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약속 7

제4장 귀촉도

 

4

 

진표가 출가하기 2년 전이었다. 그러니까 열세 살 때였다. 그날 진표는 진내마와 함께 집을 나서 서남쪽으로 얼마 가지 않아 변산 개암開巖(지금의 개암사)에 도착하였다. 개암은 변산반도의 중턱에 위치한 작은 암자였다. 뒤쪽 산마루에 커다란 바위 두 개가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진표는 아버지가 이 절에서 가장 법랍法臘(승려가 된 뒤로부터 치는 나이)이 높은 도융道融스님과 퇴설당 뒷방에서 얘기를 나누는 동안 밖으로 나와서 경내를 걷고 있었다. 조금 전에 들었던 도융스님의 얘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진표는 법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동자승을 따라 퇴설당 뒷방으로 갔다. 방안에는 진내마와 도융스님, 좀 젊어 보이는 주지 스님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표야. 두 분 큰 스님께 인사를 올리도록 해라.”

진내마가 명하였다.

진표는 큰절을 넙죽 올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자신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 노인이었다. 구부정하게 앉아 있었으나 훌쩍 큰 키에 깡마른 몸이다. 움푹 꺼진 두 눈에서 이글거리는 광채를 내뿜는 도융스님에게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넘쳤다. 뒤에 동자승한테 듣기로는 백 살이 넘은 노승이라고 하였다. 도융스님에 비해서 주지 스님은 몸집이 좀 커 보이는 것이 매우 친근하게 느껴졌다.

“부처님께 예배는 드리고 온 게야?”

도융스님이 물었다. 목소리가 쩌렁 울렸다.

“예. 스님.”

짧게 대답하면서 진표는 도융스님을 빤히 쳐다보았다. 왠지 속을 알 수 없는 스님이었다. 온몸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노인이 분명한데 얼굴은 붉은 피부에 주름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이를 짐작게 하는 것은 머리였다. 밤송이처럼 짧은 머리카락은 마치 눈이 내린 듯 허연 백발이었다. 그렇지만 백발은 쭈뼛쭈뼛 치솟은 것이 힘차 보였다.

“희유로다! 희유로다! 아니, 그러하냐. 지심아.”

진표가 큰절을 올리고 물러나 앉은 모습을 뚫어질 듯 가만히 보던 도융스님이 왠지 모르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옆에 앉아 있는 주지 스님인 지심을 보았다.

“예. 그러하옵니다. 큰 스님.”

주지 스님인 지심智深이 동의하였다. 진표로서는 스님들의 속내를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서로 통하는 것이 있는가 보았다.

“아니. 스님. 무엇이 희유하다는 말씀인지요?”

진내마가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거사님. 어린 시주님을 보아하니, 전생에 아주 오래, 오래 부처님과 인연을 쌓은 분이로군요. 아주 큰⋯.”

지심이 말을 잇지 못하였다.

“어이구. 큰 스님께서 관상도 보십니까. 그런 말씀 마세요. 이 녀석은, 순 개구쟁이인 것을요.”

진내마는 소맷자락을 저으며 부정했다. 외아들인 진표는 금지옥엽이었다. 부처님과의 인연이라니! 만약 주지 스님의 말대로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진내마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아니, 믿지 않겠다고, 억지로 부정을 하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절대로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외다! 절대로. 나무 미륵존불, 미륵존불….”

도융스님은 진내마의 반응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대답 대신 ‘나무 미륵존불’을 외었다.

“미륵존불, 미륵존불….”

지심도 따라 외웠다.

“⋯.”

진표는 지금까지 말없이 두 분의 대화를 엿듣고 있을 뿐이었다. 진표 자신에 관해서 얘기를 나누는 것이야 어른들이 흔히 하는 것이려니, 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도융스님이 외는 미륵존불이었다. 미륵불을 더욱 높여 미륵존불이라고 호칭하는 것은 진표도 모르지 않았다.

“왜 미륵불인고!”

진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두 큰 스님이 흔히 들을 수 있는 아미타불이 아니라 미륵존불을 외는 것이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미륵존불인고? 왜? 의문은 떠나지 않았다. 도융스님의 표정에서 눈길을 떼지 않으면서 진표는 머릿속을 굴렸다. 적어도 진내마의 집 안팎에서 들을 수 있는 부처님의 명호라면 십중팔구는 아미타불이었다. 어머니도 틈만 나면 아미타불을 외웠다.

 

법당 앞마당 한복판에 혼자 서서 말없이 암자 뒤편 바위를 바라보고 있는 진표의 의식을 흔드는 것은 방금 만나고 나온 도융스님과 지심스님의 아리송한 태도였다.

“내가 전생에 부처님과 큰 인연을 쌓았다구. 희유하다구!”

진표는 퇴설당 쪽을 흘끔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의식에는 두 분 큰 스님이 끊임없이 뇌이던 미륵불이 떠나지 않았다.

“미륵존불. 미륵존불….”

진표는 자신도 모르게 미륵불을 입안으로 중얼거려 보았다. 그의 눈길은 개암 뒤편 산마루 위로 우뚝 솟아 있는 커다란 바위에서 좀체 떨어질 줄 몰랐다. 문득 그 바위가 미륵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진표는 암자 안팎을 둘러보았다. 도융스님의 얘기로는 개암은 백제 무왕 35(634) 묘련妙蓮 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라고 하였다.

“스님. 절 이름이 왜 개암인가요? ‘개’자가 들어가니까, 이상해요. 우리 집에서 키우는 복술이가 생각나요.”

조금 전에 퇴설당에 있을 때 진표는 궁금하기도 하였으나 일부러 장난기를 부렸다.

“복술이가 누구더냐?”

“우리 집에서 키우는 개인데요.”

복술이는 그의 집에 있는 작은 개의 이름이었다. 북술이 말고도 집에는 사냥개 다섯 마리도 키우고 있었다.

“오호라. 개암에 ‘개’자가 들어가니까, 집에 키우는 개가 생각났던 게야?”

“예. 스님.”

“허어. 거사야. 이, 작은 거사야. 이름이란 그런 거란다. 헛것인 게지. 아무것에나 붙일 수 있는. 개라는 짐승에게도 붙일 수 있고, 우리 절에도 붙일 수 있고. 헛, 허허.”

도융스님은 재미있다는 듯 껄껄거렸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스님.”

“흠.”

도융스님은 신음을 토했다.

“모르겠다면, 알게 해야지. 여보게. 지심, 어여 설명해 주게나.”

도융스님이 지심에게 말했다. 지심이 들려주는, 개암이 창건된 내력은 그러하였다. 개암이라는 이름은 전에 백제 지역이 변한이라는 나라였을 때, 문왕이 진한과 마한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 도성을 쌓았다. 왕은 우(禹)와 진(陳)의 두 장군으로 하여금 좌우 계곡에 왕궁전각을 짓게 하였는데, 동쪽을 묘암(妙巖), 서쪽을 개암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개암이라구.”

중얼거리며 진표는 다시 눈을 개암 뒷산 꼭대기에 서 있는 바위로 가져갔다.

5

 

진표의 마음은 왠지 무거웠다. 그러고 보니까 개암으로 올 때 들에서 마주쳤던 농부들의 표정에는 하나같이 힘이 없어 보였다. 삭정이처럼 깡마른 몸, 푸석거리는 머리카락, 피골이 상접한 얼굴들. 하긴,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진표는 태어난 이후 줄곧 그런 표정의 사람들 속에서 자라났다. 죽은 사람들의 행렬이다. 지난해 늦가을, 사비주에서 이따금 만났던 얼굴들도 그랬다.

“우금바위라고 허는디. 울금바위라고도 하고라.”

법당에서 나온 한 늙수그레한 처사가 툭 던지듯 말해 놓고 요사로 사라졌다. 개암에서 살고 있는 감처사라고 하였다. 마흔 정도 되어 보이는 늙은 처사였다, 진표는 말없이 그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에 감처사가 나왔다.

“저 바위가, 우금바위라고 했나요?”

진표가 말을 걸었다.

“그러제라. 우금암이라고도 허고, 원효방이라고도 헌당게요.”

“원효, 방이라면.”

“맞제라잉. 원효스님이⋯, 그리 멀지 않은 옛적으 큰 스님인디. 신라하고 당나라 연합군이 침공혀서리 백제가 없어질 녘에 살았던 고승이요.”

감처사의 마음은 원효라는 고승을 존경하지만, 그보다는 백제가 멸망한 역사적 현실에 가 있는 듯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누군가를 향해 보이지 않는 원망의 눈빛이 그의 눈가에 짙게 그늘져 있었다.

“저그 우금바위에는⋯.” 감처사는 개임 뒤쪽 산마루 위에 우뚝 솟아 있는 커다란 바위를 가리켰다. “동굴이 세 개가 있는디, 그중에서 큰 동굴을 원효방이라고 허요. 원효스님이 거그서 수도를 했다고 안협뎌. 동굴 안에는 쬐끄만 웅덩이가 있어서 물이 괴제라. 원효스님 수도를 도우려고 산신령님이, 아니제, 용왕님이 주었는지는 모르것지만, 원래는 물이 없었는디, 원효스님이 거그서 수도하면서부터 물이 나왔다는 야그도 전허고, 그러제라잉.”

“원효스님이 이곳에서 수도를 했다구요!”

“원효스님뿐입뎌. 의상스님도 수도혔는디 잉.”

“의상스님도요!”

진표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원효와 의상. 진표도 그들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오래 전의 고승들도 아니었다. 어머니로부터 들은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5, 60여 년 전에 해동의 두 큰 스님은 서라벌은 물론 당나라 장안까지 명성이 떠르르 울렸다. 두 분 고승을 어찌 한두 마디 말로 다 얘기할 수 있을까. 진표는 개암 뒤쪽 산마루 위로 우뚝 솟아 있는, 원효가 수도했다는 우금바위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의상스님이 수도를 한 곳은 여그 우금바위가 아니고여라. 저그 높은 봉우리 보이제라. 저그서 수도를 혔다고 헌당게. 그래서 거 봉우리를 의상봉이라고 허제라 잉.”

왠지 못마땅한 투인 감처사의 목소리는 어린 진표의 귓속에서 종소리처럼 메아리쳤다. 원효, 의상…. 어머니에게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두 분 고승대덕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진표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불을 머금은 듯 뜨거워졌다.

“도련님도 짬 나면 쩌그 의상봉이든 우금바위든 가 보더라고요.”

“어딜 먼저 가볼까요?”

진표는 의상봉 쪽에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시간의 여백을 채우려는 것일 뿐, 굳이 대답을 듣고자 묻는 것은 아니었다.

“그거야 도련님 맘이제라.”

“그런가요.”

진표는 감처사의 대답이 퍽 성의가 없게 느껴졌다.

“쩌그 우금바위는 오늘이라도 짬나믄 가보면 되지 않것소.” 묻는 대로 대답은 하지만 감처사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투였다.

“우금바위 밑으로, 산성이 쭉 둘러쳐져 있는디.”

감처사는 갑자기 묻지도 않은 애기를 꺼냈다. 그의 목소리에 왠지 힘이 들어가 있다.

“산성, 이라고요?”

“그러제라잉.”

“저기에 왜 산성이 있나요?”

“고것이, 궁금허다요?”

묻는 조로 말하는 감처사는 왠지 짜증이 난다는 투였다.

“예. 처사님!”

진표는 좀 뜨악한 기분으로 반응했다. 이전에도 몇 차례 왔었으나 우금바위 주위의 산성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긍게. 그거씨 말여라잉. 우리 백제가 쩌으그, 신라 군사들과 전쟁혔을 적에 쌓은 산성이라고 안허요.”

감처사는 마치 서라벌 쪽이라도 향하는 듯 동쪽 허공을 휙 노려보면서 푸념하였다.

“아님, 당나라 군사들인지, 나는 모르것고. 그때 여그서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전쟁을 했다고 안허요.”

말해 놓고 처사는 코를 휑 풀어 한쪽으로 던졌다. 누군가에게 괘씸하다는 투였다. 잠시 후 법당을 향해 합장하고,

“나무아미타불. 죄송허구만이라 잉. 쇤네가 아적꺼저 분이 안 풀린다는 게라.”

하고 합장을 한 채 감처사는 더 이상 얘기도 꺼내기 싫다는 듯 요사채 쪽으로 휑하니 사라졌다. 마당 가운데 혼자 남은 진표는 왠지 마음이 울적해졌다. 아마도 감처사는 1백여 년 전의 백제 멸망과 깊은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개암에 대해 궁금한 것이 갑자기 많아졌다. 감처사와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방금 보여준 그의 행동으로 보아서 뒤따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진표의 마음속에서는 방금 그가 남겨놓고 간 말들이 떠나지 않았다.

“감처사님 할아버지허고 그 윗대 할아버지가, 저기 우금산성에서 전사했다고 허던디.”

그때, 두 사람의 얘기를 들었는지 용행자가 그림자처럼 다가와서 말해 주었다. 진표보다 몇 살 위였는데,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행자라고 불렸다.

“아. 용행자님.”

진표가 합장하고 아는 체를 하였다.

“긍게. 감처사님이 우리 절에서 처사로 있는 이유라고 허던디. 우금산성을 지킨다고여라.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잉.”

“그렇군요. 그런 일이 있었어요!”

진표는 굳게 닫힌 법당문을 보았다.

 

6

 

개암을 나와 뒤편 숲속으로 들어선 진표와 용행자는 오솔길을 허겁지겁 올라갔다. 진표의 제의로 용행자가 선뜻 안내를 자처한 것이었다. 숲은 빽빽한 나무들로 우거져 햇빛 한 줄기 들어올 틈이 없을 정도였다. 가파른 오르막 길이다. 그렇게 먼 곳은 아니었다. 한참을 올라가야 하려니 작정하고 올라 가는데, 눈앞에 거대한 바위가 우뚝 가로막고 있어 더 이상 진행하기가 어려웠다. 조금 전에 개암 마당에서 보았던 우금바위일 터였다.

“여그, 석축이 보이저라. 요것이 바로 성이었당게라. 여그, 쭉 보이는 것이 우금산성인디, 그때는 주류성이었다고 하더구만이라.”

용행자는 우금바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다른 곳을 안내하였다. 그가 가리키는 곳은 바로 무릎 앞이었다. 원효방이 있는 쪽으로 가기 전에, 우금바위 바로 밑으로 석축이 많이 무너진 채 빙 둘러쳐져 있었다. 우금바위를 중심으로 서쪽과 동쪽의 산줄기를 연결하는 석성인 우금산성이다.

“여기가, 주류성이라고요?”

진표가 재차 확인하겠다는 듯 물었다. 주류성이라면, 진표도 익히 그 이름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백제의 후예된 자로서, 주류성을, 왜, 모르겠는가!

 

언제인가. 660년,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이 사비성으로 밀물같이 밀려 들어오자 의자왕은 태자 효孝와 함께 옛 수도 웅진으로 피난을 갔다. 사비성에 남은 제2왕자 태泰는 1만여 명의 군사들과 함께 성을 사수하였다. 그러나 벌떼처럼 밀려오는 나당연합군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백제 군사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태왕자는 1만여 명의 전사자를 내고 궤멸하였다. 나당군은 이어서 웅진을 함락시키고 의자왕과 태자 효도 660년 7월 마침내 투항하였다. 공식적으로 백제는 이로써 멸망하였다.

그러나 이는 백제 중앙정부의 붕괴에 불과할 뿐 백제의 모든 것이 붕괴한 것은 아니었다.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 유신들의 부흥전쟁이 본격화된 것은 소정방의 주력부대가 그해 8월 말 사비성에서 물러간 뒤였다. 이때 백제 부흥군의 뒤에서 누구보다 눈부시게 활약한 인물이 승려 도침이었다. 계획은 치밀하였다. 도침은 의자왕의 종형제인 왕족 복신福信과 의기투합하여 왜에 가 있던 왕자 부여풍扶餘豊을 모셔 와 왕으로 삼아 독립된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춤과 동시에 백제 부흥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백제 유민을 모아 주류성을 근거지로 삼아 백제 부흥 전쟁을 전개하였다. 도침은 스스로 영군장군領軍將軍, 복신은 상잠장군霜岑將軍이라 칭하고 백제의 유민들을 모아 임존성任存城에 웅거하여 3만 명의 병력을 수습하였다. 부흥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때 도침은 당나라 장군 유인궤劉仁軌에게,

“당이 신라와 약속하기를, 백제 사람들은 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죽인 뒤에 신라에 넘겨주려 하고 있으니 어찌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야 있겠는가?”

하고 말할 정도로 기세를 떨쳤다.

당나라는 사비성을 함락시킨 후 백제의 옛 땅에 5도독부를 설치하여 백제 땅은 물론 신라까지 삼키려는 야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5도독부는 백제의 일부 지역 외에는 통제력이 미치지 못했다. 한때 백제 부흥군은 전국을 장악하였다. 부흥군은 때를 놓치지 않았다. 당군을 격퇴하면서 2백여 성을 회복하였다. 부흥군은 곧장 사비성으로 쳐들어갔다. 한때 수도 사비성을 포위할 정도로 전과를 거두었다. 이제 사비를 함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호사다마好事多라고 했던가.

백제 부흥군의 내부에 내분이 일어났고, 내분은 부흥군의 와해를 불러왔다. 복신과 도침 사이에 불화가 생겨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말았다. 이후 복신과 부여풍 사이에도 갈등이 생겨났고 불신의 골이 깊어졌다. 부여풍이 복신을 죽였다. 그리고 백강구白江口전투를 끝으로 백제부흥전쟁은 막을 내렸다. (우금산성은 1974년 9월 24일에 전라북도 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되었다. “주류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다. 『일본서기』에서 묘사하고 있는 주류성은 척박한 자갈밭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고, 높고 험준한 산협을 끼고 있으며, 바다와 멀지 않은 곳인데, 복신이 몸을 숨기던 동굴이 있는 곳이었다. 이러한 여러 조건을 감안하여 부안의 변산 일대를 주류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김상현, 「김상현 교수의 7세기 한반도, (24) 백제의 부흥운동」, 법보신문, 2011.07.05.)

 

“우리 큰 스님이 말여라 잉.” 진표가 백제 부흥 전쟁의 최후의 보루인 주류성이었고 하는 우금산성을 휘휘 둘러보고 있을 때, 용행자가 슬며시 다가와 귓속말을 하였다.

“긍게. 도융스님이, 백제 부흥전쟁 당시 영군장군이셨던 도침 큰 스님으 상좌란 말시 잉. 그때, 함께 백제 부흥운동으 하셨다고 안합뎌. 부여풍 왕자를 모시러 왜 나라로 갔던 사자가 바로 큰 스님이었당게. 큰 스님 말씀이, 당신이 부여풍 왕자를 뫼시고 오는 사이에 복신이 도침 스님을 살해했다고, 그 때적 생각만 하면 지금도 가슴을 치고 통탄하신당게요. 일만 계획대로 진행됐으면 백제는 다시 회복돼야부렀을 거시라고 잉.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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