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

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 (21세기북스, 2021)

니얼 퍼거슨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역사가이다. (이름을 스펠링과는 달리 ‘닐’로 발음한다고 한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이스라엘 역사가 유발 하바리와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데 우리말로 번역된 책만 대략 10권 정도이니 대중들 사이에서는 대단히 성공한 역사학자라 할 것이다. 1964년생으로 현재 59세인데 이 정도로 많은 책을 썼다는 것이 같은 역사학자인 필자로서는 놀랍기만 하다.

영국의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태어난 퍼거슨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였다. 1989년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박사학위 논문은 독일 인플레이션 시기 항구도시 함부르크의 기업과 정치를 연구한 것이었다. 이 논문은 연구대상의 시기를 전후로 좀 더 확장해서 1995년 《증권과 철 : 인플레이션 시기 함부르크의 기업과 독일의 정치, 1897-1927》라는 제목으로 캠브리지 대학 출판부에서 출간되었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캠브리지 및 옥스퍼드 대학에서 연구원과 교수로 재직하며 금융사에 대해 연구를 하였다. 1998년에는 19세기 후반 유럽 금융계를 주도했던 유대계 은행가 가문 로스차일드 가를 다룬 책을 출간하였다. 두 권으로 된 이 책은 《세계은행가 로스차일드 가문, 1849-1999》이라는 제목으로 2013년 우리말로도 번역, 출간되었다.

2008년에도 금융사 책을 출간하였다. 《Ascent of Money : A Financial History of the World》라는 제목의 이 책도 《금융의 지배》(2010)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지리상의 발견 시대 이후 21세기 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까지의 금융사를 다뤘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금융사가로서의 전문적인 지식과 또 현대세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독창적 시각을 보여준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본고에서 소개하려고 하는 《시빌라이제이션》은 부제가 ‘서양과 나머지 세계’이다. 이 책은 제목과는 달리 문명사를 개관한 책은 아니다. 책의 주제는 부제가 더 잘 보여준다. 서양이 세계의 나머지 지역과 달리 근대세계사를 주도한 이유를 탐구한 것이다.

서양이 16세기 이후 세계의 다른 지역들을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능가하게 된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 계기에 대해서는 인도항로의 개척과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같은 대항해 시대 유럽의 지리상 발견과 확대를 중시하는 사람도 있고 막스 베버처럼 종교개혁으로 탄생한 프로테스탄티즘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막스 베버는 근대 초 가톨릭 세력과 싸워 ‘신앙의 자유’를 쟁취한 프로테스탄티즘, 특히 캘빈주의가 금욕적 합리주의와 그에 기반을 둔 근대자본주의의 발전을 촉진하여 서양이 비서양 세계를 압도하였다고 보았다. 퍼거슨의 시각은 그보다는 더 포괄적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요인이 서양의 우위를 가능하게 한 것으로 보고 있다.

1) 경쟁

2) 과학

3) 재산권

4) 의학

5) 소비사회

6) 직업윤리

 

책의 구성도 이 여섯 항목을 설명하는 여섯 장과 결론 장으로 이루어져있다.

첫째 요인으로 들고 있는 경쟁은 근대 유럽이 하나의 제국이 아니라 다수의 민족국가로 분열되어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것을 의미한다. 역사학자들은 근대 초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이 스페인 왕좌까지 차지하면서 신교 세력을 누르고 가톨릭교라는 단일한 신앙에 기반을 둔 통일 유럽 제국을 건설하려 하였으나 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여러 민족국가들로 나뉘어 경쟁하는 가운데 근대 자본주의 체계가 발전하였다고 본다. 종교개혁을 통해 가톨릭 교회로부터 이탈한 신교 세력이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에 자리 잡음으로써 종교적 대립이 민족국가들 사이의 경쟁을 더 치열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신교의 하나로서 영국 국교회를 만든 영국 왕실은 자국의 해적들이 적대국가인 가톨릭 스페인의 선박과 항구를 약탈하는 행위를 정당한 것으로 승인해 주었다.

유럽 국가들 간의 경쟁은 유럽 내의 왕위계승권과 영토를 놓고도 벌어졌지만 해상무역과 해외식민지를 놓고도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동양으로 향하는 항로가 열리면서 유럽 국가들 간의 무역과 식민지 경쟁이 벌어지고 동양의 여러 지역이 유럽 국가들의 지배로 넘어갔다. 오늘날의 인도네시아, 필리핀, 인도가 그 과정에서 유럽인들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유럽인들의 가혹한 착취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유럽의 대외진출과 대비되는 것으로 역사가들이 자주 드는 사례가 명나라의 해금海禁 정책이다. 명나라 초기만 하더라도 대규모 선단을 조직하여 동남아는 말할 것도 없고 아프리카까지 선단을 보내었으나 이 사업은 영락제(재위 1402-1424) 사후 갑자기 중단되었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것조차 금지하는 이러한 해금 정책으로 중국은 무역을 비롯한 경쟁에서 유럽 국가들에 뒤지게 되었다.

두 번째 유럽이 앞선 요인은 과학이다. 저자는 근대 초기부터 유럽에서 근대과학이 발전하는 과정을 오스만 제국의 사례와 비교하고 있다. 17세기까지 유럽을 군사적으로 위협했던 오스만 제국이 과학의 발전에서 뒤지게 된 데에는 이슬람교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 그리고 당연한 것이지만 과학의 발전은 곧 군사적 우위로 이어졌다.

세 번째 유럽의 우세 요인은 재산권이라 한다. 개인의 재산권 즉 사유재산권이 잘 발달한 곳을 저자는 영국으로 보고 영국과 영국의 식민지인 북아메리카를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남아메리카와 비교한다. 저자는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의 헌법의 여러 조항들, 단일 시장, 단일 무역정책, 단일 통화, 단일 파산제도 및 불합리한 수색과 체포에서 개인을 보호하는 수정헌법 제4조까지도 본질적으로 전부 재산과 관련이 있는 조항이라고 본다. 이러한 안정된 소유권의 기반 위에서 미국은 경제적으로 번창하고 또 미국의 민주주의는 꽃필 수 있었다.

네 번째로는 의학의 발전을 들고 있다. 서양의 의학이 근대 과학 발전과 발맞추어 발전하였으며 그 결과 중요한 질병들을 정복하고 서양인들의 수명을 크게 늘렸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서양 제국들이 지배하였던 서양 식민지들의 주민들도 서양 의학의 도입으로 적지 않은 혜택을 보았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의학의 발전은 유럽인들이 세계에 기여한 큰 공적이었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이러한 의학의 혜택을 식민지인들에게 가져다준다는 자부심을 식민지 지배의 한 구실로 내세웠다. 문명에 뒤진 아시아와 아프리카인들에게 문명의 혜택을 가져다준다는 신성한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유럽인들의 식민지 지배는 그러한 주관적인 사명감만으로는 도저히 정당화시킬 수 없는 차별과 잔혹한 통치행태로 점철되었다.

다섯째로 드는 것은 유럽이 소비사회를 열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직물과 의복생산의 기계화로 노동자들과 일반 서민 대중은 저렴해진 옷을 예전과는 달리 쉽게 다량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의복으로부터 시작된 소비의 확대는 20세기 들어서는 라디오와 텔레비전, 세탁기, 컴퓨터, 자동차 등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소비문화의 확산은 동구의 공산주의도 무너뜨렸는데 저자는 미국에서 노동자들이 작업복으로 입던 청바지가 서구를 넘어 동구에서도 확산되어 공산당 정부에 대한 불신을 촉발하였던 것을 지적하고 있다. 동구의 공산당 정부는 청바지를 서구의 팝음악과 더불어 서양 자본주의 사회의 타락한 문화적 현상이라는 것을 대중들에게 주지시켰으나 소용이 없었다.

여섯 번째는 막스 베버의 주장과 통하는 것이다. 신교는 노동자들의 직업윤리를 강화하였을 뿐 아니라 금욕주의적 태도를 강조하고 무절제한 소비를 억제함으로써 자본의 형성에 기여하였다. 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신앙이 오늘날에는 유럽에서는 거의 사라진 반면 미국에서는 아직도 그 세력을 크게 떨치고 있음을 지적한다. 유럽과 같이 풍요로운 물질생활을 누리고 있는 미국에서 교회가 여전히 세력을 떨치고 있는 비결을 저자는 유럽과는 달리 미국에서 특유한 다양한 종파들간의 치열한 경쟁에서 찾고 있다. 교회들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기 위한 소비자 지향적 기독교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기독교는 취미생활과 비슷한 모습을 띠게 되었다.

저자는 종교의 힘을 논하는 이 장에서 최근 중국 기독교의 흥기를 언급한다. 중국 공산당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교회수는 빠르게 늘고 있는데 기독교인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관념이 대중들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공산당이 제공하지 못하는 정신적 욕구를 교회가 채워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현재 기독교는 ‘세련된 유행’이 되었으며 결국 기독교가 중국을 정복하고 중국 문화를 기독교화 시킬 것이라는 중국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한다. 매우 흥미로운 견해가 아닐 수 없는데 과연 이러한 예측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인지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저자는 결론에서 중국이 서양의 장점들 즉 서양의 과학과 기술, 직업윤리를 채택하면서 급속히 부상하며 서양의 우위에 도전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중국에는 서양이 갖고 있는 민주주의가 없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자본주의는 있지만 민주주의와 사상의 자유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여러 강점을 패키지로 갖고 있는 서양 문명이 중국과 같은 외부 경쟁자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인간 사회에 현존하는 최고의 경제, 사회, 정치적 제도를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저자는 오히려 서양 문명의 진짜 문제는 중국이나 러시아, 이란 같은 타문명의 도전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 즉 무기력함과 그것을 부추기는 ‘역사적 무지’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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