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반본: 근본으로 돌아가라
2) 일심으로의 원시반본
그렇다면 이러한 일심은 어떻게 가능한가. 즉 인간은 어떻게 함으로써 원래의 근본적인 통일된 마음자리를 회복할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마음의 회복은 수행의 결과이지 논리의 결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도전》에 “내가 삼계대권을 맡아서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치고 후천을 개벽하여 선경을 건설하리라. 너희들은 오직 마음을 잘 닦아 앞으로 오는 좋은 세상을 맞으라.”(2:74:2-3)라는 구절과, “마음 닦는 공부이니 심통心通공부 어서 하라”(11:250:10)는 구절은 바로 마음 닦는 수행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도통천지 해원상생道通天地 解寃相生”(11:249:6)이란 구절에서 ‘도통천지’는 우주의 원리를 일심의 경지에서 통찰함이며, 이는 천지의 원리와 인간의 마음 씀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님을 깨닫는 차원으로 이해될 수 있다. 도통천지 해원상생道通天地 解寃相生”은 도통천지의 경지가 해원, 상생과 상관적임을 보여준다. 천지의 도통은 선천의 상극질서로 인해 삐뚤어진 천지가 본래의 근본을 회복하는 것이며, 원과 한에 사무친 모든 생명존재와 신명존재를 해원하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상극이 아니라 상생을 근본 이치로 갖는 새로운 세상의 바탕이 될 것이다. 일심의 경지에서 천지의 이치가 인간의 마음 씀과 같음을 통찰하는 것, 즉 마음의 근본으로 원시반본 하는 것에는 먼저 해원과 상생이 요구되어야 한다. 인간과 신명의 원의 뿌리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그리고 우주 자연의 상극의 이치 속에서 일심의 경계는 찾아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구원되기 위해서는 구원의 요소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구원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어떤 측면 때문에 구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증산도에서는 구원의 대상에 대해 “오늘날의 인류는 그 누구도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 있다. 인간이 범한 죄악으로부터 커지기 시작한 이 병의 뿌리는 무엇으로부터 잉태된 것인가.… 이 죄악과 죽음의 근원은 마음 깊은 곳에 맺혀 있는 ‘원한寃恨’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한다. 이 말에서 우리는 증산도의 구원관은 인간이 구원되어야 하는 까닭을 원한에서 찾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원한이 생겨나는 기원에 대해서 《증산도의 진리》는 “인간은 누구나 뜨거운 소망과 욕망을 가지고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인간은 자신의 동기가 본래 선의든 악의든 간에 자신의 불타는 소원과 욕구 충동이 일단 좌절되면 가슴에 응얼병이 들어 분통이 터지고 마음 깊은 곳에 원한이 맺힌다. 이것은 육신을 쓰고 있는 인간의 영원불변한 순수한 본질이다.… 인간의 죄는 마음에서 일어나서 말과 생각함으로 번지며 행동으로 옮길 때 표면화된다. 죄의 뿌리가 원한 속에 뻗어 흐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즉 인간의 원한은 바로 인간의 무한한 욕망구조 속에서 드러난 것이며, 이러한 욕망구조는 선천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선천의 이치는 인간을 욕망과 충동의 존재로 이끄는 상극적 상황을 드러낸다. 선천의 자연 속에서 분열된 인간의 본성은 우주의 가을 개벽과 함께 구원의 계기를 마련하여야 하며, 그 계기는 바로 일심의 회복, 심적 원시반본이다.
증산도의 죄악개념은 기독교의 원죄原罪와는 달리 인간의 문제이고 이 인간의 문제는 상극의 이치로 인한 욕망의 구조, 그리고 원한의 불가피성에서 찾아질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이 구원되기 위해서는 원한을 풀어버림으로써 욕망과 죄악과 고통의 근원을 없애 버려야 한다. 이를 해원解寃이라고 한다. 즉 해원은 욕망의 소멸이면서 동시에 고통과 죄의 소멸이며 반드시 이를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인류구원의 단서는 일차적으로 해원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의 《도전》 구절은 해원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각기 원통함과 억울함을 풀고 혹은 행위를 바로 살펴 곡해를 바로잡으며, 혹은 의탁할 곳을 붙여 영원히 안정을 누리게 함이 곧 선경을 건설하는 첫걸음이니라. (4:17:8)
이는 천지와 인류역사 속에 누적된 원한의 고리를 풀어 버릴 때 지상선경을 향한 구원의 문을 열 수 있으며, 상생의 대도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원은 인간과 신명의 한과 죄의 근원으로 돌아가서 그 한의 고리를 풀어 버림으로써 후천선경의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가는 방안이다. 이러한 해원은 천지의 질서를 바로잡고 신도를 바로잡으며, 인간의 이상적 문명을 예정하는 천지공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현실화된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구조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선천의 상극적 이치로 인한 이차적인 것이지 본래적인 것은 아니다. 즉 인간이 무한한 욕망구조를 갖고 죄를 탄생시키는 것은 선천의 뒤틀린 환경 때문이다. 선천에는 상극의 이치가 인간 사물을 맡았으므로 모든 인사가 도의에 어그러져서 원한이 맺히고 쌓여 삼계三界에 넘침에 마침내 살기가 터져 나와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4:16:2~3)킨다. 따라서 인간의 원한의 근거는 바로 선천의 자연환경이다. 원래 인간의 마음의 본질은 무극의 통일상태, 즉 일심으로 존재한다. 그러한 일심의 상태는 자연환경의 상극질서로 인해 분열 성장하여 무한한 욕망구조를 갖게 되었다. 따라서 해원은 상극의 이치로 인해 분열된 마음을 통일시키는 조건으로서 일심과 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후천개벽을 통한 상생의 이치 속에서 자연과 인간과 신명이 조화로운 생명의 뿌리를 되찾아가기 위한 조건은 해원이다. 이는 해원이 인간의 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함의한다. 증산도의 죄악과 구원의 문제는 완전히 인간의 실천의 차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초월적 차원도 아니다. 역사에 기록된 원한의 기원은 단주丹朱의 원寃이며, 그 원한이 풀릴 때 인간의 모든 원한의 고리가 풀린다는 것은(4:17:1), 원과 한, 그리고 해원이 인간적인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더 나아가 살펴보면 이러한 원寃의 역사의 근원은 선천의 상극구조 때문이다. 즉 선천의 원한은 선천의 상극질서 속에서 발생한 인간의 행위로 인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원한의 근거가 선천의 우주환경으로 인한 인간의 상극적 행위 때문이라면 해원의 가능성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후천개벽과 천지공사는 우주 주재자의 절대적 권능에 의해 이루어지며, 이는 해원의 가능근거이다. 선천의 난법이 해원되고 천지의 이치가 상극에서 상생에로 전이됨으로써 인류의 역사와 문명은 그 본래적 조건을 회복할 것이며, 인간의 심적 본성도 그 근원적 경계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해원과 상생은 인간의 원을 끌러 버리는, 그리고 인간 상호간에 생명을 살리는 한정된 의미만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자연과 인간과 신명의 해원, 상생이라는 총체적 의미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해원은 분열성장하는 선천에서 어그러진 생명의 본래성을 바로잡는 것이며, 상생은 해원된 존재의 총체적 상호살림이다. 이러한 해원상생은 이상적인 선경을 건설하는 토대이며, 일심으로 원시반본 하는 조건이다.
6. 이 장을 나서며
19세기말에 태어난 강증산의 눈에 비친 사회는 어떤 사회였을까? 부패 관료에 착취당하고 일제에 수탈당하는 민중들의 모습은 인간 증산의 눈에 말 그대로 ‘희망 없음’이며, 그 희망 없음의 뒤편은 원寃과 한恨이라는 가시가 가슴을 꿰차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모습은 드러난 현상에 불과했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이었고, 천지의 이치를 스스로 깨우친 증산은 당시의 조선 땅을 순회하면서 세상이 참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결국 수년간의 명상과 수도를 통해 천지대신문을 열고 스스로 우주의 주재자임을 알게 된 증산은 삼계대권의 집행자로서 새로운 세상의 필연적 도래를 예정하였다. 인간의 병든 모습 뒤에 드러난 우주는 말 그대로 “선천은 상극의 운”(2:17:1)이었고, 가을의 시간을 준비하는 우주의 흐름은 숙살지기로 천지와 인간을 뒤덮고 있었다. 증산의 천지공사는 여기서 시작된다. 천지의 원한을 풀고, 새로운 세상의 이치를 “상생의 운”(2:18:3)으로 개벽하였다. 필자는 지금까지 우주와 인간을 살리는 천지의 새 틀의 이러한 열림을 증산이 말하는 원시반본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던 것이다.
현대는 상극의 이치가 지배하는 시대이므로 천지와 인간과 신명은 그 본래적 존재성을 상실하고 근원적 생명성을 잃어버렸다. 이러한 선천의 병든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은 필연적으로 잃어버린 본래성을 찾을 수 있는 결정적 전기를 필요로 한다. 생장염장하는 우주의 변화 속에서 우주 내 모든 존재자들의 존재방식과 인간의 삶의 가치를 변화시키는 틀 바꿈이 바로 개벽開闢─더 정확히 후천개벽後天開闢─이다.
후천개벽이란 천지운행의 질서가 바뀌고, 천지의 이치가 변화하는 총체적 변국이다. 이 변국은 우주의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서 일어나며 그 과정에서 천지만물은 분열성장을 멈추고 수렴통일작용을 하게 된다. 후천개벽을 통한 이러한 틀 전환은 생명의 본래성을 회복하는 아르키메데스적 일점一點이다. 원시반본은 천지와 인간의 기형적 모습을 고치기 위한 필연적 방안이다. 세상의 크고 작은 온갖 병은 욕망과 원한 그리고 여기서 확대된 ‘사회 도덕의 무도無道’로부터 나온다. 이러한 병의 일차적 원인은 선천의 상극질서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증산도적 구원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주관과 문명관, 그리고 인간관을 함께 다루어야 한다.
원시반본은 우주의 가을개벽기에 천지와 문명이 변화하는 기본정신이면서 후천선경을 실현하기 위한 인간실천의 기본방향이다. 우리는 원시반본의 본질을 우주론적 측면과 문명사적 측면, 그리고 인간의 실천적 측면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 세 가지 측면이 갖는 공통의 주제는 바로 우주심판의 가을정신에서 생사를 판단하는 때에 모든 것은 원시반본 하여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바로 개벽함으로써 구원의 길을 연다는 것이다. 원시반본에 의해 열리는 10천의 지상후천선경은 인간이 주체가 되고, 목적이 되는 인존시대이다.
역사이래로 인류는 철학․정치․과학 등을 통해 새로운 이상세계의 모습을 꿈꾸어 왔고, 그러한 이상세계의 실현은 바로 인류의 구원을 의미한다고 생각해 왔다. 인간의 도덕적 이상사회인 목적의 왕국이나, 플라톤의 이상국가, 과학의 진보로 인한 풍요로운 물질적 세계 등은 인간에게 현재의 삶의 반가치反價値를 극복한 새로운 이상세계로 인식되었고, 그러한 이상세계의 실현은 바로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고 믿어왔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종교에서도 이상세계를 통해 인간의 구원을 약속해 왔다. 기독교의 천년왕국이나 신의 나라, 불교에서 말하는 불국정토 등은 종교적 이상세계이고 이러한 이상세계에 들어가는 것은 바로 인간의 구원을 의미했다.
그러나 수천 년을 지속해온 이러한 기존의 구원관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인류가 원하는 것은 인류의 구원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류의 구원은 인간에게만 한정될 때 진정한 의미의 구원이 될 수 없다. 인간의 진정한 구원은 인간뿐만 아니라 그 외 모든 존재자들이 그 본래성을 회복할 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과 천지와 신명, 즉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새로운 존재질서의 확립, 새로운 존재가치의 회복, 새로운 생명뿌리의 살림에서 인류의 구원이 실현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후천가을개벽이 담지하고 있는 총체적 생명살림의 원시반본정신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주의 철바뀜과 함께 오는 후천의 개벽은, 가을이 낙엽을 떨어뜨리는 동시에 또한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이, 병겁의 정의와 구원의 사랑이라는 심판을 동반한다. 이때는 생사를 판단하는 때이다. 상극의 선천에서 상생의 후천으로 개벽되는, 다시 말해서 우주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인간에게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인간은 이러한 철바뀜의 환겁을 어떻게 극복하여 새로운 이상세계 속에서 새 생명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가을개벽의 때에 원시반본이 갖는 궁극적 의미라고 생각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원시반본에 대한 논의를 통해 우리는 우주의 환절기에서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는가, 그리고 또 우주의 가을 개벽기에 후천의 신문명을 열기 위해 인간은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증산도적 해결책으로 원시반본사상의 필연성과 절대성을 살펴보았다.
인간은 언제나 현재와는 다른 이상사회를 원해왔다. 그리고 새로운 존재질서와 이상적인 삶을 만들기 위해 인간은 철학과 윤리와 과학을 사색하여 왔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노력은 이성이 가진 근원적 한계로 인해 불완전한 모습으로 그려질 뿐이었다. 이제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겸허하게 인정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위한 절대적 삶의 기준을 찾아야 하고, 그러한 진리는 구하는 자에게 보여지게 된다는 믿음을 요구하게 되었다. 여기서 보여진 구원의 대도大道가 바로 시원을 살펴서 천지와 인간과 생명의 본질을 회복하는 우주의 가을정신, 원시반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