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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러시아 알타이 지역에서 발굴된 까라꼴 문화의 석곽 무덤에는 머리로부터 광명을 방사하는 초월적인 존재들의 벽화가 발견되었다. 원시인의 세계관을 반영한 이 광명 문화의 흔적은 고구려의 대표적인 고분인 무용총, 사신총, 개마총 그리고 쌍영총에서 찾아 불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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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알타이 광명 문화

까라꼴 문화의 총 14개 무덤은 러시아 알타이 지역(그림 1) 세 군데에서 발견되었다. 기원전 2천년기 초엽에 해당되는 이 문화는 전 세계 고고학자들의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그 이유는 오늘날까지도 시베리아 지역을 통틀어서 채색된 벽화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까라꼴 문화의 사람들은 고인을 석관에 안치하고 영혼이 악신을 이겨내고 안전하게 조상의 나라로 도착할 수 있도록 길을 인도하는 존재를 석관 안쪽 벽면에 그려놓았다. 많은 그림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인격화된 ‘광명한 존재’(그림 2)와 ‘황소 뿔의 존재’(그림 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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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풍습을 표현한 벽화
까라꼴 문화의 벽화를 연구한 러시아 고고학자 꾸바레프는 1988년에 『까라꼴 문화의 고대 벽화』라는 책에서 “고인을 사방으로 둘러싼 인물들이 탈과 깃털이 달린 모자 또는 관冠을 쓰고 있다”고 했다. 원시 사회에서 탈은 특정한 형태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이것은 사람들이 조상신이나 초월적인 존재로 변신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사람 얼굴보다 크게 만들어진 탈을 쓰고 특별한 의상과 장식을 착용하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 탄생하게 된다.
벽화에 표현된 존재들이 샤먼인지 신인지 혹은 제사장인지 알 수 없지만 실제로는 모두 다 가능성이 있다. 이들은 석관 내부에 그려진 것이라 무덤의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 향후 연구로 2009년에 발표된 『알타이 까라꼴 문화의 유적』이라는 책에서는 꾸바레프의 의견이 달라졌다. 이 책에 따르면 벽화에 그려진 인물들은 실제로 장례의식에 참여한 동족들이다. 이들은 탈을 쓰고 짐승의 털로 만들어진 의상을 입고 날카로운 발톱과 꼬리를 착용하여 조상신과 신명으로 변신하고 샤먼과 제사장과 함께 고인을 저승으로 보내기 위해서 의례적인 춤을 추고 연기를 펼친다. 저자는 벽화에서 의례적인 춤의 가장 중요한 장면이 그대로 표현된 것으로 여겼다. 벽화가 제의적 행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그림 4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즉 오른쪽으로 향한 인물이 왼쪽으로 향한 인물과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은 영원한 선과 악, 삶과 죽음 그리고 빛과 어둠을 상징하는 적색의 선신과 검은색의 악신 간의 대립을 나타내고 있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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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한 존재
그림 2에서 나타난 것처럼 인물의 크기나 특징들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은 대동소이하다. 광명한 존재의 머리는 원판형, 마름모형, 동물머리 모양 등으로 표현되고 그 윤곽에서는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빛이 표현되었다. 원시시대 사람들은 광명을 깃털 꽂은 모자 또는 관冠으로 나타내며 머리로부터 뻗어나가는 빛은 광명의 신인 태양을 상징한다. 이 광명의 모자는 다양한 탈과 함께 활용했다. 그림 2에서 사람 얼굴의 탈과 짐승의 얼굴을 표현하는 탈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저자는 그림 5의 광명한 존재를 분석하여 모자의 깃털은 태양빛과 관련이 있고 의상의 깃털은 샤먼의 의복을 표현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각 깃털 끝부분에서 원형의 흠들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지만 꾸바레프는 「高句麗와 까라꼴 文化의 壁畵古墳 比較 硏究」라는 논문에서 새겨진 흠들이 별을 상징하는 것으로 결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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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뿔의 존재
원시 사회에서 동물의 뿔은 신묘하고 성스러운 물건으로 간주하였으며 의례에서 활용도가 다양했다. 까라꼴 벽화(그림 3, 그림 4)에서 정면으로 그려진 뿔뿐만 아니라 옆모습으로 표현되어 서로 연결된 뿔이 원이나 타원형을 나타내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오클라드니코브가 1978년에 발표한 「케룰렌 평원 신석기 부족들의 정신문화: 동물 매장 풍습 중심으로」라는 논문에 따르면, 중앙아시아(Central Asia)에 살았던 동물사육 종족들은 황소를 특별한 존재로 받들었는데 황소는 동물신 중에서 최고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꾸바레프(2009)는 까라꼴 벽화의 ‘황소 뿔의 존재’는 인격화된 황소머리 신을 상징하는 것이고 뿔 자체는 신묘함을 나타내는 빛으로 보았다. 한편 오세킨이 1990년에 출판한 『부칸타우 암각화 상징에서 찾는 천체』라는 저작에서 서로 연결해서 원형을 이룬 황소 뿔은 해와 달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겼다.
또 꾸바레프(2009)는, “까라꼴 벽화에 황소의 몸체가 없고 다만 뿔만 표현된 것은 일신과 월신의 통합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겼다. 이 주장을 증명하는 것은 그림 6인 까라꼴 벽화이다. 이 존재의 머리와 뿔이 마치 그림7에 표현된 것처럼 해, 달과 유사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결론적으로는 인격화된 ‘광명한 존재’와 ‘황소 뿔의 존재’는 광명의 신인 해와 달을 표현한 것이다.


그림 6 까라꼴 석판 벽화의 인격화된 황소 뿔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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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벽화와 까라꼴 벽화의 유사성
꾸바레프(2003)는 처음에 알타이와 고구려 고분벽화에 대한 비교연구에 대한 제안이 실현 가능성이 불확실해 보인다고 했다. 왜냐하면 두 유적 간에 상당한 시간적 차이와 지리적 거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얼핏 보아도 알타인과 고구려인의 매장풍습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고 다양한 의식장면의 주제와 참여 인물에 대한 해석은 의미상으로 상통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까라꼴 벽화의 채색은 적색과 검은색 그리고 흰색으로 이루어졌다. 이에 비해 고구려 고분벽화는 다양한 색으로 표현되었지만 인물의 윤곽을 덧칠하는데 동일한 기법이 적용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쌍영총의 일부 인물의 얼굴 윤곽이 적색이나 검은색으로 덧칠해진 것이 바로 그 예이다. 흥미롭게도 동일한 덧칠 기법은 이집트 벽화에서도 활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머리에 꽂은 여러 개의 깃털로 표현한 빛의 방사나 황소 뿔이 달린 존재, 여러 석판에 발견된 원형 흠들은 고대 알타이인들이 일신日神과 월신月神 그리고 성신星神을 숭배했음을 증명해준다. 고구려 벽화에서도 고대 천문에 관련된 인물상을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 예술가들은 일신과 월신 그리고 성신을 자주 표현했는데 그 대표적 사례는 오회분五恢墳 5호묘이다.
까라꼴 벽화에서 손에 새의 깃털을 잡고 밑으로 늘어뜨린 인물(그림 2. b), 몸통에 깃털 장식을 한 인물(그림 5), 새의 발톱이 달린 인물 등을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인의 새 신앙은 고분벽화 장면에서 나타난다. 고구려 초기 왕들의 기록에서 중요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궁정 앞에서 신묘한 새가 등장했다고 한다. 또 사냥에 나선 왕이나 제사장의 모자를 깃털로 장식하는 풍습이 있다. 사신총에는 무덤의 주인공과 그의 부인의 모습에 날개가 달려 있다. 이처럼 날개가 표현된 것은 무덤의 주인공이 태양 및 하늘과 관련이 있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까라꼴 유적 무덤 중에서 늑대나 개와 비슷한 상상의 맹수가 새겨진 곳이 있다(그림 8). 맹수 주위에 태양을 상징하는 십자가 표현되었고 별을 상징하는 원형의 흠들이 새겨져 있다. 약수리 고분 널방 서벽에는 신비로운 백호와 별(그림 9)이 그려져 있어서 까라꼴 짐승 장면과 유사성을 드러내고 있다.
고구려 벽화에서는 다양한 상상의 동물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자연환경을 대표하며 무덤의 주인공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또, 1972년에 출판된 『고대 고구려인, 한민족의 기원사』라는 자를가시노바의 저작에 따르면, 무덤에서 상상속 동물들이 등장하는 것은 우주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악신과 선신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는 고구려인들의 고대 세계관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림 8 까라꼴 석판 벽화의 ‘상상의 맹수와 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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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의 흔적
다양한 시대의 문화권에 해당된 동일한 매장풍습과 세계관 그리고 예술작품은 서기전 3천년에서 2천년 사이에 이루어진 아시아 지역 민족이동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오늘날까지 한국에서 까라꼴 문화와 유사한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중앙아시아(Central Asia)와 한반도 사이에는 고구려 시대보다 더 이른 시기에 교류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중앙아시아 유목민과 고구려인 간의 교류관계와 고구려인이 평원에서 한반도 북쪽으로 이동한 것은 무용총, 개마총, 쌍영총 등에서 발견된 기마인상으로 증명되었다. 고구려 벽화와 알타이와 몽골 지역의 고대 튀르크인의 벽화에 표현된 수렵도나 전쟁도는 서로 유사한 예술 양식을 띠고 있다. 이와 같은 유사성은 예술문화적 교류로 인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는 광명을 신성히 여기는 알타이인과 고구려인 조상 간의 문화적 교류에 대한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보인다. 향후 연구에서는 알타이인의 깃털로 장식된 관과 고구려 오우관烏羽冠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 조사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꾸바레프, 『까라꼴 문화의 고대 벽화』, 나우카 출판사, 노보시비르스크, 1988. (Кубарев, 1988, “Древные росписи Каракола”, изд. Наука, Новосибирск)
꾸바레프 저, 姜仁旭 역, 「高句麗와 까라꼴 文化의 壁畵古墳 比較 硏究」, 『고구려발해연구』, 16, 55-65, 2003.
꾸바레프, 『알타이 까라꼴 문화의 유적』, 고고학과 인류학 대학의 출판사, 노보시비르스크, 2009. (Кубарев, 2009 “Памятники Каракольской культуры Алтая”, изд. Института археологии и этнографии СО РАН, Новосибирск)
오클라드니코브, 「케룰렌 평원 신석기 부족들의 정신문화: 동물 매장 풍습 중심으로」, 『나우카』, 노보시비르스크б 199~204쪽, 1978. (Окладников, 1978, “Из области духовной культуры неолетических племен долины Керулена: ритуальные захоронения остатков животных”, Наука, Новосибирск, ст. 199-204)
오세킨, 『부칸타우 암각화 상징에서 찾는 천체』, 고고학 대학교 AN USSR, 141~146, 1999. (Оськин, 1999, “Небесные светила в символике петроглифов Букантау”, Ин-т археологии АН СССР, 141-146)
자를가시노바, 『고대 고구려인, 한민족의 기원사』, 모스크바, 202쪽, 1972. (Джарылгасинова, 1972, “Древние когуресцы. К этнической истории Кореи”, Москва, ст. 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