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하이데거의 생애와 사상 3

  1. 존재의 이웃으로 가는 길 위의 나그네

하이데거 기념관은 바로 교회 옆에 있었다. 두 개 층으로 이뤄졌으나 면적은 크지 않았고 소박했다. 그러나 하이데거 관련 정보나 유물을 내실 있게 정리하여 소개하고 있었다. 하이데거와 생애와 사상의 매듭들을 연대기별로 요령 있게 설명한 게시물들이 공간을 나누며 배치돼 있었다. 주로 텍스트와 사진 자료들이 전시돼 있었다. 기록물 중에는 그의 육필 원고. 타이핑된 원고, 신문 자료, 편지들이 있었다. 이미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접한 것들이 많았지만, 한 공간에 집약된 사진들은 하이데거 삶의 편린들을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그에게도 천진한 유년과 발랄한 청춘, 자신감 넘치던 30대 또 완숙한 중년, 노년의 시절이 있었지.’ 1층 전시실 한 중앙에는 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양쪽에 이어폰이 설치돼 하이데거의 강연 육성을 들을 수 있었다. 한쪽에서는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에서 행한 ‘헤겔과 그리스인들’이, 다른 한쪽에서는 메스키르히 시청에서 열린 동향의 작곡가 콘라딘 크로이처(Conradin Kreutzer)의 탄생 175주년 기념식에 행한 강연 ‘Gelassenheit[내맡김]’가 녹음돼 있었다. 사유의 본질을 내맡김으로 밝히는 이 강연은 출간된 책을 통해 이미 여러 번 읽었던 터라 일부 단어나 문장을 알아들어 마치 그 현장에 시간 이동한 듯 감격스러웠다.

2층 전시실의 한 공간에서 대면하게 되는 일본인 학자의 흉상은 다소 뜬금없었다.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郎, 1870-1945)란 인물이다. 이른바 교토학파의 ‘태두’라 평가되는 니시다는 하이데거와 직접적 관계는 없지만 하이데거 철학을 수용한 그의 제자나 후학들이 무와 존재라는 문제를 가지고 양자의 대화를 시도했다. 물론 하이데거 자신에게나 교토학파와 같이 하이데거를 통해 동서의 융화를 모색하는 이들에게 간과할 수 없는 철학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일면식도 없는 그를 하이데거를 추념하는 공간에서 만난다는 것은 어색한 일이다. 교회 맞은편의 생가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부모와 하이데거를 포함해 세 자녀(2남1녀)가 단란하게 보낼 수 있는 규모의 주택이었다. 남동생은 훗날 은행장이 되며 누이동생은 어려서 죽는다. 좀 더 가까이 살피니 현관 앞 나뭇가지 뒤에 하이데거 생가라고 표시된 현판이 숨어있듯이 나타났다.

 

그림 1 하이데거 삶의 편린들을 보여주는 사진들. 하이데거 부부, 형제의 모습도 보인다. 하이데거의 자필 헌사가 쓰인 책은 그의 고향 메스키르히가 그의 80주년 생일을 기려 펴낸 헌정문집.

 

그림 2 옛 토트나우베르크 산장. 사진의 여성은 하이데거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한나 아렌트. 50대의 하이데거 모습도 있고 그의 책 『사유란 무엇인가』, 『강연과 논문』 등이 보인다.

 

그림 3 사진 속 하이데거 부부

 

그림 4 자필 편지나 초고, 메모들.

 

그림 5 하이데거, 시인 파울 첼란의 모습, 하이데거가 마지막으로 사용한 만년필이 보인다.

 

그림 6 하이데거는 전집으로 출간된『존재와 시간』에 아내를 위해 헌사를 직접 써 넣었다.

 

그림 7   1층 전시실의 중앙에는 녹음된 하이데거의 강연을 들을 수 있도록 돼 있었다.

 

그림 8 하이데거 생가

 

그림 9 아래 담장에는 하이데거 얼굴이 부조된 기념판이 설치돼있다.

 

길은 궁정 정원 문에서 엔리드[지명地名]로 향한다. 정원의 오래된 보리수들이 담장 너머로 길을 바라본다. 부활절 무렵 돋아나는 곡식들과 깨어나는 초원들 사이로 밝게 빛나든, 크리스마스 무렵 눈 더미 속에서 사라져가든 상관없이 길을 지켜본다. 들판의 십자로에서 길은 숲 쪽으로 방향을 튼다. 숲 가장자리를 지나 높은 참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그 아래에는 거칠게 짠 벤치가 놓여 있다.”

1949년 출간된 『들길』에 나오는 말이다. 들길은 하이데거가 고향의 들길을 산책하며 자연과의 교감, 고향에 대한 애착 그리고 존재에 대한 사유를 시적인 언어로 표현한 짧은 에세이다. 이제 우리는 하이데거가 묘사한 그 들길을 향해 간다. 그가 말한 것처럼 연로한 수목들과 싱싱한 풀밭이 기품 있게 펼쳐진 궁정 정원을 지나 성문에 이르렀다. 거기서부터 달랐다. 곡식들이 돋아나던 초원들 대신 포장한 길과 집들이 들어서 있다. 더 가다보면 하이데거 걷던 길의 자취를 더 찾을 수 있으려나? 저 낮은 언덕을 넘어가면 아직도 건재하다는, 참나무 아래의 거칠게 만든 벤치를 볼 수 있을까? 조금씩 내리던 비가 거세졌다.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며 보리수처럼 길을 바라볼 뿐이다. 뒷짐을 지고 시골 노인의 옷차림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진 속 하이데거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다. 그의 글에는 이런 구절도 나온다.

그림 10 메스키르히 궁정 정원

 

그림 11 궁정 정원으로 걸어 나가면 외부로 연결되는 문이 나온다. 예전에는 들판이 펼쳐지고 그 사이 길[들길]이 나 있었다.
그림 12 하이데거가 자주 산책한 들길을 안내하는 이정표

 

단순함은 위대한 것과 상주하는 것의 수수께끼를 보존한다. 그것은 매개를 거치는 법 없이 인간에 깃들며 긴 번성을 필요로 한다. 단순함은 언제나 동일한 것의 수수함 속에 그의 축복을 감춘다. 들길 주위에 머무는 모든 성장한 것들의 광활함이 세상을 선사한다. 광활함의 말해지지 않은 말은 옛 독서와 삶의 대가인 에크하르트가 말하듯, 신은 오직 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들길의 말 건넴은 단지 그것의 대기 속에 태어난 인간들이 들을 수 있는 한 지속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유래에 귀 기울인다.

하이데거 사유에서 길은 메타포 이상이다. 길은 그의 사유를 규정하는 주제어이다. 저술이나 강연의 제목에 직접 ‘길’이 들어 있거나 길과 관련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그 만의 독특함이다. 『숲길』, 『들길』, 『이정표』, 『언어로의 도상에서』, 『들길에서의 대화』. 또 『사유의 경험으로부터』나 『사유의 사태로』에서 ‘으로부터’와 ‘으로’는 새로운 사유 영역으로 가는 길을 시사한다. 하이데거는 그 동안의 형이상학을 떠맡은 표상적 사유 대신 숙고라 부르는 새로운 사유를 내놓는다. 우리가 ‘숙고’로 표현하는 독일어 ‘sinnen’, ‘sinnan’은 “하나의 사태가 이미 그 자신으로부터 취한 길로 따라 들어서다”란 뜻이다. 이들의 어간을 형성하는 ‘Sinn’은 통상 ‘의미’로 해석되나 원래는 하나의 사태가 내는 열린 길이며 방향을 가리킨다. “숙고의 본질은 의미로 관여해 들어가는 것이다.” 숙고란 의미가 열리는 길에 들어서 머물고 그리로 마음을 모으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숙고는 길을 내는 것이며 길에 들어서는, 길을 따르는 것이다. 숙고는 존재에 응답하는 사유이다. 존재는 자신을 밝혀 또는 자신을 내줘 또는 말을 건네 사유하게 한다. 사유는 그러한 방식으로 존재가 밝게 틔우는, 내주는 길을 따르며 동시에 존재가 그렇게 진리로서 머물도록 길을 낸다. 영역에 대한 자각은 모든 영성적 사유의 특징이다. 여기서 ‘누가, 무엇이 길을 내며 누가, 무엇이 길을 따르는가’란 물음은 이미 지워진다. 존재를 사유하는 한 우리는 그의 말대로 “존재의 이웃으로 가는 길 위에 선 나그네(Wanderer)”이다.

또 하이데거는 서양의 로고스만큼이나 동아시아 사상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도道도 글자의 훈訓에 따라 길로서 이해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길 및 도의 낱말들이 그 속에 말해지지 않는 것으로 돌아가도록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어쩌면 ‘길’이나 도道라는 단어에는 사유하는 말함이 지닌, 모든 비밀 중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림 13 곡식이 돋아나던 들판 대신 포장된 도로와 주택이 들어서 있다. 내리는 거센 비 때문에 숲 가장자리에 아직 건재하다는 거칠게 만든 벤치마저 볼 수 없었다.

 

그림 14 산책하는 하이데거

 

그림 15 프라이부르크의 핫한 맥주 펍 ‘마르틴스 브로이’

 

그림 16 구리 재질의 커다란 맥주 양조용 탱크

 

비가 개었을 때는 어느덧 돌아갈 시간이다. 길이 별로 변하지 않았기를 기대하기에는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세월이 이미 몇 번을 지났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 석양이다. 저녁은 프라이부르크의 ‘핫한’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이곳을 여행한 한국인의 여행 후기에 어김없이 언급되는 양조장 겸 맥주집이다. ‘마르틴스 브로이’(Martins Bräu)이다. 직접 양조한 맥주와 독일의 대표 음식중 하나인 슈바인스학세와 슈니첼(독일의 돈까스)이 시그니쳐 메뉴이다. 눈길을 사로잡는 거대한 양조 탱크, 손님들의 떠들썩한 흥취, 주말의 여유, 도저히 내가 경험한 어떤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는 슈바인스학세, 슈니첼의 맛과 독일의 명품 맥주. 이국적이라는 게 이런 것일까. 이방인의 자유를 제대로 느끼며, 흡족한 배, 흡족한 마음으로 식당을 나섰다. 이 식당은 나중에 작은 반전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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