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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역』, 『주역』에 대한 비판적 극복
김일부는 연산連山 땅에서 만고의 정적을 깬 사상적 혁명가이자 혁명적 사상가이다. (그는 동양철학의 근간인 『주역』을 낱낱이 해체한 다음, 다시 재구성하여 유불선 삼교의 가르침을 일원화시킨 사상적 혁명가이다. 『정역』의 주제는 선후천론先後天論이다. 인간은 보통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를 조명하는 데 익숙하다. 즉 선천의 입장에서 후천을 들여다보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습성이다. 뒤집기 기술이 씨름의 묘미를 보여주듯이, 정역사상은 후천에서 선천을, 미래에서 현재와 과거를 바라보는 사유의 전환을 요구한다.
천동설天動說을 부정하고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한 갈릴레이에 대해 로마 교황청은 지동설을 철회하라고 압력을 행사했던 것은 너무도 유명한 사건이다. 코페르니쿠스는 과학적으로 지동설을 입증했다. 과거의 종교적 믿음에 기초한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기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교황청에서는 불과 30여 년 전에 처음으로 지동설이 옳다는 사실을 공식으로 인정했다. 천동설과 지동설은 반대의 길을 걷는다. 입장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목숨을 내놓고 논쟁을 벌였던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는 과학의 혁명가였다.
정신 혁명가 김일부는 외롭고 고독했다. 아무도 자신을 몰라준다고 세상을 마냥 투덜거리면서 원망하지 않았다. 기존의 가치체계에 대해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니라, 부정을 통해 거대한 긍정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이론을 수립하고자 고뇌에 빠졌던 것이다. 뱁새는 붕새의 높은 뜻을 모른다고 장자莊子는 말했던가.

야속하게도 주위 사람들은 김일부를 ‘괴짜 선비[六十平生狂一夫]’라고 손가락질 했다. 하지만 김일부는 온갖 조롱을 한바탕 깨달음의 웃음으로 날려버렸던 것이다. 그는 하늘과 부자관계로서 꿈결같은 대화를 나눈 결과, 『정역』의 저술은 하늘의 부름인 ‘시간의 섭리[時]와 하늘의 명령[命]’이라 단언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정역사상에 무지한 용맹한 일부 학자들은 헛된 망상에 기초하여 수립한 이론에 불과하다고 폄하한다. 힘든 나날을 보냈던 김일부에 대한 평가는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명예와 불명예의 양극단을 걷고 있다. 지금도 김일부를 성인聖人으로 추켜세워지거나, 후천개벽을 외친 예언가로 평가절하하고 있다. 누가 성인이라고 규정했는가 또는 예언가로 규정했는가에 의해 『정역』의 운명은 마치 증권시장에서 상한가와 하한가를 오르내리는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정역』에 대한 상반된 고무줄 평가보다는 제대로 된 평가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긍정과 부정의 어정쩡한 중립적 평가는 오히려 김일부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정역사상은 자연과 문명과 인간에 대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특히 철학적 발상 자체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한다. ‘상극에서 상생’이라는 우주사宇宙史와, ‘윤력閏曆에서 정력正曆’으로의 시간사時間史와, 복희팔괘도와 문왕팔괘도에서 정역팔괘도로의 전환을 통해 문명사文明史를 일관되게 설명한다.
이것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창적인 사유의 극치를 보여준다. 동서양 철학에서 시간론을 하나의 주제로 삼는 경우가 많았으나(아우구스티누스의 종교적 고백의 시간론, 칸트를 비롯한 철학자들, 스티븐 호킹 같은 물리학자들의 견해), 시간의 꼬리가 떨어져나간다는 전무후무한 시간의 질적 전환(1년 365¼의 윤력閏曆에서 1년 360일의 정력正曆에로)으로 인한 새로운 우주의 탄생을 논의하지는 못했다.
직선적 시간관과 역사관에 입각한 기독교는 세상의 끝장을 얘기하는 종말론을 얘기하지만, 『정역』은 본체와 작용[體用]의 극적인 전환을 통해 억음존양抑陰尊陽의 선천질서에서 조양율음調陽律陰의 후천세상으로 바뀌는 무극대도無極大道 출현의 해명에 성공함으로써 종말론의 폐단을 극복한 희망의 철학이라 할 수 있다.
정역사상의 핵심은 시간론時間論에 있다. 인간은 만물을 마구 먹어치우는 시간의 이빨에 속수무책이다. 유형과 무형의 모든 사물은 시간의 먹잇감이다. 시간의 법칙인 생로병사를 비껴갈 수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다. 시간은 사물 형성의 근거이자 내용이며 형식이면서 힘이다. 시간과 공간은 자연과 사회와 인류역사의 궁극 원리인 까닭에 『주역』 건괘 「단전彖傳」은 “끝마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을 크게 밝히면 6위가 시간으로 완성된다[大明終始, 六‘位’‘時’成]”고 강조했던 것이다.
김일부는 「대역서大易序」에서 “역이란 책력이니 책력이 없으면 성인도 없고 성인이 없으면 역도 없다[易者, 曆也, 無曆無聖, 無聖無易.]”는 새로운 3대 명제를 제시하여 주역학의 근본문제를 중국역학과 차별화시켰다. 이는 선천과 후천의 캘린더 시스템(선천의 ‘갑기甲己’질서에서 후천의 ‘기갑己甲’질서로의 전환)이 바뀐다는 파천황적 선언에 다름 아니다. 이에 대해 김일부는 수리론으로 ‘조화옹造化翁의 섭리’를 낱낱이 분해하여 추론하였다. 그것은 우주에 대한 결정론, 합리론, 목적론의 성향을 하나의 용광로에서 종교철학의 문제로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부는 『정역』에서 비록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수행론의 당위성과 정당성을 입증하는 체계를 세웠고, 잃어버린 수행의 방법을 재발견했던 것이다. 인간은 왜 수행해야 하는가? 수행의 목적과 방법은 무엇인가? 등의 근거를 제시하였다. 시간론에 근거한 역도수逆度數(상극질서 = 하도를 지향하는 낙서의 세계상)와 순도수順度數(상생질서 = 하도에 근거해 현실에서는 낙서로 펼쳐짐으로써 하도의 무극대도로 완성되는 설계도의 초안)가 바로 그것이다.
인간이 태어날 때는 ‘위에서 아래’라는 순順의 이치에 의해 어머니 자궁에서 머리부터 나오지만, 살아갈 때는 하늘을 머리에 이고 ‘아래에서 위로’라는 역逆의 이치에 의해 역경을 겪으면서 살아간다. 낙서의 역도수는 고난의 도수로서 자연의 신비와 운행을 밝히는 원리이다. 이것이 수행원리로는 수승화강水昇火降에 적용된다.
우주사와 문명사와 인류사는 동일한 원리에 의해 전개된다는 것이 『정역』의 입장이다. 이를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이 괘의 변천사이다. 복희괘에서 문왕괘로, 문왕괘에서 정역괘로 괘의 형상이 변해간다. 이렇게 괘도의 변천에 반영된 우주원리가 변화함에 따라 역사와 문명의 색깔도 달라지는 까닭에 인간의 삶의 양상도 여기에 조응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정역』은 원초적으로 혹은 결과적으로 ‘올바른 변화(Right Changes)’를 뜻한다. 우주가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변화해가는 과정에서는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는(Correct Changing for Origin)’ 역易이라 호칭할 수 있다. 즉 선천이 후천으로 바뀌는 이치가 옳다는 뜻이다. 자연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현상적 변화가 교역交易이라면, 선후천 교체기에는 본체와 작용이 서로의 역할을 바꾸는 변역變易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불변의 이치만을 탐구했던 동서양 철학에 결정타를 날리는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정역』은 삶의 좌표를 시간론에 근거하여 합리적인 체계를 수립했다는 점에서 가장 세계적인 사상이고, 우리나라에서 정립되었다는 점에서 가장 한국적인 사상이다. 가장 세계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말은 『정역』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정역』은 실체론의 사고에 빠졌던 중국역학을 극복하고, 유기체 사유를 근간으로 천지 자체가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다는 사실을 논의하였다. 이것이 바로 ‘선후천론先後天論’의 핵심이다. 이는 동양철학의 논바닥을 쟁기로 갈아엎은 놀라운 혁신적 사유가 아닐 수 없다.
조선학의 선구자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1890-1957)은 원효元曉(617-686)의 위대함을 다음과 같이 부르짖은 바 있다. “원효 이전에 원효 없고, 원효 이후에 원효 없다.” 논자는 이를 수정하고자 한다. “일부一夫 이전에 일부 없고, 일부 이후에 일부 없다.” “『정역』 이전에 『주역』이 있고, 『정역』 이후에 『정역』이 남는다.” 따라서 한국사상을 대표하는 사상가를 꼽으라면 중세에는 원효,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김일부가 존재할 뿐이라고!
그렇다면 김일부의 위상은 어떻게 자리매김 되어야 하는가? 매우 궁금하다. 그에 대한 평가는 아주 단순할 정도로 양극단을 걷는다. 김일부가 죽은 뒤 성균관의 후신인 모성공회慕聖公會에서는 ‘성인聖人’으로 추증하였고, 다른 부류에서는 조선조 말 ‘개벽사상가’의 한 사람으로, 혹은 미래 예측을 고급스런 담론으로 이끈 ‘예언가’로, 또는 광산 김씨 문중의 족보에서 이름이 퇴출되려 했던 ‘괴물 선비’로 규정되었다. 이는 어쩌면 김일부의 학문과 인간적 모습에 대한 다양한 평가일 수도 있다.
미국의 유명한 신화학자 조셉 켐벨(Joseph Campbell: 1904-1987)이라는 학자가 있다. 그는 현대야말로 가장 위대한 신화가 필요가 시기라고 했다.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고향을 잃은 현대인들에게 어머니 자궁과 같이 포근한 쉼터는 신화 말고는 없다고 강조했다. 현대인이 진정으로 요청하는 인간은 ‘문화 영웅’일 것이다. 일차적으로 김일부를 한국의 문화영웅으로 업그레이드 시키고, 그 다음으로 세계의 문화영웅으로 수출해야 할 것이다.
정역사상의 연구는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본다. 일차적으로는 김일부 1세대 제자들의 문헌을 한글로 옮기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정역사상 전반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아울러 정역사상의 전수에 대한 ‘계보도’를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문가들에게 맡기면 아주 쉽다. 다음으로 『정역』 자체를 신학, 우주론, 시간론, 생태론, 수리철학, 음양오행론, 수행론, 자연과학, 시스템론, 유불선의 시각 등 다양한 각도에서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개별 탐구와 이들을 하나로 묶는 종합 탐구가 수반되어야만 정역사상의 전모가 밝혀지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