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제天祭는 수행이다 (1)

Ⅰ. 음주가무는 신인합일의 의례儀禮

“한국은 마치 뭔가 평화롭고 온화한 사람들이 사는 파라다이스 시티 같은 이미지가 계속 생겨나고 있어요.”

유튜브에 한국 문화를 재치 있고 유창한 한국어로 소개하는 것으로 유명한 김샬롯이 미국 내 BTS 공연 열기를 다룬 콘텐츠에서 하는 말이다. 자국 미디어를 통해 한국의 평화로운 집회 문화 등이 보도되면서 생겨난 반응이라고 한다.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을 준다. ‘동이東夷’에 대한 중국 문헌의 기록들을 두고 하는 얘기이다.

동이란 산동, 요동, 한반도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고대 동방문화권의 주인공들로 한민족의 뿌리겨레를 일컫는다. 중국의 하, 은, 주 삼대 이전부터 일찍이 발달한 동이는 시기와 지역뿐만 아니라 인종과 문화에 있어 우리 민족의 시원 국가인 환국-배달-고조선과 일치한다. 비한어족非漢語族인 그들은 용산문화와 통하는 농경문화를 가졌고 체질상 북몽고 인종, 언어학상으로 알타이어 족에 속하며 천손족天孫族 사상, 태양 숭배 사상 및 난생 설화, 무격巫覡 신앙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이족이 고유하게 향유한 흑도문화는 서방 중국 지역의 채도문화와 대조를 이룬다. 중국인들은 그네들 편에서 동쪽 바다 건너에 사는 동이를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동이들은] 천성이 유순하여 도덕이 펼쳐지기 쉬워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기에 이르렀다.”(『후한서後漢書』)

“[동이의] 이夷는 동방의 사람을 말하며 ‘대大’와 ‘궁弓’의 합성이다. … 오직 동이만이 대大를 따르는 대인大人들이다. 동이의 풍속은 어질고 어질면 장수하므로 동이에는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가 있다. … ‘大’는 사람의 형상을 본뜬 것인데 夷의 옛 글자는 ‘大’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렇듯이 군자君子는 동이들과 같은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고 동이들처럼 행동하면 복이 내린다.”(『설문해자說文解字』)

“군자국이 [한반도] 북부에 있는데, 사람들은 의관을 하고 칼을 찼으며 … 양보하기를 좋아하고 다투지를 않는다.”(『산해경山海經)』)

공자孔子도 거든다. 구이九夷에 가서 살고 싶다는 그의 말에 한 사람이 ‘그곳은 누추할 텐데 어쩌시렵니까?’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군자가 사는데 어찌 누추함이 있겠는가?”(『논어』) 구이는 동이의 또 다른 이름이다. 공자는 군자가 사는 어진 동이에 가서 살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또 다음과 같은 공자의 말도 이와 관련지어 거론되기도 한다. “도가 행해지지 않아 뗏못 배를 타고 바다로 떠나가려 하노라.”(『논어』) 이때 바다를 산동반도와 요동반도 사이의 발해渤海로 그리고 공자가 가고자 한 곳을 바다 맞은편의 동북방 동이의 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옛날에 발해는 지금처럼 넓거나 깊지 않았다고 하는데 뗏못 배를 타고 건널 만큼 가까웠나 싶다.

또 중국인들은 동이의 문화 가운데 그들이 보기에 이색적이었던 풍속에 대해서도 적어 놓고 있다. 한국 고대 국가들에서 국중행사國中行事로 행해진 제천의례祭天儀禮에 대한 기록이다.

진수陳壽가 편찬한 『삼국지』 「위서」 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의 부여, 고구려, 동예, 삼한(마한,진한,변한) 조條에서는 이들 나라들이 하늘 혹은 하느님에게 제의를 올리는 제천대회를 소개하고 있다. 잘 알고 있는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동예의 무천舞天이 그것이다. 삼한의 경우는 천제의 이름이 딱히 호명돼 있지 않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음주가무飮酒歌舞에 대한 언급이다. 동예와 삼한의 천제에서는 여러 날을 계속하여 밤낮으로 술 마시며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晝夜飮酒歌舞]고 적고 있다. 부여의 경우는 연일 음식을 먹고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連日飲食歌舞]고 기술돼 있는데, 당연히 여기에는 음주가 포함돼 있을 것이다. 고구려에서는 관련 기록이 생략돼 있지만 그 또한 크게 달랐을 것 같지 않다. 이러한 제천 기록은 『삼국지』보다 후대에 작성된 『후한서』에도 거의 동일하게 실려 있다.

이 기록들에 따르면 한국 고대 제천행사에는 숨도 크게 못 쉬고 엄숙하게 진행될 것만 같은 의례에 음주가무가 빠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방인의 눈에도 신기했던 모양이다. 특히 삼한의 경우는 가무의 내용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이에 따르면 수십 명이 함께 일어서서 서로 따르면서 발을 디디며 손발을 낮추었다 높였다 하여 서로 장단을 맞추었다 한다.

『환단고기』에서도 천신天神의 제의와 경배에서 행해진 가무를 전하고 있다.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는 이미 9천 년 전 우리 민족의 뿌리국가이자 오늘날 인류의 최초 나라인 환국을 구성한 아홉 환족의 예악이 삼신三神께 천제 드리는 풍속에 있었다고 밝힌다. 이어 신시 배달 시대에는 공수貢壽[供授] 또는 두열頭列이란 음악이 있었다.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부르는 노래로 나라가 창성하고 백성의 마음을 믿음과 기쁨으로 가득 차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또 우리 민족의 음악은 문헌에 따라 두열頭列, 조리朝離, 주리侏離, 도솔兜率이라 했으며, 대체로 하느님에게 삶의 기쁨과 평안함을 빌고, 분수를 알고 천리를 좇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기록(「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도 찾아볼 수 있다. 단군 조선의 부루 단군 때는 어아지악於阿之樂 또는 어아가於阿歌가 있었는데, 신시의 옛 전통에 따라 제사를 지내며 하늘의 주재자 삼신[대조신]을 맞이하는 노래였다.(「소도경전본훈」) 『단군세기檀君世記』의 위나尉那 단군 조에는 삼신하느님께 천제를 지낼 때 천부경을 노래하며 마당밟기를 하는 한편 횃불을 줄지어 밝히고 둥글게 춤을 추며 노래[愛桓歌: 환화를 사랑하는 노래]를 함께 불렀다고 나와 있다.

드물지만 술에 관한 언급도 있다. 구물 단군은 천제天帝를 모시던 신전神殿 뜰에 큰 나무를 세워 북을 매달게 하고, 삼칠(21)일을 기약하여 서로 술을 마시게 하며 교화에 힘쓰시어 그 내용을 책으로 만들었다.(「소도경전본훈」) 교화는 분명 천신의 가르침에 관한 것일 터다.

제천에서 단순히 신神에 대한 제사만이 아니라 날마다 술을 마시고 노래와 춤을 추었다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의당 천제의 의미를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제사를 지내 신을 기쁘게 하고 복을 내려 주시기를 기원하면, 신은 반드시 충忠을 내려 주시고, 복은 반드시 나라를 흥하게 할 것이다.”(「소도경전본훈」) 인용문 가운데 ‘충忠’은 신에게서 내려 받은, 인간의 참된 마음이나 본성, 본래의 인간됨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 문장은 제사의 뜻이란 신에게 경배하고 간구하여 인간이 신으로부터 품부한 참됨을 얻고 나라가 흥성하게 하는 데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고려 말 행촌杏村 이암李嵒(1297~1364)은 보다 직접적으로 제사의 본질을 밝힌다.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것은 사람을 근본으로 삼는다.”(『단군세기檀君世記』) 제천의 의의는 인간이 제 본성이나 참됨에 이르는 인간 완성에 있다는 것이다.

제천행사의 내용과 의미에 관한 한, 직접 현장을 참관한 선인仙人 발귀리가 천제에 부친 송가頌歌가 중요한 전거가 될 것이다. “대허유광大虛有光 시신지상是神之像”으로 시작하는 이 송가는 「소도경전본훈」의 서두를 차지한다. 그는 이 시에서 유무가 뒤섞인 신령한 기운과 천신을 찬미하고 인간이 그 우주 생명의 빛과 통하여 큰 깨달음을 얻는다고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에 따르면 국중행사로서의 제천은 하느님께 경배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제 본성[충]을 찾아 신과 하나로 통하는 인간의 신화神化를 향한 수행의 성격을 아우른다. “일반 백성들도 국중대회(國中大會)를 통해 영신(迎神) 행위를 경험했는데, 그것이 바로 제천행사이다. … 신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신비적 제의(祭儀)행사였을 것이다.”(정순종, 「조선 유학에 계승된 단군신화의 ‘하늘 관념’과 ‘신선사상’ 탐색」) 그리고 행사 절차로서의 ‘음주가무’는 단순히 ‘먹고 놀면서 쾌락을 얻는, 또 일시적인 위안과 감동을 기대하는 흥이 아니라 인간완성의 통로인 신인합일에 이르게 하는 방편으로서 종교적 의례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해석돼야 할 것이다. 종교적 엑스터시나 또 다른 영성 경험을 통해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그 경계로 인도하는 춤과 노래가 동원됐다고 보는 것이다. “祭지낼 때의 飮酒 歌舞하는 것은 인간들의 단순한 오락을 위한 것이 아니다. 神靈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神靈과 인간이 교제하는 종교적 技術이요 祭儀의 일부이다.”(류동식, 『韓國巫敎의 歷史와 構造』)

『단군세기檀君世紀』는 신시 개천이래로 매년 나라에 큰 축제를 열어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부르는 어아가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다. 하느님의 덕을 찬양하는 노래로서 감사함을 근본으로 하여 하늘의 신과 인간을 조화시킴으로써 사방에서 이를 본받았다.(『단군세기』) 또 단군 조선을 한참 지나 신라 시대의 화랑은 신을 섬기고 도의를 연마하며 가락을 즐겼는데, 『삼국유사』는 그들이 지어 부른 향가는 “천지귀신을 감동시킬 수 있다[能感動天地鬼神].”라고 적고 있다.

화랑까지 이어지는 유구한 연원의 제천무가舞歌는 오늘날 세속의 무가巫歌에도 어김없이 흔적을 남기고 있을 것이다. 무는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데 앞장서는 사람이나 집단을 의미한다. 『설문해자』는 무에 대해 설명하기를 가무로써 신인합일케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새삼 음악이 본래 영신迎神을 위한 무가에서 기인했다는 주장은 상기할 것도 없다. 그래서 비록 세속화되었지만 무속의 무가에 담긴 창세신創世神에 관한 신화내용을 더 풍부하게 밝혀내면 한국인의 하느님 신앙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오지섭, 「創世神話를 통한 한국인의 하느님 신앙 이해」)도 여기서 설득력을 얻는다. 오늘날 BTS를 비롯한 한류 음악들이 세계인들을 홀리는 데는 음주가무를 통한 천지융합과 신인합일의 문화가 독보적이었던 옛 원형문화의 영향이 보이지 않게 작용했으리라는 추정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BTS를 세계에 알린 김샬롯에게 이런 얘기마저 들려주고 싶다.

Ⅱ. 신화 속 신과 인간의 혼례

앞서의 논의에서 한국 고대의 천제는 하늘과 조상에 제사하고 술과 음악, 춤을 매개로 하늘, 땅이 융합하고 신과 인간이 합일하는 제전으로서 드러났다. 나라의 임금만이 아니라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제신諸神과 함께 기뻐하고, 제약 없는 영성적 경계에서 온전한 인간됨을 얻어 자유와 안식을 누리는 잔치였다.

“이것은 神人合一에서만 이뤄지는 것인데, 合一의 기술은 술과 노래와 춤이었다. 고대인의 종교의례의 극치는 이러한 神人合一을 가져오는 엑스타시에 이르는 데 있었다.

엑스타시 속에 사람들은 신령과 자유로이 교제하는 神話的 世界로 還元된다. 그곳은 창조를 기다리는 歷史以前의 原初的 世界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歷史가 빚은 불안과 공포가 없다. 神人合一의 엑스타시 속에서 사람들은 완전한 自由와 기쁨을 경험하고 神靈과의 교제를 갖게 된다. 生死禍福을 攝理하는 신령과의 교제에서 사람들은 모든 가능성을 발견한다. 거기에서 사람들은 풍부한 삶을 創造하게 된다.”(류동식, 『韓國巫敎의 歷史와 構造』)

말하자면 고대 한국에서 하느님 신앙과 인간 수행을 근본으로 하는 제의는 새로운 삶의 창조를 위한 하늘과 땅, 신과 인간 사이의 결혼 잔치였다. 그런데 제의는 신화의 재현再現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본래 신화에서 어떻게 나타날까? 천제가 기리는 신화의 원형은 무엇이었던가? 신시 배달과 고조선의 건국 역사를 비밀스런 서사로 담고 있는 단군신화를 통해 알아보자. 단군신화는 여러 문헌에 다소 차이를 보이며 기록돼 있지만 대강의 얼개와 뜻은 분명하다.

환웅이 족속을 이끌고 인간이 이로운 새 땅을 찾아 신시神市에 나라를 세웠다. 이들을 일러 천손족天孫族 또는 ‘신의 계율을 지키는 백성[神戒之氓]’, ‘하늘의 계율을 지키는 백성[天戒之氓]’이라 했다. 이에 곰과 호랑이로도 표현되는 웅족과 호족이 환족桓族이 되고자 했다. 그들은 신단수神壇樹에 가서 기도했으며, 환웅은 주술呪術로써 이들의 뼈와 정신을 바꾸었다. 이때 환웅은 먼저 신이 남긴 정해靜解의 방법(몸과 마음을 고요히 수행하여 해탈하는 법)으로 그렇게 했는데, 쑥 한 묶음과 마늘 스무 매를 주며 이를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도록 했다.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고 굳게 계율을 지키며 21일을 지낸 웅녀 또는 웅족은 ‘인간의 모습’을 얻었다. 그 후 이들이 주문을 외우며 아이 갖기를 빌자 환웅은 임시로 환족으로 받아들여 혼인케 했으며 자식을 낳으면 환족으로 입적시켰다.

천제가 보여주는 천지융합과 신인합일은 신화에서 실제로 신과 인간의 혼례로 기술되고 있다. 단군신화는 천제뿐만 아니라 세속화된 민속과 무속에도 반영돼 있다. 특히 단오제에서 단군신화의 오마주를 보기도 한다. 강릉에서 해마다 열리는 단오제는 우리가 지키고 있는, 가장 큰 민족 축제 가운데 하나이다. 고 박성수 교수는 단오제의 모티브가 환웅와 웅녀, 단군을 기리는 의식이라고 해석한다. 단오날에 앞서 음력 4월 15일 사람들은 대관령 산신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이어 부근 수풀에서 나뭇가지 ‘신대’(신을 내리게 하는 나뭇가지나 막대기)를 잘라내 색색이 옷감으로 만든 띠를 입힌다. 그 뒤 강릉읍의 여서낭당으로 옮긴다. 그곳에서 여서낭과 20일을 합사하도록 한 뒤 단오날을 맞이한다. 그런데 여기서 새신랑처럼 차려입은 나뭇가지는 환웅을, 여서낭당은 웅녀를 상징한다는 것이다.(박성수, 『단군문화기행』)

이런 주장은 『단군세기』에 나오는 다음의 기록과도 일정하게 부합된다. 소도蘇塗에 박달나무를 심고 그 가운데 가장 큰 나무를 골라 환웅상桓雄像으로 모셔 제사지내며 그 이름을 웅상雄常(常은 늘 계신다는 뜻)이라 하였다는 내용이다. 단오제는 환웅과 웅녀의 혼례 및 단군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로서 고스란히 국조삼성 숭배의 의식으로 보아야 한다는 게 박 교수의 주장이다.

앞에서 소략한 단군신화에는 우선 사람 되는 길이 신과 밀접히 연관돼 있음이 제시돼 있다.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신의 계율을 지키는 사람을 본받아 신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고 신령한 주술로 영육靈肉이 바뀌어야 하며 신이 준 쑥과 마늘을 먹어야 한다. 웅녀는 동굴의 어둠 속에서 그러한 수행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얻었다.

“월광月光에 바래면 신화가 되고 일광日光에 바래면 역사가 된다.”라는 말이 있다. 달빛의 신화적 상상력을 덜어 내면 웅녀가 원한 인간은 역사적으로 신시의 사람이었다. 다음의 주장들은 동이인 신시 배달의 겨레만이 ‘사람’으로 불렸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고대 갑골문자에 ‘人’자의 원형에 해당하는 글자는 동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앞에서 󰡔설문해자󰡕 인용문은 동이만이 대大를 따르는 대인大人들이라고 하면서 ‘大’는 사람의 형상을 본뜬 것인데 夷의 옛 글자는 ‘大’에서 유래한 것이라 밝힌 바 있다. 중국학자 라오간은 동이는 군자국으로 추앙받았기에 후대 중국에서 동이족을 뜻하는 ‘人’자를 차용하여 ‘인류人類’라는 보통명사로 사용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태백일사』가 인용하는 『조대기朝代記』의 기록을 보면 환웅은 웅족에게 수행과 기도로 참을 이루고 만물을 고루 구제하면 “진정한 사람다운 인격을 갖춘 대인大人이 되리라.”고 밝힌다. 그래서 웅녀의 변신은 곰에서 사람으로의 탈바꿈이 아니라 신의 계율을 지키며, 고유하게 인간이라 불린 동이 신시 겨레로 동화同化된 사건이다. 그리고 웅녀가 소원한 동이의 사람됨 또는 어둠 속 수행을 통해 얻은 인간의 본질이란 그 표상이라 할 환인, 환웅, 단군을 통해 보다 구체화될 수 있다.

먼저 환인은 “천계天界”(『삼성기』), “천산天山”(『삼성기』)에 머물며, “아버지의 도〔父道〕”(「삼신오제본기」)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사람들이 “수행을 하여 지극한 선善에 이르러 마음을 밝게 열고 하는 일마다 길상吉祥하게 되며 세상에 쾌락하게 머물게 했다.”(「환국본기桓國本紀」) 신의 가르침에 따라 가르침을 폈던 그 자신은 도를 얻어 장생하며 몸에 병이 없는(『삼성기』) 복락을 누렸다.

환웅 또한 환인의 명에 따라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며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여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였다.(「신시본기神市本紀」) 환웅은 또 삼칠일을 택하여 천신에게 제사 지내며 바깥일[外物]을 금기하여 삼가 문을 닫고 수도하였다. 주문을 읽고 공덕이 이뤄지기를 기원했으며, 선약仙藥을 먹고 신선이 되었다. 『규원사화揆園史話』는 환웅이 공업을 모두 완성하고 사람과 사물이 즐겁게 사는 것을 보고는 태백산 박달나무 아래에서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 싣고 있다. 훗날 조여적은 『청학집靑鶴集』에서 『기수사문록』의 기록을 들어 “환인진인이 동방 선파의 조종이며 환웅천황은 환인의 아들”로 나와 있다고 밝힌다. 환인의 선맥仙脈은 환웅을 거쳐 단군으로 이어진다.

단군왕검 역시 ‘천제의 아들[天帝子]’로서 하늘, 조상, 자연신들에게 제사했다. 그리고 “지극히 신성한 덕성과 성인의 인자함을” 겸하고 “두 손을 맞잡은 채 단정히 앉아 함이 없이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아” 다스리고 “현묘한 도를” 깨치셨다.(『삼성기』) 그리고 마침내 공을 다한 단군왕검은 아들 부루에게 임금을 물려주며 하늘의 도를 내려 받은 마음을 지켜 백성을 사랑하는 일에 지성을 다하라고 이르고 신향神鄕으로 돌아갔다.(『규원사화』) 하늘에 오르거나[조천朝天]이나 신의 고장[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인간의 신화神化나 선화仙化를 의미한다. 차주환에 따르면 한국의 신선사상 에서 “하늘로 올라가 一神의 고장에서 永生을 누리는 일은”, 곧 신선이 되는 것은 그 이래로 “仙家의 指向으로 設定”된다.(차주환, 「화랑도와 신선사상」)

단군신화 그리고 그 신화의 주인공들인 환인, 환웅, 단군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고대 사유 공간에서 소망한 인간됨은 뚜렷해진다. 참나[眞我]로 거듭 나 하느님을 섬기며 장생長生과 조화의 즐거움을 누리는 선仙의 삶이다. 단군신화에 의하면 선은 곧 “한민족의 초기적인 자기정체성이자 근원적 인간관”(민영현, 「한국 선과 증산사상의 특징 및 그 도교성에 대해」)이었다. 단군신화는 “선의 원형적 기록”(민영현, 「증산도의 선(仙)과 후천 문명」)이며 자생적인 신선사상의 대표적인 것(오종근, 「한국 신선사상의 근원연구」)이다. 하느님 신앙의 궁극처를 선의 성취로 이해한 것이다. 『규원사화』는 이러한 문맥에서 선이 신시 시대에서 유래했다고 말한다. “세상에서는 중국 문헌에 의지하여 선교仙敎가 황제, 노자에서 뻗어 나왔다고 여기지만, 실은 신으로써 가르침을 베푸는 신교神敎가 신시시대부터 있어, 거기서 비롯되었음을 알지 못하고 있다.” 이는 선의 연원과 동시에 선이 지닌 하느님 신앙과의 관련을 증언하는 것이다. 단재丹齋 신채호는 환인, 환웅, 단군을 삼신 또는 삼성이라 숭모하고 선교 창립의 조상이라고 못 박는다.(「동국고대선교고東國古代仙敎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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