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06 노종상 연구위원 천년의 약속 4 제3장 용의 아들 1) 금산사 미륵전에서 실로 오랜만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중생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미륵불을 잠깐씩 올려다보며 이미 망각의 저편으로 아득히 사라진 화두 대신 […]
2023-03-31 문계석 연구위원 한민족의 소도 문화 4 소도문화의 변천 (1) 단군조선의 말기에 접어들자 소도문화는 시대적 상황에 걸맞게 점차 확대 분파分派되고, 여러 지역으로 뻗어나가 토착화되면서 지역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전變轉되기에 이른다. 변전의 중요한 특징은 크게 세 […]
2023-03-17 문계석 연구위원 한민족의 소도 문화 3 『환단고기桓檀古記』에서 전하는 소도의 용례 (2) ⑤ 소도에 설치된 국자랑國子郞 혹은 천지화랑天指花郞 “(13세 흘달단군屹達檀君은) 재위 20년 무술년에 소도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를 심었다. 혼인하지 않은 자제들에게 독서와 활쏘기를 익히게 하였는데, 이들을 […]
2023-03-17 김현일 연구위원 노르만 정복과 영국의 성씨 영국에서 노르만 정복 이전에는 성을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냥 별명을 덧붙여 이름을 불렀다. 노르만 정복 때부터 소수의 제후들이 자신들의 영지 이름을 성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영국사 책을 보면 1066년 […]
2023-03-10 문계석 연구위원 한민족의 소도 문화 2 『환단고기桓檀古記』에서 전하는 소도 ① 소도를 주관한 치우천황 “환웅천황이 최초로 나라를 열고 백성들에게 교화를 베풀 때, 천부경을 강연하고 삼일신고를 강론하여 뭇 백성들을 크게 깨우쳤다. 이후에 치우천황은 영토를 개척하고 구리와 철을 […]
2023-03-07 문계석 연구위원 한민족의 소도 문화 1 『태백일사』의 「소도경전본훈」 『태백일사』는 일십당一十堂 이맥(李陌, 1455~1528)이 1520년 66세의 나이에 찬술纂述한 역사경전이다. 그가 『태백일사』를 찬술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왕조의 10대 임금인 연산군 14년(1503)에 정사의 기록을 맡아 관리하는 춘추관의 편수관編修官을 겸임하면서 역사에 […]
2023-02-24 철학자들, 그들의 깊은 사유와 ‘웃픈’ 삶 25 쇼펜하우어 (4) 우리는 더 나은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4. 세상이 나를 찾을 것이다 1831년 베를린에서 콜레라가 발발했을 때(헤겔은 이 전염병의 희생자가 된다), 쇼펜하우어는 한 죽은 친구가 그를 […]
2023-02-24 천년의 약속 3 제2장 출가 3) 진표율사에 대한 전기는 몇 가지가 전해지고 있다. 국내 기록으로는 고려시대의 고승 일연이 쓴 『삼국유사』 권4 제5 「진표전간眞表傳簡」과 「관동풍악발연수석기關東楓岳鉢淵藪石記」(이하 「석기」로 줄임)가 대표적이다. 전기는 아니지만 고려시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실려 […]
2023-02-22 철학자들, 그들의 깊은 사유와 ‘웃픈’ 삶 24 쇼펜하우어 (3) 우리는 더 나은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3. 삶은 ‘맹목적 의지’의 책략 바이마르에서 그를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었다. 1814년 그는 드레스덴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
2023-02-17 철학자들, 그들의 깊은 사유와 ‘웃픈’ 삶 23 쇼펜하우어 (2) 우리는 더 나은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2. 충족이유율의 네 가지 근거 같은 해 그는 거상巨商이고 시의원인 예니쉬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수습사원으로 일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3개월 뒤 […]