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소도 문화 5

 

소도문화의 변천 (2)

 

제천의식祭天儀式의 변화

상고시대에 한민족의 제천의식은 하늘에 계신 지존의 삼신일체상제님을 주신主神으로 숭상하고, 신을 맞이하는 종교적인 행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통國統과 종통宗統의 계승자로 ‘천제의 아들[天帝之子]’임을 천명하는 정치적인 전례典禮이기도 했다. 제천의식에서 단군왕검은 천제를 집전執典하는 신교의 대제사장大祭司長이면서 천자임을 천명했다. 그래서 단군왕검은 민족단위의 국가를 설립하여 번창한 신시배달의 국통과 종통을 계승하고, 옛 법통을 되살려 세상을 다스렸던 것이다.

“배달신시개천 1565년 10월 3일에 신인 왕검이 오가의 우두머리로서 무리 8백명을 거느리고 단목 터에 와서 백성과 더불어 삼신일체상제님께 천제를 올렸다. 왕검께서 지극한 신의 덕성과 성스러움을 겸한 인자함으로 능히 환인ㆍ환웅의 성조를 받들어 개천을 계승하니, 그 공덕이 높고 커서 찬란하게 빛났다. 이에 구환의 백성이 모두 기뻐하고 진실로 복종하여 천제의 화신으로 여기고 임금으로 추대하니, 이분이 바로 단군왕검이다. 왕검께서 신시배달의 법도를 되살리고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여 나라를 세우니 조선이라 하였다[至開天一千五百六十五年上月三日 有神人王儉者 五加之魁 率徒八百 來御于檀木之墟 與衆奉祭于三神 其至神之德 兼聖之仁乃能奉詔繼天 巍蕩惟烈 九桓之民 咸悅誠服 推爲天帝化身而帝之 是爲檀君王儉 復神市舊規 立都阿斯達 建邦號朝鮮]”(『단군세기』)

그런데 제천의식은 후대로 전해지면서 점차 확대 변화되어 갔다. 국통과 종통의 계승자임을 확인하고, 조상 제사와 신을 맞이하여 찬양하는 대동축제가 그것이다. 16세 위나尉那 단군은 “재위 28년 무술년에 구환족의 모든 왕을 영고탑에 모이게 하여 삼신일체상제님께 천제를 올릴 때 환인, 환웅, 치우를 배향하고 단군왕검께 제사지냈다. 5일간 백성들과 함께 연회를 베풀고, 불을 밝히고 밤새워 천부경을 노래 부르고 마당 밟기를 했다. 한쪽에 횃불을 줄지어 밝히고 다른 쪽에서 둥글게 춤을 추며 애환가를 함께 불렀다[戊戌二十八年 會九桓諸汗于寧古搭 祭三神上帝 配桓因桓雄蚩尤 及檀君王儉而享之 五日大宴與衆 明燈守夜 唱經踏庭 一邊列炬 一邊環舞 齊唱愛桓歌]”(『단군세기』).

여기에서 영고탑寧古搭은 소도제천의 장소로, 북을 울리며 신의 강림을 맞이하는 영고제迎鼓祭를 지내던 곳이다. 그런데 영고탑迎鼓搭이라 하지 않고 영고탑寧古搭이라고 한 까닭은 한자어 영고迎鼓가 영고寧古로 바뀌고 터가 탑搭으로 음사되면서 영고탑寧古搭이 된 것이다. 위나단군은 영고탑에서 삼신일체상제님께 제천하고 선령先靈께 제사한 후, 5일 동안 백성들에게 크게 연회를 베풀었다는 것은 제천의식이 신과 함께 모두가 즐겁게 노래하고 즐기는 축제의 장場으로 점차 확대 변화되어 감을 함축한다.

단군조선의 말기에 삼조선[진조선辰朝鮮, 막조선莫朝鮮, 번조선番朝鮮] 체제가 무너지자 제천의식은 정치와 종교가 분리[祭政分離]되어 나타난다. 특히 삼조선이 망하게 되면서 각 지역에는 새로운 군장君長들이 우후죽순 등장하여 관할하게 된다. 이에 제천의식은 천황天皇이 아니라 천군天君이 천신天神에게 제사를 주관하는 제주가 되고, 그리고 각지에 있는 소도에서 종교의식이 거행될 때에도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변모되기도 했다.

단군조선의 국통을 이은 부여夫餘에서 제천의식은 거국적으로 참석하는 국중대회國中大會의 형식으로 거행되면서 모두가 한 마음으로 즐기는 축제祝祭 분위기로 이어진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에 의거하면, 부여夫餘에서는 음력으로[殷曆] 정월正月에 국가적인 행사로 신을 맞이하는 영고제迎鼓祭를 열어 북을 치면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모두 함께 연일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추었다고 한다. 중국 돈황문서인 『토원책부兎圓策府』에 의거하면, 동예東濊에서는 10월에 행해진 무천舞天이라는 제사의식이 거행되었는데, 밤낮으로 마시고 춤추며 노래하였고, 전쟁이 있을 때에는 출정出征에 앞서 소를 잡아 그 발굽의 형상으로 길흉을 점치는 우제점牛蹄占도 행했다고 한다.

부여大夫餘의 종통宗統을 계승한 고구려高句麗는 단군시대의 옛 영토를 회복하면서 분열된 여러 족속들을 통합한다. 통합된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제도에 있어서 천왕天王이 있고, 천왕의 중심에는 계루부桂婁部, 절노부絶奴部, 연노부涓奴部, 관노부灌奴部, 순노부順奴部라는 5부족 연맹체가 있으며, 천왕의 직속신하로는 상가, 패자, 고추가, 사자, 조의, 선인 등의 관료를 두었다. 천왕은 이들 제가회의를 통해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고, 10월에는 동맹東盟이라는 제천행사를 개최했는데, 이는 고구려 국조신에 대한 제사의식으로 동명東明으로도 불린다. 그래서 고구려의 동맹은 조상 제사 및 일종의 추수감사제의 형식을 갖추게 된다.

고려高麗에 이르자 제천의식은 고구려의 동맹을 계승하면서 토속신앙의 종교의식과 불교의식이 결합된 팔관재八關齋의 형식으로 변질된다. 『송사宋史』 「고려전高麗傳」에 의거하면, 고려에서는 “10월 보름에 나라 동쪽에 있는 굴窟의 세신歲神을 모셔다 제사하는데 이를 팔관재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팔관재는 팔관회八關會라고도 하는데, 여기에는 도참사상圖讖思想이 첨가되어 천령天靈 및 오악五嶽, 명산名山, 대천大川, 용신龍神을 섬겼다. 한마디로 고려의 팔관재는 조상제祖上祭의 성격을 표면화하면서 천하태평과 군신화합을 기원하는 민족적 연중행사로 발전된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국가제도는 전적으로 유학儒學의 이념으로 무장된다. 이로부터 전통적인 제천행사는 사라지게 되고 겨우 기우제祈雨祭의 형식만이 남아 있게 된다. 또한 고대의 소도문화에서 출원한 신앙의식은 본질적으로 변질되어 세속화된 흔적만이 남아 있게 되는데, 신목神木을 모신다든가, 신당神堂에서 삼신을 모신다든가, 당산제堂山祭를 지낸다든가, 당집에서 액厄막이 굿을 한다든가, 소원을 기원하는 민간신앙의 의식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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