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현대문명에 대한 성찰
2020년 4월 말, 코로나-19는 전세계를 패닉에 빠뜨리고 있다. 누구도 모르게 스르륵 다가온 코로나-19는 지구촌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루틴화된 일상적 삶을 바꾸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가장 큰 공포로 성큼성큼 다가와 있다. 현재, 전세계 감염자 수가 300만 명이 넘었고 사망자만도 21만 명을 넘었으니, 틀린 말이 아닌 듯하다. 찻잔 속 태풍 정도이길 바랐지만, 마냥 한 지역이나 한 대륙에서 퍼지는 전염병이나 유행병의 수준을 넘어 지구 전체를 휩쓰는 코로나-19 판데믹이 현실이 되어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사실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지난날에도 전염병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20세기에만 해도 여러 차례에 걸쳐 수백 명에서 수천 명까지 희생자를 발생시킨 사례가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발생한 스페인 독감, 1957년 2월 중국에서 시작되어 홍콩을 거쳐 전세계로 확산된 아시아 독감, 베트남 전쟁 중이던 1968년 7월 중국 남부에서 발생하여 전세계로 퍼진 홍콩 독감, 1976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에볼라, 1981년 미국에서 처음 보고된 에이즈, 나아가 2003년 중국 재래시장에서 시작된 사스, 2012년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 전국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메르스가 그 전형이다. 여기에 소나 닭, 돼지와 같은 동물을 수억 마리까지 살처분하게 한 전염병까지 더하면, 현대 역사는 가히 전염병의 역사라 할 만하다. 어떻게 보면 전쟁이나 다른 폭력적 갈등보다 전염병이 인류의 삶을 결정지은 가장 큰 요인이었는지 모른다.
각종 새로운 전염병은 흔히 바이러스가 야생동물이나 가금류를 매개로 인간에게 옮겨져 발생되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그 이전에 왜 야생동물이나 가금류로부터 전염되었고, 어떻게 해서 그들 매개체가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전염시킬 수 있었는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야생동물이 바이러스를 인간에게 매개하게 한 주범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모든 책임을 단지 야생동물의 탓으로 돌리기만 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 주범이 인간이라는 점이다. 끝없는 탐욕을 충족하기 위해 자연을 이용하고 자연에 지나치게 개입한 인간이 그 배후에 있다.
인간은 나날이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며 물질적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그 과정이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치명적 바이러스의 종간 전염을 가능하게 하고 그 전염을 빠르게 전파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조성하였다. 신종 바이러스는 흔히 바이러스의 구조 변경, 즉 돌연변이를 통해 사람으로 넘어오는데, 대부분이 매개 동물이라는 중간 단계로 거치며 변신한다. 인간은 바로 이런 중간 매개체인 야생동물을 무한 접촉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종간 전염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들었다.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그 환경은 무엇인가? 현대의 자본주의적 성장과 소비, 상업주의적 산업 발전, 인간중심주의적 가치관은 무엇을 가져왔는가? 그것은 인간의 물질적 삶을 향상시키고 끝없는 탐욕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준 듯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 인간이 자행한 것, 그 결과는 무엇인가? 산불과 같은 생태계 파괴, 기후 변화, 공장형 대규모 축산, 항생제 남용, 야생동물의 상업화 및 음식화, 유전자 변형, 보편화된 세계 여행, 대도시화, 신자유주의적 교역의 증가 등등. 인간의 행위와 절대 무관하지 않은 이런 조건들이 모두 새로운 전염병 발생과 확산 가능성을 높였다.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하고 인간을 감염시킬 수 있는 ‘푸시앤드풀push&pull’ 여건을 인간 스스로 조성한 것이다.
이번 중국발 코로나-19 역시 푸시&풀 원리가 작동했다. 인간 돈벌이를 위해서 야생에 서식하는 동물을 마구 잡아 재래시장 한편에 가두고 있는 동안 매개체인 야생동물은 다른 포유동물과 접촉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을 것이고, 그 고기를 팔기 위해 도축하는 과정에서는 시장 상인이나 구매자 등 인간과도 접촉했을 것이다. 바로 이런 과정에서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넘어올 수 있는 티켓을 부여잡았을 것이다. 인간 스스로 강제적인 푸시&풀 조건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자연 생태계의 미묘한 변화는 미지의 병원균을 잠에서 깨울 수 있다. 대형 재앙은 결코 우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 이전에 수많은 재난과 사건들이 발생하여 대형 재앙의 징후를 나타낸다. 인과의 법칙이다. 전염병의 역습이 바로 그러하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에 나오는 말이 생각난다. “글로벌 위험은 운명처럼 우리에게 닥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만든 것, 인간의 손과 머리의 합작품이며, 기술 지식과 경제적 이익 계산의 결합에서 나온다.”
마크 제롬 월터스는 『자연의 역습, 환경전염병』에서 광우병·에이즈 등을 ‘에코데믹Ecodemic’, 즉 생태병·환경전염병이라고 부르며, 이들은 인간의 자연 환경 파괴와 자연 교란이 빚어낸 산물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자연 파괴로 생태계 균형이 깨지면서 확산되고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인간의 탐욕행위 결과 새로운 전염병들은 부메랑 효과로 인간사회를 역습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왜냐하면 코로나-19가 인류의 마지막 전염병은 결코 아닐 듯하기 때문이다. 한 때 ‘전염병의 종말’을 선언한 일도 있었으나 그것은 인간의 오만에 지나지 않았다. 20세기 후반 이후 새로운 전염병은 오히려 우후죽순격으로 발생하였다. 코로나-19는 더 큰 전염병 확산의 전주곡일지 모른다.
코로나-19와 그 이전의 여러 전염병들에서 보이듯이 최근의 전염병들은 점점 더 초국가적인 성격과 급속한 전파력, 보다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파괴력을 갖고 있다. 인류는 어떻게 이러한 신종 전염병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수많은 희생을 초래한 코로나-19는 인류 모두에게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반성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아닐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방식, 우리의 생각하는 방식, 우리가 당연시 받아들이고 있는 가정들을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 답이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연의 주인이 아니다. 인간은 자연에 의존하며 거기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의 하나일 뿐이다. 우리가 대처해야 할 것은 미생물 바이러스나 야생동물이 아니라, 탐욕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라는 바이러스가 아닐까?
상생하는 새로운 문명, 그 시작은 천지만물의 조화 회복으로부터이다. 이러한 의식 전환, 그리고 그것을 향한 작은 실천에서 상생의 문명은 비로소 열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