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의 고향을 찾아서 13 이백 (2)

이백李白 (2)

 

이백에게는 술을 노래한 시가 많지만, 그 가운데 음주의 정취를 노래한 대표적인 시가 바로 「산중여유인대작山中與幽人對酌」이다. 산속에서 은자와 함께 술을 마시며 지은 시다.

 

둘이 술을 마시는 데 산에 꽃이 피네,

한 잔 한 잔 또 한 잔.

나 취해 자려고 하니 그대는 잠시 가시게나,

내일 아침 술 생각나면 금 안고 오시게나.

양인대작산화개兩人對酌山花開,

일배일배부일배一盃一盃復一盃.

아취욕면경차거我醉欲眠君且去,

명조유의포금래明朝有意抱琴來.

 

친구와 마주보며 술을 마시는데, 한 잔의 술을 연거푸 마신다. “일배일배부일배一盃一盃復一盃”는 오늘날에도 술자리에서 자주 인구에 회자되는 유명한 말이다. 세상을 살면서 함께 술잔을 기울 수 있는 마음 맞는 벗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백은 3구에서 『송서‧은일전‧도잠전』에 나오는 도연명의 고사를 인용하고 있다. 『송서‧은일전‧도잠전』에 따르면, 도연명은 음률을 이해하지는 못하였지만 줄 없는 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술이 있으면 술자리를 만들었다. 술에 취하면, 도연명이 술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취해 자려고 하니, 그대는 잠시 가시게나.”(我醉欲眠, 卿且去.) 이백이 도잠의 말을 인용하고 있지만, 아무런 흔적도 없이 매우 자연스럽게 표현하였다.

 

천고의 시름 말끔히 씻고자,

연달아 백병의 술을 마시네.

좋은 밤 마땅히 청담을 나누세,

밝은 달에 잠 못 이루니.

취하여 빈산에 누우니,

하늘과 땅이 바로 이불이고 베개로다.

척탕천고수滌蕩千古愁,

류련백호음留連百壺飮.

양소의청담良宵宜淸談,

호월미능침皓月未能寢.

취래와공산醉來臥空山,

천지즉금침天地卽衾枕.

 

이 시의 제목은 「우인회숙友人會宿」이다. 언제 어디서 지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우인회숙’은 친구들이 모여 함께 묵는다는 뜻이다. 이 시는 주선酒仙 이백이 술을 마시고 천지와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우주적 기개와 경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백은 하늘을 이불로 삼고, 땅을 베개로 삼았다. “명리를 초탈하여 삶을 한바탕 연극무대의 놀이마냥 아낌없이 즐기며 아무것에도 속박을 받지 않은 대자유인”이었던 조선 중기 명종 때의 진묵대사의 오도성을 연상케 한다.

삼백육십일을,

날마다 진흙처럼 취했어라.

비록 이백의 처라고 하지만,

어찌 태상의 처와 다르랴?

三百六十日,

日日醉如泥.

雖爲李白婦,

何異太常妻?

 

이 시의 제목은 「증내贈內」이다. 개원開元 15년(727)에 이백이 안륙安陸에서 은거할 때 자신의 아내에게 지어준 시다. 이백은 일 년 삼백육십일을 날마다 진흙처럼 술에 취해 살았다. 그러니 ‘태상太常의 처’(태상처太常妻)와 다를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태상의 처’는 후한서後漢書주택전周澤傳에 나오는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한나라에 주택周澤이란 사람이 있었다. 주택은 궁중에서 종묘를 관장하는 태상이란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는 직무에 충실하여 항상 궁중에 머물면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어느 날, 주택의 아내가 궁중으로 주택을 찾아오자 화를 내면서 제사의 금기를 범했다고 하여 아내를 옥에 가두고 죄를 청했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이 이를 풍자하여 “세상에 태어나 해로도 못하는 태상의 처가 되었네. 1360일 중 395일은 재를 올리고, 하루는 재를 올리지 않고 진흙처럼 취했다.”(生世不偕作太常妻. 一歲三百六十日, 三百五十九日齋.)라고 하였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길은 참으로 험하고 어렵다. 이백은 「인생길 어려워라(행로난삼수行路難三首‧기일其一)」에서 “인생길 어렵구나! 인생길 어렵구나! 갈림길 많으니, 지금 어디에 있나? 반드시 거센 바람에 부서지는 파도를 헤치는 때가 있으리니, 곧장 구름 돛 달고 푸른 바다를 건너리라.”(行路難! 行路難! 多歧, 今安在? 長風破浪會有時, 直掛雲帆濟滄海.)라고 하였다. 고달픈 인생길에서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때맞춰 삶을 즐기며 사는 일이다.

 

그대는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걸 보지 못했나?

바다로 내달려 다시 돌아오지 않네.

그대는 높은 집에서 맑은 거울로 백발을 슬퍼하는 걸 보지 못했나?

아침에 푸른 실이 저녁에 눈처럼 희어졌네.

사람의 삶 뜻 얻으면 맘껏 즐길지니,

금 술통 헛되이 달을 마주하게 하지 말게나.

하늘이 내 재주를 낼 땐 반드시 쓰임이 있으니,

많은 돈 다 써버려도 다시 생기리라.

양 삶고 소 잡아 잠시 즐길지니,

반드시 한 번에 삼백 잔은 마셔야지.

군불견황하지수천상래君不見黃河之水天上來,

분류도해불부회奔流到海不復回.

군불견고당명경비백발君不見高堂明鏡悲白髮,

조여청사모성설朝如靑絲暮成雪.

인생득의수진환人生得意須盡歡,
막사금준공대월莫使金樽空對月.
천생아재필유용天生我材必有用,
천금산진환복래千金散盡還復來,
팽양재우차위락烹羊宰牛且爲樂.
회수일음삼백배會須一飮三百杯.

 

이백은 「장진주將進酒에서 사람이 뜻을 얻었을 때는 삶을 맘껏 즐기라고 충고한다. 인생에서 영원한 건 없다. 모든 건 순식간에 지나간다. 우리네 삶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다. 지금 이 순간을 맘껏 즐기지 못한다면, 수억만 년을 산다고 할지라도 삶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영원한 것은 오로지 지금 이 순간뿐이기 때문이다. 모든 순간이 모든 날이다.

대저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고, 시간은 백대의 길손이다. 뜬 인생 꿈과 같으니, 즐거움을 누린들 얼마나 되나? 옛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밤에 논 것은 진실로 까닭이 있다. 하물며 따스한 봄날 안개 낀 풍경이 우리를 부르고, 큰 땅이 우리에게 찬란한 풍경을 빌려줌에 있어서랴! 복사꽃 핀 향기로운 뜰에 모여 천륜의 즐거운 일을 서술한다. 여러 아우들은 재능이 아주 빼어나서 모두 사혜련과 같은 인재들이니, 우리들이 시를 지음에 있어 나 홀로 사령운에 부끄럽다. 봄밤의 풍경을 조용히 감상함에 끝이 없으니, 고담준론은 갈수록 청아하네. 옥같이 아름다운 연회자리를 열어 꽃나무 속에 앉고, 날개 모양의 술잔을 날려 달빛 아래 취한다. 아름다운 노래가 없다면, 어찌 우아한 감회를 펼쳐낼 수 있으랴? 만약 시를 짓지 못한다면, 금곡원의 술잔 수로 벌을 내리리라.

부천지자夫天地者, 만물지역여萬物之逆旅; 광음자光陰者, 백대지과객百代之過客. 이부생약몽而浮生若夢, 위환기하爲歡幾何? 고인병촉야유古人秉燭夜遊, 양유이야良有以也. 황양춘소아이연경況陽春召我以煙景, 대괴가아이문장大塊假我以文章. 회도리지방원會桃李之芳園, 서천륜지락사序天倫之樂事. 군계준수群季俊秀, 개위혜련皆爲蕙連; 오인영가吾人詠歌, 독참강락獨慙康樂. 유상미이幽賞未已, 고담전청高談轉淸. 개경연이좌화開瓊筵以坐花, 비유상이취월飛羽觴而醉月. 불유가영不有佳詠, 하신아회何伸雅懷? 여시불성如詩不成, 벌의금곡주수罰依金谷酒數.

『문원영화文苑榮華』에서는 이 글의 제목을 「봄밤에 사촌동생들과 복사꽃 동산에서 연회를 열고(춘야연종제도화원서春夜宴從弟桃花園序)」라고 하였다. 그러나 『고문관지古文觀止』에는 이 시의 제목이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梨園序」로 되어 있다. ‘서序’는 친구나 친지를 떠나보낼 때 지은 시문을 모아 문집을 엮고 붙인 서문이다. 이백의 이 글은 “만고의 문장을 해원”(증산도 『도전』 2:147:6)시킬 수 있는 절창絶唱 중의 절창이다.

“대저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고, 시간은 백대의 길손이다.” 천지는 만물이 잠시 머물다 가는 여인숙이고, 시간은 장구한 세월을 지나가는 나그네이다. 무한한 시공 속에서 인생은 한 조각 뜬구름처럼 부질없다. 시간은 쏜살처럼 흘러간다. 인생에서 주어진 시간은 그다지 많지 않다. 옛날 사람들이 밤에 불을 환히 밝히면서 즐겁게 놀았던 까닭이 있다.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것은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을 만끽하면서 가족이나 친족들과 살가운 정을 주고받으며 천륜을 즐기며 사는 일이다. 달빛이 밝은 밤, 시인은 사촌동생들과 함께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시를 읊조리며 때맞춰 인생을 즐기고 있다.

이백은 「장난삼아 정율양에게 시를 지어주면서(희증정율양戱贈鄭溧陽)」에서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고자 하였다.

도연명은 날마다 취하여,

다섯 그루 버드나무에 봄이 온 줄도 몰랐네.

장식 없는 금은 본시 줄이 없었고,

칡베 건으로 술을 걸렀네.
맑은 바람 부는 북쪽 창밑에서,

스스로 복희씨 이전 사람이라 여겼네.

언제나 밤골에 가서,

평생의 벗을 한 번 만날꼬?

도령일일취陶令日日醉,

부지오류춘不知五柳春.

소금본무현素琴本無絃,

녹주용갈건漉酒用葛巾.
청풍북창하淸風北窓下,

자위희황인自謂羲皇人.
하시도율리何時到栗里,

일견평생친一見平生親?

이 시는 천보天寶 13(754)에 율양 현령 정안鄭晏에게 지어준 시다. 정안이 술을 마시고 금을 타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을 노래하였다. 도연명은 이백의 평생의 지기知己였다. 인생의 최고의 경지는 순간 속에서 영원한 삶을 얻는 것이다. 이백은 순간 속에서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을 도연명에게서 얻었다. “맑은 바람 부는 북쪽 창밑에서, 스스로 복희씨 이전 사람이라 여겼네.”가 바로 그것이다. 이 두 구절은 도연명의 「아들 엄 등에게 주는 글(여자엄등소與子儼等疏)」에 근거한 것이다.

도연명은 북쪽 창가에 드러누워 있다가 시원한 바람을 맞는 그 찰나의 순간에 복희씨 이전의 태평시절의 사람이 되는 기이한 체험을 하였다. 지금 이 순간 속에서 시공 속에 살면서도 시공을 초월한 자유인이 된 것이다. 이백이 「증임명현령호제贈臨洺縣令皓弟」에서 “도연명이 평택현령을 떠나니, 아득히 태곳적 사람의 마음이었네.”(陶令去彭澤,茫然太古心.)라고 말한 것처럼, 도연명이 복희씨 이전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태곳적 사람의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백은 도연명을 본받아 매 순간 속에서 영원한 현재의 시간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예나 제나 인생의 가장 큰 숙제는 순간과 영원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백이 죽기 직전에 불렀다는 노래가 있다. 「임종가臨終歌」이다. 「임로가臨路歌」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붕이 날아서 팔방까지 진동시키나,

공중에서 꺾여 힘이 부치누나.

남은 바람이 만세에 떨치련만,

부상에서 노닐다 왼쪽 소매가 걸렸구나.

후세 사람 이를 얻어 전할지라도,

공자가 없으니 누가 날 위해 눈물을 흘리랴!

대붕비혜팔진팔예大鵬飛兮振八裔,

중천최혜역부지中天摧兮力不濟.

여풍격혜만세餘風激兮萬世,

유부상혜괘좌몌遊扶桑兮掛左袂,

후인득지전차後人得之傳此,

중니망혜수위출체仲尼亡乎誰爲出涕.

 

이백은 인간 세상의 속박과 억압에서 벗어난 대자유인을 꿈꾸었다. 그는 장자가 「소요유」에서 말하는 대붕大鵬으로 자신을 비유하였다. 대붕은 이백의 화신이다. 대붕이 큰 날개를 펼쳐서 멀리 날고자 하였지만, 공중에서 날개가 꺾이어 날 수 없게 되었다. “부상에서 노닐다 왼쪽 소매가 걸렸구나.”라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부상’은 동쪽 바다의 해가 뜨는 곳에 있다는 신성한 나무이다. 여기서는 군주를 상징한다. ‘부상’에서 노닌다는 것은 군주를 측근에서 모신다는 뜻이다. “왼쪽 소매가 걸렸다는 것”은 간신들에게 시기와 모함을 받았다는 뜻이다. 이백은 훌륭한 군주를 만나서 천하창생을 구제하려는 원대한 포부와 이상을 지녔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속절없이 떠나야 하는 자신의 처지와 신세를 한탄하고 있다. 이백의 숙부 이화李華는 이백의 묘지명墓誌銘에서 이백이 「임종가臨終歌」를 짓고 죽었다고 한다. 이백이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