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소도 문화 8

소도의 변천사 (5)

 고구려의 선인도랑仙人徒郞(참전參佺과 조의皂衣)

단군조선이 말기에 접어들자 중앙집권 세력은 점차 약화되기 시작한다. 그러자 지방 세력들이 새롭게 일어나면서 열국시대列國時代가 전개되는데, 이것이 일명 부여시대夫餘時代이다. 부여에서 신교에 뿌리를 둔 낭가의 맥은 ‘천왕랑天王郞’으로 이어졌지만, 지역에 따라 세속적인 습속과 융합하면서 다소 변전하게 된다. 고구려가 건국되자 낭가의 맥은 ‘선인도랑仙人徒郞’으로 이어진다.

‘선인도랑’은 글자 그대로 말하면 ‘선인의 도를 닦는 랑郞’이란 뜻이다. 이 말은 고구려의 고국천왕故國川王 재임 시기에 최고의 재상이었던 을파소乙巴素가 처음으로 썼다. “을파소가 국상이 되어 나이 어린 영재를 선발하여 선인도랑으로 삼았다. 교화에 능숙한 자는 참전이라고 하는데, 무리 중에 계를 잘 지키는 자를 선발하여 삼신을 받드는 일을 맡겼다. 무예에 능숙한 자는 조의라 하는데, 지조를 겸하고 계율을 이루어 공익을 위해 앞장서서 나아갔다[乙巴素爲國相 選年少英俊 爲仙人徒郞 掌敎化者曰參佺 衆選守戒 爲神顧托 掌武藝者曰皂衣 兼操成律 爲公挺身也]”(『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어린 영재들로 구성된 고구려의 ‘선인도랑’은 국가에서 인재를 기르는 수행단체이다. 그 가운데 일부는 ‘참전參佺’이 되어 ‘계戒’를 잘 고수하고, 지정의知情意를 조화롭게 구비한 선인仙人으로 신교의 진리를 잘 받들고 교화하는 일에 종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 일부는 ‘조의’가 되어 참전의 계율을 굳건하게 숭상하면서 무예를 연마하고, 비상시非常時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솔선수범하여 몸을 받치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낭가의 맥을 이은 고구려의 ‘선인도랑’은 곧 ‘참전’과 ‘조의’로 실현된다.

‘참전’의 사명은 무엇인가? ‘참전’이란 말은 제천에서 삼신을 모시고 그 공덕을 기리는 것에서 연유한다. “신시개천 이래로 매년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나라에 큰 축제를 열어 삼신의 덕을 기리고 화합을 제창했다. 어아를 음악으로 삼고 감사를 근본으로 하여 신과 인간을 조화하니 사방에서 이를 본받았다. 이것이 참전계가 되었다[神市以來 每當祭天 國中大會 齊唱讚德諧和 於阿爲樂 感謝爲本 神人以和 四方爲式 是爲參佺戒]”(『단군세기』). 다시 말해서 ‘참전’은 삼신三神의 진리를 깨달아 공덕을 기리고 찬양하는 제천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이 찬양하는 노래는 ‘어아於阿’이다. ‘어아’는 신시神市의 옛 풍속으로 “태양을 삼신의 모습으로 여기고, 태양의 빛과 열기를 삼신의 공능으로 여기며, 만물이 생겨나 자라고 발전해 가는 모습을 삼신의 심정과 의지로 삼고, 재앙과 행복을 보응하는 것으로써 삼신을 정의한다[以太陽爲儀象 以光熱爲功能 以生化發展爲情志 以禍福報應 爲定義]”(『소도경전본훈』)

‘참전계’는 ‘참전이 꼭 지켜야할 계戒’를 말한다. 즉 ‘참전’이란 지智ㆍ덕德ㆍ체體의 삼육三育을 겸전한 온전한 인격자가 되어 삼신을 모신다는 의미이이고, ‘참전계參佺戒’는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연마하고 지켜야 하는 계율이란 뜻이다. 사실 참전은 이미 배달국의 환웅천황 때부터 있어서 삼신의 가르침에 따라 인간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왔다. 이로부터 고구려 고국천왕 때 재상을 지낸 을파소는 ‘참전계’를 다듬어서 경전으로 집대성하였는데, 「참전계경」이 그것이다. 속설俗說에 「참전계경」은 을파소가 백운산白雲山에서 기도하여 얻은 천서天書라고도 한다.

「참전계경」은 ‘성誠ㆍ신信ㆍ애愛ㆍ제濟ㆍ화禍ㆍ복福ㆍ응報ㆍ보應’의 8강령八綱領, 366가지의 절節과 목目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인간이 지켜야할 도덕과 윤리규범이 중심이다. 즉 “‘성’은 충심에서 일어나는 것을 혈성으로 지키는 것으로 6체體 47용用의 가르침이고, ‘신’은 천리에 필히 부합하는 것을 인간사에서 이루는 것으로 5단團 35부部의 가르침이고, ‘애’는 본연의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어진성품의 본 바탕으로 6범範 43위圍의 가르침이고, ‘제’는 덕을 겸한 선을 도에 의지하여 널리 펼치기 위한 4규規 32모模의 가르침이고, ‘화’는 악을 부르는 것을 경계하는 6조條 42목目의 가르침이고, ‘복’은 선을 행함으로써 돌아오는 남은 경사로 6문門 45호戶의 가르침이고, ‘응’은 천신이 악인을 화로서 보답하고 선인을 복으로 보답하는 것으로 3계階 30급級의 가르침이고, ‘보’는 악이 악으로써 선이 선으로써 보답 받는 것으로 6과果 39형形의 가르침이다”(『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그럼 ‘조의皂衣’는 무엇인가? ‘조의’는 글자 그대로 ‘검은 색깔의 옷’을 뜻한다. 이런 옷을 입은 사람을 통상 조의라 불렀는데, 그 기원은 단군왕조檀君王朝 송하강 아사달 시대에서 비롯된다. 『삼한관경본기』 마한세가에 의거하면, 4세 오사구 단군께서 “언제나 3월이 되면 마한에 명하여 친히 군대를 사열하시고 사냥을 했다. 16일에 기린굴에서 천제를 올릴 때 조의를 하사하고 갓을 씌우는 예식을 행하고, 이어서 가무와 온갖 놀이를 한 후 파했다[每當三月 命馬韓 閱武田獵. 十六日祭天麒麟窟 賜皂衣加冠지례 仍歌舞百戱而罷]”는 기록이 있다.

의관을 갖춘 ‘조의’는 항상 의젓한 상무정신에 입각하여 화살을 차고 활을 갖고 다닌다.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는 “이때부터 ‘참전’에게 지켜야할 계가 있고, 조의에게 율이 있어 숭상하는 풍속이 이어졌다. 의관을 갖춘 자는 반드시 궁대를 두르고 활과 화살을 차고 다니고, 능숙하게 활을 잘 쏘는 사람은 반드시 높은 지위를 얻었다. 선한 마음을 수행의 근본으로 삼고, 과녁을 악의 우두머리로 가정하여 생각하게 되었다[自是 俗尙 參佺有戒 皂衣有律 衣冠者 必帶弓矢 能射者 必得高位 善心 爲修行之本 貫革 爲假想之惡魁]”고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에 이르자 조의는 단군시대와 마찬가지로 속칭 ‘검은색 비단옷을 입은 집단’을 가리킨다. 조의가 검은색으로 된 옷을 입은 유래는, 배달시대 때에 천황이 ‘천왕랑天王郞’에게 내려준 까마귀 깃털이 달린 모자를 쓰는 관례에서 태동하고, 오사구 단군이 천제를 올릴 때 하사한 조의와 그 맥을 같이 한다. 그런데 고구려의 조의는 ‘조의선인皂衣仙人’으로도 불린다. 이는 수행자가 ‘조의’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왕王이나 대가大加 곁에서 가신적家臣的 성격을 가진 자들로 ‘충忠ㆍ인仁ㆍ의義ㆍ지智ㆍ예禮’를 덕목으로 삼았다.

‘조의선인’은 무사武士의 기능을 하는 ‘조의’와 문사文士의 기능을 하는 ‘선인’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의선인’은 심신을 수련하고, 대체로 문무를 겸비하여 삼신의 덕을 실천하여 국가를 수호하는 종교군대의 성격을 가진다. 그들은 평상시에 왕이나 대가 곁에서 섬기고 돕는 일을 하지만, 때로 편대를 나누어 어느 한 집에 모여 삼신의 진리를 익히기 위해 고사古事를 담론하거나 학예을 익히기도 하고, 무예를 숭상하기 때문에 수려한 산천을 찾아 수련하기도 한다. 또한 도로 및 하천을 정비하고, 성곽 등을 건설하고 보수함으로써 민족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일신一身으로 기꺼이 봉사한다. 한마디로 조의는 선善한 마음을 수행의 근본으로 삼고, 무예를 숭상하고, 참전의 계율을 굳건하게 지키고, 비상시에는 민족을 위해 솔선수범하여 몸을 던져 희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의선인의 진가는 전쟁과 같은 국가의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드러난다. 왜냐하면 조의선인은 자발적으로 함께 모여서 목숨을 걸고 전투에 참가하여 국가를 수호하는 데에 선봉에 나서기 때문이다. 수나라의 양제梁帝가 113여만의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하였을 당시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대군을 모조리 쓸어버린 역사적인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때 20여만의 조의선인이 참전하여 혁혁한 수훈을 세웠다고 전한다. 또한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입했을 때, 거란이 고려를 침공했을 때도 대군을 물리치고 궤멸시킨 주인공 또한 조의선인의 후예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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