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 그들의 깊은 사유와 ‘웃픈’ 삶 15 헤겔(2)

철학자들, 그들의 깊은 사유와 ‘웃픈’ 삶 15 헤겔(2)

2.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신학교는 엄격한 규율로 학생들을 관리한다. 외출은 정해진 시간에만 허용된다. 수위는 학생들 방에 여자들이 출입하는지 감시한다. 규칙을 어길 때는 위반의 정도에 따라 감금 또는 포도주 급식 중지 등의 벌칙이 따른다. 교내에서의 복장은 흰 칼라의 검정색 외투로 통일하도록 정해져 있다.

헤겔은 외모에 대해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다. 젊은 여자들은 그의 옷차림을 두고 소곤거린다. 그의 차림새가 가장 말쑥하지 않았던 것이 틀림없다.

그 때문에 헤겔이 여자를 사귈 기회는 줄어든다. 게다가 헤겔은 행동마저 굼뜨다. 펜싱장에서의 그의 동작이란 도무지 멋있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카드놀이를 하고 재담을 주고받으며 맥주집에 밤늦도록 앉아 있기를 더 좋아하였다. 그리고는 그는 거나하게 술에 취해서는 비틀거리며 학교로 돌아온다. 주량은 상당히 센 편이다. 기숙사의 사감은 그에게 이렇게 예언한다. “헤겔, 너는 틀림없이 네 작은 오성마저도 남김없이 마셔버리게 될 거야.”

그는 어린 아이의 눈과 같은 맑고 큰 눈을 가지고 있지만, 동료들은 그를 벌써 “노인”이라고 부른다. 한 친구가 그린 캐리커처를 보면, 헤겔은 마치 지팡이에 몸을 기대고 힘겹게 걷고 있는 것처럼 얼굴을 숙이고 있다. 그림 밑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신이여 이 늙은이와 함께 하소서!”

동료 중 누구도 슈바벤 억양을 가진 느긋한 사람에게 재능이 숨겨져 있으리라고 예상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그들은 훗날 헤겔이 베를린에서 사상계의 권좌를 차지하게 되자 정말로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그의 기숙사 친구였던 한 사람은 “우리는 헤겔이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토로한다.

헤겔은 신학 외에도 철학을 공부한다. 기숙사에는 칸트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모임이 있었다. 헤겔은 쾨니히스베르그 출신 사상가[칸트]의 철학 중 실천 철학, 곧 인격의 자율성에 대한 이론에 특히 관심을 갖는다. 그는 또한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야코비(Friedrich Heinrich Jacobi, 1743~1819)의 작품들을 탐독하였다. 야코비는 신은 오성이 아니라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프리드리히 폰 실러(Friedrich von Schiller) 역시 헤겔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그렇지만 헤겔을 가장 강하게 사로잡은 것은 루소의 『에밀』이다.

헤겔은 이 책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교육관을 접하게 된다. 루소는 인간이란 본성상 선한데(신이 인간을 창조했기 때문에), 그릇된 교육이 그들을 문화 괴물로 만든다고 본다.

루소는 이같은 기본 입장에서 출발하여, 아이들의 자유로운 성장을 지켜주자고 주장하는 최초의 “반(反)권위” 이론을 전개한다. 루소는 이렇게 가르친다. 부모는 자식들을 훈계하거나 감독해서는 안 되고 그들이 원하는 한 그리고 원하는 만큼 소리치고 함부로 행동하도록 놔둬야 한다. 무엇보다도 부모들은 그들의 성장 과정을 앞당기려 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헤겔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자식들을 가능하면 빨리 “이성적 존재”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아쉽게도 루소의 이론에서 헤겔이 어떤 감상을 갖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헤겔은 도무지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별다른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신학자가 되려는 당초의 계획을 바꾼다. 1793년 졸업시험에 통과한 그는, 그전에 칸트가 그랬던 것처럼, 가정교사가 된다. 1799년 헤겔은 아버지의 사망으로 약간의 재산을 물려받게 되자, 곧바로 그간 썩 내키지 않던 가정교사 일을 그만두고 예나를 향해 떠났다.

튀링겐 지방의 소도시 예나는 당시 독일 정신의 중심지였다. 이곳이 그같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바이마르에서 추밀고문관으로 일하지만, 예나에 거처를 두고 있던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덕분이다. 대학에 대한 감독권을 갖고 있던 그는 또한 명망 있는 사람들이 대학에서 강의할 수 있도록 주선해주기도 한다. 프리드리히 실러, 요한 고트리프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그리고 “낭만주의”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사조의 주창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August Wilhelm Schlegel)이 모두 괴테의 도움으로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예나에서 대부분 학자들의 활동은 일시적인 데 그친다. 교수 급료 문제를 담당하고 있기도 한 괴테가 형편없이 적은 액수의 수당만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표면적인 이유는 국가 재정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헤겔은 대학시절 친구인 셸링의 주선으로 예나에 왔다. 괴테의 도움으로 23세에 대학 교수가 되었던 셸링은 그 당시 이미 독일 넘어서까지 명성을 떨치고 있다. 그는 헤겔이 서둘러 교수 자격을 따고 철학 강사 자리를 얻도록 힘써 준다. 그렇지만 강사란 직업 역시 결코 안정된 보수가 달린 자리가 아니어서 초보 강사인 사상가는 학생들의 수강료에 의지해 살아간다.

헤겔은 으레 오후에는 2시간 동안 책을 읽는다. 철학자로서 그는 아직 무명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는 세상에 자신을 알릴 생각으로 셸링과 함께 『철학비평(Kritisches Journal der Philosophie)』지를 창간한다. 그는 여기에 실을 논문들의 대부분을 자신이 작성하였다.

기고 논문들에서 그가 다루는 것은 무엇보다도 철학과 진리의 관계였다. 그는 오직 하나의 진리가 있기 때문에 단지 하나의 철학만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그에겐 서로 모순되면서도 똑같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여러 개의 철학이 있다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다.

괴테는 복잡하고 심지어 생소하기조차 한 사상에는 특별한 관심을 전혀 보이지 않았던 사람이다. 괴테 전기 작가 리하르트 프리덴탈(Richard Friedenthal)에 따르면 괴테는 오직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만을 읽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다. 그렇지만 헤겔의 논문이 그의 관심을 끌었다.

1805년 괴테는 헤겔에게 객원교수 자리를 마련해준다. 헤겔은 이를 수락한다. 괴테가 그에게 제시한 급료(연봉 1,000 탈러)란 물론 모욕적일 만큼 형편없는 것이지만, 철학자에겐 그 문제로 화낼 여유가 없다. 자신의 모든 정력을 소모시키는 원고를 쓰는데 매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정신현상학』(정신이 나타나는 방식에 대한 이론)이다.

한 비평가에 따르면, 이 “이해불가능한 대작”은 헤겔이 떨칠 세계적 명성의 기반을 다져 준 작품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마르크시즘, 곧 수십 년 후 지구를 뒤흔들고 전 인류를-자주 유혈로 얼룩지는-대립으로 갈라놓은 혁명적 사유의 단초로 꼽히기 때문이다.

『정신현상학』은 오늘날까지 어떤 확정적 해석도 거부하고 있기에, 그 영향력은 더욱 놀라운 것이다. 책이 이렇게 어려운 것은 부분적으로는 소재의 탓이다. 그러나 책임의 또 다른 일부는 시간에 쫓긴 헤겔 자신에게 있다. 출판업자는 돈이 필요한 헤겔에게 다 완성된 원고를 건네받고서야 선先인세를 다시 지불하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헤겔은 내용의 이해 여부를 깊이 고려해 볼 여유 없이 원고를 써나간 것이다.

그럼에도 헤겔은 원고의 더 많은 곳에서 독자들에겐 마치 섬광처럼 들이닥칠 인식들에 이른다. 예를 들어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밝히는 대목이 그렇다. 마르크스는 뒷날 이로부터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를 해명한다.

헤겔의 설명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어떤 인간도 추상적으로 “주인”일 수 없다. 주인이 있는 곳에는 또한 “노예”가 있어야 한다. 곧 노예만 주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 또한 노예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이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은 오직 노예가 주인에게 필수적인 자기의식을 매개해주기 때문으로서만 그렇다. 이로써 볼 때 주인의 자기의식은 외부로부터 규정되는 것이며, 본래적으로는 주인이 아니라 노예에게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립적 의식의 진리는 노예의 의식이다.” 그리고 노예성은 자신 안에 억제된 의식으로서 자신에로 향하다가 나중에는 “참된 자립성”에로 향하게 된다. 이와 함께 헤겔은 어떻게 주인의 자유 안에 부자유가, 또 노예의 비자립성 안에 자립성이 놓여 있는지 기술한다. 부정의 힘이 단초적으로 놓여 있던 것을 밖으로 나타나게 한다. 그래서 주인은 자기의 지배권을 상실하게 되고 노예는 자기의 자립성을 획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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