘든 나락으로 끝없이 빠져들고 있었다. 인간이 사는 지구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변해 총체적 난국의 상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근대문명이 불러 온 문제는 너무나도 심각한 수준이어서 모든 신명들의 힘을 합쳐도 해결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급기야 리치는 신들의 우두머리들을 거느리고 하느님께 나아가 탄원을 하였다. 제발 이 세상에 왕림하셔서 지금의 범지구적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달라고. 이 간절한 탄원을 듣고 하느님, 즉 상제님은 부득이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마두가 원시의 모든 신성(神聖)과 불타와 보살들과 더불어 인류와 신명계의 큰 겁액(劫厄)을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하소연하므로 내가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이마두를 데리고 삼계를 둘러보며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신미(辛未, 1871)년에 스스로 이 세상에 내려왔나니…(『도전』2:30)
상제님은 먼저 리치의 고향이자 서양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기독교의 정신이 뭉쳐 있는 베드로 성당, 즉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리치와 더불어 삼계를 두루 둘러본 후 예로부터 신교(神敎)를 통해 여러 신들과 상제님을 잘 받들어 모셔 온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땅에 강세하게 된다.
우주의 주재자인 상제님이 이 동방땅 조선에 강세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배경이 있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제출호진(帝出乎辰)’, ‘성언호간(成言乎艮)’(周易)이라 하여 이미 상제님의 조선 강세가 예고되어 있었고, 또한 한반도의 지기(地氣)는 지구의 혈(穴)자리에 속한다. 즉 한반도는 풍수지리적으로 상서로운 땅으로서 상제님이 강세할 수 있는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래서인지 조선 백성들은 예로부터 신들과 상제님을 잘 신앙해 왔다. 그리고 금산사 미륵전을 세운 신라의 중 진표(眞表)는 상제님과 깊은 인연(『도전』2:66; 2:7)을 맺고 있다.
상제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한 일은 삼계의 겁액을 끌러 구원하기 위해서 천지공사라는 전인미답의 해결책을 마련한 것이다. 천지공사는 결국 신의 권위가 떨어지고 삼계가 혼란해진 것을 복원하여 결국 인간이 다시금 이 땅 위에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근대문명이 천상의 문명을 이식한 것이지만 그 부정적 영향으로 세계를 어둡게 했지만 결국은 그것을 극복하여 원래의 천국문명을 이 땅 위에 건설하도록 한 것이다.(끝)
<상생문화연구소 서양철학부 양우석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