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의 고향을 찾아서 12 이백 (1)

이백李白의 「고요한 밤의 고향 생각(정야사靜夜思)」 (1)

 

【제목풀이】

이 시의 제목은 「고요한 밤의 고향 생각(정야사靜夜思)」이다. 이백(701-762)이 타지의 여관에서 고요한 달밤에 고향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다. 이백李白의 자는 태백太白이고, 호는 청련거사淸蓮居士이며, 백白은 이름이다. 이백이 태어날 때 어머니가 태백성太白星이 품에 안기는 꿈을 꾸었다고 해서 이백의 아버지가 이백의 이름과 자를 각기 백과 태백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백은 두보杜甫와 함께 중국 시가를 대표하는 당나라의 시인으로 ‘이두李杜로 불린다.

이백은 신신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찾았는데, 후세 사람들은 도교적 시를 대표한다는 의미에서 이백을 시선詩仙이라고 불렀다. 당대의 유명한 시인 하지장賀知章은 이백을 “하늘에서 쫓겨난 신선”(천상적선인天上謫仙人)이라고 칭송하였다. 이백은 시선詩仙일 뿐만 아니라 주선酒仙이었다. 두보는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서 “이백은 술 한 말에 시 백수, 장안의 저자 거리 주막에서 잠자네. 천자가 불러도 배에 오르지 않고, 스스로 술의 신선이라 일컬었네.”(李伯一斗詩百篇, 長安市上酒家眠. 天子呼來不上船, 自稱臣是酒中仙.)라고 주선 이백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침상 앞 밝은 달빛,

땅 위의 서리런가.

고개 들어 밝은 달 바라보고,

고개 숙여 고향을 생각하네.

창전명월광床前明月光,

의시지상상疑是地上霜.

거두망명월擧頭望明月,

저두사고향低頭思故鄕.(어떤 판본에는 ‘명월광明月光’이 ‘간명월看明月’로 되어 있다.)

 

이 시는 한시漢詩의 전형적 특성을 이루는 선경후정先景後情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앞부분에서 자연의 경물을 묘사하고, 뒷부분에서 인간의 정감을 노래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연의 경물과 인간의 정감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중심으로 양자가 하나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정경교융情景交融’ 또는 ‘정경원융情景圓融’의 경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 시는 나그네가 달을 바라보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이다. 특이한 발상도 없고, 정교한 시문의 문채나 화려한 언어의 수식도 없다. 그저 평이한 언어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진솔하게 노래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이백의 시 가운데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절창의 하나로 평가를 받고 있다. 왜 그런가? 이 시는 평범한 가운데 비범함이 있고, 비범함 가운데 평범함이 있기 때문이다. 명나라의 호응린胡應麟(1551-1602)은 『시수詩藪』에서 “태백의 여러 절구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이루어서, 이른바 공교로움에 뜻을 두지 않았지만 공교롭지 않은 것이 없다.”(太白諸絶句, 信口而成, 所謂無意於工而無不工者.)라고 논평하였다.

사람이 객지에 나가면 누군들 고향을 생각하지 않겠는가? 달이 휘영청 밝고 온 세상이 고요하기 그지없는 적막한 밤이라면, 타향을 떠도는 나그네로서는 하늘의 달을 바라보며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타향의 여관에서 쓸쓸히 하룻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는 나그네에게 달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촉매제의 역할을 한다. 시인은 침상에 하얗게 비치는 싸늘한 달빛을 보는 순간 지상에 내려깔린 새벽 서리로 착각하였다. 천상의 달빛과 지상의 서리를 하나로 연결한 것이다.

고향에 있는 가족들은 오늘 밤에 저 밝은 달을 바라보며 나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시인은 고개를 들고 밝은 달을 바라보며 달에게 고향 소식을 물어보다가,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고향 생각에 흠뻑 빠져들어 이내 쳐들고 있던 고개를 아래로 조용히 떨어뜨린다. 손중섭이 『이두시신평』에서 표현한 것처럼, “머리의 고저와 시선의 방향이 영상을 보는 듯 천연스럽다.”

 

어느 집에선가 은은히 날아드는 옥피리 소리,
봄바람에 흩어져 낙양성에 가득하네.
이 밤 노래 속에 이별곡 들려오니,
누군들 고향생각이 나지 않으랴!
수가옥적암비성誰家玉笛暗飛聲,
산입춘풍만낙성散入春風滿洛城.

차야곡중문절류此夜曲中聞折柳,

하인불기고원정何人不起故園情!

 

이 시의 제목은 「춘야낙성문적春夜洛城聞笛」이다. ‘춘야낙성문적’은 봄밤에 낙성에서 피리소리를 듣는다는 뜻이다. ‘낙성’은 지금의 하남성 낙양이다. 당나라에서 매우 번화한 도시로서 ‘동도東都’로 불리었다. 천하를 주유하던 이백이 낙양에서 머물 때 지은 시다. 한밤중에 봄바람을 타고 어디선가 은은하게 구슬픈 피리소리가 들린다. 구슬픈 피리소리는 객지를 떠도는 나그네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누군들 이별곡을 들으면,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나라의 대부분의 시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백도 한평생 모순적인 삶을 살았다.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탈속의 세상을 꿈꾸면서도 온 천하에 광구창생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벼슬살이를 얻고자 갈구하였다. 이백은 평생토록 자연질서(자연自然)와 도덕질서(명교名敎)의 사이에서 오락가락하였던 것이다.

 

어째서 푸른 산에 사냐고 묻길래,

웃으며 답하지 않으니 마음 절로 한가롭네.

복사꽃 물 따라 아득히 흘러가니,

인간 세상 아니라 별천지일세.

문여하사서벽산問余何事棲碧山,

소이부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閑.

도화유수묘연거桃花流水杳然去,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이 시의 제목은 「산중문답山中問答」이다. 그러나 어떤 판본에는 「산중답속인山中答俗人」으로 되어 있다. 이 시는 담묵淡墨하면서도 농묵濃墨한 이중적 특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백은 속세를 등지고 초탈하여 산수 사이에 은거하려고 하면서도 세상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한시도 버리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시인에게 무슨 재미로 적막한 산 속에서 혼자 사느냐고 물었다. 시인은 대답 대신에 그냥 씩 웃기만 했다. ‘소이부답笑而不答’이다. 말로 답할 수 없는 인생의 의미를 말로 말하지 않으니, 마음이 절로 한가롭다.

복사꽃이 시냇물을 따라 둥실둥실 흘러가니, 이곳은 인간 세상이 아니라 별천지다. 하지만 별천지가 그 어딘가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신선이 사는 이상세계이든 속인이 사는 현실세상이든, 마음과 몸이 편안한 곳이 바로 별천지이기 때문이다. 무릉도원의 이상향을 찾아갔던 어부는 왜 별천지를 찾고도 인간 세상으로 다시 돌아갔을까?

 

뭇 새들 높이 날아 사라지고,

외로운 구름만 한가롭게 흘러가네.

마주 보아도 질리지 않는 건,

경정산뿐이로다.

중조고비진衆鳥高飛盡,

고운독거한孤雲獨去閒.

상간양불염相看兩不厭,

지유경정산只有敬亭山.

 

이 시의 제목은 「독좌경정산獨坐敬亭山」이다. 이백이 경정산을 바라보면서 지은 시다. 경정산은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선주시宣州市에 있다. 이 시는 천보天寶 12년(753) 가을 선주에 있을 때 지은 것이다. 이백은 당시 현실 정치에 절망하고 강호를 떠돌고 있었다. 뭇 새들은 하늘을 높이 날아 어디론가 사라지고 외로운 구름만 유유히 떠간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는 건 오로지 경정산뿐이라는 이백의 말에서 이백이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외롭고 적막한 처지에 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백은 한평생 천하를 주유하면서 방랑을 일삼았던 사람이었다. 달과 술은 이백의 상징이다. 이백이 한림학사의 벼슬에서 쫓겨나 침울함과 고독함을 달래려고 지은 시가 있다.

 

꽃 사이 한 동이 술,

친구도 없이 홀로 마시네.

잔 들고 밝은 달을 맞으니,

그림자와 마주하여 셋이 되었네.

달은 본래 술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는 그저 내 몸만 따르네.

잠시나마 달과 그림자 함께 있으니,

모름지기 이 봄에 즐겨야지.

내가 노래하면 달은 서성이고,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일렁이네.

깨어 있을 땐 함께 즐기다가,

취해서는 각기 헤어지네.

무정한 교유 영원히 맺었으니,

먼 은하수에서 다시 만나세.

화간일호주花間一壺酒, 독작무상친獨酌無相親.

거배요명월擧杯邀明月, 대영성삼인對影成三人.

월기불해음月旣不解飮, 영도수아신影徒隨我身.

잠반월장영暫伴月將影, 행락수급춘行樂須及春.

아가월배회我歌月徘徊, 아무영영란我舞影零亂.

성시동교환醒時同交歡, 취후각분산醉後各分散.

영결무정유永結無情遊, 상기막운한相期邈雲漢.​

 

하늘이 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주성이 하늘에 없을 걸세.

땅이 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땅에는 응당 주천이 없을 걸세.

하늘과 땅이 이미 술을 사랑했거니,

내가 술을 사랑하는 건 부끄러울 게 없지.

듣건대 청주는 성인에 견주고,

탁주는 현인과 같다고 말하네.

탁주와 청주를 이미 마셨으니,

어찌 꼭 신선이 되기를 구하리오?

석 잔이면 대도에 통하고,

한 말이면 절로 그러함과 합치하네.

그저 술 속의 흥취만 얻을 뿐이니,

깨어 있는 자들에게 전하지 말게나.

천약불애주天若不愛酒, 주성부재천酒星不在天.

지약불애주地若不愛酒, 지응무주천地應無酒泉.

천지기애주天地旣愛酒, 애주불괴천愛酒不愧天.

이문청비성已聞淸比聖, 부도탁여현復道濁如賢.

현성기이음賢聖旣已飮, 하필구신선何必求神仙?

삼배통대도三杯通大道, 일두합자연一斗合自然.

단득취중취但得酒中趣, 물위성자전勿爲醒者傳.

 

이 시는 「달 아래서 홀로 술을 마시며(월하독작사수月下獨酌四首)」 가운데 두 수이다. 술과 달을 사랑한 이백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시다. 이백과 달과 그림자가 셋이면서도 하나가 되어 술을 마신다. “탁주와 청주를 이미 마셨으니, 어찌 꼭 신선이 되기를 구하리오?”는 도연명의 「연우독음連雨獨飮」에 근거한 말이다. 음주 행위를 지상신선이 되는 수행으로 여긴 사람이 있다. 동진 시대의 도연명이다. 도연명은 술을 마시면 누구나 일상생활 속에서 신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신선이 되기 위해서 화산이나 숭산과 같은 높은 산에 올라가 신선술을 수련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였다.

이백도 도연명처럼 술 속에서 깊은 맛을 보았다. ‘취중취酒中趣’는 술 속의 흥취라는 뜻이다. 도연명의 「진고정서대장군맹부전晋故征西大將軍長史孟府君傳」에 나오는 말이다. 이백은 “석 잔이면 대도에 통하고, 한 말이면 절로 그러함과 합치하네.”라고 하여, 술을 마시면 우주만물의 존재근거인 대도에 통달하여 그 무엇에도 의존함이 없이 저절로 그러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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