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 이야기 24회
불가리아를 세운 훈족의 후예들
앞에서도 보았듯이 불가르족은 아바르 제국의 지배하에 있다가 630년대 중반 쿠브라트라는 인물의 주도 하에 아바르 제국에 반기를 들고 독립하여 나라를 세운 족속이다. 쿠브라트가 세운 대(大)불가리아는 물론 오늘날의 불가리아가 위치한 곳과는 다른 곳에 세워졌다. 불가르족에 대해 중요한 기록을 남겨놓은 9세기 비잔틴 제국의 수도사이자 역사가인 고해자 테오파네스(Thephanes Confessor, ca. 760-817)는 대불가리아의 영역을 마오티스 해로부터 쿠피스 강이라고 하였다. 쿠피스 강을 테오파네스의 사서 역주자는 쿠반 강으로 보았다. (C. Mango et R. Scott, The Chronicle of Theophanes Confessor, p. 501)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쿠피스 강을 우크라이나에 있는 드네프르 강과 드네스트르 강 사이에 있는 어떤 작은 강으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예를 들어 헝가리 역사가 안드라스 로나타스가 그렇다. (András Róna-Tas, p. 217) 그는 쿠브라트의 무덤이 우크라이나의 폴타바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을 근거로 들고 있다. 루마니아 출신의 역사가 플로린 쿠르타 역시 같은 입장이다. (F. Curta, p. 78) 대불가리아의 영역은 테오파네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불가리아를 세운 쿠브라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테오파네스는 그의 사서에서 쿠브라트가 오노구르 불가르와 쿠트리구르의 우두머리라고 하였다.(The Chronicle of Theophanes Confessor, p. 498) 당시 불가르족 즉 ‘불가르연합’은 오노구르족, 쿠트리구르, 우티구르 등으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불가르라는 말 자체가 어떤 족속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부족 연합을 일컫는다는 주장도 여러 학자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Kim Hyun Jin, The Huns, Rome and the Birth of Europe, p. 137)
오노구르는 5세기 중엽 유라시아 초원에서 있었던 유목민들의 연쇄적 이동의 물결 속에서 중앙아시아로부터 서시베리아를 거쳐 동유럽으로 들어온 유목민 족속으로 여겨진다. 흔히 오노구르는 ‘온’ 오구르 즉 ‘10 오구르족’이라는 뜻이라 한다. (P. Goulden, ‘The peoples of the south Russian steppes’ p. 258) 서투르크 계통의 오구르(오구즈) 부족연합이었다. 이들이 동유럽으로 들어와 훈족 계통의 쿠트리구르와 우티구르와 동맹을 맺어 ‘불가르’로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테오파네스의 기록에 의하면 최초의 불가르 국가를 세운 쿠브라트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다. 쿠브라트의 사후 대불가리아는 카자르 제국에 의해 멸망하였다. 카자르는 서돌궐 제국에서 떨어져 나온 투르크 계통의 나라였다. 아버지의 나라가 망하자 쿠브라트의 아들들은 각기 무리를 이끌고 흩어졌다. 큰 아들 바트바이안은 조상 대대로의 땅 — 볼가–카마 강 상류 — 에 머물고 둘째 아들 코트라고스는 타나이스 강(오늘날의 돈강)을 건너 형의 반대쪽에 자리를 잡았다. 넷째는 서쪽으로 이동하여 다뉴브 강을 건너 판노니아의 아바르 제국으로 들어가 아바르 카간의 신하가 되었다. 다섯째는 이탈리아의 라벤나 근처로 가서 기독교 황제의 신하가 되었다. 그 이후 마지막으로 움직인 것이 셋째인 아스파루크였다. 그는 다뉴브 강 하류의 델타 지역인 ‘오글로스’ 지역에 정착하였다. 이곳은 소택지가 많은 곳이었을 뿐 아니라 강으로 둘러쌓여 있어 외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불가리아는 바로 이 오글로스에 정착한 아스파루크 세력에 의해 건설되었다. (670년경으로 추정) 아스파루크의 불가르족은 비잔틴 제국의 영토를 잠식하여 불가리아 왕국을 세웠다. 이 불가리아는 9세기에 이후 동유럽의 중요한 세력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쿠브라트의 대불가리아와 구분하기 위해 ‘다뉴브 불가리아’라 부른다.
아스파루크 휘하의 불가르족은 다뉴브 남쪽의 바르나까지 정복하였다.(681) 여러 슬라브족 집단이 그들에게 조공을 바치고 병력을 제공해야 하는 예속 집단이 되었다. 비잔틴 제국 역시 매년 공납을 바쳤다. 아스파루크를 이은 불가르족의 왕 테르벨은 스스로를 황제로 칭했다. 그는 비잔틴 제국과 동맹협정을 체결하고 양국간의 교역을 촉진하였다. 테르벨 칸 때 불가리아 제국은 비잔틴의 동맹으로서 718년 아랍인들의 침략을 물리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이 승리로 인해 아랍인들이 동쪽에서 유럽으로의 침략이 좌절되었다고 역사가들은 평가한다.
9세기 초에는 영토가 서쪽과 남쪽으로 확대되어 드디어 유럽의 최강 프랑크 제국과 국경을 접하게 되었다. 크룸 (그리스 사서에서는 ‘크루모스’라고 한다) 칸은 아바르 인들, 비잔틴 제국과 싸워 영토를 두 배로 늘렸다. 그리하여 당시 불가리아 제국은 오늘날의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루마니아의 영토를 포괄하여 남쪽으로는 비잔틴 제국, 서로는 프랑크 제국과 어깨를 겨루는 큰 세력이 되었다.
불가리아는 정확히 말해서 유목민 출신의 군사엘리트인 불가르 족과 일반 백성을 이룬 슬라브 족으로 이루어진 나라였다. 그러나 그 지배층이 훈족의 후예인 기마유목민이었기 때문에 국가의 성격 역시 오랫동안 북방 유목민 국가의 성격을 띠었다. 예를 들어 불가리아의 왕은 아시아 유목민들의 왕 호칭인 ‘칸’으로 불렸다.
쿠브라트와 아스파루크 가문이 훈족의 왕이었던 아틸라의 후예임을 시사하는 기록이 있다. 19세기 중반에 발견된 ‘불가리아 칸 명부’라는 문서로 15-16세기 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문서에서는 아틸라(문서에서는 ‘아비토홀’로 표기되어 있다)를 초대왕, 그리고 그의 아들 이르닉(앞에서 본 아틸라의 3남 에르낙)을 2대왕, 그리고 쿠르트(쿠브라트)를 4대왕으로 기록하고 있다. 아스파루크는 6대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E. Gibbon, 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vol.6 p. 546) 이 문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쿠브라트는 훈족의 일부 집단을 이끌고 다뉴브 하류의 도브루자 지방에 정착하여 세력을 보존하는 데 성공하였던 에르낙의 후예일 것이다.
또 ‘불가리아 칸 명부’에서는 쿠브라트 가문의 이름을 ‘둘로’(Dulo)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일부 학자들은 이 이름이 중국사서에 등장하는 ‘철륵鐵勒’이라고 보고 있다. 철륵은 몽골 고원에서부터 카스피 해 연안까지 중앙아시아 일대에 세력을 확대하였던 투르크족을 지칭한다.
참고문헌
C. Mango et R. Scott, The Chronicle of Theophanes Confessor: Byzantine and Near Eastern History, AD 284-813 (Clarendon Press, 1997)
Florin Curta, Southeastern Europe in the Middle Ages 500-1250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E. Gibbon, 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vol.6 (1898)
P. Goulden, ‘The peoples of the south Russian steppes’ in D. Sinor ed. The Cambridge History of Early Inner 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